칠백 리 기나긴 소리가락으로 흐르는 섬진강이
가장 먼저 목청을 가다듬는 상류의 장구목에 서면
강물이 밋밋하게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게 아니라
강하게 소용돌이치며 역류하기도 한다는 걸 알겠다
때론 옆으로 삐져나가 저 혼자 지류를 만들기도 하니
어찌 물이 높은 데서 낮은 데로만 흐른다고 하랴
보라,
강물이 바위에 새긴 저 파란만장한 세월의 기록들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저 물속 바위들이 수천 년 동안 지그시 엎드린 채로
거칠고 힘센 강물을 온몸으로 받아 냈던 게지 일방적인
흐름을 바꾸려고 크고 작은 소용돌일 만들었던 게지
그러므로 저 바위들은 그냥 바위가 아니다 분명히
강물과 함께 흐르려고 제 살점들을 덜어 내기도 했을
저 상처투성이 바위들은 그래서 그냥 바위가 아니다
강물의 손길로 완성한 자연산 걸작이요 굴곡의 역사다
들어 보라,
산전수전을 다 겪고 흐르는 저 강물의 곰삭은 소리를
예로부터 천방지축 젊은 물살들이 뛰노는 장구목은
소리로 치면 아직 덜 다듬어진 생목 중에 상생목이니
어찌 단단한 바위에 부딪쳐 으깨지는 비명이 없으며
저희들끼리 좌충우돌하는 무수한 불협화음이 없으랴
허나, 숱한 아픔을 삭이며 목청을 가다듬는 장구목이여
너로 하여 섬진강이 절창의 가락으로 흐르는 것이리
* 섬진강 상류에 있는 바위 군락. 오랜 세월 물살에 씻긴 모양이 기기묘묘하다.
[햇살 택배], 문학수첩,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