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월요시편지_916호
문장수선공 k
박제영
막다른 골목 거기에 그의 가게가 있다
― 고장 난 문장을 수선해드립니다
그가 왜 이 소읍에 내려왔는지
그가 왜 이 막다른 골목까지 막다른 것인지
그가 이전에 무슨 일을 했는지
사정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가 한때 장미여관 포주였다거나 사이비 교주였다거나 유령작가였다거나
소문은 무성했지만 소문만 무성할 뿐이었다
긴가민가하면서 하나둘
어긋나거나 틀어진 문장들을 맡기기 시작했다
말도 안 되는 문장들이 그의 손을 거치면
신기하게도 말이 되었다
그의 가게엔 말도 안 되는 문장들로 가득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그의 가게를 찾는 발걸음들이 뜸해지더니
어느 날부터는 아예 발길이 끊어졌다
나중에 그 이유가 밝혀졌는데
그에게 수선을 맡긴 소설가라던가 시인이라던가
암튼 수선이 잘못되었다며 아무개가
그에게 거액의 소송을 걸었다던가 뭐라던가
한바탕 야단법석 소동이 벌어졌다고 했다
― 고장 난 문장을 수선해드립니다
막다른 골목 거기에 그의 가게가 있었다
- 『천년 후에 나올 시집』(달아실, 3023)
***
눈 내리는 화이트 크리스마스 아침, 2023년 마지막 시편지를 띄웁니다.
지난 22일(금) 올 해 들어 가장 추웠던 그날, 가장 뜨거운 축제의 밤을 보냈더랬습니다.
<제1회 달아실 작가 시글벅적 난장판>이 열렸더랬지요.
강건늘 (시인), 김경희 (시인), 김미량 (시인), 김서현 (시인), 김성호 (가수), 김선순 (스탭, 자유기고가), 김승하 (시인), 김종수 (시인), 김해경 (시인), 김현식 (소설가), 김홍주 (시인), 박정대 (시인), 박희준 (시인), 배세복 (시인), 성시하 (시인), 송병숙 (시인), 심종록 (시인), 오석균 (시인), 유준 (화가), 이나래 (스탭, 문화기획자), 이선정 (시인), 이수환 (사진작가), 이홍섭 (시인), 임덕호 (스탭, 캘리그래퍼), 전부다 (배우), 전윤호 (시인), 정규범 (시인), 정현우 (시인), 최관용 (시인), 최삼경 (소설가), 한정우 (시인), 허림 (시인)
서른 두 분의 전직 천사들과 남만 북만의 오랑캐들과 려족들과 귀족들과 기타 등등의 족속들이 모여서 한바탕 시판 글판 술판 난장판을 벌였더랬습니다.
달아실 문장수선소는 앞으로도 백년은 더 문을 열어두려고 합니다. 이 무시무시하고 징하디징한 천상천하유아독존의 족속들이 지켜줄 테니 말입니다.
3년 뒤 10주년 때는 전국의 달아실 식구들을 전부 부르겠습니다. 그때는 춘천이 무너져라 떠나가라 난장을 벌여보겠습니다.
행복한 성탄 보내시고 한 해 마무리도 잘하시길요.... 그럼 새해 첫날 뵙겠습니다.
2023. 12. 25.
달아실 문장수선소
문장수선공 박제영 올림
첫댓글 문장수선공이라는 이름이 참 멋집니다.
문선공처럼 사라지지 않고 오래오래 그 자리를 지켜주시기를 바랍니다. ^^
축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