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동 가위. 경주 안압지에서 출토된 '금동 가위'와 거의 비슷하다.
신라 먹. 신라 이두 등이 새겨진 명문도 있다.
정교한 무늬가 새겨진 은제 다리 위에 코발트블루의 유리잔. 사산조 페르시아에서 제작된 유리잔이 백제로 왔고, 백제에서 은으로 다리를 만들어 접합시킨 이 유리잔은 일본으로 까지 전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신라시대의 포장상태가 그대로 남아 있는 놋쇠 수저(사하리 수저) 묶음. 놋쇠 식기류는 신라의 주요 수출품이었다.
각종 보석류와 나전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나전 동경.
1300여년 전 바둑돌.
1300여년 전 바둑판.
가야금의 일종인 신라 금(琴). 신라에서 유래된 악기로 추정된다.
일본 관료들이 신라에서 구입한 놋쇠 그릇(사하리 가반).
백제 의자왕과의 관계로 주목 받는 적칠문관목주자(아름다운 나뭇결의 느티나무로 만든 붉은 옻칠 가구). 의자왕이 하사했다는 기록이 있는 적칠관목주자는 없어졌지만 이 적칠문관목주자도 당시 백제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752년 일본을 찾은 신라 김태렴 일행에게 일본 관료들이 매입을 원하는 물건과 그 가격 등을 기록한 문서인 '매신라물해'의 일부.
통일신라 민정문서. 1933년 10월 '화엄경론질'이라는 불경을 수리하던 중에 경질 내부에서 발견되었다.
정창원은 일본 나라 시내 동대사의 후원 쪽에 위치하는 목조로 지어진 단독의 창고 건물을 가리킨다. 나라시대로부터 소장되기 시작한 약 9,000여 점에 이르는 다종다양한 미술품과 문서를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원래 ‘정창’이란 명칭 자체가 중요한 물품을 수납하는 창고를 의미하여, 동대사 뿐 아니라 중앙, 지방의 관청에도 설치되어 그 영역을 정창원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그러나 여러 곳에 설치되었던 정창은 점차 사라지게 되어 지금처럼 ‘정창’ 혹은 ‘정창원’은 동대사의 창고, 혹은 그 일대를 칭하는 고유명사로 자리 잡게 되었다. 정창원은 남북 33m, 동서 9.4m, 총고 14m로 남북으로 길게 뻗은 맞배식 건물로서 북쪽부터 북창, 중창, 남창의 3실로 나뉘어져 출입구는 각 창고 모두 동쪽을 향한 한 곳뿐이다. 각 창고는 독립되어 서로 왕래할 수 없는 구조이며 계단이 설치되어 있지 않아 지금도 유물을 꺼낼 때에는 창고의 문 쪽에 별도의 사다리를 연결하여 이 장치를 통해야만 오르내릴 수 있다.
유물의 유래는 덴표쇼호 8년(756) 5월 2일에 56세로 붕어한 쇼무천황의 49재에 명복을 빌기 위하여, 평소에 사용하던 애장품과 고묘황후의 물품을 동대사에 헌납한 것에서 비롯된다. 정창원 헌납 기록 가운데 가장 이른 것이 같은 해인 756년 6월 21일로서 이 시기를 포함해 도합 5번에 걸쳐 헌납한 보물이 그 취지나 품목을 적은 헌물장과 함께 북창에 보관되었다. 이 5통의 문서는 각각 다른 명칭이 붙여진 채 ‘동대사헌물장’으로 불린다.
정창원 유물이 주목받는 까닭은 8세기 일본의 공예, 조각, 회화는 물론 사산조 페르시아, 인도와 같이 실크로드를 통해 건너온 물품과 당시 통일신라와 중국 당대에서 유입된 유물을 동시에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수백여 점에 달하는 생생한 문서가 잘 보존되어 있어 당시의 사회 제반 상황은 물론이고 문화 외교의 교류사 및 불교 교리의 변천까지 아우르는 역사적 고증 자료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정창원 소장품은 다른 국가 소유의 박물관이나 사찰과 달리 일본 궁내청이 직접 관리 소관하고 있으며 1년에 한 번 나라국립박물관에서 일정량의 유물을 제한적으로 꺼내 일반에 공개하는 것이 전부이다. 이 때 참가하거나 유물을 진열하는 나라국립박물관 연구원들이 이 유물들을 그나마 가장 가까이서 실질적으로 관찰하는 셈이지만 제한된 점수와 시간상 깊이 있는 연구나 그 가치를 판단하기에는 역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건물의 내부 역시 유물을 출납할 때 이외에는 절대 개방되지 않는 공간이기도 하다.
출처: 경향신문, 정창원 금속공예의 연구현황과 과제
첫댓글 잠깐...
신라시대부터 놋쇠 수저로 가 있었다구요?
구한말쯤 그런문화가 생겼을꺼라 생각했는데 쇠젓가락 쓴지 엄청 오래되었네요
놋쇠가 바로 청동입니다. 신라는 청동기 시대를 지난 철기시대의 왕조조 삼국시대에 출토되는 그릇중 놋쇠로 된 것이 많습니다. 단지 산화되어 청동기 처럼 보이는데 청동도 원래 황색이 본바탕입니다. 청동기 유물에 청동은 구리 함량에 따라서 유철(구리 70%), 상철(구리 80%), 주철(구리 90%)로 나뉘는데 나머진 주석의 함량입니다. 재료학사로 본다면 구분이 되겠지만 청동이란 것에서 벗어나진 않습니다.
@대명궁 청동이 아니라 구리 합금 아닌가요?
비율이 어찌되는지는 모르겠지만...
@Dirus 초기 답변에 오류가 있어서 고쳤습니다. 제가 잘못 알고 있든 부분도 있어서...
와, 국보급 문화재들이 정말 많네요.
개방을 좀 더 자주 해주면 좋겠습니다ㅠ
일본은 비보문화가 있어서 공개를 잘 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정창원은 도록이라도 있지만 다른 문화재의 경우 도록도 없는 경우도 많아서
일본이 가지고 있다고 해서 기분상 그런것인지는 모르겠는데, 다들 너무 아름답고 보존상태도 좋네요. 진짜 국보급일수도 있는 물건들이 많을듯.
바둑세트는 지금 팔아도 손색 없겠어요
조선시대 유물보다 더 좋아보이네요
바둑판이랑 돌이 굉장히 끌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