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생활이 힘들다고 우는 너에게 그만두라는 말은 하지
못하고 이젠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했다 까무룩 잠이 들
었는데 우리에게 의지가 없다는 게 계속 일할 의지 계속 살
아갈 의지가 없다는 게 슬펐다 그럴 때마다 서로의 등을 쓰
다듬으며 먹고살 궁리 같은 건 흘려보냈다
어떤 사랑은 마른 수건으로 머리카락의 물기를 털어내는
늦은 밤이고 아픈 등을 주무르면 거기 말고 하며 뒤척이는
늦은 밤이다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룬 것은 고작 설거지 따
위였다 그사이 곰팡이가 슬었고 주말 동안 개수대에 쌓인
컵과 그릇 들을 씻어 정리했다
멀쩡해 보여도 이 집에는 곰팡이가 떠다녔다 넓은 집에
살면 베란다에 화분도 여러개 놓고 고양이도 강아지도 키우
고 싶다고 그러려면 얼마의 돈이 필요하고 몇년은 성실히
일해야 하는데 씀씀이를 줄이고 저축도 해야 하는데 우리가
바란 건 이런 게 아니었는데
키스를 하다가도 우리는 생각에 빠졌다 그만할까 새벽이
면 윗집에서 세탁기 소리가 났다 온종일 일하니까 빨래할
시간도 없었을 거야 출근할 때 양말이 없으면 곤란하잖아 원
통이 빠르게 회전하고 물 흐르고 심장이 조용히 뛰었다
암벽을 오르던 사람도 중간에 맥이 풀어지면 잠깐 쉬기
도 한대 붙어만 있으면 괜찮아 우리에겐 구멍이 하나쯤 있
고 그 구멍 속으로 한계단 한계단 내려가다보면 빛도 가느
다란 선처럼 보일 테고 마침내 아무것도 없이 어두워질 거
라고
우리는 가만히 누워 손과 발이 따듯해지길 기다렸다
[일하고 일하고 사랑을 하고], 창비,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