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대한 손길
‘목사님!
주일 예배드리고 교회 식구들과 남창으로 오세요.
단풍이 곱게 물들어 볼 만해요.
점심은 오골계로 준비할게요.
모두 잡수시고 가면 좋겠네요.
놓아기른 닭이라 맛이 괜찮아요.
추워지면 어르신들 모시기 힘들잖아요.
대충 참석할 인원 말씀해 주시면 수대로 닭 잡을게요.’
가을 나들이 고민 중에 들은 곶감같이 단 소식이었다.
보고픈 분들 파악에 나섰다.
차량 운행 부탁하고 깊은 계곡이라 따뜻하게 입도록 알렸다.
성례 주일! 예배가 늦게 끝나 서둘렀다.
항암 치료 중인 한창남 성도님이 세례 받고 동행하셨다.
‘목사님, 건강했으면 교회 나오지 않았을 거예요.’
아내 류 집사님 말에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임을 밝혔다.
기도 응답이요 설득의 열매였다.
부디 온전한 회복을 바랄 뿐이다.
연로하신 분들은 내 승용차에 태웠다.
임 권사님 전화가 울렸다.
‘목사님 차 타고 밥 먹으러 간다’고 끊었다.
‘다른 것들은 앙 그런 디 막내딸이 하루 세 번 전화 한단 말이요.
하지 말라 그래도 소용없어요.’
효심이 특별한 가문이었다.
평소에도 대문 앞에 차를 세우면 아들이 문을 열었다.
잘하려고 애쓴 모습이 아름다웠다.
늙은이 기운 좋은 것과 가을 날씨 좋은 건 믿을 수 없기에 그런가 보다.
네비를 켜서 남창 계곡을 쳤다.
50분 거리였다.
가을바람에 새털 날리듯 가볍게 밟았다.
끝없이 높은 하늘 해살이 내리쬐었다.
도심을 벗어나자 가을걷이 끝난 들판은 어머니의 마음 같았다.
입가에 묻은 크림 자국처럼 흩어진 구름이 앞섰다.
도로변에 단감 상자를 내놓고 팔았다.
남경산은 아기단풍이 곱게 물들어 갔다.
나뭇잎이 날렸다.
야영장과 주차장으로 형형색색의 옷차림에 산행을 즐긴 자들이 모였다.
차창을 내려 산속 맑은 공기를 마셨다.
어느새 장로님 별장에 내려 영접을 받았다.
키다리 감나무에는 까치밥만 달랑거렸다.
시장하여 상차림을 돕고 옹기종기 앉았다.
다리 아픈 분들은 식탁으로 모셨다.
감사 기도 후 닭살과 닭죽을 폭풍 흡입했다.
‘가마솥에 끓여 고기가 너무 익었지만 먹기 좋을 거예요.’
솔가지 타는 냄새가 풍겼다.
체력 보강과 면역 증진의 효과를 알기에 그릇을 금세 비웠다.
봄철에 채취해 담은 신선초와 취나물은 개운한 맛을 냈다.
콩나물과 무채지 맛도 죽여줬다.
남산만 한 배를 보고 정 권사님이 ‘그만 드시라’ 할 정도였다.
후식 단감 맛도 좋았다.
꿩 먹고 알 먹는 자리였다.
설거지 맡은 분들의 손길이 빛났다.
곱게 핀 국화꽃에 마음 가난해 몇 송이 꺾었다.
장로님 집에서 모두 행복 만땅을 채웠다.
‘목사님! 여기서 마음대로 기도해도 뭐라 한 사람 없어 좋아요.’
‘아파트는 그렇게 못하거든요.’
해맑게 섬기고 남은 죽도 주셨다.
얼마 전 두암동 권사님 부탁에 치과 치료를 도왔다.
그 아들이 1박 2일 거제도 운행 나간 바람에 일찍 갔다.
거동이 불편한 분이라 휠체어를 챙겼다.
주차타워에 차를 넣고 휠체어를 밀었다.
대기자가 많아 언변 능한 권사님의 입담을 들었다.
미국 딸이 귀국하여 강남 아파트 사놓은 자랑,
작은 아들이 용돈 보낸 이야기,
세놓은 상가에서 큰 아들과 천연 염색하고 온 일,
정신과 약 끊고 대학 생활한 손자 이야기,
집안 수리하고 2층 월세 준 스토리를 재미있게 이어 가셨다.
담양 가족 묘지 마련하고 큰 딸 이장한 말을 꺼낼 때는 코끝이 시큰해졌다.
십여 년 전이었다.
서울살이 한 미혼 딸이 밤길 괴한에게 피습당한 비보를 들었다.
자존감 강한 권사님이라 쥐도 새도 모르게 장례를 치렀다.
막내가 유골함을 껴안고 안방에 들어섰다.
홀로 방문하여 가슴 아파하며 위로의 말씀을 전했다.
강이 내려다보인 추모 관으로 모셨다.
심장에 묻고 그리울 때면 다니셨다.
두암동으로 이사하고도 고마움을 잊지 못한 탓인지 날 부르셨다.
난 부담 드리기 싫어 식사 시간을 피하고 싶었다.
치료가 늦어 원치 않게 점심때가 됐다.
극진하게 모신 간호사 칭찬을 되풀이하셨다.
맛있는 거 먹자는 말씀에 갈비탕 집으로 갔다.
식사 기도 중에 눈물 난다고 깜박거렸다.
새 반찬이 없다고 마뜩 잖은 표정을 지었다.
대접이 시원찮다고 되뇌었다.
돌아온 내 생일에 생선 횟집 접대 약속하고 헤어졌다.
오후에 톡이 울렸다. ‘
목사님, 오늘 고맙습니다.
알뜰하게 섬겨 주셔서 어떻게 해야 할 줄 모르겠네요.
자상하게 살펴 주심 말로 표현할 수 없네요.
생신 때 만나 회포를 풀게요.’
‘예, 권사님 너무 반갑고 좋았네요.
점심 든든하게 잘 먹었네요.
언제든지 필요하면 연락 주세요.
별일 없으면 달려가 도와드릴게요.
늘 건강하시고 평안한 삶 누리세요.’
주중에 문자를 받았다.
‘목사님 안녕하세요.
날씨 추워지기 전, 만나지요.
사모님과 시간 내주세요. 목사님 사랑합니다.’
‘예, 권사님 잘 알겠습니다.
시마다 때마다 불러 주심 감사합니다.’
목요일 한 시에 만났다.
감기를 붙들어 몸이 무겁게 보였다.
마땅한 횟집이 없어 메뉴를 변경하고 싶어도 아니란다.
지인에게 추천받아 쌍촌동 서해 수산으로 갔다.
흡족한 마음에 괜찮게 드셨다.
며칠간 감기로 앓아누워 접대 못하고 떠날 것 같은 생각에 서둘렀단다.
아들, 며느리가 잘 돌보지 않은 서운함에 보통 섭섭한 게 아니었다.
30년 만에 무릎 꿇게 만들어 훈계한 속에 말을 드러냈다.
자식이 잘해도 나이 먹고 누우면 섭섭 병까지 앓음 같았다.
약한 몸이라 성이 차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래도 어머니라 고구마, 새우튀김을 포장 주문하셨다.
아들 좋아한 오리 탕을 저녁에 끓이겠다고 나서며 추수감사 헌금을 주셨다.
2024. 11. 16 서당골 생명샘 발행인 광주신광교회 이상래 목사 010 4793 01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