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삼자(第三子)”를 “제삼자(第參子)”로적는 이유는?
지금은 일반적으로 숫자를 쓸 때에 1.2.3.4.5.6.7.8.9.10숫자를 쓴다.
이 숫자를 한자(漢字)로 일(一) 이(二) 삼(三) 사(四) 오(五) 육(六) 칠(七) 팔(八) 구(九) 십(十)이라 쓴다.
또 일(壹) 이(貳) 삼(參) 사(四) 오(五) 육(六) 칠(七) 팔(八) 구(九) 십(拾)이라고도 쓴다.
고치지 못하게 “제삼자(第三子)”라 적지 않고 “제삼자(第參子)”라 적었다 이렇게 “일(壹) 이(貳)”등의 숫자 명칭을 “갖은자 숫자”라 했다. 컴퓨터 한글 Word Processor가 있기전 전부 종이에 펜이나 만년필로 글을 쓸 때 이야기다.
모든 계약서나 재무.회계상의 숫자 위조나 변조를 방지하기 위해 반드시 “갖은자 숫자”를 썼다 필자 학생시절 고향 관공서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문서작성을 많이 하면서 처음 알았다.
왜 “갖은자 숫자”를 쓸까? 이유는 세상 사람들의 “바꿔치기” “위조” 거짓말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갖은자 숫자”에 관한 조전조 역사 한 가지를 예를 들겠다. 조선왕조 제13대왕 명종(明宗)이 있다.
명종(明宗)의 환후(患候)가 심상치 않았다. 신하들이 여러 날 왕의 병상을 지키다가 병세가 조금 호전되자 다른 대신들이 쉬기 위해 자리를 비웠다. 영의정(領議政) 이준경(李浚慶)이 혼자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밤중에 왕(王)의 병세가 갑자기 위중(危重)해졌다. 이준경(李浚慶)이 들어가 주렴 밖에 서서 왕후(王后)에게 후사(後嗣)를 누구에게 이을 것인지 물었다. 왕후(王后)가 말하기를 “덕흥군(德興君)의 셋째 아들 모(某)로 후사를 이으시오.”
당시 입직(入直)했던 여러 대신들 중에 왕의 병을 염려해 섬돌 위로 올라온 자가 많았다. 이준경(李浚慶)이 다시 말했다. “소신(小臣)의 귀가 어두 우니 다시 큰소리로 하교(下敎)해 주소서.”
명종(明宗)의 왕후(王后) 인순왕후(仁順王后)가 모두에게 들리도록 두 번 세 번 또박또박 큰소리로 말했다. 모두가 분명히 들은 것을 확인한 뒤에 한림학사 윤탁연(尹卓然)에게 전교(傳敎)를 받아 적게 했다. ※전교(傳敎)-임금이 내리는 명령
윤탁연(尹卓然)이 전교(傳敎)를 적을 때 “제삼자(第三子)”라 적지 않고 “제삼자(第參子)”로 썼다. 이를 본 이준경(李浚慶)이 말했다. “이 사람이 누구의 아들인고?” 그의 노숙(老熟함을 칭찬한 말이었다. ※노숙(老熟)-오랜 경험으로 익숙하다.
왕조시대(王朝時代)의 후사(後嗣) 문제는 자칫 국가의 운명이 왔다 갔다 하는 중대사였다. ※후사(後嗣)-대(代)를 잇는 자식. 한 점의 의혹(疑惑)이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왕후(王后)가 후사(後嗣)는 “덕흥군(德興君)의 셋째 아들 모(某)라는 것을 모두가 분명히 듣게 하여 한 점 의혹이 없는 뒤에 시행한 이준경(李浚慶)이나 삼(三)을 삼(參)으로 써서 혹 있을지 모를 “바꿔치기(變調)”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한 윤탁연(尹卓然)의 침착함이 위기의 순간에 빛났다. 지금 정치인들이 반드시 본받아야할 역사다.
▶1830년 조선(朝鮮)23대왕 순조(純祖)의 세자(世子)인 익종(翼宗)의 발인(發靷)을 며칠 앞두고 빈소에 불이 났다. 신하들이 불 속에 뛰어들어 관(棺)을 꺼내 받들어 내왔다. 옻칠한 관(棺)안이 매우 두꺼워 밖은 탔어도 안은 말짱했다.
종척집사(宗戚執事) 홍현주(洪顯周)가 말했다. “천만다행(千萬多幸)입니다” ※종척집사(宗戚執事)-왕의 종친(宗親)과 외척(外戚)으로 집안일을 보는 사람
하지만 그냥 모시면 안 됩니다. 반드시 중전마마와 세자빈께서 입회하시어 불에탄 관을 직접보시고 근심과 의심을 풀어야 합니다”
이렇게 다시 절차를 갖춰 시신을 모셔내 새 관에 옮겼다. 아니나 다를까. 시중에 말이 돌기를 시신이 다 탔느니, 누가 일부러 그랬느니 갖은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중전(中殿)과 세자빈(世子嬪)이 직접 입회한 소식이 전해진 뒤에야 여론(與論)이 겨우 가라앉았다.
“임사주상(臨事周詳)” 사자성어가 있다. 어떤 일을 할 때 철저하고 세심하게 준비하고 처리한다는 의미를 가진 말이다.
일에 임해서는 그 처리 과정이 촘촘하고 꼼꼼하고 야무져야 한다. 다급한 상황일수록 침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집이 타는 화재는 물로 불을 끄면 되지만 말(語)의 불길은 한번 치솟으면 걷잡을 수가 없다. 처음의 일 처리가 야무지지 못하여 터무니없는 의혹이 생기고 평지풍파가 일어난다. 천안함 사태의 처리 과정에서도 이런 경우를 수없이 신문기사에 나왔다.
김건희 “빽” 문제나 이재명의 “김문기 모른다” 문제나 아내의 법인카드 사용문제등 확실하게 해야 한다 문재인 아내 문제도 국민앞에 밝히어야 한다 지나갔지만 노무현의 아내 문제로 오점을 남기지 않았는가
끗빨힘으로 구렁이 담 넘어가듯 뭉개고 넘어가서 남는 것은 권력 때문에 역사에 길이 전해지는 “사람 우습게 되는 것” 뿐이다 대통령 아내들의 이게 뭐냐 유치하게---
일(壹) 이(貳) 삼(參) 십(拾)의 이유가 여기에 있다 !
농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