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에는 한국도 초고령 국가(Super-Aged Society), 1000만 노인시대로 진입한다. 정부는 말로만 고령화 대책을 외칠 것이 아니라 노인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주택부터 고령화에 대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권오정 건국대 건축학과 교수는 “노인 낙상사고의 약 63%가 집안에서 발생한다”면서 “젊은이들에게 맞춰진 주택이 노인에게는 안전과 자립을 위협하는 흉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주거학회장을 역임한 권 교수는 고령자의 주거문제를 평생 연구해온 학자로, ‘특수계층과 주거’, ‘고령자 행위 기반 주택개조 매뉴얼’ 등의 저서를 냈다. 인천도시공사 광역주거복지센터의 자문위원장으로, 인천시의 ‘고령친화 맞춤형 집수리 사업’을 주도하고 있다.
권 교수는 “노인 1~2인 가구가 급증하는 현 상황에서, 고령자 부양 부담을 줄이고 기존의 주택재고를 활용해야 한다”면서 “고령자가 나이 들어도 살던 집에서 지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는 측면에서 노화에 대응한 주택개조는 국가적 과제”라고 말했다.
◇나이에 따른 노화에 대응한 집 개조는 필수
-고령화에 대비해 주택개조(Home Modification)가 국가적 과제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젊을 때는 대부분의 시간을 집 밖에서 보내지만 노년기에는 반대로 대부분의 시간을 집안에서 보낸다. 그래서 집은 노인에게 소우주이다. 집이 불편하면 집안에서 마음대로 이동하거나 활동하기가 어려워진다. 걸려 넘어지거나 추락하거나 하는 낙상사고라도 당하게 되면, 젊은이들과 달리 침대에 누워만 있어야 하는 와상 노인으로 전락하거나 심지어 죽음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즉, 젊은이에게 맞춰진 주택이 흉기가 돼 노인의 목숨을 앗아갈수도 있다. 주택의 구조가 불편해서 화장실을 가고 식사준비를 하는 등의 기본 활동이 어려워지면 거동 반경이 점점 줄어들고 자존감이 급격히 떨어진다. 집안에서의 활동성의 저하는 인지 및 신체기능의 저하를 가속화시킨다. 계절에 따라, 옷을 바꿔 입듯이 나이가 들면 노화 진행에 따라 집도 필요한 부분을 바꿔야 한다. "
-인테리어를 고쳐도 주택을 고령자에 맞춰 개조하는 사례는 많지 않다.
“노인들이 집안에서 낙상사고가 나면 낙상의 원인이 된 부분을 바꿔야한다는 생각보다는 자신이 부주의해서 넘어졌다고 자책한다. 여유가 있는 중산층도 주택개조보다는 스스로 더 조심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보통 같은 장소에서 재낙상률이 50%가 넘는다. 낙상사고가 발생하는 것은 본인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자연스러운 노화나 노인성 질환의 결과이다. 보폭이 좁아지고 반사 신경이 둔화되는 등 신체능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노화된 신체능력에 맞게 집을 개조해야 하는 이유이다.”
◇주택개조는 노인 존엄 지키면서도 확실한 재정 절감대책
- 주택개조의 사회적 필요성은?
" 화장실 간다든지 아니면 식사를 준비하는 것을 누구에게 도움을 받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스스로 일상 생활을 하는 것을 포기하게 된다. 삶의 질이 급격히 떨어지고 노화를 앞당긴다. 사회적인 의미에서는 돌봄비용, 의료비 증가로 이어진다. 결국, 주택개조가 노인의 존엄성을 지키고 삶의 질을 유지하면서도 가장 사회적 비용이 적게 들면서도 효과를 볼 수 있는 고령화 대책이다.”
- 행위기반의 주택개조에 관한 책을 집필했다. 행위기반 주택개조란 무엇인가?
노년기를 위한 주택개조는 단차를 없애고 문폭을 넓히고 안전손잡이 설치 등이 필요하다. 통상적인 인테리어 리모델링에 비해 비용도 크지 않다. 그런데 문제는 옷이 사람마다 제 각각이듯 사람마다 설치 장소 및 설치방법이 달라야 한다. 예를 들자면, 키나 신체 능력 등에 따라 안전손잡이의 최적 높이나 형태, 재질 등이 다 다르다. 사람마다 행동패턴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행위기반 주택개조란 각 개인이 갖고 있는 신체 및 행동 특성을 반영한 주택개조를 의미한다.”
-한국에서 행위기반 주택개조를 누구에게 의뢰하면 되나?
“인터넷을 찾아봐도 노인을 위한 전문 주택개조 업체를 찾기가 어렵다. 한국이 그만큼, 노화 대응 주택개조에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인천도시공사가 고령자 친화 맞춤형 집수리 사업을 하고 있다. 고령자의 노화 및 행위분석 전문가 집단인 ‘내집연구소’가 행동패턴 등을 조사하고 진단하여 노화대응 개조방안을 제시하면 사회적 기업인 ‘사회안전문화재단’이 시공을 한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저소득층의 주거환경개선 사업을 하고 있지만, 인천도시공사처럼 전문가집단이 참여하는 경우는 한국에서 유일하다.”
◇고령자 위한 주택개조, 사회적 무관심에 방치
-한국은 왜 노화 대응형 주택개조에 무관심한가?
“진단업체는 고사하고 현재 노인주택 개조 시공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를 찾기도 어렵다. 노인을 위한 관련 상품도 종류가 많지 않다. 20년 전부터 대통령직속기구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등 관련 활동에 참여해서 노인을 위한 주택개조의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해왔다. 그런데 정부는 노인 임대주택 공급 등 실적이 명확한 분야에 투자를 더 집중했다. 지난 정부에서 2025년까지 ‘고령자 복지주택’ 1만호 가구, ‘맞춤형 리모델링’ 노인주택 7만호 공급계획을 발표했다. 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고령화 대책에 투자하면서 정작 돈 가장 적게 들이면서 효과적인 노화대응 주택개조에는 여전히 큰 관심이 없는 듯하다. 1000만 노인시대에 고령자 복지주택 1만호를 건설·공급한다고 고령자의 주거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다. 고령자가 거주하는 주택을 노화에 대응해서 개조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고 예산을 줄이는 대책이다.”
-정부가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는가?
“일본처럼 장기요양보험(개호보험)에서 주택개조를 지원하도록 해야 한다. 일본은 20만엔(한화 194만원) 범위 내에서 주택개조비용을 지원한다. 이것이 계기가 돼서 노화 대응 주택개조 전문업체들이 생기고 다양한 관련 제품이 출시됐다. 우리는 아직까지 장기요양보험과 같은 간병보험에서 지원하지 않는다. 복지용구 급여로 휠체어 등 대여나 복지용구 구입은 지원한다. 복지용구 지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주택개보수 지원이 더 시급하다고 본다. 개보수 관련 산업이 만들어지면 전문업체, 진단업체들이 활동기반도 만들어질 것이다.”
-지역사회 내 계속거주(Aging in Place)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노인들의 삶의 질을 높이면서 재정 지출을 가장 효과적으로 하는 방법이 자신의 주택에서 계속 거주하는 이른바 ‘재가복지’이다. 고령화시대에 요양병원과 요양원을 무한정 만들 수 없다. 만족도나 삶의 질은 본인이 살고 있던 지역의 주택에서 계속 사는 것이 가장 높다. 그 첫 단계가 노화대응 주택개조이다. 지역의 도시시설을 노인 친화적으로 바꾸는 것도 필요하다. 유니버설 디자인이 노인과 장애인, 어린이에게 편리한 설계라는 개념이다. 노인이 활발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주택 도시구조가 결국 삶의 존엄성을 지키는 방법이자 의료비 등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방법이다.”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는 천문학적 의료비 줄이는 묘수
-요즘 노인들의 지하철 무임승차와 관련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노인인구가 급증하면서 재정적인 부담을 줄이고자 이러한 논쟁이 있는 것이겠지만, 생각을 바꿔보면, 노인들이 지하철을 무료로 이용하도록 하는 것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방법이 될 수 있다. 공짜 지하철 덕분에 노인들의 더 많이 집밖으로 나가 돌아다니면서 활동범위가 늘어나면 그만큼 건강유지에 좋고 의료비를 줄이는데 기여할 수 있다. 고령화로 인해 천문학적으로 늘어나는 의료비와 간병비용을 감안하면, 지하철 무임승차는 재정지출을 줄여주는 묘수이다. 말로만 고령화 대책을 외칠 것이 아니라 이런 부분에 대해 더 적극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