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월요시편지_917호
제주국제공항 388
서안나
죽음을 밟지 않고 제주에 착륙할 수 없다
제주국제공항 비행장은
4.3 때 최대 학살터
2007년 388구의 주검이 발굴되었다
역사의 평탄화 작업이 끝난 제주공항
학살의 무늬를 따라 달려가는 활주로
주검이 먼저 이륙한다
죽음을 껴안지 않고는 제주를 떠날 수 없다
* 1950년 8월 19일과 20일 이틀간 제주국제공항(당시 정뜨르비행장)에 끌려간 예비검속자들이 집단 학살된 후 암매장되었다.
- 『애월』(여우난골,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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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날, 첫 시편지에 올릴 시를 고르다가 지난 해 마지막으로 읽었던 시집에서 한 편 띄웁니다.
서안나 시인의 신작 시집 『애월』의 맨 처음에 실린 시입니다.
새해 첫날 읽기에는 조금 아니 많이 무겁지 않나 싶긴 합니다만, 그만큼 의미가 크지 않을까 싶습니다.
시집 해설에서 이홍섭 형도 "일찍이 서안나 시인이 언젠가 '애월'을 표제로 삼은 시집 한 권을 엮을 때가 올 것이라는 예측을 한 바 있다."라고 쓰고 있지만, 저도 서안나 시인이 언젠가는 애월로 시집 한 권을 묶을 줄 진작에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주 오랜 기다림 끝에 마침내 애월이라는 시집이 내 손에 쥐어졌는데요, 제가 기대했던 이상입니다. 지금까지 읽었던 경험을 얘기하자면, 서안나의 시집은 무엇을 상상하든 늘 그 이상을 담아내지요. 이번 시집 『애월』도 그렇습니다.
서안나 시인은 제주와 애월을 통해 "끝나지 않은 아픔, 끝나지 않은 죽음들 그리하여 끝나지 않은 불구의 역사"를 그려내고 있지만, 제주와 애월만을 얘기하는 것은 아닐 터, 치유해야 할 역사는 이 땅 도처에 산재해 있습니다. 이들을 밟지 않고 우리는 평등한 삶이라는 지평에 착륙할 수는 없다고, 이들을 껴안지 않고는 미래로 떠날 수는 없다고, 시인은 시종 그런 얘기를 들려줍니다.
험한 세상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다리가 되어 조금은 더 밝은 날들을 향해 조금은 더 나은 삶을 향해 전진하는 갑진년, 값진 한 해가 되길 바라봅니다.
2024. 1. 1.
달아실 문장수선소
문장수선공 박제영 올림
첫댓글 새해 새아침, 첫 시 감사합니다^^
올해도 좋은 시집, 좋은 시 잘 부탁드립니다.
건강한 2024년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