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아호가 종착지인 실론의 콜롬보항에 도착한 것은 아침 아홉 시였다. 덥고 따가운 햇볕에 시달리던 승객들은 실론의 열대우림과 거대한 차밭이 빚어내는 진한 녹음(綠陰)에 마음이 시원해지면서 일거에 여독이 풀리는 듯했다. 넬리는 배에서 내려 호텔에 투숙했다. 세계여행 경험이 많은 영국 신사 한 사람이 그녀의 가방을 들고 따라와 예약되어 있는 ‘그랜드 오리엔털 호텔’까지 데려다주었다. 넬리는 온통 시원한 숲으로 뒤덮인 정원에서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며 기나긴 항해로 쌓인 피로를 풀었다. 불친절하고 무례한 빅토리아호 승무원들에 비해 훨씬 친절한 원주민 종업원들의 서비스도 여독을 푸는 데 도움이 되었다. 호텔 내 보석상에서는 의외로 미국 금화의 인기가 높았다. 넬리는 여행을 떠난 뒤 처음으로 미국 금화를 주고 아름다운 보석반지를 하나 샀다. 가방에 넣지 않아도 되는 짐이기 때문이었다.
넬리는 관광도 다니고 연극과 오페라도 감상하면서 며칠 동안 느긋하고 달콤한 휴식을 취했다. 호텔에서 열리는 마술 쇼와 뱀 춤도 인기가 있었다. 넬리는 콜롬보의 아름다운 경관, 실론의 풍습 등과 함께 연극의 내용까지 자세하게 묘사해놓았다. 그러나 행간에는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고 있는 실론인들의 가난과 속박을 안타까워하는 심경이 군데군데 배어있다. 기원전 5세기경부터 오스트랄로이드족이 건너와 살기 시작한 실론은, 지난 500여 년 동안 인도‧중국‧말레이시아‧포르투갈‧영국 등의 지배를 받아왔기 때문에 국민들은 피지배의식에 젖어있다. 국토는 6만 5천여㎢에 불과하지만, 고대부터 여러 부족국가가 서로 다투고 침략군 편에 서서 협조해왔기 때문에 독립 이후에도 여러 부족들 간에 내전이 끊이지 않고 있다.
어느 날 밤, ‘내일 아침 8시에 오리엔탈호가 중국으로 갑니다’라는 공고문이 내걸렸다. 넬리가 콜롬보에 머문 지 닷새 만이었다. 기간을 밝힌 건 이게 처음이다. 공고 내용과는 달리 배는 오후 1시가 되어서야 출발했다. 다행히 선장과 선원들은 매우 예의바르고 친절해서 지체된 출발을 보상하고도 남았다. 음식도 빅토리아호에 비해 매우 깔끔하고 맛있었다. 넬리는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며 승객들과 대화도 나누고 배가 스쳐 지나가는 섬들의 경치도 구경했다. 배는 닷새를 달려 영국의 식민지인 말레이시아 페낭에 닻을 내렸다. 넬리는 배가 정박하는 6시간 동안 마차를 빌려 페낭 시내를 골고루 둘러보았다. 페낭에서는 멕시코 은화가 가장 인기가 높았다. 미국 돈은 은화만 통용되고 금화와 지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파도가 험난하기로 유명한 말라카해협은 기후도 견딜 수 없을 만큼 무덥고 습했다. 당초 그날 밤에 싱가포르에 도착하여 다음날 아침에 출발할 예정이었지만, 페낭에서 석탄 공급시간이 오래 걸려 출발이 늦어지는 바람에 또 24시간이 지연되는 불운을 맞았다. 넬리는 점점 초조해졌다. 약속했던 80일을 넘겨서 아무도 안 보는 캄캄한 밤중에 뉴욕으로 숨어드는 불길한 생각이 자꾸만 떠올랐다. 넬리는 배가 싱가포르에 정박하여 석탄을 싣는 동안, 앙증맞은 말레이 조랑말이 끄는 마차를 타고 시내 관광에 나섰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관광이 아니라 전보를 통해 <뉴욕 월드>에 송고할 취재여행이었다. 싱가포르에서도 미국 돈은 은화만 통용되었다. 여자에게는 이슬람 사원과 힌두 사원 출입이 금지되어 있었다.
오리엔탈호는 다음날 밤이 되어서야 홍콩을 향해 출발했다. 그러고 보면 수에즈운하를 지나 콜롬보와 페낭과 싱가포르를 거쳐 홍콩까지, 모두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의 식민지였다. 배가 외해로 접어들자 몬순기후로 인한 풍랑이 오리엔탈호를 세차게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뉴욕을 떠나 대서양을 건널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파도가 거셌다. 배의 흔들림이 얼마나 심한지 승객들은 물론이고 승무원들과 선장까지 멀미에 고통스러워 했다. 그러나 넬리는 그 끔찍한 파도가 자신이 여태껏 본 광경 중에 가장 아름다웠다고 써놓았다.
몬순풍랑의 영향으로 오리엔탈호는 예정보다 이틀 빨리 홍콩에 도착했다. 배가 홍콩에 닻을 내리고 승객들이 하선하기 직전, 한 목사가 선장에게 다가가 2파운드짜리 청구서를 내밀었다. 싱가포르를 출항한 다음날 풍랑이 심해지자 선장이 그 목사에게 기도를 주관해달라고 부탁했었는데, 당연히 그 대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선장은 회사의 승인을 거쳐 목사에게 기도 값을 지불하기는 했지만, 다시는 기도 부탁 같은 건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첫댓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그 돈! 그 거 밝히는 목사도 그때부터 있었는가보네.
기후와 풍토병에 겁이 안 나는가?
나도 글따라 여행을 다니ㅣ네
콸라룸푸르에서 바라본 말라카 해협
그 해협에 담겨 있는 전설들도 그리 많더라고...
그녀가 거쳤던 그 뱃길을 나도 가봤으니,
그것도 큰 행운...
하나 기억 하는 것,
거기서
'이진애'라는 이름 석 자로 삼행시를 지었던 것
이렇게
'오얏꽃이 피는 이즈음, 참말로 아름다운 말라카해협의 달밤에,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