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세종 7년(1425) 갖바치 이상좌는 가죽신을 쌀 1말 5되와 바꾸어 판매했는데
돈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잡혀갔다.
경시서에서는 상좌의 나이를 생각해서 곤장이나 군역 대신 벌금 8관을 요구하였다.
상좌가 돈을 빌려서 1관은 마련했지만 마저 마련하지 못해서 목을 매고 죽었다.
세종은 이 이야기를 듣고 크게 놀랐다.
세종실록 29권, 세종 7년 8월 23일 기축 1번째기사 1425년 명 홍희(洪熙) 1년
경시서의 가혹한 법 운영으로 가죽신장이 이상좌가 자살하다
가죽신장이 이상좌(李上左)가 가죽신을 쌀 1말 5되와 바꾸어 팔았는데, 돈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경시서(京市署)에 잡혔다. 서에서는 상좌의 나이가 늙었으므로 곤장(棍杖)으로 때리거나 군역(軍役)에 충수하지는 못하고 속전으로 8관(貫)을 바치라고 하였다. 상좌는 집이 가난하여 남의 돈을 꾸어서 1관만을 바쳤다. 본서에서 다 바치기를 독촉하였더니 상좌는 할 수 없어서 집 앞의 홰나무에 목매어 죽었다. 임금이 듣고 크게 놀라서 대언 등에게 이르기를,
"나라에 입법(立法)한 것은 돈을 많이 이용하도록 하려는 것이지 사람을 죽게 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 상좌가 죽은 것은 반드시 경시서에서 가혹하였기 때문이니 내 마음이 아프다. 너희는 그 실정을 조사하여서 아뢰어라. 만약 가혹하였다면 죄를 용서하지 않겠다."
하고, 상좌의 집에 쌀 3석을 주고, 받았던 속전은 돌려주도록 명하였다.
세종의 원래 취지는 물물 교환이 아닌 화폐 사용이었다.
기존에 저화(종이 화폐)가 제대로 활성화 안되자 구리화폐를 만들어서 사용하게 하는게 목적이었다.
이는 세종 7년 2월의 동전사용하지 않을시의 규찰 조건을 나열한 내용에도 언급되어있다.
세종실록 27권, 세종 7년 2월 8일 무신 3번째기사 1425년 명 홍희(洪熙) 1년
동전을 사용하지 않는 자의 규찰 조건을 기록하여 아뢰다
호조에서 계하기를,
"동전(銅錢)을, 이미 일찍이 수교(受敎)한 바에 의하여, 저화(楮貨)와 더불어 겸용(兼用)하게 하고, 그 동전을 사용하지 않는 자의 규찰 조건(糾察條件)을 아래와 같이 갖추어 기록하나이다.
1. 부상 대고(富商大賈)와 각색(各色)의 공장(工匠)들이 국가의 법을 업신여기고, 미두(米豆)와 포화(布貨)로써 서로 무역하고 동전을 사용하지 않는 자는, 범한 바의 〈죄의〉 경중에 따라, 중한 자는 일정한 형벌에 처하여 널리 〈군중에게〉 보이고, 경한 자는 장형(杖刑) 1백 대를 행한 뒤에 그 사람을 수군(水軍)을 충당하고 가산(家産)을 관에 몰수하며, 능히 고발 체포하게 한 자가 있으면 범인의 가산을 반을 그 상금으로 충당합니다. 동전의 중량의 경중과 동전의 표면이 정련(精鍊)되지 못한 것과 그 자획(字劃)이 분명하지 못한 것을 핑계삼아 여러 가지로 간택하는 자는 왕지(王旨)를 좇지 않는 죄율로 논합니다.
1. 경중(京中)의 5부(五部)에, 5호[五家]를 한 비(比)로 삼아, 각색 공장의 집과 잡물(雜物)을 매매하는 자가, 저화와 동전을 사용하지 않고 몰래 미포(米布)로서 사사로이 무역하면 발견하는 즉시로 포착 고발하게 하고, 그 은닉하고 고발하지 않는 비(比)의 이웃 사람들도 아울러 처벌하며, 능히 이를 포착 고발하는 자가 있으면 범인의 가산의 반분을 상금으로 충당합니다. 승두(升斗) 이하의 곡물로 무역한 것은 차한(此限)에 부재(不在)합니다.
1. 한성부(漢城府)·유후사(留後司)의 경시서(京市署)에서는 상항(上項)의 범인의 매자(買者)와 매자(賣者)를 찾아 추문(推問)하여 아울러 그 죄를 논단하되, 그 마음을 다하여 봉행(奉行)하지 않는 자는, 사헌부로 하여금 규찰하여 다스리며 왕지를 좇지 않는 율로 논죄하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세종 7년 2월에 만든 동전 사용하지 않는 이들을 처벌하는 내용을 보면
이상좌는 신발을 팔고 그 값어치로 책정된 동전을 받았어야 했는데 쌀로 받았으니 법을 어긴게 되었다.
이상좌가 목숨을 끉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아무래도 벌금까지 내야했고(쌀을 받았는데 벌금은 8관으로 받음) 그만큼 백성들은 저화든 주화든 싫어했으나 세종은 백성들이 왜 싫어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던것으로 보인다.
세종실록 38권, 세종 9년 10월 12일 병인 4번째기사 1427년 명 선덕(宣德) 2년
저화 사용 장려를 위해 곡식의 화매를 명하고 이에 대한 조건 등을 의논하게 하다
임금이 말하기를,
"전일에 여러 신하들이 다 말하기를, ‘저화(楮貨)는 백성이 즐겨쓰지 않으니, 주전(鑄錢)을 펴서 향하면 백성들도 즐겨 쓸 것이니 저화처럼 쓸데없는 무용지물(無用之物)이 되지 않을 것이며, 비록 왕성하게 쓰이지 않더라도 그 값이 저화처럼 떨어지기까지에는 이르지 않으리라. ’고 하므로, 내가 그 말을 믿고서 저화를 폐지하고 전폐(錢幣)를 발행하였더니, 지금 몇 해도 되지 않아서 백성들이 즐겨 쓰지 않아서 그것도 저화처럼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나는 밤낮으로 그것을 잘 쓰게 할 술책을 생각하였으나 아직도 그 방법을 모르고 있다. 그러나 생각하건대 국가에서 화매(和賣)를 행할 때는 돈의 값이 조금 높아 백성이 돈을 좀 쓰다가, 화매가 끝난 뒤에는 또 전날과 같이 돈이 쓰이지 않게 된다. 이제 국가의 창고에 저장한 묵은 곡식이 많으니, 매달 약 1백 석을 민간 시세에 따라 끊임없이 화매하기를 10년 동안 하면 1만 2천 석이 될 것이요, 10년을 행하게 되면 가히 민간에서 좋아하고 싫어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비록 좋은 정책은 아니라 하더라도 돈을 행하게 하는 하나의 도움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고, 드디어 정부와 육조에 내려서 의논하게 하니, 모두가 말하기를,
"옳다."
고 하므로, 이에 호조에 명하여 화매할 조건과 일을 주장하고 담당할 사람을 결정하여 아뢰라 하니, 호조 판서 안순 등이 계하기를
"풍저창·군자감·내자시·내섬시·인순부·인수부 등 각사(各司)의 묵은 곡식을 매달 1백 석을 화매하며, 군자 부정(軍資副正) 안구(安玖)와 위의 각사의 관리에게 맡겨서 교지에 따라 돈을 받고 곡식을 주되, 한 사람에게 한 말이 넘지 않도록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이런걸 보면 알 수 있는게 있다.
화폐가 좋고 편한건 그 이전부터 알고 있지만 화폐를 정착시키는건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말이다.
대체역사물에서는 비슷한 짓을 하겠지. 미래에서 온 사람들이 "이것이 미래의 화폐라는 것이다." 하면 조선시대 국왕들이 오오! 하면서 눈물흘리면서 감동하는 내용이겠지만 나라에서 화폐를 권장해도 어려운게 현실이었음.
첫댓글 그 현명한 세종조차 화폐정책을 성공시키지 못했을 만큼 태종때부터 조선 초기 화폐 신뢰는 바닥이었죠...
1.국민들이 화폐사용의 필요성을 못느낌
2.상공억제 농본경제사회 조선은 금전을 사용할 의미가 얕음..
분명 화폐경제를 만들어내면 경제적으로 좋은데, 경제적으로 국민들이 필요성을 못느꼈어..
화폐는 결국 나라에서 만든다고 되는게 아니고, 나라규모가 현물경제로 인한 손실을 백성들까지 느낄 정도가 되어야 그나마 가능한듯.
그쵸. 『성종실록』 권27, 성종 4년 2월 임신.에 신숙주는 “서 울 외에는 상점이 없으므로, 비록 화폐가 있다 해도 쓸모가 없다.”고 언급하기도 했으니 당시 시장에서 사고파는게 덜 활성화된게 원인중 하나였고
고려때 만들어진 화폐중에 그나마 은화가 잘 쓰인 부분으로는 철이나 동으로 제조한 화폐보다 가치가 크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저화, 주전은 ... 루리웹 어딘가에서 이계물 짤이 생각나는군요.
당장 세금을 현물로 걷는데, 화폐 신뢰도가 있을리가...
좀 새는 얘깁니다만, 화폐 신뢰도를 얘기하자면,
최근에 지역화폐로 어떤 할아버지가 동사무소에서 서류 떼다가 거절 당하는 걸 보았습니다.
덕분에, 지역화폐를 이제 안쓰기로 다짐했는데요.
주민센터에서 지역화폐 안받는 건 납득이 가는 일입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발급처인 지자체 본인들도 안받아 주는 물건인데, 이게 신뢰할 수 있는 물건인가 생각이 들더군요.
세종이 화매하듯이, 지지체가 포인트 조금 얹어주는 거 받아먹는 용도 외에는 전혀 쓸모 없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고액을 충전해서 쓰는 건 피해야겠다고 생각이들었구요.
조선의 화폐 유통 실패는 거래 기반이 취약한 게 주요 원인이겠지만,
조정이 화폐에 대해 충분한 신뢰를 부여하지 못한 것도 크다고 봅니다.
지역화폐는 지역소상공인 지원책으로 지역경기 활성화를 위해 나온 정책입니다 (조폐공사와 경쟁할 새로운 통화를 만들겠다는게 아니지요)
이걸 소상공인이 아닌 관공서가 받아주게 되면 세금을 들여 운영하는 취지가 크게 훼손되게 되겠지요.(지자체와 지역 소상공인이 경쟁자가 되는건가 싶기도 하며, 오히려 추가수수료를 받아야 할지도요)
지자체가 운영비용도 대고 포인트 얹어주고는(이게 지역 소상공인 지원 비용이겠지요) 그걸로 지자체가 다시 행정요금으로 받아준다는 것은 아무리봐도 좀...;;;;;
지역 소상공인 지원 예산은 날리고, 행정수수료 인하행사를 상당히 복잡하게 만든것 밖에 더 될까요 (중간에 운영수수료 받아갈 운영사도 챙겨주고요)
제가 짧게 생각해본바에는 되려 화폐 신뢰도가 크게 떨어질것 같네요.
지역화폐가 신뢰성을 가질려면 지역 소상공인들이 넓게 취급해줘야 하는데 관공서나 공과금등으로 빠져나가면 되려 사용범위만 줄어들고 그 존립 기반이 흔들릴것 같습니다
지역화폐의 핵심은 발행주체가 사용처를 엄격히 지역 소상공인으로 한정하는데 신뢰도와 효과가 갈릴것 같네요
취지 자체가 지역 소상공인과 지역경기 활성화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