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첫아이가 태어났다. 생글생글 웃는 아기 얼굴을 친지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당시 인기였던 미니 홈페이지 서비스 '싸이월드'에 가입하고 아이 안은 사진을 올렸다. 싸이월드엔 여행지나 음식점에서 자기 모습을 스스로 찍은 '셀카' 올리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해 싸이월드는 가입자 1000만명을 넘어 삼성경제연구소가 선정한 10대 히트 상품에 꼽혔다. '셀카'도 국립국어원 신어(新語) 자료집에 신조어로 실렸다.
▶이듬해 국립국어원은 셀카가 잘못된 영어식 표현이라며 '자가 촬영'으로 고쳐 쓰자고 했다. 셀카는 영어 '셀프 카메라'를 줄인 말이라지만 영어엔 그런 표현이 없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콩글리시'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한번 입에 붙은 말을 쉽게 버리지 못했다. 셀카의 올바른 영어 표현은 '셀피(selfie)'다. 옥스퍼드사전은 작년 '올해의 단어'로 셀피를 뽑았다. 셀피는 2002년 호주의 한 인터넷 게시판에서 처음 쓰였다고 한다. 호주 사투리가 정통 영어가 된 셈이다.
▶옥스퍼드 출판사는 지난해 단어 '셀피'가 사용됐던 빈도는 재작년보다 170배 늘었다고 했다. 가입자 12억명을 거느린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 페이스북엔 사진이 하루 평균 3억5000만장 올라온다. 셀카 열풍은 지위를 가리지 않는다. 작년 12월 만델라 추모식장에선 오바마 대통령이 덴마크·영국 총리와 함께 셀카를 찍어 구설에 올랐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기꺼이 바티칸 방문객의 셀카 모델이 돼준다.
▶일주일 전 미 프로야구 지난해 월드시리즈 우승팀 보스턴 레드삭스의 간판 타자 오티스가 백악관을 방문해 삼성 갤럭시 노트3로 오바마와 셀카를 찍었다. 삼성은 이 사진을 트위터로 수백만명에게 재전송했다. 엊그제 백악관은 오바마 대통령 사진을 삼성이 상업적으로 이용했다는 논란에 우려를 표명했다. 오티스가 삼성과 후원 계약을 맺은 것으로 알려져 문제가 더 커졌다.
▶삼성 스마트폰으로 찍은 셀카는 지난달 아카데미 시상식에선 성공적 소문 마케팅 수단으로 인정받았다. 사회자 드제너러스가 흰색 갤럭시 노트3로 톱스타들과 셀카를 찍는 모습이 세계에 TV로 생중계됐다. 그 셀카 사진이 인터넷에서 300만번 넘게 재전송돼 수백억원 광고 효과를 봤다는 평가다. 이번 오바마 셀카는 반응이 좋지 않다. '셀카 마케팅'은 양날의 칼이다. 사람들이 나중에 꼼수가 있었다는 걸 알게 되면 기업 이미지를 해치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 위력적 무기일수록 조심스럽게 다뤄야 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