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타,청옥산(1353m : 동해)
*일 시 : 2005. 8. 20~21(무박), 제41차(22명), 날씨(안개비, 오후 갬)
*코 스 : 백두대간 제30구간(댓재-두타-청옥산)
댓재(810)-산신각 앞-햇댓등-명주목-작은통골재-1228봉-묘지-두타산(1,352)
-박달령(박달골-삼거리)-청옥산(1,403)-(연칠성령-칠성폭포)-학등-삼거리
-용추폭포-문간재-무릉계곡-하늘문-계단-관음사-삼거리-삼화사-매표소-주차장
*소 시 : 새벽 3시 10분~오후 12시 50분 완료 → 총 19Km, 9시간 40분,
기억의 의미가 차츰 사라지고 느리게 기어가는 막바지 여름밤이다.
도시를 떠난다는 사실 앞에서 마음마저 헤프다. 그것도 밤을 타고 이동한다는 것은 더욱 운치가 있어 좋다. 갑갑한 도시는 언제라도 마음을 얹기가 두렵다. 서럽도록 울고 싶은 차창에 비친 도시는 언제 봐도 고대희랍의 비극처럼 흐느낌으로 다가온다. 어디라도 떠난다는 것에 무슨 목적이 있으랴. 그 자체가 수단이요 목적일러라. 절망을 먹고살았던 이상 시인의 고난이 문득 이러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봤다.
안대회 명지대교수가 소개한 영조시대 요졸한 천재시인 이언진(李彦王眞, 1740~1766)의 표현처럼 절구공이처럼 밟아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서러운 도시의 땅은 나이가 들수록 무정하고 언제나 낯선 이방지대다.
巷裏屋多天少 골목에는 집은 많고 하늘은 적어
一片土踏如杵 온 몸에 모자를 덮어 쓴 꼴
恰像渾身着帽 골목에는 집은 많고 하늘은 적어
百年來無寸草 백 년 돼도 풀 한 포기 나지 않네
당시 세계를 큰 감옥으로 본 그의 시각이 충격적이다.
음울한 시대적 정신의 한계가 손아귀에 들어왔다.
“사는 집은 늘 들보가 머리를 치기에
행각승처럼 떠돌기를 늘 바라건만
마누라는 거미요, 자식은 누에 같아
온몸이 꽁꽁 결박당했네.”
그가 통과했던 18세기 중반 영조시대의 한성과, 현재 21세기 초반 내가 살고 있는 서울이란 감옥의 차이는 제로게임이다. 지금 이 시간, 잠시 출감을 얼마 두고 임시휴가를 나선 기결수의 심사와 너무나 닮은꼴이다. 두 눈을 감고 일렁이는 파고에 실려 어디론가 무작정 떠밀려가고 싶은 흥분과 충동이 교차한다. 밤은 모든 것을 숨겨주거나 적당히 가려주어 천만 다행이다. 도시가 빚은 허상의 천국은 우리들 瞳孔으로 잦아들고 있다.
동아일보에 실린 오늘의 날씨 예보다.
전국이 흐리고 비가 오겠다. 아침 최저기온 17∼24도, 낮 최고기온 23∼29도로 어제와 비슷하겠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는다.’는 속담이 있다. 태양의 표면 온도는 섭씨 6000도 정도인데 번개의 온도는 이보다 다섯 배인 약 3만 도다. 요즘 연일 하늘에서 번쩍거리는 번개는 한 가정에서 두 달 동안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전력. 따라서 번갯불에 콩 구워 먹기란 생각처럼 쉽지 않다. 콩에 번갯불이 닿는 순간 흔적도 남지 않고 타버리기 때문이다.
깊은 밤을 달리는 버스에서 국지적으로 만나는 호우와 번개를 접하며 생각난 얘기다.
새벽 1시 57분.
빗길에 젖은 고속도로의 밤은 을씨년스럽고 음울하다. 하얀 밤을 뜬눈으로 구절양장을 오르는 424번 도로를 천식환자차럼 숨차게 끌려 댓재(해발 810m) 마루 주차장에 올랐다.
삼척시 하장면 번천리와 미로면을 연결하는 424번 지방도로 댓재마루는 1995년 여름 당시의 기억을 살리기엔 역부족이다. 마루에서 번천리 방향 30m 좌측 아래로 휴게소가 칠흑 속에 깊은 잠에 빠져있다. 그러나 댓재 주차장엔 새벽잠에 빠진 몇 대의 소중대형 차량이 보이고, 도로 건너편 삼척시가 세운 대형 조형물에 비추는 눈부신 조명시설을 바라보는 시선이 금석지감이다. 조형물에 새긴 댓재 도로개통 기념비 조형물에 걸린 각종 안내문이다.
<세계적인 동굴관광도시 삼척.
산죽이 군락을 이루고 있어 일명 竹峴, 竹峙嶺이라고 불ㄹ리며, 1984년 10월 지금의 도로가 개통되기까지는 영동과 영서를 넘나들던 옛고갯길로 보행자들의 수많은 애환이 서려있는 곳이다. 해발 810m, 삼척시>
인스턴트 라면식사를 들기 위한 물을 끓이는 동안 댓재 주변 구석구석을 훑었다.
잔디공원에서 곧바로 명주목이로 올라가는 코스도 확인하고, 백두대간 코스선상의 산신각을 어둠속에서 확인했다. 예정보다 일찍 간식을 마쳤다. 우리 옆구리에 인천 00산악회에서 우리일행 숫자만큼의 회원들을 쏟아 내리기 무섭게 버너를 켜 음식준비에 부산하다.
<임계 39Km, 하장 13Km>
<두타산 정상 6.7Km, 햇댓등 0.9Km>
3시 10분.
댓재 기점 산행은 고갯마루 산신각이나 고갯마루 서쪽의 잔디공원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후자는 햇댓등이 생략된 지름길 코스로 백두대간 일부를 놓친다.
산신각 방향으로 열린 대간길이다. 깨끗하게 손질한 산신각 앞은 댓재 주변 각종 불빛으로 칠흑은 면했지만, 조용한 밤 시간마저 빼앗긴 산신의 노염이 걱정되어 냉큼 발 빠른 이동을 했다. 산신각에서 도로쪽으로 낙석방지용 철책이 쓰러져 바닥에 깔린 완만한 오르막대간능선은 시작부터 잡목이 하늘을 덮었다. ‘댓재’란 이름 못잖게 무성한 조릿대가 헤드랜턴에 빨려든다. 20분쯤 오르면 대리석 표지석이 박혀 있는 햇댓등 정상이다.
3시 30분.
햇댓등에 올랐다. 댓재에서 약 900m 거리로 청타산악회가 세운 직사각형 대리석 기둥의 표지석과 이정표가 어둠을 지키고 있다.
<햇댓등 청타산악회>
<댓재 30분, 두타산 3시간>
일행 모두가 잠시 모였다. 방향을 알리고 바튼 호흡을 뱉었다.
예서 서쪽 방향으로 직각으로 꺾이는 내리막이다. 간간히 내리는 안개비로 바닥은 예상보다 미끄러웠다. 트윈스 콤비인 장숙자-왕영주씨가 바짝 뒤따른다. 잠시 가파른 내림을 지나면 편안한 수평능선이다. 만개한 궁궁이가 지천으로 랜턴에 부나비처럼 작정없이 빨려든다.
3시 30분.
943봉 아래 안부 일반등산로와 만나는 명주목이 삼거리다.
좌측 잔디공원에서 올라오는 길이 만나는 지점이다. 우거진 밀림지대다.
3시 40분.
<통골 ↔ 햇댓등>
간간이 등산로 방향을 알리는 이정표가 서있다.
편안한 수평능선은 햇댓등을 오르내리며 쏟았던 땀을 한꺼번에 씻어준다.
우리보다 약 20분 앞선 수원의 00산악회 회원 3명이 멎고 있다. 시작부터 고장인가 보다.
3시 50분.
爽風이 불어오는 작은통골재다.
<두타산 2km 1시간30분, 댓재 2.5km 1시간30분>
우측 산록 멀리 미로면 일대의 새벽불빛이 빨려든다.
잠시 일행 모두가 모여 땀을 씻었다.
4시 15분.
다소 힘겨운 오르막이다. 멀리 묵호항 불빛으로 생각되는 도시의 새벽이 먹이를 노리기 위해 기회를 엿보는 도사린 포식동물같다는 생각이다. 헤드랜턴에 비치는 불빛에 능선길섶은 온통 궁궁이 퍼래이드다.
<통골 1.8Km>
4시 25분.
사춘기 소녀의 젓 몽우리를 닮은 작은 봉우리다.
<통골 1.1Km>
소형태풍의 위력의 강풍이다. 온 몸이 상쾌하다. 오늘 동행하지 못한 이 시원한 원색의 감정을 전해주고 싶은 사람이 필요했다. 낙원이 이러하리라는 짐작이다.
삼림욕에 대한 안내 간판내용이다.
‘山林浴
녹음이 짙게 물든 숲에서 수목이 내뿜는 고유의 좋은 향기와살균, 살충력을 내포한 피톤치드, 신선한 산소가 가득찬 맑은 공기 속에서 피로에 지친 심신을 휴식하므로 피로해소와 해방감을 맛보는 것이 산람욕입니다.
▷ 숲의 대기정화 기능
숲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ㄱ산소를 내뿜는데 1ha의 울창한 숲은 45명의 사람이 1년간 숨쉴 수 있는 산소를 무상으로 제공합니다.뿐만 아니라 대기중의 오염물질인 유해가스 ․ 먼지 ․ 분진 등을 흡착하여 공기를 깨끗하게 해 줍니다.
▷ 피톤치드
수목은 외부생태적 환경으로부터 자기를 보호하기 위하여 공기 및 땅속에 방향성 물질을 총칭하여 말합니다. 피톤치드는 각 수목의 고유향내를 포함하여 정신적 안정감으로 인한 스트레스 완화작용, 강력한 항균작용 등으로 인체에 많은 효과를 가져다주는 아주 이로운 물질로 알려져 있습니다.‘
4시 45분.
<통골 0.5Km>
여기서 뚝 떨어지는 능선은 장년을 맞은 시골아낙네의 엉덩이처럼 펑퍼짐하다. 안부로 내려섰다 완급을 거듭하는 능선길을 따라 1128m봉으로 올라갔다.
4시 57분.
이어 완경사 능선을 따르다 잘록이로 내려서면 통골 길이 갈라지는 통골목이다.
<댓재 4km 1시간30분, 두타산 2.2km 1시간30분, 햇댓등 3.6Km>
도상에는 통골목이 삼거리지만 실제 사거리다.
우측은 구룡폭포로 내려 삼척으로 가는 길이다.
지금까지는 오픈께임이고 이제부터 메인께임이라는 김영주씨의 표현은 오늘 행보의 정확한 지적이다. 지금까지 겪지 못한 가파르고 긴 능선이 기다리고 있다. 잊혀진 비지땀과 바튼 호흡, 그리고 뻐걱지근한 다리품을 팔아야하는 긴 오르막이다.
5시 20분.
오르막 중간에서 잠시 멎었다. 아까부터 후미와의 거리가 벌어져 좁혀보려는 욕심이다.
지형에 따라 요령있게 적당한 시차를 두고 불어주는 백두대간의 새벽바람이 퍽 현명하다는 느낌이다.
5시 23분.
<두타산 2.2km , 통골 0.9km>
새소리가 아침을 여는 삼거리 갈림길이다. 좌측은 1,243봉은 우회로이고, 좌측이 곧바로 오르는 길이다. 잠시 후미를 기다리는 여유를 가졌다. 1243봉 봉우리를 밟기로 작정하고 좌측으로 직진했다. 갑자기 하늘이 열리며 새벽의 여명이 달아나는 이변이 생겼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그동안 수림에 가려 달아나는 새벽여명을 눈치 채지 못했던 것이다.
5시 30분.
고운 잔디가 깔린 점으로 보아 최근 누군가가 손질한 묘지인데, 분명 풍수가의 권유에 따른 虛墓이거나 假墓다. 잠시 시차를 두고 염려했던 후미가 닿았다. 刮目相對하듯 당도한 후미일행들의 표정이 대간에서 맞은 새벽공기보다 훨씬 맑고 부드러웠다. 이렇게 좋은 오늘 새벽은 분명 축복이다. 기후 자체도 어렵지 않게 훌륭한 부조를 하고 있는 셈이다.
두타산 우측 해발 1100m 지점에 자리한 염불암이 보일 것이란 생각이다.
맑은 날씨였다면 이쯤에서 청옥산 남릉과 그 뒤로 삐죽 튀어나온 고적대(高積臺·1,353.9m)에 이어 소황병산(1,328m)~노인봉(1,338m)~동대산(1,433.5m)으로 이어지는 대간이 한눈에 바라보일 지점이다.
5시 35분.
멧돼지가 휩쓸고 지나간 허황한 초원지대다.
얼마 후 1243봉 우회로와 만나는 합류지점을 지났다.
<두타산 1km >
흰마주송이풀, 흰 송이풀, 만주송이풀, 이질풀, 흰 잔대, 새며느리밥풀꽃 등 야생화들의 경연장을 이룬 신선한 새벽이다. 산안개에 젖은 날렵한 두타산 정상이 비슷한 눈높이다. 北東斜面 우측 산록 아래 박달골-사원터골 계류가 합수하여 유명한 무릉계를 이룬 후 살내(箭川)라는 이름으로 바뀌는가 싶더니 이내 동해에 묻히게 된다. 그런 구렁이 같이 기다랗게 사행천을 이룰 계곡 일부가 보이지 않다는 게 못내 야속한 지금이다.
5시 03분.
<두타산(1,352)>
우리말로 머리를 때린다는 의미다.
속뜻은 ‘속세의 번뇌를 버리고 불도 수행을 닦는다’는 의미가 숨어있다.
너른 두타산 광장 중앙에 허묘 1기가 있다.
누가 무슨 이유로 만든 것인지 탐탁하게 보이질 않았다.
지금껏 밟았던 백두대간마루금과, 앞으로 디딜 장엄한 청옥산-고적대로 뻗은 아름다운 대간이 기막히게 보일 전망이다. 동쪽 아래 삼척시내와 갯펄같은 바다가 눈에 선하고, 서쪽으론 청옥산과 앞으로 진행할 능선들이 병풍처럼 바로 아래 무릉계곡과 함께 안개에 묻혀있다.
비록 안개비로 사방은 자욱한 안개가 내렸지만 짐작만으로도 즐길 수 있는 두타정상은 디디고 있는 것 자체를 영광으로 생각하자.
<박달령 2.2Km, 청옥산 3.6Km, 무릉계 10.2Km>
각종 안내간판, 그리고 정상이 갖는 일반적인 시설들이 산재하다.
정상에서는 능선에서와 마찬가지로 동해시가 한눈이다. 좌측 대간 방향은 관목숲이 형성되어있고, 우측 두타산성 방향 공터에 헬기장과 마타리와 이질풀 등 무성한 초본류가 금상첨화다. 우측은 쉰움산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두타산성, 쉰움산, 천은사 → >
천은사는 고려 충렬왕 때 자칭 동안거사 이승휴(李承休·1224-1300)가 충렬왕 6년(1280) 이곳에 은거하며 <제왕운기(帝王韻紀)>와 <내전록(內典錄)>을 저술한 곳이다.
<제왕운기>는 중국과 한국의 역사를 중국의 자치통감처럼 편년체 서사시로 엮은 사서로, 당시 원나라의 정치-군사-문화적 지배체제를 극복하고자 중국과 한국의 지리·문화적 차이를 강조함으로써 중국과 다른 민족문화적 주체성을 강조하는 저항의 史書였다.
왜적을 막다가 의병이 장렬하게 산화했다는 난공불락의 천연요새인 두타산성의 산성 유래비가 박혀 있는 두타산성이 저 아래다. 신라 때 쌓았고, 임란 당시 삼척 의병이 끝까지 항전하다 모두 옥쇄했었다는 역사의 현장 두타산성이다. 또 두타산과 청옥산은 羅末 궁예는 물론 새로운 세상을 꿈꾸던 사람들이 몸을 숨긴 채 때를 기다렸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불행한 역사적 기억이지만 한국전쟁 당시 쫓기던 북한군 병참기지가 자리했던 연유로 미공군의 융단폭격을 받았던 곳이다. 잠깐이지만 민족의 외세에 대한 끈질긴 저항정신과 민초들의 생존의식을 잠시 음미하는 기회가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수더분하고 다양한 산세와 함께 더욱 아늑하고 아름다운 두타산정상을 선뜻 떠나고 싶지 않음은 인지상정일러라.
6시 23분.
못내 두타산을 떠난 시각이다.
두타산 정상에서 청옥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박달령 부근에서 조금 솟아 있을 뿐이어서 청옥산 까지는 40분 내외의 시간이면 닿는다. 안개비가 여전한 내리막 좌측엔 굵은 로프가 가두라인으로 끝없이 이어갔다. 한겨울 등반 땐 많은 도움이 되겠다 싶었다.
유순한 곡선과 높낮이를 그은 두타~청옥 능선은 말 그대로 천상의 루트다.
긴 팔 상의를 준비하지 못했다는 전금순씨의 후회섞인 이야기를 들었다. 카페를 통한 홍보내용을 놓친 모양이다. 두타산에서 멎었던 시간이 길었기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행보하면 금새 寒氣가 사라지리라.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며 내리는 내리막이다.
동쪽으로 깊이 파인 무릉계 양옆으로 능선을 향해 뻗고 치솟은 암릉과 기암괴봉과 동해 바다, 서쪽으로는 함백산을 비롯해 가리왕산에 이어 오대산에 이르는 백두대간이 강원 내륙을 깊은 고봉준령과 深溪를 보이는 등 조망만으로도 빼어난 명산이지만 오늘은 浮雲에 뜬 仙境을 만끽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6시 36분.
<박달령 1,6Km>
무성한 철쭉잎이 조밀하게 들어찬 수평능선이다. 다시 오르막이, 그리고 수평능선이 적당한 간격으로 이어지는 두타-청옥산 능선은 세상의 평화로운 것은 죄다 모인 무형의 박물관이다. 저절로 불심이 앞서는 여유의 코스다.
6시 50분.
<박달령 0,9Km>
부드러운 내리막이다.
오름과 내림, 모든 생존의 바이오리듬이 이러하리라.
살면서 당연히 겪는 증오와 사랑, 그리고 회한을 이곳에서는 彼岸의 일이다.
사랑하는 일에 목숨을 걸고 싶은 지금이다. 사랑하는 일에 생애를 바치고 싶은 순간이다.
7시 8분.
우측 박달골을 통해 무릉계곡으로 내려가는 루트가 보이는 박달령 삼거리다.
<두타산 2.2Km ↔ 청옥산 1,4Km >
배낭을 벗고 긴 휴식시간을 가졌다. 조그마한 원뿔형 돌탑이 서있다.
여유가 없는 사람은 이곳에서 곧바로 하산해도 좋다고 일렀지만 선뜻 응하는 사람이 없다.
한쪽 귀퉁이에 앉아 졸고 있는 오영삼 이사님과, 이복순씨 컨디션이 그늘지게 보였지만 예정했던 청옥산까지는 가겠다는 의지다. 그렇다고 그들만 대열에서 이탈시킨다는 것도 분위기상 무리였다.
9부 능선을 돌아가는 청옥산을 향한 오르막능선에서 만난 돌사닥 길이다.
일기가 불순한 날의 돌사닥은 특히 조심해야 한다. 또한 비가 오는 미끄러운 너덜에서는 순간적으로 발목 등을 다칠 우려가 있다. 미련하게 아무런 판단없이 신고나온 바닥이 녹아버린 컬럼비아 등산화로 벌써 10여 차례 이상 미끄러졌다. 바짝 뒤 따라오던 장숙자-왕영주씨가 그때마다 안쓰럽게 보였나보다. 선두에서 그네들에게 생각도 못했던 염려를 준 것 자체가 비정상이이다. 지금껏 오랜 산행을 통해 가장 불안한 행보를 보인 오늘이다. 내일은 지구가 무너진다고 해도 매장을 찾아 춘추용 輕등산화를 구입하리란 다짐이다. 그 동안 더위 핑계로 매장을 찾지 못한 미련이 두고두고 후회되는 지금 이시간이 무척 곤혹스럽다.
바위너덜에 생식을 마치고 스러진 여로와는 상대적으로 흰진범이 만개한 상태다. 진범이 진교가 아니냔 정영복씨 반문이다. 직업(약사)은 못 속이나보다. 생약명으로 진범-진교, 또는 오독도기란 이름의 독초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그 엑기스를 화살촉에 발라 사냥용이나 살생용으로 이용했다는 글을 언젠가 읽었던 기억이 났다.
7시 39분.
<청옥산 1,4Km >
좌측 문바위골이 열린 문바위 삼거리를 지났다. 우측 옆구리 문모양의 바위를 일별했다.
가드라인이 설치된 수평능선이 끝나면 된 오르막이다. 頂點 직전의 긴장을 주기위한 자연의 배려로 치부했다. 청옥산 전방 700m 전후한 지점에서 만난 흙바닥은 멧돼지들이 파헤친 낭자한 자국으로 엉망이다. 그 동안 컨디션이 미진했던 이복순씨가 선두를 내달린 이기철씨 등 뒤를 따라 앞질러 올라간다. 마라토너답게 정상을 향한 마지막 스퍼트인가 보다. 어느새 가파르게 진행되는 오르막이 확 트이면서 오늘의 상봉 청옥산 정상이 저만치에 서 있다.
7시 50분.
삼거리다. 정확히는 사거리다.
<청옥산 150m, 샘터 50m, 무릉계 12Km>
좌측이 샘터이자 비박장소로, 우측은 오늘 예정했던 하산루트인 학등능선이다.
50여m 남쪽 석간수는 물맛이 좋으며 여름철 더위를 식히기에 알맞은 청량수다. 흐린 날씨와 기온저하로 식수소비량이 적었기에 샘터를 찾고자하는 사람이 없었다. 청옥산 정상 가까운 능선엔 활엽수교목대신 관목활엽수로 대체되고, 같은 종류의 초본류지만 멋대로 무성하게 자라 산상화원으로 일신된 분위기다. 정상을 향한 수평능선을 따라 내친걸음이다.
7시 52분.
청옥산 정상은 헬기장 공유다.
<청옥산 1,403m>
대리석으로 만든 표지석이 기단석 위에서 정상을 지키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유생들이 의병정신을 불사한다는 뜻에서 청옥산이라 했다는 산이다.
삼척시 하장면과 동해시 삼화동과 군계인 푸를 靑에, 구슬 玉자의 고운 이름의 靑玉山이다.
북서쪽의 고적대와 중봉이 보이는 東急西緩형을 이룬 대간이다. 정상 한쪽 연칠성령 길목 좌측에 태양열 집열장치가 달린 구조물이 서있다. 소수의 만난 산꾼들중 눈에 익은 정토산악회원이 보였다.
청옥산에서 연칠성령으로 가려면 헬기장에서 용추폭포쪽으로 난 우측 길로 들어가야 한다. 헬기장에서 곧장 서쪽으로 가면 능선길이 되고 아무도 발을 들여놓지 않은 비경지대인 삼척시 하장면 흰적골로 내려가는 능선이다. 비경지대로 소문난 골짜기지만 워낙 길고 험해 소요시간도 만만찮다. 소개에 의하면 이곳 비경지대를 들고 싶다면 이곳에서 내려가는 것도 괜찮다는 권유다. 왜냐하면 하장면 중봉리에서 청옥산으로 올라가는 길을 산림청에서 막아버렸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8시 15분.
일행들이 모두 모였다. 당초예정대로 연칠성령-칠성폭포-대피소-문간재 삼거리 코스와, 어제 밤 고지한 샘터 삼거리 갈림길-학등능선-문간재 삼거리 코스 중 일행 대부분 선택은 후자였다. 이기철-정영복-김영선씨는 전자를 택했다. 그들은 능히 치르고도 남을 젊음과 체력, 그리고 의지를 갖은 분들이다.
7시 20분.
학등능선과 샘터가 갈라지는 길림길로 내렸다.
주목지대, 철쭉능선지대를 거치는 지루한 내리막 능선은 때로는 가파르고 유순함을 반복했다. 자주 미끄러지는 어려움이 반복됐다. 바짝 긴장하면 할수록 의지와는 상관없이 넛트가 풀린 기계처럼 制御가 힘들었다. 몇 차례 후미를 기다리는 시간을 가졌다.
9시 56분.
<宜人崔氏池墓>
무덤 앞 너른 공터에서 배낭을 내렸다.
배낭에서 꺼낸 각종 행동식을 나누는 늦은 아침이다.
어제 새벽 승차시 못 알아봤던 이순임씨 남편 H씨의 표정이 퍽 여유로웠다. 농담을 건네는 품새로 미뤄 김영주씨 일행과는 지근사이인가 보다. 꽤 오랜 시간을 보냈으나 후미소식이 없다. 완보하기로 작정하고 묵직한 배낭을 둘러 맺다. 중국에서 수입한 적송묘목을 구매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H씨로부터 들었다. 순수한 혈통의 우리의 강송은 구하기 어렵다는 현실이다. 그만큼 우리 것의 자연품목은 수요가 턱없이 부족하다.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이 가을철 독버섯 주의보를 내렸다.
독버섯의 화려한 색깔 앞에 군침을 고였다간 여지없는 횡액을 당한다. 그 중 노란다발버섯, 마귀광대버섯, 개나리광대버섯, 흰알광대버섯, 양파광대버섯을 만났다. 가능하면 버섯엔 눈독을 들이지 말라는 경고를 습관처럼 지껄이는 일은 관례다.
10시 20분.
무명 묘소 1기를 지나 4~5곳 로프가 매어진 조심스런 내리막이다.
이제 계곡이 가까웠다는 의미다.
이미 계곡의 힘찬 계류소리가 가슴을 흥건하게 적시고 있었다.
10시 40분.
계곡을 가로지르는 철다리가 있는 삼거리 합류지점에 내렸다.
<무릉계 5.8Km>
건각답게 약 20분 정도 시차가 있을 것이란 예상을 깨고 다리아래 너른 암반에서 휴식하는 이기철-정영복-김영선씨와 합류했다. 그들의 준족이 내심 부러웠다.
철다리위에서 상류쪽은 숨기고 싶은 여체의 秘所로 보이고, 아래쪽은 청류가 쏜살처럼 흐르는 玉盤臥石이 장판처럼 깔린 비경지대다. 암반을 타고 미끄러지는 玉水가 沼를 이루며 협곡사이로 달아나고 있다.
10시 51분.
문간재 삼거리다.
<신선봉 0.2Km, 무릉계 3.1Km, 사원터 4Km>
얼마나 미끄러졌는지 피로한 다리 힘도 비례적으로 나태해졌다.
문간재를 넘어서면 하늘문 사거리가 나오고 무릉계로 들어서는 길목이다.
두타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은 용추폭포와 그 아래 쌍폭포를 우측에 두고 저린 이동을 했다. 쌍폭은 박달골과 바른골은 합쳐지기 전 각기 깊은 산속에서 흘러내린 물줄기를 깊은 소로 떨어뜨리며 이룬 신비의 폭포다. 용추폭포는 바른골 쪽 폭포 위로는 학등 능선과 신선대 사이에 절묘한 소가 연이어지는 협곡과 더불어 웅장한 폭포다. 너른 반석과 크고 작은 폭포와 소가 끊이지 않는 절경의 연속이다. 지난 6월 용소골에서 만난 소보다 더 아름답고 자연스러운 소는 자연이 만든 稀代의 예술이다. 누군가 설악산에 버금가는 경치라고 차탄한다. 용추폭포는 주 코스에서 조금 떨어져 있으므로 일부러 찾아가야 완상할 수 있다.
두타-청옥산을 천은사-쉰움산을 경유하여 오르거나, 무릉계-두타산성을 경유해 오르는 것은 댓재에 비해 더 많은 힘이 든다. 해발고도가 낮은 동해안 노해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물론 후자는 다소 시간은 걸리지만 육산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즐거움이 있다.
11시 01분.
박달령에서 내려오는 박달골과 합류하는 하늘문 사거리다.
여기서 무릉계 탐승로를 따라 관리사무소까지는 30~40분 거리다.
선두를 따라 55~60도에 이르는 하늘문 제1차 234계단과 제2차 96계단을 힘겹게 올랐다.
천국을 향한 걸음이 이러하리란 짐작이다. 새롭게 온몸을 두어 차례 땀으로 적셨다.
제2차 계단이 끝나는 길목에서 내려다 본 무릉계는 늪처럼 그 깊이의 가눔이 어려웠고, 평상인으로서는 범접하기조차 어려운 외경이 앞선다. 문간재 위 학등능선과 갈미봉사이로 움푹 파인 바른골은 여름 숲에 가려 더욱 신비롭다. 그냥 이 자리에서 주저앉고 싶은 마음이다. 이런 대자연을 빚은 조물주의 심사가 어찌했을까 감히 외람된 생각을 해봤다.
11시 22분.
신선바위 통과해 84계단을 내렸다.
맞은편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의 얼굴이 편안해 보였다.
11시 30분.
관음사다. 오목한 둔덕에 자리잡은 관음사는 분명 풍수학에서 말하는 名穴이다.
암자자리로는 풍수에서 요구하는 내외로 북현무-좌청룡-우백호, 臨水(무릉계)와 남주작을 두룬 적지다. 단청을 마친 본당 우측에 비단청인 요사채는 최근의 건축물로 판단했다. 설빔으로 얻어 입은 어린아이의 곱사한 때때옷처럼 목재냄새가 물씬했다. 사찰 작업을 위한 요란한 모터소리로 인해 힘들게 올라 그윽한 암자의 풍취를 앗겨 못내 서운했다.
마침 본당 단 아래에서 작은 관을 통해 인색하게 흘러내리는 샘물을 받고 있던 이기철씨와 합류했다. 연칠성령-칠성폭포-대궐터를 거의 뜀박질하며 내려왔다는 강변이다. 무릎이 뻐근하다고 했다. 아까도 그러했지만 아무리 强健이라 하여도 지나친 스피드였다. 행여 일행에게 누를 끼칠지도 모른다는 배려가 앞선 세 사람의 아름다운 행보였다.
삼화사 방면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산행보다는 주로 관광을 목적으로 올라오는 숱한 사람들과 마주쳤다. 비구니 2명과 비구승 1명이 땀을 흘리며 올라서고 있다. 고개를 숙이며 揖하니 곱게 답례한다.
12시 5분.
삼화사를 옆구리에 낀 관음암과 무릉계 학소대 갈림목 삼거리에 내렸다.
이쯤에서 땀털이를 해야 할 자리로 생각하고 무릉계로 들어섰다. 마침 행락객들이 옆자리로 몰려들어 간단하게 땀씻이를 마쳤다. 막 새 옷을 챙겨 입으려는 순간 기어이 실수를 저질렀다. 지남 번 대성산에서 잠깐의 부주의로 1차로 물에 빠트렸던 휴대폰을 이젠 재생 불가능하게 깊숙한 무릉계 속에 빠트려버렸다. 실로 난감한 순간이다. 당장 일행들과의 연락도 그러하지만 두타산 정상에서 문자를 받은 고향동창 부친의 초상소식에 대한 답례도 어려운 상태다. 어느 전화번호 하나 기억되는 게 없었다. 현대를 살기엔 너무나 맹목적인 본인의 자세다. 휴대폰 하나에 모든 것이 매달렸으니 작은 기계에 종속한 현대인은 모두가 공통된 노예다. 속수무책이다. 일행 중 가까운 사람 누구에게라도 연락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 어렵고, 고도에 갇힌 빠삐욘 신세다. 예전처럼 수기한 수첩시대가 그립다.
그냥 허탈하게 너털웃음을 흘리는 것이 지금의 전부였다.
12시 10분.
강원도 동해시 삼화동 176번지 삼화사 앞이다. 명산에는 명찰이 있기 마련이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 4교구 말사 동해 삼화사(三和寺)는 신라 선덕여왕 11년(642) 자장율사가 창건한 흑연대(黑蓮臺)의 후신으로, 경내에는 신라 삼층석탑과 철불을 비롯해 대웅전, 종각, 부도, 그리고 20척 높이의 금동여래불상 등이 있다.
동해시에서 서쪽으로 20Km 가량 떨어져 있는 두타산은 강원도 국민관광지 제1호로 지정되어 있는 명승지인 武陵溪谷 초입에 펼쳐져 있는 거대한 武陵盤石 조금 위쪽에 동해시 최대의 사찰 삼화가 자리 잡고 있다. 옛날 이 절은 삼공사(三公寺) 또는 흑련대라 하였는데 864년(경문왕 4) 범일조사가 다시 절을 짓고 삼공암(三公庵)으로 부르다가 고려 태조 때 삼화사로 개칭되었다고 전한다. 조선 중기 임란 때 왜군들의 방화로 소실되었고, 그 뒤 중건하였으나 1747년(영조 23)에 홍수와 산사태로 인하여 무너져 버렸다.
여러 차례 화재와 중건을 거쳐 오다가, 1905년의 을사조약으로 나라의 주권을 잃게 된 데 분노한 삼척지방의 의병들이 삼화사를 거점으로 삼고 봉기하였다. 1907년 왜병들은 의병의 거점을 파괴하라는 명분으로 대웅전, 선당 등 200여 칸에 이르는 삼화사의 건물을 모두 소실됐고, 이듬해 1908년 대웅전·요사채와 칠성당 등을 다시 세웠다.
광복이후 삼화사 일대가 쌍용양회 동해공장의 채광권 안에 속하게 됨에 따라 시멘트공장의 석회석 채광에 밀려 1977년 8월 옛 개국사(開國寺) 터인 현재의 자리인 중대사 터 무릉계(武陵溪)로 새로 옮겨지은 사찰이다. 현재 삼화사 창건설에 대한 몇 가지 중 하나다.
羅末.
각각 많은 무리를 거느린 세 사람의 신인(神人)이 이곳으로 와서 무엇인가를 열심히 의논하였다. 그들이 가버리자 지방 사람들은 그곳을 ‘삼공’이라 이름지었으며, 얼마 뒤 사굴산문(山門)의 開山祖인 梵日國師가 이곳에 들러 절을 창건하고 삼공사라 이름지었다.
이 설을 뒷받침이나 하듯, 오랜 세월이 지난 뒤 조선 태조는 칙령을 내려 이 절의 이름을 문안(文案)에 기록하여 後嗣에 전하게 하였다. 그리고 ‘신인이 절터를 알려 준 것이니 신기한 일’이라 하면서,
“그 옛날 신성한 왕이 삼국을 통일한 것은 부처님의 영험의 덕택이었으므로, 그 사실을 기리기 위하여 절 이름을 삼화사로 하라”고 했다.
이는 곧 고려의 태조 왕건이 佛力에 의해 후삼국을 화합하여 통일하였다는 의미를 지닌 삼화사다.
12시 30분.
삼화사 일주문을 지났다.
드넓은 와반석 위로 흘러내려가는 무릉계 물빛은 옅은 황색이다.
수백 평을 능가하는 대반석 주위 노송이 드리운 무릉계 반석을 내려다보는 금란정(金蘭亭)이 좌측에 보인다. 금란정 오른쪽 암반은 武陵磐石이다. 무릉반석이 손바닥처럼 보이는 곳에 지어진 금란정은 이 고장 선비들의 모임인 금란계(金蘭契)의 뜻을 기리고자 세운 정자다. 1903년 유림재현들이 향교 명륜당에 모여 학문에 전념하던 중 1910년 국권강탈이란 國恥로 향교의 문이 닫히자 이에 분개해 금란계라는 모임을 만들어 울분을 달래던 중 그 뜻을 기리기 위해 정자를 세우려고 했으나 일본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1945년 자손들에 의해 북평동 단봉 석경지에 세워졌고, 이를 1958년 현재의 무릉계로 옮긴 것이다. 금란정 바로 아래 길가에 봉래 양사언이 썼다는 "중대천석 두타동천 암각문이 있다.
<武陵仙源 中臺泉石 頭陀洞天>
무릉계의 무릉반석은 수백 명이 앉아 쉴 수 있을 만큼 널따란 너럭바위에는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아름다운 대자연 속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고자 수많은 刻字를 새겨 놓았다. 계류는 반석위를 미끄러지다가 작은 소를 만들기도 하고 다시 흘러 매표소 옆 다리 아래로 흘러내린다.
계곡은 무릉계요, 폭포는 용추폭포와 쌍폭이 무릉계의 상징이며 동해시의 얼굴이다.
동해시에서 바라보면 두타-청옥산이 웅장한 장성처럼 보이지만, 안으로 파고들수록 천하 제일경을 양파처럼 한 꺼풀씩 보이는 느긋한 여유가 어찌 보면 얄밉기 그지없다. 두 산을 상징하는 골짜기인 무릉계(武陵溪)는 고려 충렬왕 때 이 산에 들어 은둔생활을 했던 이승휴가 중국의 무릉도원 같은 선경이라 극찬하며 명명했다고 한다.
무릉계곡 일원은 1977년 국민관광지로 지정된 이후 1985년부터 본격적으로 관광지로 개발하여 입구에 주차장과 상가, 야영장 등을 조성했다. 무릉계곡은 여름 휴가철이면 피서객들로 동해시에서 삼화동 야영장까지 평소 20분 정도면 진입할 수 있는 구간이 2시간 이상 걸리는 여름 된 몸살을 치른다. 일행 중 젊은 시절 한 차례 이상씩 이곳을 다녀간 기억을 더듬는 품새가 입안 가득한 알사탕을 오랜 사간을 두고 녹이듯 마음은 현재가 아닌 과거에 머물고 있는 눈치다. 그 기억의 종류는 상상만으로도 낭만스럽고 달콤하리라.
12시 33분.
매표소를 통과했다. 이어 도로 양편에 상가를 끼고 내려서면 이내 너른 주차장이다.
12시 50분, 후미일행 모두가 산행을 완료했다.
새벽 3시 10분에 댓재를 출발, 산신각 앞-햇댓등-명주목-작은통골재-1228봉-묘지-두타산-박달령(박달골-삼거리)-청옥-(연칠성령-칠성폭포-사원터)-학등-삼거리-용추폭포-문간재-무릉계곡-하늘문-계단-관음사-삼거리-삼화사-매표소를 거쳐 주차장에 이르는 도상거리 19Km를 약 9시간 40분에 마쳤다.
상가 중앙지점에 위치한 무릉식당(033-534-8394, 018-360-9823)에서 청국장이 딸린 비빔밥 식사를 즐겼다. 비록 유명 관광지이지만 넉넉한 주인 여자의 풍채대로 후한 반찬을 마다않고 건네는 여유는 강원도 영동지방의 인심이리라. 10여 시간에 걸친 대장정으로 지쳤는지 하산주소비량이 낮다.
오후 1시 36분.
무릉계 주차장을 떠났다. 항구에서 만날 오징어회를 염원한 회원들의 주청에 따라 묵호항에 들렸으나 가는 날이 장날이었다. 2일전 불어 닥친 태풍으로 출항어선이 없어 생 오징어가 바닥난 상태다. 차회로 미뤄야 했다. 대신 동해안 도로를 따라 북향하는 동해의 성난 파고가 피곤해진 산행의 나른함을 상쇄시켜주고 있다. 영동고속도로에 오른 버스는 파죽지세로 대관령을 넘어 원주 문막을 지난다. 고속도로는 이 지점부터 지루한 지, 정체를 보였다.
예상했던 시각에 서울로 진입했다.
어제 밤 승차지점을 의식처럼 차례로 복기하면서 말이다.
밤 8시 10분.
발산동에 하차했다. 이웃한 김제범씨와 목씻이로 맥주 1.5잔씩 나눈 귀가다.
탈 없이 마친 무박산행에 대한 고마움의 끝이 주는 경쾌한 발길이다.
* 교통
-대중교통 ; 서울→삼척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30분~1시간 간격(06:30~21:00, 심야우등 23:10·23:30) 운행, 동서울터미널에서 1일 10회(06:45~18:50, 야간우등 22:40) 운행.
우등고속 21,100원, 일반고속 14,300원, 심야우등 23,200원. 동부고속 전화 02-535-3181.
-서울→동해 강남고속터미널 동해선에서 30~60분 간격(06:30~19:20, 23:10·23:30)
운행 고속버스 이용, 또는 동서울터미널에서 1일 10회(06:45~18:50, 22:40. 우등 20,100원) 운행하는 동해 경유 삼척행 버스 이용. 우등 21,100원, 일반 13600원,
심야우등 22,100원.
-삼척→번천리 시외버스터미널에서 1일 3회(07:30, 13:30, 16:30) 광동행 완행버스
요금 3,000원. 전화 033-572-2085.
-지방교통 ; 삼척→천은사 시외버스정류장 부근 시내버스정류장에서 1일 5회(05:50, 08:30, 12:50, 15:00, 17:50) 출발하는 내미로리 천은사행 시내버스 이용. 요금 800원. 천은사 입구 종점 출발시각은 삼척 출발시각에 약 30분추가.
강원여객 시내버스 전화 574-2686.
-무릉계 입구~삼화동, 동해시내의 고속버스·시외버스터미널이나 동해역 부근의 버스정류장 에서 수시 운행(06:30~21:00). 무릉계에서는 시내행 막차는 22:00. 요금 750원. 동해 시외버스터미널 033-533-2020, 동해 고속버스터미널 531-3400~1, 동해역 521-7788.
-삼척→댓재 시외버스터미널에서 1일 3회(07:30, 13:30, 16:30) 출발 광동행 완행버스 이용. 요금 3,000원. 전화 033-572-2085.
-열차 ; 청량리 -동해(오후 2시, 동해시에 7시 40분에 도착. 밤 11시 50분 출발, 동해시 에 6시35분 도착), 청량리-동해(청량리 5시 출발, 밤 10시 16분 도착)
동해-두타산(시내버스 수시 출발)
-두타-청옥산은 열차 산행지
청량리역 발차 시각은 08:00(무), 08:25(새), 12:00(무), 14:00(무), 17:00(새), 22:00(무), 23:00(무), 23:30(무). 무궁화 6시간, 새마을 5시간30분 안팎 소요. 요금 무궁화 17,600 원, 새마을 26,100원. 문의 및 예약 전화번호 1544-7788.
* 숙박
-무릉계 입구 상가단지 무릉회관(주인 권영일 한국산악회 회원) 033-534-8194, 두타식당 (박윤수, 534-8288), 영진회관(주운광 산악구조대장 534-9116), 일출식당( 이준철 상가 조합장 534-7866), 무릉식당(033-534-8394, 018-360-9823), 반석상회( 김원기 백두 대간보전회 회장, 534-8382), 무릉프라자(033-534-8855, 모텔),
청옥산장-0394-534-8866(여관),고향여인숙(-534-8033), 대구여인숙(-534-8021)
-댓재 고갯마루 댓재휴게소는 식당과 매점 민박 겸함. 방 5개 각 25,000원(2인 기준, 1인 추가시 5,000원). 전화 033-554-1123, 011-9797-7960.
-번천리계곡 입구 댓재산방은 033-553-1695.
-천은사 입구
백도현씨 집은 민박(방 3칸, 각 30,000원, 전화 033-573-2244.
두타순두부집은 토종 콩을 이용한 순두부와 두부 토종닭 요리 전화 033-572-9484.
*1977년 3월17일 국민관광지로 지정된 무릉계 입장료
어른 1,500원, 청소년 1,000원, 어린이 600원.
주차료는 1회당 승용차 2,000원, 버스 4,000원.
여름철 야영장은 1박당 소형 4,000원, 중형 6,000원, 대형 8,000원이다.
관리사무소 전화 534-7306~7.
*삼화사(三和寺, 033-534-8313)
...............................
<동해시 >
東海市 강원도 중남부에 있는 시. 면적 180.1㎢, 인구 10만 3115(2002). 동쪽은 동해에 접하며, 서쪽은 정선군·삼척시, 남쪽은 삼척시, 북쪽은 강릉시에 접한다. 시청소재지는 천곡동. 〔역사〕 삼한시대에는 진한의 실직국(悉直國)이었다가 102년(파사왕 23) 신라에 병합되었으며, 757년(경덕왕 16) 삼척군으로 개칭되었다. 고려시대 5도양계제가 실시되자 동계(東界) 소속의 삼척현으로 강등되었고, 조선 태조의 5대조인 목조(穆祖)의 외향(外鄕)이었던 삼척은 1393년(태조2년) 부로 승격되었다가 1413년(태종 13) 다시 도호부로 승격되었다. 1631년(인조 9) 삼척도호부는 관할구역을 매곡(邁谷)·노곡(蘆谷)·덕번(德番)·북평(北坪)·박곡(璞谷)·미로(眉老)·소달(疏達)·장생(長生)의 9개리로 나누었다. 1895년 전국이 23개 부로 개편될 때 삼척도호부는 강릉부(江陵府) 관할 삼척군으로 편제되었다가 이듬해 다시 지방관제가 개편되자 강원도 관할로 바뀌었다.
1914년 삼척군의 도상(道上)·도하(道下)·견박곡면(見朴谷面)이 북상면(北三面)으로 통합되었으며 45년 북평읍으로 승격되었다. 55년 강릉읍이 시로 승격되면서 강릉군은 명주군으로 개칭되었고, 80년 삼척군 북평읍과 명주군 묵호읍(墨湖邑)이 통합되어 동해시가 되었다. 2003년 현재 10개 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자연〕 서쪽은 태백산맥 중의 청옥산(靑玉山, 1403m)·두타산(頭陀山, 1352m) 등의 연봉(連峰)이 남북으로 달리고, 동쪽은 급경사를 이루나 해안지역에는 저위구릉지(低位丘陵地)가 발달되어 있다. 북부에 마상천(馬上川), 남부에 전천(箭川)이 흐르고, 전천 하류에는 기름진 북평평야(北坪平野)가 있다. 대부분의 해안은 암석해안으로 해식애(海蝕崖)를 이루고, 전천과 마상천 하구 주변에는 사빈해안(砂濱海岸)이 넓게 발달하여 해수욕장으로 개발되어 있다.
해안에 임하여 있으므로 해양성기후를 나타내며, 겨울에는 푄현상이 일어나서 같은 위도의 서해안보다 약 4℃ 정도 높다. 2001년 연평균기온 12.5℃, 연평균 강수량 10926㎜이다. 〔산업〕 총면적 중에서 임야 78%, 논밭 12%이며, 쌀·보리·콩·채소 및 사과·복숭아·포도 등이 생산된다. 묵호항을 중심으로 어업이 행해지며, 노가리·오징어·꽁치 등의 어획이 많고, 미역의 생산도 많다. 수산업인구는 해마다 감소하는 추세이며, 대부분 5t 미만의 소형 선박으로 영세어업을 영위하고 있어 어선의 대형화에 힘쓰고 있다.
태백권 자원지역의 일부로서, 일대에 양질의 석회석이 많이 매장되어 있는 관계로, 그것을 개발하는 시멘트공장이 활발하게 가동되고 있고, 그 밖의 제조업으로 금속·기계·식품 등의 업체가 있다. 삼척과 더불어 북평산업기지의 중심지로 지정되었으며, 3단계 건설이 끝난 1991년 이후에는 중화학 중심의 공업단지가 조성되어 동해안의 중심지가 되었다. 상업의 중심은 발한·묵호·송정·북평 등이고, 묵호항은 41년에, 북평항은 79년에 개항되어 영동지방 관문으로서의 대외교역의 일부를 담당하고 있다.
〔교통〕 도로교통은 동해고속도로의 일부인 강릉∼천곡동(泉谷洞)간, 포항까지 이어지는 동해고속화도로가 개통되어 수도권과 영남권 양 방면이 1일 생활권에 있고, 정선(旌善)·영월(寧越) 방면과도 국도(國道)와 지방도(地方道)가 개설되어 있다. 철도교통은 영동선이 시내를 통과하여 북평역(北坪驛)·묵호역 및 망상역이 있고, 북평역에서는 삼척선이 분기하며, 북평∼삼화간의 북평선도 있다. 해상교통으로는 동해항과 묵호항의 2개 국제항이 있다.
〔교육·관광〕 교육기관으로는 1999년 현재 유치원 26개교, 초등학교 14개교, 중학교 7개교, 고등학교 6개교가 있으며, 82년에 동해문화원이 발족되어 문화의 발굴과 창조활동에 기여하고 있다. 관광지로는 서쪽에 소금강으로 불리는 무릉계곡과 청옥산·두타산, 동쪽 해안에 망상·어달·해금강 해수욕장이 있다.
〔문화·유적〕 산성으로 삼국시대에 쌓은 것으로 추정되는 고현산성(高峴山城)과 두타산성이 있다. 불교유적으로는 삼화사(三和寺)의 삼층석탑(보물 제1277호), 삼화사철조노사나불좌상(보물 제1292호), 철불 및 삼화사·감추사(甘湫寺) 등의 사찰이 있다. 목건축물로는 용산서원(龍山書院)과 문경사(文敬祠)·문간사(文簡祠)·도동사(道東祠) 등의 사당, 북평해암정(北坪海巖亭;강원도유형문화재 제63호)·애연정·금란정(金蘭亭)·만경대(萬景臺) 등의 정자가 있고, 강원도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옛 민가들이 있다.
첫댓글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