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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 국경일 제정 과정과 의미
한글날국경일제정위원회 사무총장 리대로
1. 머리말
세종성왕께서 만든 한글은 세계 으뜸가는 글자로서 우리 겨레의 자랑거리이며 인류가 만든 훌륭한 문화유산이다. 더욱이 이 한글은 세계 모든 글자 가운데 만든 사람과 만든 날짜와 만든 까닭이 뚜렷하게 밝혀진 하나뿐인 글자이다. 그런 한글을 우리 조상은 500년 동안 제대로 사랑하고 즐겨 쓰지 않아 그 빛이 나지 않았다. 참으로 안타깝고 답답한 일이었다. 다행스럽게 100년 전부터 한글이 훌륭하고 중요함을 깨달은 분들이 한글을 갈고 닦는 일에 힘써서 오늘날 온 겨레가 즐겨 쓸 수 있게 되었다.
일찍이 한글을 갈고 닦은 일은 대한제국 시대에 주시경 선생이 ‘언문’이나 ‘암클’이라고 불리던 우리 글자에 ‘한글’이란 버젓한 이름을 지어주면서 시작되었고 주시경 선생 제자들 중심으로 민족 지도자들이 한글날을 만들고 한글맞춤법을 만들면서 한글을 갈고 닦는 데 체계 있는 연구와 노력을 했다.
1926년 이 땅이 일제 식민지가 되어 어둠 속에서 헤맬 때 민족지도자들은 한글로 겨레를 살리고 나라를 되찾겠다는 신념으로 한글을 반포한 날을 한글날(처음 가갸날)로 선포했다. 그리고 한글을 갈고 닦으며 나라를 되찾고 겨레를 빛낼 준비를 했다.
조선어학회를 중심으로 말모이(사전)를 만들다가 한글학자와 지원자들이 감옥에 끌려가 온갖 고문을 당하고 목숨까지 빼앗기면서 말이다. 이렇게 목숨 걸고 만든 한글날과 한글을 갈고 닦은 선열들 덕에 일제가 물러간 뒤 우리말과 글로 공문서와 교과서도 만들고 교육할 수 있었다.
고마운 한글, 한글날이기에 미국 군정 때인 1946년부터 한글날을 공휴일로 정해 온 국민이 한글사랑, 겨레사랑 정신을 키우며 경축했다. 한글날은 한글을 지켜주고 빛나게 했고, 한글은 우리 국민을 똑똑하게 만들었고, 나라가 빨리 발전하게 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나라를 잀은 일본제국 시대에 만든 한글날은 나라독립을 다짐하고 준비한 날이고 건국 뒤에 한글날은 국민을 자주 민주시민으로 키우고 힘센 나라를 만드는 데 큰 공을 세운 민족 최대 기념일이다.
그런데 1990년 대한민국의 노태우 정권은 경제단체가 공휴일이 많아서 나라 경제가 어렵다고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빼달라고 요구하니 깊게 생각하지 않고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빼버려서 한글과 겨레 얼을 짓밟았다. 온 국민에게 겨레사랑, 나라사랑 정신을 심어주고 나라를 튼튼하게 하는 데 가장 큰 공이 많은 한글날을 3등 기념일로 만들었다. 그리고 한글날 기념식을 마지못해 하면서 우리말과 한글을 천대했다.
한글문화단체는 그 얼빠진 짓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 바로 국경일 승격운동을 시작해 15년 만인 2005년 12월 8일에 ‘국경일 지정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많은 사람이 한글날이 국경일로 승격한 게 우연히 된 것으로 아는 데 그게 아니었다. 민중이 싸워서 쟁취한 것이다. 나는 한글날 국경일 제정운동을 하면서 한번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지난 수년 동안 절실하게 깨달았다. 한글날을 국경일 제정운동을 하는 동안에도 또 국경일이 된 뒤에도 일반 국민은 말할 거 없고 정부 고위 공무원이나 학자들까지도 한글날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있어 안타까웠다. 그래서 한글날이 언제 어떻게 만들었으며 국경일이 되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발자취를 간추려 적는다.
2. 한글날이 국경일이 되기까지 발자취
* 서기 1926년 11월 4일 ‘가갸날’로 선포하다. 조선어연구회(지금 한글학회)와 신민회가 공동 주최해 한글반포 8회갑이 되는 한글 반포 480돌이 되는 날에 서울 식도원에 400여 명이 모여 가갸날을 선포하고 기념 잔치를 했다. 그때 한글날의 처음 이름은 ‘가갸날’이었다.
* 만해 한용운님이 ‘가갸날’이란 시를 동아일보에 발표하다. 만해 한용운은 가갸날을 선포하자 그 기쁨을 시로 써 동아일보 제2247호(1926.12.7)에 발표했다. 그 시 속엔 ‘축일 제일’ 같은 일본 한자말과 ‘데이 시이즌’같은 영어보다 우리말이 더 중요하고 아름다우니 즐겨 쓰고, 겨레의 가장 큰 잔칫날(국경일)로 만들고, 세계 문화기념일로 만들자고 외치고 있다. 80해 앞, 일제 시대에 한자말과 영어를 쓰지 말 것과 한글날을 국경일로 삼고 세계 글자로 만들자고 외친 만해는 선각자요 선구자였다. 모두 한용운이 쓴 가갸날을 큰 소리로 읽으며 한글과 나라를 빛내는 일에 함께 나설 것을 다짐하자.
가갸날
한용운
아 아 가갸날
참되고 어질고 아름다워요.
축일, 제일.
데이, 시즌 이 위에
가갸날이 났어요. 가갸날.
끝없는 바다에 쑥 솟아오르는 해처럼
힘 있고 빛나고 뚜렷한 가갸날.
데이보다 읽기 좋고 시이즌보다 알기 쉬워요.
입으로 젖꼭지를 물고 손으로 다른 젖꼭지를 만지는
어여쁜 아기도 일러줄 수 있어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계집 사내도 가르쳐 줄 수 있어요.
가갸로 말을 하고 글을 쓰셔요.
혀끝에서 물결이 솟고 붓 아래에 꽃이 피어요.
그 속에 우리의 향기로운 목숨이 살아 움직입니다.
그 속엔 낯익은 사랑의 실마리가 풀리면서 감겨 있어요.
굳세게 생각하고 아름답게 노래하여요.
검이여 가갸날로 검의 가장 좋은 날을 삼아 주세요.
온 누리의 모든 사람으로 가갸날을 노래하게 하여 주세요.
가갸날, 오오 가갸날이여. (동아일보 1926.12.7)
* 1928년에 ‘한글날’로 이름을 바꾸고, 1934년에 10월 28일로 바꾸다. 1928년에 기념일 이름을 ‘한글날’로 바꾸고 한글 반포일이 음력 9월 29일(양력 11월 4일)로 알고 음력으로 기념하다가 1934년에 양력과 음력 환산법을 그레고리오력으로 환산해 양력 10월 28일로 한글날을 바꾸다.
* 1946년부터 한글날을 10월 9일로 하고 공휴일로 지정하다. 1940년에 경북 안동에서 훈민정음 원본이 발견되어 훈민정음 반포일이 음력 9월 상한임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일제 탄압으로 기념식을 못하다가 일제가 물러간 1945년에 한글학회는 음력 9월 상한을 양력으로 환산해서 10월 9일로 날짜를 바꾸어 한글날로 정한다. 1946년 미 군정은 한글날을 공휴일로 지정한다. 한글반포 500돌인 1946년 한글날에 덕수궁에서 기념식을 했는데 내외 귀빈과 시민이 시민 2만여 명이 모여 기념식을 하고 거리행진도 했다.
* 1981년부터 한글날 기념식을 정부가 주관하다. 1948년 대한민국을 세우고 한글학회와 세종대왕기념사업회 들 한글단체가 주관해 한글날 행사를 했는데 박정희 대통령 때엔 대통령도 참석했고 한글날이 공휴일이었다. 그런데 전두환 군사정권 때인 1981년부터 서울시가 주관해 기념식을 하게 하더니 그 다음해인 1982년부터 문화공보부(지금 문화관광부)가 주관해 기념식을 하게 한다. 그러면서 한글단체가 주관할 때보다 기념식이 점점 맥 빠지게 된다.
* 1990년 초 정부는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빼려 해 한글단체는 그 반대운동을 하다. 경제단체는 공휴일이 많아 나라 경제가 어렵다며 공휴일을 줄여줄 것을 정부에 요구하니 정부는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빼겠다고 한다. 한글학회 애산학회, 대한음성학회, 세종대왕기념사업회, 한글문화원, 외솔회, 전국국어운동대학생동문회 들이 정부에 반대 건의문을 보내고 성명서를 발표한다. 전국국어운동대학생회와 동문회는 정부에 공개토론도 제안하고 문화부를 항의 방문한다. 그래서 정부는 주춤하게 된다.
* 1990년 말 정부는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빼다. 1990년 11월 5일 국무회의에서 한글날을 공휴일(대통령령 제13155호)에서 빼는 결의를 한다. 그래서 1991년 한글날부터 쉬지 않는 단순한 3등 기념일이 된다.
* 1991년 한글단체는 한글날 국경일 승격운동을 시작하다. 정부가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빼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끝내 공휴일에서 빼는 것을 보고 1991년 2월에 전국국어운동대학생연합회 학생들은 탑골공원에서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뺀 정부를 규탄하면서 한글날을 국경일로 승격하라고 외친 뒤에 서울 명동까지 거리행진을 한다. 그리고 한글문화단체모두모임(회장 안호상)은 1991년 10월 1일에 국회의장에게 한글날 국경일 제정 청원서를 낸다. 그 뒤 한글단체는 계속해서 정부와 국회에 건의하고 청원한다. 첫 청원서가 의미가 크기에 옮긴다.
[한글날 국경일 제정 청원서]
박준규 국회의장님
1. 나랏일 하시기에 얼마나 바쁘십니까?
2. 대한민국 법률 제53호 국경일에 관한 법률을 고쳐, 10월 9일 한글날을 법정 국경일로 정해 주시기를 청원 드립니다.
3. 한글은, 아시다시피 어느 다른 나라의 글자를 흉내 내거나 본뜬 것도 아니고, 훔쳐온 것도 아니며, 어떤 겉모습을 그린 것도 아닙니다. 우리말소리를 가장 바르게 나타낸, 이 세상에서 다시 찾아볼 수 없는 가장 과학스러운 글자입니다. 그러기에 지난 45년간 한글날을 나라에서 공휴일로 정해서 한글의 위대함을 되새김으로써, 우리 조상의 슬기를 온 누리에 자랑해 왔던 것입니다. 더구나 우리나라를 빼고는, 나날이 쓰는 글자나 글자 만든 날을 스스로 기념하는 겨레나 나라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것은, 그렇게 뜻깊게 기념할 만한 훌륭한 글자를 스스로 만들거나 가진 나라는 이 세상에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돈밖에 몰라서 일꾼의 품삯이나 떼어먹고 싶어하는 기업주들 말에 넘어가 한글날을 공휴일어서 빼어 버린 역사적 잘못을 또 다시 저질러서는 안 됩니다. 자라나는 우리 아들딸들에게 겨레의 얼을 이만큼 자랑스럽게 심어 줄 수 있는 날도 한글날 말고는 다시 없습니다. 법정 국경일로 삼지 아니하면 안 될 까닭이 여기 있습니다.
4. 건강과 행복을 누리시며, 내내 건투하시기를 빌고 바랍니다.
1991년 10월 1일
한글문화단체모두모임 회장 안호상
* 1999년에 한글단체 주체로 한글날 국경일 제정 공청회 열다. 국민의 애타는 호소도 못들은 체하는 정부는 한글과 한글날을 가볍게 보면서 한글날 기념식도 성의없이 한다. 그리고 1999년 2월에 한자병용법을 만들겠다고 까지 나서는 등 한글 짓밟기 정책을 추진한다. 한글단체는 분노하고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앞과 덕수궁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그 반대투쟁을 세차게 한다. 그러니 정부는 한글날 국경일 추진하겠다며 말한다. 1999년 7월 9일 한글단체 주최로 세종문화회관에서 한글날 국경일 제정 공청회를 열었다.
* 2000년 한글문화단체 이름으로 국회에 한글날 국경일 제정 청원을 또 내다.
한글단체는 공청회를 열고 그 국민의 소리를 정부에 건의했으나 정부는 아무 반응이 없다. 그래서 한글단체는 3월 1일엔 탑골공원에서 한글문화독립선언을 하고 한글학회까지 거리행진을 한다. 전국 지방에서도 같은 시간에 시위를 한다. 그리고 한글단체는 그 이듬해 국회에 다시 한글날 국경일 제정 청원서를 내고 국회에서 활동을 시작한다.
* 2000년 16대 국회에 한글날 국경일 지정을 위한 법률안을 발의하다. 국민과 한글단체의 소리를 국회에서 받아들여서 10월 2일 신기남의원 외 34명이 한글날 국경일 지정을 위한 벌률안을 의원 입법안으로 발의한다. 그리고 그 해 11월 15일자로 여야의원들이 한글날 국경일 추진을 위한 의원모임을 발족한다. 그리고 의원모임은 11월 30일에 국회에서 한글날 국경일 지정을 위한 공청회를 국회에서 연다.
* 2000년 12월 4일자로 국회 행자위에 상정했으나 통과시키지 않다. 그러나 국회 행정위는 소위원회만 한번 열고 다시 국민의 의견을 묻는 공청회를 열기로 하고 논의조차 하지 않는다. 재벌과 행정자치부가 반대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래서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위원들은 한글날 국경일 제정을 바라는 의견 제시안을 발표한다.
* 2001년 한글날 국경일 제정 범국민 위원회 태어나다. 국회 행정자치위원회가 법안을 제대로 심의조차 하지 않자 한글단체와 각계 사회 인사와 시민 15224명이 참여한 범국민 추진위원회를 만든다. 강영훈 전 국무총리 등 고문 195명, 위원장에 전택부 기독협의회 명예총무, 추진본부장에 서정수 교수를 비롯한 임원진 75명과 지도위원 1391명, 추진위원 304명 등을 뽑고 활발하게 추진운동을 벌인다.
* 2001년 3월에 한글날을 국경일로 홍보 책 첫째 호를 내다.
한글날 국경일 제정 범국민 추진위원회는 한글날 국경일 제정을 촉구하는 홍보 책자를 만들어 정부와 언론사와 국회에 뿌리며 호소한다. 전택부 위원장과 서정수 본부장을 비롯해 여러분이 행정자치부 장관과 국회의원들을 만난다.
* 2001년 4월 종로 기독교회관에서 한글날 국경일 제정추진 범국민 결의대회를 열다. 한글날 국경일 제정 범국민 추진위원회(위원장: 전 택부)는 4월 10일 오후 1시, 기독교 청년 회관(서울 종로구) 대강당에서 "한글날 국경일 제정을 위한 범국민 결의 대회"를 열고 강연회를 한 뒤에 '김 대중 대통령에게 드리는 글'과 국회의장, 국회의원, 국무총리들에게 보내는 결의문을 낭독하고, 대회장 앞길에서 한글날 국경일 제정을 위한 시민 서명 운동을 펼쳤다. 서영훈, 이어령, 김남조, 신기남님 들이 강연을 했다.
* 2001년 문화관광부에서도 한글날 국경일 제정에 힘쓰다. 문화관광부(장관 김한길)도 국어정책과(과장 김수연)를 중심으로 한글단체와 함께 한글날 국경일 제정에 힘쓴다. 그래서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에서 김수연 국어정책과장을 우리말 지킴이로 뽑기도 한다. 한글단체와 문광부가 한마음으로 한글을 빛낸 첫 걸음이다.
* 2001년 8월 25일 전택부 위원장 청와대에서 뇌출혈로 쓰러지다. 전택부 위원장이 2001년 7월에 손숙씨가 진행하는 서울방송 라디오에 출연해서 대통령에게 한글날 국경일 제정을 건의하는 글을 읽었는데 그 뒤 청와대에서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그래서 전택부 회장은 8월 25일에 서정수 본부장, 나채운 부위원장과 함께 청와대 비서실로 가서 관련 건의문을 전했으나 시원한 대답을 듣지 못하니 그 자리에서 뇌출혈로 쓰러져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다. 그 뒤 깨어나 나는 죽어도 좋으니 한글날은 살려 달라는 현대판 각설이 타령을 쓰셨다. 전택부 위원장과 한글단체 여러분이 얼마나 한글날 국경일 제정을 바라시고 애쓰셨는지 엿보이는 시이기에 아래 소개한다.
이보오 벗님네야 이내 말 들어보소
전택부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나 않고 또 왔네
엄동설한 혹한에도 죽지나 않고 또 왔네
북망산으로 간다더니 병원 신세가 웬 말이오
가야 할 길이 구만린데 도중하차가 웬 말이오
험한 준령이 험난하니 쉬었다 가라 그 말인가
세상만사가 하수상하니 피했다 가라 그 말인가
품바 품바 품빠빠 품바 품바 품빠빠
이 보오 벗님네야 이내 말 들어 보소
제발 한번 들어 보소
나는 죽어도 좋으니 한글날은 살려 주소
비나이다 비나이다 신령님께 비나이다
환날질고 물리치고 영생복락 주옵소서
죽거나 살거나 내 팔자 내 팔자가 상팔자라
죽거나 살거나 내 팔자 각설이 신세가 내 팔자
얼씨구나 좋다 품빠빠 절씨구나 좋다 품빠빠
에라 만수... 에라 대신이라...
품바 품바 품빠빠 품바 품바 품빠빠...
* 2002년 5월 13일 세종문화회관에서 한글날 국경일 촉구대회를 열다. 오리 전택부 위원장 미수 기념문집 우리의 소원은 한글날 국경일이오를 내고 출판기념회도 겸했다.
* 20002년 8월 한글문화연대 "한글날을 국경일로" 지정하자는 대회를 열다. 한글문화연대(대표: 김 영명)는 광복절을 하루 앞둔 8월 14일, 서울 종로 느티나무 카페에서 "한글날이 국경일이기를 바라는 33인 모임"을 발족했다. 이 모임에는 김 영명 대표와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이대로 공동대표, 박 원순(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 서 경석(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집행위원장), 이 외수(소설가), 도법 스님(실상사 주지), 이 수호(전교조 위원장), 김 흥국(방송인) 등 33사람이 참여하였다.
* 2002년 10월 1일 국회 앞에서 한글날 국경일 제정 촉구 1인 시위를 하다.
10월 1일부터 8일까지 시민단체 대표들이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 참교육을 위한 학부모회 윤 지희 회장이 "우리의 소원은 한글날 국경일"이라는 알림판을 목에 걸고 첫 날 시위를 벌인 데 이어, 우리말 살리는 겨레모임 이 대로 공동대표, 전국 국어교사 모임 고 안덕 회장, 전교조 이 수호 위원장, 참여연대 손 혁재 운영위원장 등이 끈달아 일주일동안 1인 시위를 했다.
* 2002년 10월 9일 세종문화회관에서 한글날 국경일 제정 촉구 대회 열다
한글날국경일제정범국민위원회는 556돌 한글날을 맞이해 세종문화회관에서 다시 국경일 제정 촉구대회를 열고 각 당 대통령 입후보자들에게 한글날을 국경일로 제정해 문화 대통령이 되어주십시오란 건의문을 보낸다.
* 2003년도 4월 20일 한글날을 국경일로 홍보물 둘째호 내다. 추진위원회는 한글날을 국경일로 홍보물 5000부를 찍어 국회와 정부, 언론기관에 돌리며 한글날 국경일 제정을 촉구하다.
* 2003년 5월 14일 한글날 국경일 제정 촉구 토론회 열다. 한글날 국경일 제정 범국민 추진위원회(위원장: 전 택부)는 교육개혁 시민운동 연대(운영위원장: 주 경복)와 공동으로, 5월 14일 오후 3시부터 대학로 흥사단 강당에서 606돌 세종날 기념 한글날 국경일 제정 촉구 토론회를 열고 정부와 국회에 건의문을 보냈다.
* 2003년 9월 20일 여의도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국경일 제정 촉구대회를 열다. 한글날국경일제정범국민추진위원회는 한글학회,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전국국어교사모임,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참교육을위한학부모회, 등 시민단체와 여의도 공원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한글날 국경일 제정 촉구 국민대회를 주최하고 시민과 학생이 모여 호소문을 읽고 서명운동도 했다.
* 2003년 국회에 국경일 제정법안 통과를 호소하다. 2003년 8월부터 12월 정기국회가 막을 내릴 때까지 서정수 본부장과 이대로 사무총장은 여러 한글단체 대표들과 국회에 살다시피 하며 국회의원들을 만나 법안 통과를 호소한다. 그리고 한글날을 맞이해 여러분이 여기저기 글을 쓰고 호소한다.
* 16대 국회가 문을 닫으며 법안이 자동 페기 된다. 12월 16대 국회가 문을 닫을 때까지 서정수 본부장과 이대라 사무총장은 한글단체 대표들을 번갈아 모시고 국회에 가 국회의원을 만나고 호소했으나 국회 행정자치위원회는 경제단체와 행정자치부가 반대한다는 이유로 약속대로 공청회도 하지 않고 법안 심의도 하지 않해서 자동페기하게 만든다. 제 나라의 말과 글을 우습게 여기는 경제단체와 행정자치부에 실망과 분노를 느낀다.
* 17대 국회가 문을 열자마자 국경일 제정 건의를 하고 방문 활동을 하다. 한글날국경일제정범국민위원회는 17대 국회가 문을 열자마자 한글날 국경일 제정운동을 활발하게 시작한다. 이대로 사무총장은 문화관광부와 행정자치부를 방문해 협조 약속을 받아내고 오동춘, 홍종현, 김기종, 김영조 추진위원들과 국회 방문해 홍보 책자를 새 국회의원에게 나누어주면서 열심히 한다.
* 2004년 7월 15일에 신기남의원과 67명 여야 의원이 한글날 국경일 지정법안을 내다. 신기남의원과 한나라당 권철현의원, 민주노동당 노회찬의원, 민주당 손봉숙의원, 자민련 류근찬의원, 무소속 신국환의원 들 여야 국회의원 67명이 한글날을 국경일로 승격시키기 위한 '국경일에 관한 법률 중 개정법률안'을 국회에 공동으로 발의했다.
*2004년 8월 5일 한글날 국경일 지정 청원을 국회에 내다. 한글날 국경일 제정 범국민추진원회는 김원웅의원 소개로 국회에 청원하다.
* 2005년 3월 13일 광화문 마라톤대회장에서 국경일 제정촉구 홍보활동하다. 한글날국경일제정위원회는 3월 13일 새벽 6시에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서울국제마라톤 대회장에 외솔회 박대희 이사,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차재경 국장, 한글학회 유운상 국장과 김한빛나리 연구원과 여러 직원, 이대로 사무총장은 행사 참가자들이게 한글날 국경일 제정 촉구 딱지를 5000장 만들어 등판에 붙여주었다. 영하 7도가 되는 꽃샘추위에도 김제에 사는 70대 정갑주 추진위원은 마을 주민과 가족 10명을 함께 와서 마라톤에 참가해 국경일 촉구 홍보활동을 했다.
* 2005년 5월 한글날 국경일 제정 홍보물 한글날 국경일로 셋째 호를 내다. 한글날 국경일 추진회는 350 쪽 홍보물 셋째 호를 만들어 이대로 사무총장이 국회에 돌리다.
* 국회 문광위 위원들, 한글날 국경일 지정법안 통과 촉구하다. 국회 문화관광위원회(위원장 이미경)는 아래 보도와 같이 한글날을 맞이해 국경일로 승격시켜야 한다는 결의문을 발표한다.
* 국회 한글문화 세계화를 위한 의원모임도 한글날 국경일 제정 촉구 성명서 발표하다. 국회 한글문화 세계화를 위한 의원모임은 모임의 신기남 대표, 열린우리당 임종인 간사, 한나라당 정두언 간사, 민주노동당 노회찬 간사, 민주당 손봉숙 간사 공동으로 한글날 국경일 지정법안을 빨리 통과시켜달라는 성명서를 발표한다.
*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회보 우리말 우리얼 35호를 한글날 국경일 특집으로 내다.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공동대표 김경희 김수업 김정섭 이대로)은 2005년 한글날을 앞두고 한글날을 국경일로 지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특집호를 내고 국회 행자위 위원들과 입법조사관들에게 직적 돌린다. 그리고 한글날에 시행하는 2005년 우리말 훼방꾼에 국회 행정자치위원회를 뽑고 한글날 국경일 법안을 빨리 통과해달라고 호소한다 .
* 한글단체들이 2005년 마지막 정기 국회에서 통과시켜 줄 것을 호소하다. 한글날국경일제정범국민추진위원회, 한글학회,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외솔회,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한글문화연구회, 전국국어운동대학생동문회, 국어문화운동본부, 한글문화연대, 한글사랑누리통신모임 들 한글단체는 국회의장, 행정자치위원장 들에게 2005년이 가기 전에 꼭 한글날 국경일 지정법안을 심의 통과 시켜달라는 건의문을 한꺼번에 보내고 국회를 방문해 호소한다.
* 2005년 12월 1일 행정자치위원장이 한글날을 국경일로 지정하는 법안을 내기로 여야 합의하다. 제254회 국회(임시회) 제2차 행정자치위원회(2005. 6. 14)에서 2004년 7월 15일 신기남의원이 대표발의한 「국경일에관한법률중개정법률안」과 2004년 11월 18일 이규택의원이 발의한 「국경일에관한법률중개정법률안」을 일괄 상정하여 대체토론 후 소위로 회부했다. 제256회 국회(정기회) 제1차 법안심사소위원회(2005. 11. 30)에서 2건의 법률안을 심사한 결과 각각 본회의에 부의하지 아니하기로 하고 그 내용을 통합․보완하여 위원회 대안을 제안하기로 한다. 제256회 국회(정기회) 제10차 행정자치위원회(2005. 12. 1)는 법안심사소위원회의 심사결과를 받아들여 「국경일에관한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위원회 대안으로 심사의결한다.
* 2005년 12월 8일 국회 본회의에서 한글날 국경일 지정법안이 통과되었다!! 행정자치위원회 이름으로 낸 대안을 소개한다.
의안번호 173572 법률 국경일에 관한법률 일부개정법률안(대안)
제안자 행정자치위원장
제안일2005-12-07 소관위원회 행정자치위원회
본회의 의결일 2005-12-08시행일 공포한 날부터 시행
■ 제안경위
1. 제254회국회(임시회) 제2차행정자치위원회(2005. 6. 14)에서 2004년 7월 15일 신기남의원이 대표발의한 「국경일에관한법률중개정법률안」과 2004년 11월 18일 이규택의원이 발의한 「국경일에관한법률중개정법률안」을 일괄 상정하여 대체토론 후 소위로 회부함.
2. 제256회국회(정기회) 제1차법안심사소위원회(2005. 11. 30)에서 2건의 법률안을 심사한 결과 각각 본회의에 부의하지 아니하기로 하고 그 내용을 통합․보완하여 위원회 대안을 제안하기로 함.
3. 제256회국회(정기회) 제10차행정자치위원회(2005. 12. 1)는 법안심사소위원회의 심사결과를 받아들여 「국경일에관한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위원회 대안으로 심사의결함.
■ 개정이유
우리 민족사에 가장 빛나는 문화유산인 한글을 계승․발전시키기 위하여 현재 「각종기념일등에관한규정(대통령령)」에 의거 국가 기념일로 규정되어 있는 한글날을 같은 법에 의한 국경일로 승격 규정함으로써 한글의 독창성과 중요성을 드높이고 민족적 자긍심을 고취하고자 함.
■ 주요내용
한글날을 국경일로 지정함(제2조제5호 신설).
* 2006년 1원 19일 국회에서 국회의장과 국회의원, 한글단체와 시민단체 대표들이 모여서 한글날 국경일 승격 축하모임을 하다. 2006년 7월 7일 한글회관 402호에 한글날 큰잔치 조직위원회(공동 집행위원장 이상규, 최기호) 사무실 입주식을 하고 한글날 경축 행사 준비를 하고 있다.
3. 왜 한글날을 국경일로 만들었나?
왜 우리가 그 어려움을 무릅쓰고 많은 국민이 끈질기게 매달려 한글날을 국경일로 만들었으며 한글날의 참뜻은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첫째, 우리는 한국 정부와 한국 정치인과 한국 경제단체가 한글과 한글날을 우습게 여기는 잘못을 바로잡으려 했다. 이들은 한글날을 3등 기념일로 내리고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면서 한국말을 짓밟는 흐름을 막는 계기로 만들고자 했다. 중국의 지배를 받을 때는 중국 한문을 섬기고, 일본의 식민지일 때는 일본말을 나랏말로 섬기고, 미국의 지배를 받다보니 미국말을 섬기는 꼴을 우리는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둘째, 한글로 우리 한글문화, 자주문화를 꽃피자는 것이다. 한글은 세계 언어학자가 인정하는 세계 으뜸 글자다. 그런 글자를 우리는 헌신짝보듯하고 잘 이용하지 않았다. 수천 년 역사를 가진 민족이라고 하나 내놓을만한 우리 문학 작품이 없다. 거의 중국 한문으로 쓴 책이고 중국 문학과 문화의 곁가지에 지나지 않았다. 더욱이 일본의 식민지 때 길든 일본식 한자혼용이 우리 말글살이로 알고 한글을 살려쓰는 걸 반대하는 한국인이 많았다. 이제 우리말을 우리 글자인 한글로 글을 쓰고 문학작품을 만들어 고급스런 우리 한글문화를 꽃피는 계기로 삼자는 것이다.
셋째, 한글로 정보통신 강국이 되자는 것이다. 과학과 철학에 바탕을 두고 만들어진 한글을 잘 이용해 과학강국, 철학강국이 되자는 것이다. 오늘날 정보통신 학자들까지도 세종대왕이 셈틀(컴퓨터)를 이용한 정보통신시대를 내다보고 한글을 만든 거 같다고 할 정도로 셈틀과 찰떡 궁합이다. 그래서 우리가 정보통신 강국이 되는 데 한글이 크게 이바지했다. 정치인, 학자, 기술자들은 이제라도 한글을 더욱 사랑하고 잘 이용해 과학과 학문을 발전시키기에 더욱 힘써야 겠다.
넷째,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정신으로 온 국민이 잘사는 나라를 만들자는 것이다. 세종대왕은 백성을 끔찍하게 사랑하는 마음에서 한글을 만들었다. 그런 정신으로 정치를 해서 나라를 이끄는 이들과 국민이 한마음으로 뭉쳐서 살기좋은 나라를 만들자는 것이다. 온 국민이 한글로 지식 수준을 높이고, 온 나라를 잘 짜여진 나라로 만들어 세계 문화발전에도 이바지 하자는 것이다. 몇해 전에 이름난 미래학자가 “앞날은 동양문화시대가 될 것이다.”라고 예언한 일이 있다. 한글은 우리문화뿐 아니라 동양문화 수준을 높여 줄 것이다.
다섯째, 한글로 겨레 자긍심과 자신감을 키우자는 것이다. 우리가 5천 년 역사를 가진 나라요 민족이지만 세계에 자신있게 내세울만한 문화 유적이나 유물이 드물다. 그렇지만 한글을 만든 머리와 정신은 그 어느 나라나 민족에게도 자신있게 자랑하고 내세울 수 있다. 그런 머리와 정신으로 한글을 잘 이용하면 많은 문학작품을 내고 학문을 발전시키고 예술작품을 창조해 세계에 자랑하고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다. 자신감과 자긍심 속에서 주체성있는 학문, 예술, 정치, 문화가 꽃핀다. 한글로 어깨를 펴고 떳떳하게 살자는 것이다.
4. 마무리
우리에게 삼일절, 개천절, 제헌절, 광복절 같은 4개 국경일이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 국경일을 제대로 그 뜻을 살리고 온 국민이 참여해 경축하지 못했다. 근래엔 그저 등산이나 가고 집에서 노는 날로만 여기는 이가 많다. 국경일은 나라의 경사스런 날이고 온 국민이 함께 경축하고 즐길 수 있어야 하는 데 그렇지 않았다. 이제 한글날은 그저 노는 국경일이 아닌 본래 국경일의 참뜻을 살려 정부와 온 국민이 함께 참여해 즐기는 날, 나라에서 가장 경사스런 날로 만들자. 그것도 문화 국경일로 만들어 우리 자주문화를 꽃피게 하는 날로 만들자.
그래서 한글단체와 문화관광부는 ‘한글날 큰잔치 조직위원회’를 꾸리고 그런 국경일로 만들려고 여러 가지 계획을 세우고 준비를 하고 있다. 세계 어디에도 글자를 만든 날을 기념하는 나라도 없다. 더욱이 글자를 만든 날을 국경일로 정한 나라도 없다. 우리만 그럴수 있고 그렇게 했다. 모두 머리를 짜내고 함께 애써서 세계인이 부러워하고 구경하러 오는 문화 잔칫날로 만들자. 수백,수천년 뒤에 우리 후손들이 21세기 초에 선조들이 한글날을 국경일로 만든 것은 잘했다고 하도록 뜻있는 행사를 많이 하고 마음껏 자랑하면서 즐기자.
세계 으뜸가는 글자를 만들고서도 500년 동안 천대하고 잘 이용하지 않은 건 부끄러운 일이고 바보스런 일이었다. 이제라도 더 먼 앞날을 내다보며 이 한글을 잘 부려 써서 한글 말꽃을 꽃피워 온누리를 아름답게 만들자. 한글이 얼마나 훌륭한 글자인지, 한글날이 얼마나 중요한 날인지 모르고 돈만 아는 얼빠진 경제단체장과 무식한 대통령은 한글날을 짓밟았지만 깨어있는 국민이 한글과 한글날을 살려서 우리 겨레가 우뚝 서게 했다는 말을 후손들로부터 듣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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