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 뒷담
당신은 행복을 어디에서 찾는가?
오래전 실제 있은
내가 본 행복이다.
내교단생활에서잊을수없는
30년 전쯤의 보석 같은 추억이다.
나의 운명을 바꾼 특수반 아이들과 생활.
당시 나는 생활장면 시뮬레이션 게임을 통한 바른 인성 지도란 논문을 써서 푸른기장과 장관상을 받았다. 상을 받은 것보다 지금 살펴보면 내용이 많이 빈약하겠지만 현장 적용 선행 연구가 없었으니 시뮬레이션 게임 이론을 한국 교육 현장에 최초로 적용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갖는다.
거제리 안 동네 산마을.
가난이 죄가 되지 않겠지만
힘든 날을 하루하루 맞이한다는 것은
신의 외면인지 타고난 운명인지.
그 답을 어디서 찾아야 하나.
키작은열살사내아이,
제비꽃같이 연약한 아름다운 심성에
예의도 반듯하나 잘못된 친구들의
꾐에속아나쁜길로접어들어
가정방문을 나섰다. 산동네 마을, 위로는 누나 둘에 아버지가 계신 가정으로 귀염을 듬뿍 받으며 자라고 있었다. 아들의 그런 점을 몰랐던 아버지는 먼 산을 바라보며 한숨지으며 나를 방으로 안내한다.
단출한가재도구에넉넉지못한살림이눈에보인다. 나도당시그랬으니까. 당시나의봉급이 28만원정도였으니.
애의아버지는소주와멸치몇마리를꺼내술상을차려한잔드시고가라며권유를한다. 아직퇴근시간도멀었고가정방문결과를보고해야하는데술을든다는것은복무상옳지못한일이다.
술상을 앞에 놓고 애의 아버지가 지나온 과거를 털어놓는데 술을 마시지 않을 수 없었다. 내 눈에서 눈물이 얼마나 쏟아지는지 술을 마시는지 눈물을 마시는지.
애의아버지는당시사우디아라비아에건설노무자로근무하게되었다고한다. 2년을근무하고잠시귀국했다가다시들어가 2년차되는해에국내있는친구가당신의부인이이상하다며전보가왔기에가정사로중도귀국하는경우는항공료를회사에서다돼준다고한다. 그전에부인이남편이벌어준돈으로가게를차려살림을늘리는것이좋겠다는제안의편지가왔기에그렇게하도록했답니다. 식당겸선술집을차렸다고합니다. 이게불행의씨앗이되었다.
식당을운영하며만난젊은남자와눈이맞아야반도주를했는데아이들만남아있었다고한다.
귀국하여 친구와 어찌어찌 수소문하여 찾아간 곳이 초량동 산동네 마을이라고 합니다. 급습했더니 부인과 젊은이가 나란히 누워있더랍니다.
애의 아버지가 물었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도망간 부인이 그 남자와 산다기에 모든 수속을 밟고 깨끗이 정리했다고 하는데 보통 사람 같았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을 것으로 애의 아버지는 대담하고 바다 같은 넓은 마음을 가진 착한 분이라 나는 그런 모습에 놀라고 그분의 과거가 아파서 눈물이 한없이 쏟아졌다.
비에젖은터미널이란노래가사말이떠오른다. 밤은깊어인적은끊어지고가로등은졸고있는데혹시나기다린님이올까기다렸건만막차는도착한지는오래고밤비만하염없이내리는터미널. 쌓인정을지우려마시는술잔을들고바보같이살아온그사람은떠나간부인의행복을빌어주었답니다. 애의아버지는자기사랑도한때는행복했었다고한다.
애의아버지는애들을여동생에게맡기고낼모레 5년계약으로사우디아라비아로떠난다고한다.
삶이 당신을 이제 더는 속이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그 학교를 떠나온 이후로 그분의 소식을 알 수 없었다.
용기 있는 새로운 출발로 아침 이슬에 반짝이는 꽃잎처럼 멋진 삶이 펼쳐지리라 믿습니다
가정방문을마치고교장선생님께사실을보고했더니술한잔나눈것이문제가아니라정말좋은방문으로부모와교감을나눈상담이었다며칭찬을해주시어고마웠다.
자식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따듯한 눈물, 제게 칭찬을 해 주신 교장 선생님의 훈훈함은 행복이 아닐까?
아홉살여자아이에게있었던일이다. 이들이자라이제는 40대에접어들나이다. 예쁜얼굴에눈망울이초롱초롱하고단발머리를한귀염둥이다. 어찌된영문인지산수는수준에맞게따라하는데문자해득이전혀안되는아이이었습니다. 2학년인데 '아버지'라는글자를돌아서면모르고쓸수도없습니다. 덧셈이나뺄셈은척척해내는데지적구조가잘못이있는지도무지내가이해가안되는애였습니다.
당시부모들은자녀가특수학급에서공부하는것을부모의자존심때문에허락하지않았습니다. 부모의동의가있어야입급을시킬수있습니다.
동의서를 받아야 하기에 3월 중순께 가정방문을 갔습니다. 여기도 거제리 안 동네 산마을이다. 지금은 재개발로 반듯한 아파트가 빼곡히 들어섰다.
좁은골목길을돌아돌아찾아갔다. 방하나에식구넷이사는단란한가정이었습니다. 내가말을꺼내자자기애를학원에보내깨칠것이라며극구반대를하기에한두달제가가르쳐보고안되면그때보내시라며그때첫학원비는제가되겠다고했습니다.
대충둘러본가정형편이학원보낼처지가못되보였습니다. 애의아버지는방에몸져누웠고냉장고를둘곳이없어처마아래비닐로덮어바깥에두었다. 부엌은연탄아궁이하나에부뚜막에는단출한찬장이놓여있고세숫대야가눈에띄었다. 애어머니는연탄불에애아빠를위한무슨곰인지는몰라도곰국을달구고있었다. 순간달구는곰국속에행복과사랑이철철넘치어눈물이핑돌았다. 근근이동의서를받아냈습니다.
그해오월이들어애는한글을뜨덤뜨덤읽기시작한다. 스승의날에애의어머니가불쑥찾아와뭔가를내밀며고맙다는인사를하고갔습니다. 시장에서파는로션이었습니다. 돌아가는애의어머니뒷모습을바라보며그분도행복하며나도너무행복했습니다. 아이는 3학년이되어서는특수반을졸업하고학년을따라가며학교생활을즐겁게하였습니다. 감동이파도처럼일렁이며애의어머니가준선물을한동안아껴두고바라만봤습니다.
당시특수반이라는이름대신장미반이라는이름을지어교실입구에학급패찰을달았습니다. 장미반을맡고나서한애가 4월초가되어도하루도학교에나오지를않았습니다. 장미반학생들은원적반이있어원적반담임선생이학생을관리하고지도하며특수반선생은보조활동으로국어나수학을가르치며인성지도를곁들어가르친다. 나는특수반교사라학습부진이나지적장애아이를돌보며가르친다. 일반교사로서특수교사자격을가진교사만이맡을수있다.
동사무소에가서애의주소지를조사해 봐도어디를갔는지알수가없다고하기에딱한실정이었다.
전교생을대상으로조사를해도본이가한사람도없었습니다.
그러던차에 4월벚꽃이지고철쭉이필무렵해가중천에뜬열시쯤슬리퍼를끌고학교에나타났다.
운동장에있던학생들이일제히달려와애가왔다면서난리가났다. 달려가애를이끌고교무실에갔더니교감선생님과몇몇선생님들이와하며함성을지르고기뻐했습니다. 학생이학교에무단결석을하고행방을모르면일시적으로가제적을시켜야하는데그일을면하게된것이다.
애를 데리고 교실에 왔더니 다른 친구들이 머리에 이가 있다면서 멀리하는 것입니다. 살펴보니 손으로 잡는다는 것은 도저히 상상 못 하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일단학생이왔으니집은알아야겠기에데리고집으로갔습니다. 지금은지하철운동장역사거리에서거제리쪽으로가다보면재개발로새아파트가들어섰다. 재개발전그쪽에살았는데들어가는방문은있고창문이없어한낮인데도불을켜지않으면사물을분간하기어려운골방에살고있었다. 아버지어머니가지적장애로일반사람처럼생활이어려운처지였다. 애부모와위생문제를상의할수없는상황이다. 집은알아놓았고그길로동사무소에찾아가주소지를알렸더니그동안밀린생필품을지원했답니다.
이튿날여자아이인학생이왔기에머리이사태를해결할수있는방도를찾아봐도결론이나지않아빡빡깎아버리기로했습니다. 미장원에갔더니손을쓸수가없다고한다. 다시이발소에갔더니손님들에게옮긴다면서돌아가라고한다.
결국 내가 가위로 자르기로 했다. 가위로 머리카락을 자르는데 이놈들이 살겠다고 내 손등 위로 기어오르는데 오금이 저렸다. 부풀린다면 간장 종지에 가득 담고도 남을 지경이며 사실은 머릿밑이 상처투성이였다. 대야에 물을 떠다 놓고 연방 자르면서 손을 물에 담가 씻어냈다. 다 자르고 나서는 머리를 감겼지만 머릿밑에 박힌 놈들이 꾸물거려 비닐봉지에 에프킬라를 잔뜩 뿌려 머리에 씌었다.
자른 머리칼을 봉지에 담아 당시는 학교에 소각장이 있어 태웠다.
지적장애인 이 여학생이 눈에 선하다. 아마 나이 40이 된 것 같다.
이들모두같은하늘아래살면서늘행복하고활짝핀꽃처럼주변사람들로부터사랑받기를기도한다.
너희도 지금 반짝이는 별을 보고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