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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설주의보 -최승호
해일처럼 굽이치던 백색의 산들,
폭압적인 시대 분위기 암시
제설차 한 대 올 리 없는
절망적인 현실상황
깊은 백색의 골짜기를 메우며
굵은 눈발은 휘몰아치고, -생명을 억압하는 폭압적 권력
쪼그마한 숯덩이만한 게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굴뚝새가 눈보라 속으로 날아간다.
억압적인 현실에 대항하기에 부족한 존재. 민중을 상징함 ▶1연: 눈보라 속을 위태롭게 날아가는 굴뚝새
길 잃은 등산객들 있을 듯
외딴 두메마을 길 끊어 놓을 듯 -억압적 현실에 고통받는 대상
은하수가 펑펑 쏟아져 날아오듯 덤벼드는 눈,
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단,
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 ▶2연: 세상을 뒤덮는 눈보라의 위력
폭설이 내리는 상황과 시대적 현실을 동일시함
쪼그마한 숯덩이만한 게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날아온다 꺼칠한 굴뚝새가
서둘러 뒷간에 몸을 감춘다.
그 어디에 부리부리한 솔개라도 도사리고 있다는 것일까. ▶3연: 뒷간에 몸을 숨긴 굴뚝새
길 잃고 굶주리는 산짐승들 있을 듯
눈더미의 무게로 소나무 가지들이 부러질 듯
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단,
군사독재정권의 폭력성을 드러냄
때죽나무와 *때 끓이는 외딴 집 굴뚝에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과 골짜기에
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 ▶4연: 생명을 위협하는 눈보라
* 때 끓이는 : 여기서 '때'는 끼니를 말하는 것으로 때를 끓인다는 것은 끼니, 식사를 준비한다는 뜻
* 등산객, 두메마을, 산짐승들, 소나무 : 억압적 현실에 고통받는 대상
* 굵은 눈발, 눈보라, 솔개 : 생명을 억압하는 폭압적 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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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핵심정리
▶주제 : 억압적인 시대 현실에 대한 비판
▶표현상의 특징 :
①가혹한 정치 현상을 자연물에 빗대어 표현
②‘눈보라’와 ‘굴뚝새’를 대비시켜 표현
● 이해와 감상
군부독재로 온통 사회가 꽁꽁 얼어붙어 있던 80년대 초, 최승호의 '대설주의보'는 독자들의 뇌리 속에 '백색의 계엄령'으로 더 강렬하게 인식되어 있다. 아예 시의 제목을 '백색 계엄령'으로 착각하고 있는 독자도 많이 있을 정도이다. 천지를 하얗게 뒤덮으며 다투어 몰려오는 눈보라의 이미지는 고스란히 그 시대의 정치·사회적 상황을 말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나의 텍스트가 갖는 의미는 텍스트 밖의 사회·역사적 상황과 분리될 수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비평적 예의 앞자리에 이 시가 위치할 것이다. (가령 어제의 폭설을 두고 어느 시인이 백색의 계엄령 운운했다고 가정해 보라.)
기상주의보와 계엄령은 국민을 상대로 한 위험의 고지(告知)라는 형식의 층위에서 겹쳐진다. 그러나 전자는 어찌할 수 없는 자연의 힘 앞에 드러난 인간의 왜소함에서 비롯되었다면, 후자는 어찌해보고 싶은 지배자의 욕망 앞에 드러난 피지배자의 왜소함에서 비롯되었다는 내용의 층위에서는 분리된다. 하지만 영원히 발효되는 기상주의보가 없듯이 영원히 발호(跋扈)하는 권력도 없다는 시간의 진리 앞에서는 다시 겹쳐진다. 24시간이 넘도록 고속도로에서 자신의 차 안에 감금되었던 오늘 아침 뉴스 속의 그들은 알 것이다. 대설주의보가 백색의 계엄령과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의 재산이 30만 원밖에 없다며 자신의 남루(?)를 과시하던 어느 전직 대통령은 알 것이다. 계엄령은 대설주의보와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출처 시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