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夷자를 오랑캐이로 가르쳤는데 玉篇에는 동쪽 오랑케이(東表隅夷), 평평할 이(平也), 상할이(傷也), 죽여없이할이(誅滅),
기쁠이 (悅也), 물귀신이(河佰馮夷)라는 뜻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평정(平定)하고 관련이 있는 글자임을 알 수 있다.
한족은 우리민족을 동이라고 불렀는데 왜 그렇게 불렀는지 알 수가 없는데 풀이를 큰 활을 쓰는 큰 사람이란 뜻으로 해석을 하기도 하였다.
玉篇에는 없지만 史書에 서로다른 뜻으로 기록이 있어 소개해본다
史記卷二 철(쇠금변에 夷)古夷字也(史記: 철은 옛 夷자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철과 夷자는 같은 글자임을 분명히하고 있는데 현재는 철과 夷(이)로 발음한다.
(같은 글자인데 다르게 발음하고 있는데 왜 다르게 되었는지 또 어느 것으로 부르는 것이 원칙인지는 파악하지 못하였다)
다만, 쇠철과 夷가 같은 글자였다고 했으니 夷를 鐵로 풀이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서권28 夷通借作철 , 철古文鐵字, 철又철之위文耳
분명히 철과 夷와 鐵과 耳가 같이 쓰여졌음을 기록하고 있다.
우리민족은 일찌기 철을 사용하여 九黎(구리)시대 치우천자(蚩尤天子)가 투구와 갑옷을 입고 전쟁을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 국호도 九黎(구리)인데 銅을 구리로 뜻 풀이 하는 것과 무관 할까 그러나 구리는 동(銅)을 의미하고 있는데
우리가 일찌기 철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동이(東夷)로 기록한 것이 아닐까?
삼국지(三國志)와 후한서(後漢書)에서
한(馬韓), 예(濊), 왜(倭)에서 철을 생산하여 무역도 하며 화폐와 같이 쓰였다고 했으며 수출도 하였다.
(韓--國出鐵韓濊倭皆從取之諸市買皆用鐵如中國用錢又以供給 - 삼국지
韓--國出鐵濊倭馬韓竝從市之凡諸質易(質作貿)皆以鐵爲貨 - 후한서)
이렇게 조선시대에도 철을 우리민족이 사용하여 무역까지 하였으니 九黎(구리)시대 부터 계속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669년에 신라에서 자석(磁石)을 당에 보냈다.-신라본기
627년에 신라에서 침(針)을 당에 보냈다.- 신라본기
869년에 신라에서 침(針)을 당에 보냈다.
자석과 침은 나침반(羅針盤)의 재료이다. 그런데 신라침반(新羅針盤)을 줄이면 나침반이 된다.
분명히 신라에서 침(針)과 반(盤:자석)을 만들었으니 신라침반(新羅針盤)이라 말을 쓸 수 있다.
결국 우리민족은 九黎(구리)시대를 지나 고조선시대 그리고 신라 때까지 계속하여 철을 사용하여 왔기 때문에
우리민족을 동이로 불렀던 것이 아니겠는가? (蚩尤天子가 의 서쪽이며 百濟內部였던 곳에 磁의 지명이 있다. )
그것이 철자를 夷로 바꾸어 지금 그 뜻을 알 수 없게 東夷로 기록된 것이 아닐까?
東夷에서 어떻게 동이의 깊은 뜻을 헤아릴수 있단 말인가?
우리민족의 철기 사용은 九黎(구리)시대부터였는데 지금으로부터 최소한 6000년 전의 일이라 믿어진다.
(현재 발견된 철기 사용연대가 6000년 이전이다.)
九黎(구리)의 역사 연대는 동양에서 철의 사용을 발굴한 이후가 될 것이다. BC5000년에서 BC4000년까지 사이에 九黎(구리)의 기원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鐵面皮라는 말은 국어사전에서는 '뻔뻔스럽고 염치를 모르는 사람이란 뜻'으로 풀이하고 있는데 글자는 '얼굴에 철판을 깔은 상태'를 의미한다.
얼굴에 철판을 깔은 사람은 蚩尤天子였는데 이분이 투구와 갑옷을 입고 천하를 평정하였는데 장안에서 볼때 염치없는 사람처럼(피도 눈물도 없는 두려움의 존재 ? 치우천자 - 중국인들은 전쟁신으로 인식 ) 즉, 뻔뻔스러운 사람으로 보였을 것이다.
이때부터 철면피라는 낱말이 쓰여졌던 것이 아닐까?
지금 우리는 장안에서 우리민족의 천자의 행동을 말한 그 말을 뜻 모르고 쓰고 있는 것은 아닌지?
(2) 東夷의 夷자 검토
문장 해설을 분명하게 하기 위하여 단어 뜻을 명확하게 해야 할 것이다
'夷'는 '東쪽에서 鐵을 사용하는 민족'이란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