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를 졸업하면서
김탁수(김길웅 장남)
"보이스카웃 연맹장상 김탁수"
학생회관을 꽉 매운 광양교 제29회 졸업식장. 어제 졸업식 연습을 하던때완 사뭇 다른 기분으로 단상으로 올라갔다. 보이스카웃 제복을 오랫만에 꺼내 입은 탓만은 아니다. 옷이 몸에 꽉 끼어 답답한 느낌이 드는 건 실은 상을 받는 기쁨과 두려움이 뒤얽힌 때문이었음을 졸업식을 마치고 난 뒤에야 비로소 알았다.
상장의 내용을 읽어나가는 사회를 맡으신 선생님의 목소리가 유난히 맑게 느껴졌다. 그리고, 내게 쥐어진 상장과 내 목에 걸린 메달과 가슴에 꽂힌 뺏지, 박수가 터져나오고 내 가슴은 벅찬 기쁨으로 가득했다. 계단을 내려서는데, 내 앞을 가로막는 귀여운 얼굴이 있었다. 금년 5학년이 된 내 동생 승수가 꽃다발을 내게 안겨주며 웃고 있지 않은가! 밝고 환한 웃음이었다. 동생은 내게 말없는 웃음으로 나의 졸업을 축하해 주고 있는 것이다.
졸업식이 끝나자 학생회관 뜰에선 기념사진을 찍는 친구들과 학부모님들로 들끓기 시작했다. 나도 부모님, 친구, 그리고 엄마친구들과 번갈아 가면서 사진을 찍었다.
선생님께 내가 들고 있던 꽃다발 하나를 드렸다. 그리고는 우리의 담임이신 장진식 선생님과도 한 장 찰칵!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유별난 생각 속에 빠져들고 있었다. 지난 6년 동안의 수많은 일들이, 그리고 해아릴 수 없는 이야기들이 내 눈 앞에 펼쳐지는 것이 아닌가! 지난 6년과 여섯 분의 담임선생님들. 그분들은 얼굴이 다르듯이 내게 조금씩은 다른, 그러나 한결같이 옳고 바르게 생각하는 아이로 키워주셨다. 특히 6학년 담임이셨던 장진식 선생님은 우리 아빠의 동창이시며 친구이시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먼저 포근한 느낌이 들었고 그래서인지 국민학교를 마치는 마지막 한 해를 나는 별다른 어려움 없이 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열성을 다하시던 장선생님의 은혜는 나의 일생을 두고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이제부터 나의 앞날에 대하여 곰곰히 생각해 봐야겠다. 국민학교를 마쳤으니까 이미 애숭이는 아닌 것이다. 광양국민학교라는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 시내의 모든 국민학생들이 모여든 새로운 중학교에 진학하게 되었으니까.
새로운 아이들, 그리고 낯선 얼굴들. 나는 제주중학교에 배정되었고, 이제 시내버스를 타고 학교엘 다니게 된 것이다. 광양교는 우리집에서 다섯 걸음이면 되는 아주 가까운 거리인데, 이제부턴 서문통 끝까지 버스에 시달리면서 통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약이 오르기도 한다. 그렇지만, 중학생이 된다는 기쁨으로 마음이 한없이 설렌다.
엊그제 봄을 알리는 비가 흠뻑 내렸다. 꿈과 희망을 지닌 중학생! 생각만 해도 풍선처럼 가슴이 부풀어 오른다. -저에게 이 글을 실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주신 아빠의 동창 여러 선생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ㅡ 1980. 5.15 CNE소식 제 19 호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