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투선수도 초밥 요리사도 운동신경과 반사신경이 필요한 일이죠.” 눈 깜짝할 새에 맛있는 초밥을 쥐어내기 위해서는 운동선수 이상의 반사신경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초밥장인’의 손에 담긴 비밀이 여기에 있다. <중앙일보. 2007년 9월 7일>
권투선수로 인생을 시작한 그에게 우연한 기회에 찾아온 초밥요리사의 길은 기다림과 인내 그리고 무수히 반복되는 연습이라는 과정을 겪어야 했다는 점에서 권투와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그래서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한 해 한 해 연습의 결과가 축적되면서 점차 어엿한 요리사로 성장해 갔고, 스승 이보경의 도움으로 신라호텔에 입사하면서 요리의 장인으로 자신을 단련시켜갔다. 일본연수를 통해 요리의 원리와 요리사가 갖추어야 할 태도를 배우면서 당당한 프로 요리사의 반열에 오른 안효주. 20여년의 요리인생을 통해 그런 경지에 이른 그이지만 아직도 주방에서는 한 순간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고객의 마음을 읽어내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그것이 그를 ‘한국의 미스터 초밥왕’이라 부르는 진정한 이유이다.
손님과 요리사는 음식이라는 언어로 대화를 한다. 요리사는 매일 새로운 맛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그곳에 가면 늘 새로운 뭔가가 있다는 기대감을 줄 수 있다. 항상 새로운 맛으로 손님들의 혀를 놀라게 하는 것이 사명이자 가치관이며 요리사로서 살아가기 위한 방법이다. 손님은 자기가 먹을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의 정성을 보고, 요리사는 자기가 만든 음식을 먹는 손님의 정성을 봄으로써 믿음을 쌓아가는 것이다. 진심으로 만들고 진심으로 먹는, 두 개의 마음이 만나야 깊은 믿음이 생기는 것이다.
‘장사는 이문을 남기는 게 아니라 사람을 남기는 것이다.’ 최인호의 소설 「상도」의 주인공 임상옥이 목숨처럼 지키는 원칙이다. 사람보다 이문을 먼저 보면 결국 사람이 떠나고 이문 역시 낼 수 없게 된다. 단기적으로 보면 이익이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쫄딱 망하게 되어 있다. 장사를 하는 입장에서 보면 천 번 만 번 지당하고 옳은 말이다. 요리 역시 마찬가지다. 사람을 남기려고 해야 단골이 생기고 단골이 생겨야 오래도록 장사를 할 수 있다.
나는 아직까지 이불을 덮고 누운 채로 기도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육체적으로 불편함이 없는 한 누구나 기도할 때는 무릎을 꿇고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기도한다. 하느님이 무릎을 꿇고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인간들의 행동을 보시고 그 소원을 먼저 들어 줄지 나중에 들어 줄지를 결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기도에서 중요한 것은 행동양식이 아니라 간절한 마음이라는 것을 대부분의 사람들 모두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들은 그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하는 것이다.
요리를 할 때도 기도를 할 때처럼 간절하고 경건한 마음이 필요하다. 손님의 한 끼 식사를 책임지는 일은 허튼 마음으로는 제대로 할 수가 없고 해서도 안 된다. 요리에도 기도의 형식 같은 절차가 있으니 바로 청소다. 위생적이지 않은 요리는 독이나 다름없기에 요리를 하는 장소나 사람에게 청결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초밥은 왼손 엄지와 검지에 생선을 잡음과 동시에 오른손으로 초밥을 쥐고 둥글게 만든다. 이때 밥알은 서로 뭉개져서 붙어있는 것이 아니라 이마만 맞대고 있다는 느낌으로 잡아야 한다. 이것도 순식간에 해야지 모양을 내려고 이리저리 주물럭거리다가는 찰기가 생긴다. 그러면 입에 넣었을 때 밥덩이를 씹는 감촉을 느끼게 되어 매력 없는 초밥이 되고 만다.
고추냉이를 바르는 것과 밥을 올리는 행동은 거의 동시에 이루어진다. 밥을 올린 직후, 왼손 엄지가 화룡점정(畵龍點睛)이라 할 만한 일을 한다. 밥알을 눌러 홈이 푹 패이게 하는 것인데, 그러면 가운데가 비어 있는 초밥이 된다. 쥐면 350알 오차 없는 손끝 감각으로 밥알을 뭉치고 손님과의 교감을 생각하며 고추냉이를 생선에 바른다. 내 마음을 올리듯 생선을 밥알 위에 올려 정성껏 쥐어낸 초밥 한 알을 손님께 드린다.
‘초밥 한 알에 흐뭇해지고, 초밥 한 알에 짜릿함을 느끼고, 초밥 한 알에 마음이 따뜻해지고, 초밥 한 알에 내 마음이 황홀해지는, 만드는 사람과 먹는 사람이 함께 감동하는 그런 초밥을 만들고 싶다.’ 나는 늘 마음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며 초밥을 만든다. 그러나 내게는 아직도 도달하지 못한 경지가 있다. 밥알을 들어 눈앞에 댔을 때 그 사이로 하늘이 보이는 것, 그러면서 이쑤시개로 올려도 떨어지지는 않는 것, 뭉쳐놓은 밥알 사이로 하늘이 보일 리 없고 하늘이 보이는 밥알이 이쑤시개로 찍어 올려 질 리 없다. 평생을 노력해도 이루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도 나는 가야만 한다. 완성이 아니더라도 나아가는 과정 그 자체가 발전이고 의미 있는 일임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요리로 세상과 소통한다. 작은 초밥 한 알에 마음을 담아 매일 사람들에게 말 걸기를 시도한다. 말 걸기에 성공하려면 손님의 마음을 읽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먼저 내 마음을 닦고 손님 맞을 준비를 한다. 오늘도 나는 내 요리가 손님을 더 즐겁고 행복하게 만들기를 바라며 초밥을 쥐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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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효주 : 1958년 전북 남원출생. 1978년 일식에 입문하여 20여 년 동안 일식요리사로 일했다. 1985년 신라호텔 입사. 일식주방장을 거쳐 일식당 총책임자의 자리에 올랐고 1998년 일식조리 기능장 자격증을 취득했다. 서울보건대학 전통조리과, 초당대학교 조리학과를 졸업하고 경기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이것이 일본요리다」「튀김요리」「냄비&구이요리」등이 있다.
「안효주, 손끝으로 세상과 소통하다」는 몇 년 전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던 요리 만화 ‘미스터 초밥왕’ 한국편에 등장해 한국의 미스터 초밥왕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진 초밥장인의 맛있는 요리 그리고 인생이야기를 담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