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는 불과 200여 년 안팎의 역사를 지닌 신생국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상은 약 3만 800년 전인 제 4빙하기 중반부터 이 땅의 주인으로 살아가던 원주민(Aborigine)들이 있었다. 호주 대륙 각지에 흩어져 자유롭게 살아가던 그들에게 유럽인들의 출현은 비극의 시작이었다. 1787년 11척의 영국선박이 호주 대륙에 도착하면서 시작된 유럽인들의 이주는 ‘미지의 자유로운 세계에서 살고 싶다’는 욕망과 대규모 금광개발 붐을 타고 본격화되기 시작하였다. 현재 호주의 행정구역은 6개주와 2개의 특별자치구역으로 나뉘어진다. 시드니, 멜번, 브리스베인, 애들레이드, 퍼스, 호바트 등 은 이들 6개주의 수도이고, 캔버라와 다윈이 특별자치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시드니 (Sydney)
시드니는 인구 6백만에 가까운 호주에서 제일 큰 도시로 New South Wales 주의 수도이다. 시드니는 1770년 제임스 쿡(James Cook) 선장이 이끄는 탐험대가 현재의 시드니 항만을 최초로 발견하고 포트 잭슨(Port Jackson)이라 명명한 후 1788년 아서 필립(Arthur Phillip)선장이 이끈 최초의 식민지 원정대가 보타니만(지금의 시드니 공항 근처)에 도착한 후 영국의 식민지로 선포되었다. 시드니라는 이름도 당시 영국 죄수들의 국외추방을 결정했던 대영제국 내상 시드니(Viscount Sydney)경의 이름을 따서 명명하였다.
시드니는 현재 호주의 문화와 경제의 중심지이며, 세계 3대 미항 중 하나로 불릴 만큼 아름다운 정관을 지니고 있다. 시드니는 남반구의 금융 중심지로서, 19세기에 지어진 웅장한 중앙 우체국 건물과 빽빽이 들어선 빌딩 사이에 위치한 마틴플레이스(Martin Place)는 시드니 주요 상권의 하나이다. 호주 교민들의 대부분은 시드니 캠시(Campsie) 지역에 거주하고 있으며, 시드니에는 현재 약 4만명 정도의 교민이 거주하고 있다. 이곳 캠시(Campsie)는 초기 한국 이민자들의 보금자리로서 최초 한국이민자들 중 상당수가 월남전 참전 이후 호주로 건너온 사람들이다. 이곳 캠시(Campsie)에 가면 도로 주변 빽빽이 한국어 간판들이 들어서 있어 마치 한국에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호주 정부에서 유학생들에게 공식적으로 허용하고 있는 아르바이트를 원하는 한국 학생들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들 교민들이 운영하는 가게나 기업체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므로 다른 도시에 비해서 아르바이트를 하기가 용이한 곳이라 할 수 있다.
해안선을 따라 형성된 시드니 곳곳에는 아름다운 공원들이 있어서 도심에서 느낄 수 있는 삭막함을 식힐 수 있다. 시드니 도심 한복판으로는 내노라 하는 세계 굴지의 기업명이 내걸린 거대한 빌딩이 빽빽이 들어차 관광과 비지니스를 겸비한 도시임을 자랑하고 있다. 시드니가 자랑하는 오페라하우스(Opera House)는 1970년 1억달러 이상을 투자하며 건설되었으며 오페라하우스 앞에서 바라보는 하버브리지(Harbour Bridge)의 위용은 사진에서 볼 때와는 사뭇 다르다. 이 하버브리지에 얽힌 사연이 있는데, 1980년대 초 히트했던 영화 ‘크로커다일 던디(Crocodile Dundee)’의 주인공 폴호건(Paul Hogan)은 사실 영화를 찍기 전에 이 하버브리지를 지키던 파수꾼이었다. 하루는 전형적인 호주인 이미지로 영화에 출연할 배우를 찾는다는 신문광고를 보고 친구의 권유로 오디션에 갔다가 영화배우로 발탁된 인물이다.
시드니 도심은 물론 외곽에도 많은 볼거리가 있다. 특히, 시드니에서 2시간여 거리에 있는 블루마운틴(Blue Mountain)은 외국인 관광객들의 단골 여행코스이다. 시드니의 대표적인 환락가인 킹스크로스(King's Cross)에는 갖가지 성인쇼를 하며 외국관광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아시아인들이 이 거리를 지날 때면 호객꾼들이 한국어, 일본어, 중국어 등을 능란하게 구사하며 호객행위를 하는 진풍경도 경험할 수 있다. 시드니의 매력은 아름다운 항구와 거리, 도회적인 스포츠, 해변, 파란 하늘 등 다양한 즐거움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멜버른 (Melbourne)
멜버른은 빅토리아(Victoria)주의 수도로서 빅토리아주는 비록 6개 주 중에서 가장 작은 내륙의 주이지만 인구밀도는 가장 높으며, 1956년에는 올림픽경기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호주 역사를 살펴보면 멜번은 1835년 John Batman라는 사람에 의해 처음 발견되었고 원주민(Aborigines)에게서 땅을 샀다고 전해진다. 1850년대 대규모 금맥이 멜번 인근 벤딩고(Bendingo), 발라라트(Ballart) 등지에서 발견되면서 호주에서 제일 큰 도시로 성장했고, 이후 1927년 수도가 캔버라(Canberra)로 이전될 때까지 호주의 수도로서 역할을 한 곳이기도 하다.
이곳 멜번에는 우수한 대학교와 많은 스포츠 행사가 유명하다. 특히, 멜버른에 위치하고 있는 University of Melbourne, Monash University 등은 호주대학 순위에서 매년 5위권 안에 드는 명문학교들이다.
멜버른은 마치 유럽을 옮겨 놓은 듯한 분위기의 도시로서 1835년 이주가 시작된 이래 현재는 시드니와 더불어 문화, 산업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시내에 있는 Fitzroy Garden에는 화려하고 다채로운 식물들이 많고 주변에 공기 좋은 공원으로 인해 '정원의 도시'로 불리우는 곳이기도 하다. 야라강(Yarra River)을 따라 발달된 멜버른은 아름다운 열대수로 둘러싸인 넓은 가로수길, 정원같은 공원들, 예술과 멋진 레스토랑, 패션 등으로 유명하고, 도심의 빌딩들은 현대적이면서도 유럽의 분위기가 물씬 느껴지는 고풍스러움을 느낄 수 있고, 골드 러쉬(Gold Rush) 이래 오랜 역사와 문화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도시 전체는 바둑판 모양으로 발달되어 안정적인 분위기를 내며 호주에서 유일하게 트램(tram: 시가전차)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밤문화로 유명해 카바레, 코미디클럽, 극장, 재즈클럽 및 나이트클럽 등이 활성화되어 있다. 멜버른은 기후 변덕이 심해 하루에 사계절을 다 느낄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호주 스키의 메카로 스키 시즌이 돌아오면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곳 멜번으로 몰려든다. 특히, 호주 최고의 경마대회인 멜번컵이 열리는 매년 11월 첫째주 화요일에는 호주에서 가장 주목받는 도시가 된다. 이날 오후 3시경에 메인레이스(Main Race)가 펼쳐지는 10분여 동안은 호주전국 도로에 인적과 차량이 끊기며, 하던 일을 멈추고 TV와 라디오에 귀를 기울인다. 그 이유는 바로 호주 국민 거의 대다수가 메인레이스에 돈을 걸었기 때문이다. 도박을 모르던 호주인들 조차도 멜버른컵만큼은 반드시 돈을 걸고 레이스를 지켜본다. 또 한가지, 이토록 멜버른컵이 호주 국내에서 유명해진 이유는 호주의 저명인사, 연예인들이 패션쇼를 방불케 할만큼 화려한 드레스를 차려입고 멜버른컵을 참관하러 온다는 사실이다. 특히, 여성들은 갖가지 모양의 패션모자를 쓰고 오는 것이 유행처럼 되어버렸다. 영문을 모르는 외국인들에게는 실로 낯 설은 광경이다.
멜버른 역시 수많은 인종들이 살고 있지만 중국인들의 수가 많아서인지 호주 내에서 가장 큰 차이나타운이 있고, 특히 그리스계 이민자의 수는 그리스 본국을 제외하고는 전 세계에서 그리스인들이 가장 많이 모여 사는 도시이다. 멜버른에서 방송하는 TV를 보면 ‘아크로폴리스나우(Acropolis Now)'라고 불리는 그리스계 이민자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편성되어 있을 정도이다. 물론 이 드라마에 나오는 연기자 전원이 그리스계 이민자들이다.
브리스베인(Bribane)
브리즈베인은 호주 제3대 도시로, 19세기 초엽에 죄수들의 유배지로 세워졌으나, 본격적인 도시의 형성은 1842년경 호주 남쪽 주에서 일어난 대규모 금맥 열풍이 차차 가라앉으면서 직업을 찾아 이주한 자유이주민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브리스베인은 열대성 및 아열대성 기후의 웅장한 해안선을 따라 잘 발달된 모래사장, 아름다움의 극치를 더해주는 북부 지역의 작은 섬들, 환상적인 다양한 생물군들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 지상 최후의 낙원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도시이기도하다. 브리스베인은 도심에 있는 상업지역 양쪽에 강을 끼고 삼각형 모양으로 도시가 형성되어 있으며 신선하고 현대적이며 공해가 없는 깨끗한 도시이다. 특히, 도심 중앙부는 시티 홀을 중심으로 옛 건물과 새 건물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세계적인 네트워크로 연결된 국제공항이 있어 한국의 항공사들도 호주의 시드니 외에 이곳 브리스베인 노선을 별도로 운항하고 있다. 브리스베인 중심가의 도로명은 다른 지역과는 달리 독특한 방식으로 지어져 있다.
즉, 시티의 남북으로 뻗어 있는 도로에는 여성명으로, 동서로 나 있는 도로에는 남성명으로 되어 있다. 여성명 도로의 예를 들자면 앨리스, 마가렛, 메리, 샬럿, 엘리자베스, 퀸, 앤 등을 꼽을 수 있고, 그 중에서 퀸 스트리트가 가장 번화한 거리이다. 퀸 스트리트의 T&G 빌딩 1층 엘리베이터 옆에는 ‘제2차 세계대전의 승리는 이곳에서 시작되었다’라는 문구의 비문이 있는데, 이는 필리핀에서 일본군에게 패해 후퇴를 한 맥아더 장군이 이곳에 사령부를 설치하고 대일공방의 거점으로 삼았던 곳이기 때문이다. 남쪽 끝의 조지 스트리트는 관청이 밀집되어 있는 지역으로 르네상스풍, 고딕풍, 콜로니얼풍의 건물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한편, 이탈리아풍의 시청이 있는 킹 조지 광장 주변은 남유럽 분위기가 물씬 나는 곳이다.
브리스베인의 자랑인 론파인(Lone Pine) 코알라 보호구역에 있는 코알라 수는 전체 호주 동물원에 있는 코알라보다도 그 숫자가 많다고 한다. 코알라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는데, 코알라가 항상 코가 뻘겋고 하루에 평균 20시간 이상 수면을 하는 이유는 코알라가 주식으로 삼는 유클립스 나뭇잎에 알콜성분이 다량 함유되어 있기 때문이며 충분한 수면을 취하지 못한 코알라는 스트레스를 받아 곧 죽어버린다고 한다.
호주 내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도시인 골드코스트(Gold Coast)가 브리스베인에서 불과 30분 거리에 있고 1년 중 300일 이상이 맑고 해가 비치는 태양의 도시로 ‘Sunshine State (태양이 빛나는 주)’라는 애칭을 가지고 있는 브리스베인은 최근에 이러한 천혜의 자연조건과 우수한 생활환경 때문에 브리스베인시 대부분이 미국인 및 일본인들의 소유가 되었다는 얘기도 있다.
애들레이드(Adelaide)
애들레이드라는 이름은 1835년 영국 웰링턴 장군이 윌리엄 4세의 여왕이던 Adelheid Amalie Luise Theresa Carolin의 이름을 따서 명명하였다고 전해진다. 애들레이드는 1878년 호주 최초의 대중교통 탄생지이자 1906년에는 호주 최초의 운전면허증 발급지이기도 하다. 지금의 애들레이드 거리명과 광장명 등은 이미 1837년부터 명명되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수도 아들레이드는 조용한 교외의 도시이자 호주 최고의 포도주 명산지로 호주에서 4번째로 크며, 연중 문화행사가 다채롭게 열리는 축제의 도시이기도 하다. 거리는 울창한 가로수와 어울려 유럽풍의 도시를 연상하게 하며, 아름다운 공원으로 둘러싸여 이곳 사람들은 스포츠를 비롯한 다양한 여가활동과 전원생활을 즐긴다.
애들레이드는 다른 지역과는 달리 영국 기결수(convicts)들이 아니라 1936년 자유(free) 정착민들에 의해 세워진 조용한 교외의 도시로 호주 최고의 포도주 명산지인 바로사 밸리(Barossa Valley)가 있는 곳이다. 이곳 포도주 마을은 전형적인 독일식 거리모습을 띄고 있는데, 그 이유는 독일에서 건너온 이민자들이 독일 라인강변의 풍토와 비슷한 이곳에 포도밭을 일구었기 때문이다. 애들레이드에는 독일 이민자들이 많아 몇 년전까지 개최되었던 포뮬러원(Formula 1) 자동차 경주대회가 열리면 세계적인 독일출신 카레이서 마이클슈마커를 응원하는 독일계 이민자들이 많다.
호주인들의 포도주 마시는 방식은 독특해서 포도주를 몇 년씩 묵혔다가 마시기보다는 그 해에 익은 포도로 만든 포도주를 바로 즐기며, 포도주 맛을 음미하며 몇 번에 걸쳐 마시기보다는 한번에 들이켜 마신다.
인구 백만의 애들레이드는 축제의 도시로도 유명하며, 일년에 한번 국제 페스티벌을 주최한다. 애들레이드는 다른 대도시와는 달리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도시로 얼마 전에는 마이크로소프트 명예 회장인 빌 게이츠가 투자를 목적으로 다녀간 바 있다.
퍼스(Perth)
스완강(Swan River)을 따라 발달된 퍼스는 서호주의 주수도이며 부호의 도시이자 교육의 도시로 잘 알려져 있다. 호주대륙에서도 동남아시아와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있어 동남아시아 지역 국민들이 선호하는 도시이기도 하다. 항간에는 동남아시아국가의 갑부집 자녀들 대부분이 이곳 퍼스로 유학을 오거나 이민을 온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시드니에서 퍼스까지는 널라버 평원(Nullabor Plain)을 사이에 두고 4,300㎞, 비행기로는 4시간반이 걸리며 고속버스로는 장장 58시간이 소요된다. 기후는 1년 내내 온화하고 따뜻한 지중해성 기후이며, 여름에도 프리맨틀 닥터라고 하는 시원한 바닷바람으로 그리 덥지 않다.
인구 백만의 퍼스는 풍요로운 도시의 매력을 지니고 있는 낭만적인 시가지이며, 세계에서 가장 깨끗하고 안전하며 친근감 있는 도시로도 알려져 있다. 이 곳은 서호주의 방대한 천연자원을 개발하여 부를 축적하여 왔으며 호주에서 가장 크게 성공한 기업가들의 본산지이기도 하다. 1932년에는 호주로부터 서호주를 독립하자는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는데, 그 배경은 퍼스가 다른 호주의 대도시와는 다르게 부유층이 많고 서호주가 인구비례 호주GDP 기여도가 다른 주들에 비해 훨씬 높다는 이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