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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린 가슴들에 보낸 따뜻한 위로 | |
올해의 책(국내서) | |
최재봉 기자 강성만 기자 고명섭 기자 | |
〈바리데기〉 〈한겨레〉 연재를 거쳐 나온 소설 〈바리데기〉는 ‘동아시아적 형식에 세계적 문제를 담는다’는 황석영씨의 창작관을 유감없이 보여준 역작이다. 작가는 바리공주 이야기라는 전통 설화의 틀 안에 북한의 기근과 탈북자들에서부터 영국 런던에 모여든 전 세계 이주노동자들의 삶, 그리고 9·11 테러로 상징되는 문명 충돌의 현실을 두루 담아낸다. 주인공 바리가 중국을 거쳐 영국으로 가는 컨테이너선 안의 정황을 환상적인 필치로 그린 대목은 한국판 ‘마술적 사실주의’의 구현으로서 특히 극찬을 받았다. 이 소설에서, 전통은 혁신을 낳고 개인은 전체와 만나며 특수와 보편은 한몸이 된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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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김훈 지음/학고재·1만1000원
2007년은 ‘한국 소설의 장편화’에 대한 주문과 기대로 문을 열었으며, 김훈씨의 〈남한산성〉은 그에 적극 부응함으로써 독자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김훈 소설의 강점이자 약점으로 지적되는 말(言)에 대한 집요함이 여기서는 아예 핵심 주제로 들어와 앉았다. 대국 청나라의 침공 앞에 속수무책인 임금과 신하들은 말의 번듯함에 기대어 곤경을 벗어나고자 하지만 그것은 가능하지 않다. 말을 다루는 지식인들의 어리석음은 생존본능에 충실할 뿐인 백성들의 지혜와 대비되어 그려진다. 〈남한산성〉은 지식인을 조롱하는 지식인 소설이며 역사를 전복하는 역사 소설이다. 그런 점에서 그것은 전형적인 ‘김훈표 소설’이다. 최재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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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꽃 나무〉
김진숙 지음/후마니타스·1만원“경상도, 전라도, 제주도 등 오사리 잡탕들이 모여 있던 그 (봉제공장) 방에는 애초 그들이 고향을 떠날 때 싸들었던 보따리보다 더 컸을 청운의 꿈이 슬라브 벽에 얼룩진 빈대 핏자국처럼 흔적만 얼룩덜룩 남기고 있었다.” 한국 최초의 조선소 ‘처녀 용접사’ 김진숙(47)씨. 봉제공장 시다, 샴푸와 주방세제·정수기 외판원, 가방공장, 시내버스 안내양 등을 거쳐 조선소 입사, 해고통지, 출근투쟁, 대공분실, 무자비하고 끝없던 폭행, 수배 5년, 두 번의 감옥살이 …, 21년을 해직자로 버텼고 아직도 복직투쟁 중이다. 봄부터 가을까지 용접공들 등에는 땀이 말라붙은 허연 소금꽃이 피어 있었다. 전율의 노동현장 보고서이자 동시대 ‘공순이·공돌이’들에게 바치는 눈물어린 헌사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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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사마리아인들〉
장하준 지음·이순희 옮김/부키·1만4000원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말하자면 남을 등쳐먹는 강도들이다. “정상의 자리에 도달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이 뒤따라올 수 없도록 자신이 타고 올라간 사다리를 걷어차버리는 것은 아주 흔히 쓰이는 영리한 방책”이라 비판했던 19세기 중반의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경고는 21세기 초 영국 케임브리지대 장하준 교수의 〈사다리 걷어차기〉에서 극적으로 부활했다. 강대국, 강자들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신자유주의 정책의 허구와 위선을 숱한 역사적 사례들을 동원해 통렬하게 까발리며 외환위기 이후의 ‘87년체제’ 경제·대외정책을 둘러싼 국민적 논의를 유발했던 〈사다리 걷어차기〉의 대중용 버전이다. 한승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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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강명관 지음/푸른역사·1만5000원
〈조선의 뒷골목 풍경〉 〈조선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 등 먼지 쌓인 조선시대 종이더미에 상상력을 버무려 이야기를 퍼올리는 한문학자 강명관 부산대 교수가 ‘조선의 책벌레’ 이야기를 통해 조선 사회를 되짚어본다. 조선은 양반 사대부의 나라였고, ‘독서하면 선비라 하고, 정치에 종사하면 대부’라 했으니, 책벌레 사대부 스물두 명의 이야기는 바로 조선의 권력자들 이야기이며, 이들이 만들어낸 당시 지식사회의 모습이다. ‘보지 않은 서적이 없다’는 ‘호학의 군주’ 정조가 되레 새로운 책과 사상을 탄압한 이야기와 조선시대 책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유통됐는지 등을 흥미롭게 풀었다. 김일주 기자 pear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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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이후 한국 사회의 성찰〉
김동춘 지음/길·2만5000원
〈1997년 이후 한국 사회의 성찰〉은 올해 초 출간돼 ‘기업사회’ 논쟁을 불러일으킨 저작이다. 지은이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는 1997년 외환위기 이래 한국사회가 ‘기업사회’로 전환했다고 진단하면서, 그 변화의 파국적 본질을 직시할 것을 촉구한다. 그가 이 책에서 처음 제시한 ‘기업사회’는 기업이 중심이자 주인이 된 사회를 말한다. “기업이 사회의 일부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가 기업의 모델과 논리에 따라 재조직되는 사회”가 기업사회다. 사회 전체를 기업의 힘 아래 굴복시킨 기업사회는 강력한 이데올로기 체제다. 이 책은 기업사회의 하수인이 된 정치를 본디 상태로 되돌려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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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주체성의 이념-철학의 혁신을 위한 서론〉
김상봉 지음/길·2만원
철학자 김상봉 전남대 교수는 서양에서 빌려온 주체의 개념이 아닌 우리 역사 속에서 찾아낸 주체의 개념을 철학적으로 정립하려고 쉼없이 ‘정신의 노동’을 반복한 학자다. 그 고된 노역에서 그가 찾아낸 개념이 ‘서로주체성’이다. 〈서로주체성의 이념〉은 그의 땀이 밴 ‘서로주체성’ 개념을 ‘홀로주체성’ 개념과 명확히 대비시킨 뒤, 그 개념의 근거를 도출하고 확인하는 작업의 결과물이다. 진정한 주체는 홀로 서서는 성립할 수 없다. 주체는 언제나 나인 채로 우리인 주체, 곧 서로주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서로주체의 이념을 현실에서 실현하는 것이다. 동쪽과 서쪽, 남쪽과 북쪽이 서로주체로 만날 때 서로주체성의 이념은 현실이 될 것이다. 고명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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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비극-인간과 역사에 바치는 애도의 노래〉
임철규 지음/한길사·3만2000원
비극이 문학의 최고 형식이라면, 그리스 비극은 이 최고 형식의 꼭대기에 선 최고의 문학이다. 임철규 연세대 명예교수가 쓴 〈그리스 비극〉은 이 거대한 기념비적 창조물에 도전해 이루어낸 보기 드문 성과다. 이 책은 3대 비극작가 아이스퀼로스·소포클레스·에우리피데스의 거의 모든 주요 작품을 포괄해 거시적 시야에서 이 작품들을 탐사한다. 지은이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그리스 비극 작품들의 ‘형이상학적 비극성’이다. 인간 존재의 근원적 모순을 이 작품들이 탁월하게 형상화했다는 것이다. 인간의 불완전한 지혜는 운명에 부딪혀 깨질 수밖에 없다. 거기서 존재의 비극성이 솟아난다. 그리스 비극은 이 비극성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모든 사람들을 위로하고 어루만지는 ‘애도의 노래’다. 고명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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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낙청 회화록1~5〉
백낙청 지음/창비·각 권 2만8천원
지난 40여년 우리 시대 논쟁의 한가운데를 지켰던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의 회화록을 5권으로 묶었다. 좌담·대담·토론·인터뷰 등 말로 발언한 내용을 모은 것이다. 그가 지난 세월 사회운동이나 지식계 논쟁의 한복판에 있었다는 점에서 ‘웅장한 집단지성의 기록’이라고 할 만하다. 백철·김동리·선우휘·박현채 등 작고 인사를 비롯해 리영희·강만길·고은·김지하·이매뉴얼 월러스틴·가라타니 고진 등 국내외 지식인 133명(해외 12명)이 등장한다. 백 교수의 지적 여정에서 진보의 이론적 변천을 살피는 즐거움도 있다. 논쟁 주제들은 딱딱하지만 말로 풀어낸 텍스트로 쉽게 읽힌다.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 절망의 20대, 희망을 만드는 방법
〈88만원 세대〉
우석훈·박권일 지음/레디앙·1만2천원
지은이들은 우리 사회를 세대 간 착취 구조로 본다. 40대와 50대 남자가 주축이 된 주도 세력이 10대를 인질로 잡고 20대를 착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체 비정규직의 26%가 20대이며, 20대 임금노동자의 53%가 비정규직이다. 10대는 사교육과 소비마케팅의 포로가 되어 있다. 이 추세라면 10대도 10% 미만의 소수들만이 정규직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파시즘의 도래가 운위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답이 나와야 한다. 지은이들은 20대와 10대의 적극적 자기 방어를 강조한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식경제 1세대로 굳건히 서는 것도 그 방법이다. 강성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