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낀 공항
김윤선
모처럼 휴일 날 비가 온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연이어 휴일 날 계속 비가 내린다. 주말이면 파크 골프를 치는데 아무것도 못하고 방콕 하고 있다.
제주에는 하루 5백 미리 비가 내리고 이틀 동안 천 미리 비가 내렸다니 모든 교통망이 마비 상태다. 하루에 만 명씩 발이 묶인 공항은 북세통이고 관객들이 발을 동동거리는 모습이 지난날 나의 모습 같다.
삶을 살아가면서 예상치 못했던 재난으로 눈앞이 캄캄해 지는 일들을 겪게 된다. 자연은 모든 생명들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 오랜 가뭄으로 목이 타들어가는 생명들에게 단비를 내려 죽지 않을 만큼 시련과 회생도 준다. 때로는 지진으로 천지개벽이 일어날 땐 하나밖에 없는 지구는 인간이 지은 그 죄의 댓가로서 감당치 못해 폭파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천둥은 벼락 한번을 치기 위해 오랫동안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끌어모아 속앓이를 해야 할까, 영웅도 천재도 그 어떤 재능과 과학적인 기술도 자연 앞에서는 숙연해진다. 생명을 가진 만물은 자연과 더불어 교훈을 배우고 숭고한 정신을 받들어 살아가는 것이다. 사람은 자연의 순리를 거역하고 마구 파헤치고 훼손을 시키니 그 과업이 우리에게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까마득히 지난 세월 자유시장에서 아동복 도매상을 할 때가 생각난다. 물건을 구입하기 위해 서울을 갔을 때 갑작스런 폭우로 철로가 끊어지고 도로가 물바다가 되어 집으로 올 수가 없었다. 하는 수없이 하룻밤을 시누이 집에서 자고 다음 날 고속버스를 타고 집으로 온 적이 있다. 고속 터미널에도 새벽부터 줄을 서 아침 8시 가니 벌써 12시 차표밖에 없었다. 한시가 급한데 가슴이 턱 막혀 오던 시간 시누이 남편이 출입증을 내미니 바로 갈 수 있는 차표가 나왔다. 당시 내무부에 행정직 중급 공무원이었는데, 옛날 고향 오빠가 고대 법대를 졸업하고 중앙정보부에 근무 할 때도 열차표도 없이 옷만 살짝 들쳐 보이니 바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그 때 참 권력이 얼마나 좋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후 또 몇 년이 지난날 대목이 되어 귀한 물건을 머리에 이고 공항을 갔다. 첫 비행기를 타려고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갔더니 사람들이 표를 사기 위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비싼 택시를 타고 두 사람이 물건을 옮기고 한 시간 동안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가게에는 물건 주문한 사람이 일찍 와서 기다리고 있으니 마음이 바쁜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렇게 줄을 서 있었는데 난데없이 안개가 많이 끼어 결항이라고 방송에 나오더니 모든 표지판에 결항이 라고 빨강 표시가 떴다.
이 일을 어떻게, 두 사람 짐 덩어리가 세 덩이가 되는데 눈앞이 캄캄해 왔다. 택시를 잡기도 하늘에 별 따기 만큼 어려웠다. 같이 간 일행에게 짐을 맡겨놓고 멀리 가서 택시를 잡아왔다. 약 30분 걸려 택시를 탔는데 기사 얼굴 표정이 불쾌해 보였다. 얼른 아저씨에게 택시비를 곱으로 더 준다며 트렁크에 물건을 싣고 한 개는 택시 안에 실었다. 차를 타고 가는 도중에도 좌불안석 두 사람은 애간장이 탔다. 역에서 내려 차표를 사려니 또 줄을 서서 기다려 겨우 표를 샀다. 당시는 엘리베이터도 에스컬레이터도 없었다. 그 높은 계단에 혼자서 들지도 못하는 짐을 이고 한 개는 계단에 질질 끌고 겨우 내려 홈까지 가는데도 시간이 걸렸다. 차가 떠날 시간이 다 되었는데 짐을 이고 마구 뛰어가는데 옆 사람은 신발이 벗어져 신을 벗고 뛰었다. 너무 힘이 들어 정신이 없는데 옆 사람 모습을 보니 귀가 막혔다. 마치 정신 나간 사람처럼 흑흑거리며 가까스로 물건을 차에 싣고 열차를 탔다. 겨우 발을 올려 1분도 되지 않아 차가 출발을 하였다. 만약 이 차를 놓치면 또 30분 기다려야 하니 난감했던 시간 절벽에서 구사일생 살아남은 토끼처럼 얼굴이 홍당무가 되었다. 우리는 맨 끝 자석 뒤에 물건을 싣고 그 앞에 의자에 몸을 던졌다. 마치 소금에 저린 배추처럼 내 동댕이 쳐진 몸을 혹시 아는 사람이 볼까 보자기를 덮고 의자에 웅크린 채 잠을 잤다. 지난 밤 열시 차로 서울역에 도착하여 새벽 3시에 백집도 넘는 남대문 평화시장 가게를 삿삿이 뒤져 물건을 구입했다. 먼저 남대문 시장 원아동복 부르뎅 크레용 포핀스 아동복등 네군데 상가를 들려 물건을 구입한다. 그리고 무거운 반품 가방을 어께에 매고 택시를 타고 평화시장에서 내려 청계상가까지 걸어서 집집이 물건을 구입한다. 밖은 어둠속에 차들의 불빛만 오가는데 상가에 들어서면 전쟁터같이 사람들이 붐빈다. 꽃송이 같은 아이들의 옷은 사람들의 눈을 유혹하고 예쁜 아이들의 재롱에 끌려 물건을 사게 된다. 물건을 다사고 대목에는 아침밥도 먹지 못하고 8시 비행기로 부산으로 온다. 거의 물건을 소포로 다 부치고 귀한 물건은 이고 들고 올수 밖에 없다. 딸리는 물건은 빨리 보내 주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가지고 온다. 바쁘게 뛰어다니다가 시간이 되어 그냥 오면 정신이 몽롱하며 만신창이가 되어 의자에 몸이 딱 붙어 버린다.
장사를 졸업 한지 약 15년이 지났다. 전설 같은 세월에 문득문득 떠오르는 일들이 가슴을 쓸어내리게 한다. 장대비가 내리고 안개가 앞이 보이지 않을 때면 늘 무거운 물건을 이고 신발을 벗고 뛰던 때가 어제처럼 생각난다. 40년 내 인생 삶의 터전에서 산전수전의 시간들이 눈시울을 적시게 한다.
김윤선 양력
2007년 수필시대 등단,문학도시 “시” 등단,
저서:『그릇』『삶의 밤열차 』 『밥과 바보』 외3권
수상:제7회 사계 김장생 문학공모전 대상, 부산 문학생 대상,불교문학상 우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