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암 권철연 선생 고택 ②
마당, 빛 반사와 공기 대류의 과학
솟을대문을 넘어가면 보이는 넓은 사랑마당.
백토를 깔아 햇빛이 잘 반사될 수 있도록 했다.
ⓒ 한국과학창의재단
한옥에 있어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의외로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부분이 있다. 바로 한옥의 마당이다. 한옥의 마당은 오밀조밀한 한옥의 구조에 여백의 미를 부여하며 한옥의 운치 있는 전경을 완성시킨다. 하지만 마당은 한옥 여백의 기능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옥의 마당에는 어떤 과학적인 기능이 숨겨져 있을까?
누구든 마당이라 하면 마음껏 뛰놀기에 좋은, 장애물 없이 넓은 공간을 떠올린다. 특히 전통 한옥의 마당은 여백의 공간으로서 역할이 크다. 그 여백의 공간은 때론 채워지고, 때론 나뉘기도 하면서 변화무쌍한 공간으로서 높은 활용성을 뽐내기도 한다. 곡식을 말리기도 하고, 명절이나 집안 행사 때 음식을 만들고 손님을 접대하기도 하듯이. 또 여백 그 자체로서 공간을 비움으로써 마당과 연결된 사랑채, 안채·대청 등의 건축물에 고고한 멋을 살려주는 고차원의 능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이런 여러 가지 모습 속에서 전통 한옥은 여백의 공간일 때 빛나는 과학적 원리를 보여준다. 이때 중요한 것은 여백을 채우는 마당의 모래다. 이 여백의 공간에는 특별히 하얀 모래를 까는데, 이는 마당의 백토가 직사광선을 받아 한옥 내부를 밝고 환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이것이 중국의 전통가옥에 비해 우리나라 한옥이 처마가 깊은 편임에도 내부가 밝은 이유이기도 하다. 이 빛은 마당 안이 깔끔하게 정리돼 있을수록 잘 반사된다. 또, 그 반사된 빛은 직사광선이 아니라 한 번 걸러 들어오는 반사광선이기 때문에 눈이 부시지 않은 장점이 있다. 이렇듯 마당은 환하고 밝은 집을 조성하는 능력을 보여준다.
마당의 반사광이 창호지를 통해 들어오면 방안에 은은한 간접조명을 만든다.
ⓒ 한국과학창의재단
그래서 전통 한옥 마당에는 잔디보다는 백토나 약간의 자갈을 깔아 주는 것이 간접 조명을 유도하는 데 좋다.
두 번째 과학 원리는 공기의 대류현상이다. 여름과 겨울, 집안을 시원하고 따뜻하게 해 주는 장치 역시 마당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마당, 황토, 지붕이 함께 조화를 이뤄서 온도를 조절해 준다. 마당과 뒤뜰 온도가 높아지면 그 열이 기온이 낮은 대청 쪽으로 이동한다. 공기는 뜨거운 곳에서 찬 곳으로, 찬 곳에서 뜨거운 곳으로 이동한다. 이는 같은 온도를 찾아 흐르는 공기의 성질 때문이다. 대청은 지붕의 기와와 그 밑에 깔린 두꺼운 흙으로 뙤약볕을 차단해 기온이 낮다.
뙤약볕을 그대로 받은 마당의 뜨거운 공기는 대청의 찬 공기를 향해 이동하고 그렇게 열의 대류가 일어난다. 더운 공기는 위로, 서늘한 공기는 아래로 흐르면서 계속 돌고 돈다. 바람 한 점 없이도 공기의 흐름이 활발해진다. 한옥이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할 수 있는 건 바로 이 대류 현상 때문이다.
이렇듯 우리나라의 마당은 벽돌로 마당의 바닥을 까는 중국이나 각종 정원수로 마당을 깔끔하게 꾸미는 일본에 비해 아무런 꾸밈도 없는 소박한 마당이지만 그 속에는 자랑스러운 우리나라의 전통과학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한국과학창의재단 <고택 속 숨은 이야기와 전통과학>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