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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스크랩 민족의 영산 백두산에 발을 딛다.
빛을 담는 사람 추천 0 조회 99 17.12.07 17:4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民族의 靈山 白頭山에 발을 딛다.

0. 기간: 2016.1.13. ~ 1.16.(3박4일)

0. 여정: 대구-부산-(비행기1,000km)-연길-도문-룡정-이도백하-백두산

0. 코스

   1.14.(서파) 산문-1주차장-모터찌클(스노스키) 탑승-2주차장(하차)-1042계단-

                     37호 경계비-천지

   1.15.(북파) 산문-주차장-짚형 차량 탑승-정상(天池)

      2016 벽두부터 우리 민족 최고의 영산이자 最高峰, 그리고 한반도 산줄기의 기둥인 백두대간의 출발점 백두산에 올랐다. 백두산은 높이가 2,750m로 북위41도01분,동경128도05분에 있는 산으로 백색의 浮石이 얹혀 있어 마치 흰머리와 같다하여 백두산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하며,옛날 부터 성산으로 숭배하였고, 특히 단군의 誕降(탄강:탄생하여 내려옴)한 성지로 신성시 되었으며 중국 금나라인 1172년엔 영응산이라하여 제사도 지냈고 청나라시대에는 애신각라의 발상지라하여 특히 숭배하였다고 한다. 마땅히 대한민국 국민이면 꼭 한번은 가봐야만 할 우리의 최북단 산임에 틀림이 없다. 그런지가는길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평소 옌지로 비행기가 가면 동해로 갈려는지 서해로 갈려는지 가 궁금했는데 타보니 답이 보였다.김해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중부지방을 횡단하여 인천공항 상공, 중국 웨하이 상공,따렌과 장춘상공을 지나 엔지 차오양공항으로 돌아 돌아서 가는길인데 알파벳 S자형으로 움직였다. 곧장 북한을 지나 간다면 1시간이면 충분할 시간인데 돌아가는 길은 멀고도 멀기만 했다. 이것을 보더라도 하루 빨리 통일이 되어야 할 듯했다. 비행기는 어렵게 도착하여 내린 엔지공항은 김해공항 날씨와는 완전 달라 공항밖의 온도가 급강하해 있어 갑자기 추위가 엄습했다. 잠시 밖으로 나가 조금 아는 중국말로 현지인에게 사진 한 장을 부탁하여 흔적을 남긴후 버스를 탔는데 중국 그리 많이 가봤지만 이층버스가 나오고 내부가 깨끗한 버스는 처음보는 듯했다. 버스가 투먼에 도착할땐 넘 춥고 도로는 전부 얼어 있었으며,북한 남양시와 마주하고 있었다. 그 사이에 두만강이 자리를 하고 있는데 완전 얼어서 그냥 가도 될듯한 거리였지만 더 이상 갈 수가 없음이 무척이나 안타까왔다. 2004년 단동에서 북한 신의주를 보는것과 같은 마음이었다. 龍井에서는 윤동주님의 시와 대성학교도 구경하고 중국돈 10快을 기부하고 방명록에 대구산 000라고 이름도 남겼다. 돈이 중요한게 아니고 조금의 보탬을 줬다는 자부심만으로도 충분하리가 여기고 바로 옆이 용정중학교인데 대성학교의 옛 건물은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는게 다행이었다.이도백하(이도리+백하리를 합처서 부름)로 가는길은 많은 눈으로 차량들이 엄금엄금할 줄 알았는데, 눈바퀴를 달았는지 미끄러지지도 않고 잘만 달린다. 한창 가는도중에 차량이 갑자기 멈추길래 앞의 상황을 보니 앞선 트럭이 고장나서 고친다고 1시간을 지체했고 7시가 넘어서 이도백하에 있는 길림성 산장호텔에 도착 첫날을 보낼수가 있었다. 둘쨋날 서파를 오르는데 엄청 많은 눈과 바람으로 정상에선 가만히 서 있기가 힘들었고 카메라는 얼어서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다.셋째날엔 북파를 오르는데  4륜구동 짚차가 정상까지 올라서 별로 걷지도 않고 천지를 거저 먹듯이 도착하여 "天池"라는 안내판을 보면서 꽁꽁 언 천지를 구경하고 내려와 장백폭포를 보고 아직도 펄펄 끓고 있는 온천수를 직접 눈으로 볼 수가 있었기에 자연의 신비함에 탄복할 뿐이었고 온천수에 달걀을 삶아서 팔고 있는 광경이 신기하기만 하였다.그 누군가가 백두산은 겨울철과 여름철 꼭 2번을 가봐야고 한다기에 요번은 겨울 산행으로 출발코자 준비를 하였지만 날씨가 워낙 추웠다. 정상의 온도는 -32도를 가르키고 있지만 체감은 -50도를 더 느끼게 하고 카메라와 휴대폰의 배터리가 얼어서 사진을 찍을 수 조차 없었다. 겨우 다른사람의 휴대폰으로 몇장의 사진을 얻을수가 있었다. 2일간 백두산을 오르면서 날씨가 엄청 맑고 넘 좋았다. 또하나 느낀것은 중국 다른산에 가면 모든 안내판이 한글이 적혀 있는데 이도백하부터 백두산 어디를 찾아봐도 한글을 한자도 볼 수가 없었다. 가이드 말을 빌리자면 백두산이라고 하면 중국애들이 엄청 싫어한다고 한다. 그래서 인지 안내판은 전부가 중국어(한자)밖에 없는게 우리와 국경선이어서 더욱 아리송했다.우리의 대간의 출발점인 백두산,금강산,설악산,태백산,소백산,덕유산,지리산을 횡단하는 백두대간의 출발점을 올랐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2016년엔 또 좋은 시작이 있을 듯하다. 그리고 또 한번의 여름산행지(언제일지는 모름)를 백두산을 잡아 산천초목에 즐비한 야생화를 보러 또 한번 가야할 것 같다.

참,,,세상은 좁고도 좁은 듯 봉무동 대로를 마주하고 있는 분(이시아 *차 거주:S-0-0)을 봉무동이 아닌 백두산에서 만났으니 이 또한 큰 인연이요(불교에선 옷 깃만 스쳐도 업보를 같이하는 인연이라고도 함) 또한 이시아 **차 거주(이쁜 아줌씨,,이름모름)를 만났으니 세상은 좁고도 넓다고 했던가? 아무쪼록 무탈하게 다녀올 수가 있어서 행복이고 여러분들을 만나서 또한 즐거움이지 싶다.孔子께서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말이 그 얼마나 기대되는 말인가?또 다른 목적지에서 동행하기를 기대하면서,~~

 

1일차(16.1.13.) #1 김해국제공항 도착 한장

 #2 비행기가 진행하는 항로: 동해로 가나 서해로 가나 궁금했는데 궁금증 해소~지금 지나는곳이 중국 장춘 상공을 지나고 있는 상황(붉은색이 비행기가 지난 흔적:중국 산동반도 威海를 지날땐 거리가 16마일(25.6km)상공을 지나는데 북한 상공을 지나면 금방 도착할 것 같은데 아쉬움이~~.)

#3 비행기가 옌지 상공으로 진입하면서  만주벌판의 산과 나무들이 시야에 들어오고

#4 드뎌 도착한 옌지 차오양 국제공항앞에서

#5 두만강을 마주하고 있는 중국 투먼과 북한의 남양시(뒷편)- 두만강은 얼어서 마음만 먹으면 남양까지 쉽게  갈 수가 있을 듯한데도 한반도이지만 들어가보지 못함에 가슴이 아파오고, 그 옛날(남이장군 시:白頭山石磨刀盡 豆滿江水飮馬無 男兒二十未平國 後世誰稱大丈夫)장군의 시 한수가가 한참동안 내 머리속을 헤집고 다녔다.

((김정구 선생님(1916~1998,함남 원산출생))의 "눈물젖은 두만강"의 노래가 얼어 있는 두만강과의 괴리를 느끼게 한다,,,♬두만강 푸른물에 노젓는 뱃사공 흘러간 그 옛날에 내 님을 싣고 떠나간 ~~~ 그리운 내 님이여~)

* 이곳 투먼(발음은 같지만 다른 지명)이란 명칭으로 우리와 중국의 국경선 문제의 해석 차이를 나타내는 지역 (西爲鴨綠-분수령-東爲土門) 

 

#6 龍井 대성중학교-우리 선현들이 공부하면서 독립운동과 후학을 양성하던 곳,, 아직도 건물을 잘 보존되었고 전시실은 당시의 처참한 장면과 살기 위하여 만주로 건너간 선조들이 얼마나 많은 고생과 독립운동을 했는지 직감할 수가 있었다.

 

#7 룡정 대성중학교에 있는 윤동주님의 서시-죽는날까지~~~~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학창시절 많이 접한 시 한수,,

 

#8 룡정의 일송정- 독립운동할 당시 우리 선조들이 비밀 회담했다고 하는 장소인 일송정은 현재 원두막 형태로 만들어져 보존되고 있으나 가이드말에 의하면 원래 있던 소나무는 말라 죽었는데 다른 나무를 심어도 살지를 않는다고 함.(선구자의 일송정~~~♪)

 

#9 이도백하 가는도중 트럭이 고장나서 1시간정도 정체되었는데 주변엔 엄청난 눈이 내렸고 밖엔 온도가 -15도를 넘고 있었다.

 

2일차(16.1.14.)#1 백두산 서파 등정 시작---서파 주차장

#2 서파 안내 도면

 

#3  차량으로 1시간 반정도 입구를 지나서 안으로 이동하는중의 주변의 쌓인 눈

 

#4  서파 버스 주차장-여기부터는 모터써클로 10여분 올라가면 계단입구가 나오는데 모더써클을 타니 추위가 장난이 아니다. 엄청 추웠다.

 

#4-1 모터 써클을 타고 백두산으로 출발하여 1042계단까지 10여분 타고 진행

       (앞:운전기사 중간:필자 후:가이드)


#5 서파 진행중-1042계단 중간 지점

#5 서파 진행중-8보능선

#5 서파 진행중-계단길 사이 쌓인 눈으로 높이가 1미터는 족히 넘는다.

 

#6 서파 정상(2,471m)-"등정 성공 나가 제일이다(대단하다)"라고 적혀있다.

#7 서파 정상-백두산 천지(얼어서 물은 볼 수가 없다)

 

#8 백두산 천지를 뒤로하고 대한민국 만세다!.

#9 37호 국경경계비- 북중 국경비(뒷편이 북한 지역)

 

#10 37호 국경경계비- 북중 국경비(뒷편이 중국 지역)

#11 마천봉 정상을 뒤로 하고

#12 마천봉 정상과 천지를 뒤로 하고

 

 #13 하산하여 눈으로 만든 눈조각 앞

 

#14 백두산 대협곡- 눈으로 덮혀 있어 실감이 나질 않는 대협곡

 

#15 백두산 대협곡 입구-한바퀴 돌아 나오는데 30분이면 충분

#16 대협곡 주차장앞 지붕에 쌓인 눈-높이는 1미터 정도

 

3일차(16.1.15.)#1 백두산 북파 등정 시작---북파 주차장

 

#2 백두산 북파 등정 시작---북파 주차장

#3 백두산 북파의 알림판-온도가 -32도 바람은 7-8급이라고 적혔다.

#4 백두산 북파를 짚차를 타고 올라가면서 도로변의 쌓여 있는 눈의 상황

 

#5 백두산 천지 안내판-어제보다는 바람도 적게 불고 제법 견딜만 했다. 그리고 하산후

천지를 다시보니 짙은 안개로 제대로 보여주질 않았으니 우린 운 좋게도 좋은 상황에서 제대로된 구경을 한 듯하다.

 

#6 영혼이 깃든 우리의 영산 -백두산 천지

 

#7 남북 통일과 무사 안전을 위하여 천지창조님에게 기도를 올리고 있다.(관셈보살~~)

 

#8 좋은 날씨와 배경으로 그냥 드러누웠다. 그러나 주변엔 바람이 쌩쌩불고 귀전을 스쳐간다. 나중에 여름에 오면 실컷 공기를 마시기로 하면서~~

#9 백두산 등정 만세!!!(여기는 북파)

#10 또 들어 누웠다. 장소는 북한 방향

 

#11 넘버원이라고 엄지를 치켜 세웠다. 그리고 뒤로 저멀리 보이는건 만주땅의 아득한 벌판인데 한폭의 그림과 같고 저멀리 지평선이 끝없이 펼쳐진다.

이 땅이 옛날 우리 선조들이 살았던 간도지역인데 언제 찾을수는 있을련지 몰따...

 

#12 북파 정상에서 뒷 배경 삼아 한장,,아마 철벽봉이지 싶은데 모르겠다.

 

#13 고요속에 잠들어 있는 백두산 천지-얼어서 물은 구경할 수가 없다.

 

#14 하산후 다시 오르는 장백폭포를 향하여- 오르다보니 자연산 온천수가 푹푹 쏟아나오는데 손을 대니 엄청 뜨거움을 느낀다. 주변엔 눈이 많이 싸여 있는데도 물줄기는 큰소리를 내면서 두만강으로 흘러간다.

 

#15 장백폭포- 장백폭포는 높이가 67m로 이도백하로 떨어져서 쑹화강으로 흐르고 있는 폭포인데 여름이면 폭포의 장엄한 소리를 듣고 볼 수가 있겠지만 아쉬운 겨울이라 물길을 보여도 근처에 접근하기기 어렵다. 여름날엔 옆으로 올라갈 등산로가 있는데 지금은 산문이 닫혀 있어 아래에서 먼 발치로 보는것 밖엔 도리가 없고 넘 멀어서 인지 소리는 들리지도 않고 얼음속에서 물이 떨어지는것은 볼 수가 있었다.

#15-1 온천수가 82도라고 하는데 잠시 손을 넣었더니 매운탕될려고하는것 같았다. 온천수로 달걀과 오리알 그리고 옥수수를 삶아서 팔고 있는게 겨울과 상반되어서 운치를 더해주었다.

#16 소천지-작은 천지라고 하는데 아무것도 없다. 그냥 작은 연못정도

#17 저멀리 설산을 배경으로

 

#18 높은산에서 쌓인 눈이 흘러내리고 있다.

 

#19 눈사람(雪人)과 한장

 

4일차(16.1.16.)#1 마지막날 연변 푸더 FC 축구장앞 - 현재 우리나라 박태하 감독이 감독으로 있는 팀.2015년 2부리그(갑급)에서 우승하여 올해 1부리그(수퍼리그)로 승격해서 우리나라 선수 3명이 활동하고 있는팀(하태균,김승대,윤빛가람)으로 늘 번창하고 우승하길 기원해보면서 3박4일간의 백두산 등정 일정을  조용하게 정리해본다.

 

 백두산 등반... 늘 마음에만 있었는데 이렇게 갑자기 발길을 옮길 줄은 내 스스로도 몰랐다. 애당초 목적지는 안탕산과 신선거 였는데,,,지금 생각하니 우리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을 아주 잘 가본것 같다.,,,고구려와 발해의 기상이 옌지 박물관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는데,,,1,000여년전의 우리 민족의 魂이 듬뿍 담겨있던 그런 유물을 만나고 왔다. 그 유물속엔 고구려의 기백과 발해의 기백이 가슴속에 남아 있는듯 기쁘기는 끝이 없는데,,만주 동북3성 옛날 우리땅,,,지나가면서도 가슴이 아플따름이다. 우리의 선조가 말타고 달렸던 땅인데,, 지금은 어엿한 남의 나라에 넘어가고 두만강과 압록강을 두고 국경선이 처저 있으니 말이다. 간도협약으로 그 땅이 우리의 意思와는 아무런 관계없이 주변 강국들에 의하여 몽땅 중국으로 넘어갔으니 국권잃은 나라의 슬픈사연이니 참 안타깝다. 또 언젠가 그 땅을 찾을수가 있을련지~찾으면 차량으로 만주벌판을 누벼보고 싶당~~ㅎㅎ~~백두산 종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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