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슬 판타지아 : 성마대전(Castle Fantasia : 聖魔大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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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시일 : 2001/06/01
- 난이도 : 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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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소 시스템 : 펜티엄 166MHz/램 32MB/HDD 900MB/다이렉트X 7
- 권장 시스템 : 펜티엄 200MHz/램 64MB/HDD 1.2G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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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게임은 미국이나 유럽과는 다른 나름대로의 독특한 분위기가 있다. 영웅전설 시리즈와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로 대표되는
일본식 롤플레잉 게임과 함께 삼국지 영걸전이나 파랜드 택틱스 같은 시뮬레이션 롤플레잉 게임(SRPG) 등이다. 캐슬 판타지아는 전형적인 SRPG로 대부분의 SRPG와 마찬가지로 제한된 자유도와 스토리 중심의
직선적인 게임진행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전술이나 캐럭터 성장 같은 게임플레이쪽의 요소보다는 아름다운 일러스트와 배경음악 그리고 스토리에 더욱 많은 무게가 실려 있다.
이에 걸맞게 캐슬 판타지아의 캐럭터 일러스트는 매우 예쁘며 색감도
밝고 아름답다. 몇몇 장면은 화면을 캡쳐해서 윈도우 배경화면으로
써도 괜찮을 만큼 미려한 일러스트를 보여준다. 배경음악도 분위기에
잘 어울린다. 특히 주제가가 상당히 맘에 든다. 이 정도라면 일반 애니메이션 주제가로 쓴다고 해도 전혀 손색을 없을 것 같다. 오프닝 동영상과 주제가는 게임이 아니라 마치 TV나 OVA 애니메이션의 오프닝을 보는 것 같다. 스토리는 그리 복잡하지 평이한 편이라 큰 부담 없이
따라갈 수 있다.
캐슬 판타지아는 성마대전이라 불리는 전쟁에 관한 이야기다. 계급
위주의 귀족 사회인 인제라와 이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킨 세력인 루시엘 사이의 전쟁이 일어난다. 게임의 스토리는 휴이 엘저드라는 이름을 가진 인제라의 기사와 그가 이끄는 제 7성부대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주인공인 휴이의 성격이 꽤 재미있는데 무관심하고 게으름을
피우는 듯한 시큰둥한 면이 있는 반면 명석한 판단력과 지략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또한 루시엘에 대한 적대감보다는 성마대전이라는 전쟁 자체에 대한
의문과 회의 그리고 인제라의 수뇌부의 권위에 대한 반감과 독설을
보여주기도 한다. 언뜻 보면 은하영웅전설에 등장하는 자유행성동맹
최고의 지장(智將) 얀 웬리와 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게임의 진행은 스토리 진행과 전투의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인물들의 대화를 통해 스토리가 전개되며 스토리 중간 중간에
전투가 삽입된 형태다. 스토리의 진행은 상당히 간단하게 이루어진다. 그냥 인물들의
대화를 읽기만 하면 된다. 이 부분은 일본 어드벤처 게임에서 자주 사용되는 배경 일러스트 위에 인물의 얼굴이 겹쳐진 형태로 돼
있다. 설치 CD에 별도로 포함된 음성 지원팩을 설치할 경우 캐릭터의 음성이 지원된다. 음성 지원팩은 캐슬 판타지아를 설치할 때는 같이 설치되지 않기 때문에 게임을 설치한 후
따로 설치해야 한다.
이것은 게임을 설치할 때 선택 메뉴로 포함시켜서 음성 지원팩을 설치하고자 할 경우 한번에 게임과 같이 설치되도록 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매뉴얼을 꼼꼼히 읽지 않을 경우 음성 지원팩이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게임만 설치하고는 게임 자체가 음성 지원이 없다고 오해할 가능성이 있다. 음성은 국내 성우로 새로 더빙하지 않고 일본 원판의 음성을 그대로 사용하고 자막만 한국어로 번역했다. 따라서 모든
음성이 일본어로 나온다.
필자는 일본어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원래 성우들의 목소리를 그대로
남겨둔 것은 그리 나쁜 선택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우리말로 더빙을
제대로 하기 위해 꽤 많은 노력과 비용을 들일 생각이 아니라면 어설프게 우리말로 더빙을 해서 분위기를 망치는 것보다는 아예 이렇게
그대로 두는 편이 훨씬 낫다. 모든 대화에 음성이 지원되지만 인물의
입은 움직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대화의 내용과 분위기에 따라 몇 가지 표정 변화를 보여준다.
가끔 지도와 함께 전체적인 전황에 대한 내레이션이 곁들여지기도 한다. 스토리 진행 중간에 휴이의 행동을 몇 가지 중에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것 외에는 어드벤처 게임처럼 퍼즐을 푼다거나 머리를
써야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번역의 수준은 상당히 만족스럽다. 대화의 내용도 어색하지 않고 유머러스한 말장난도 자연스럽게 잘 번역했다.
이야기가 전개됨에 따라 적들과 마주치면 전투가 벌어지게 된다. 캐슬 판타지아의 전투는 턴제로 이루어져 있다. 전투를 통해서 캐릭터들은 경험치를 얻고 레벨이 오르게 된다. 캐릭터의 종류는 육박전을
하는 전사 계열, 치료나 방어 마법을 주로 사용하는 성직자 계열 그리고 공격 마법을 주로 사용하는 마법사 계열이 있다. 스토리의 중심이
되는 주요 캐릭터들의 경우엔 이러한 계열이 명확하지 않고 두 가지
이상의 특징이 섞여 있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주요 캐릭터들은 레벨이 오르게 되면 각자의 독특한 필살기를 가지게 되는데 리미트라고
부르는 게이지가 끝까지 차면 사용할 수 있다.
리미트 게이지는 적에게 공격을 받으면 늘어난다. 적을 공격할 때는
공격하는 방향에 따라 적이 입게 되는 피해가 다르다. 적과 마주본 상태에서 공격을 하는 것보다 옆이나 뒤에서 공격을 하는 것이 더 큰 피해를 줄 수 있다. 특히 적을 뒤에서 공격할 경우 상당한 피해를 입힐
수가 있다. 마찬가지로 게이머 캐릭터가 뒤쪽에서 공격을 당하게 되면 큰 손상을 입게 된다. 여기까지는 괜찮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이 전투의 전부인 셈이라는 것이다. 캐슬 판타지아의 전투는 난이도가 상당히 낮으며 너무나 단순하다.
모든 전투의 승리조건은 오로지 적의 전멸 한 가지다. 특정한 캐릭터를 호위한다거나 특정 지역을 점령해야 한다거나 또는 지켜야 한다거나 하는 다양한 승리조건이 있었다면 전투가 더 재미있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캐릭터들이 특별히 무기나 아이템을 사서 장착한다거나
하는 것도 전혀 없다. 무조건 경험치를 쌓아 레벨만 올리면 그만이다.
전투의 규모도 매우 작다. 캐슬 판타지아의 스토리를 보면 수천 명으로 이루어진 대군이 서로 격돌하지만 게이머가 참가하는 전투는 주요
캐릭터들과 적들 몇 명 사이의 작은 전투가 전부다.
아쉽게도 대규모 전투의 장관은 그저 인물들 사이의 대화를 통해서
짐작만 할 수 있을 뿐 그림으로 보여지거나 전투 모드에서 구현된 것은 전혀 없다. 전투 모드에서 게이머의 캐릭터와 적 캐릭터를 다 합해서 30명을 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또한 지형의 높낮이나 장애물이 구현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전술적인 측면도 거의 고려할 것이 없다. 한마디로 공격과 방어, 유닛의 효율적인 운용 같은 전략적인 요소에 대한 고려를 할 필요가 거의 없는 것이다.
협공을 통해 적 캐럭터를 하나씩 각개격파하기만 하면 대부분의 전투가 다 싱겁게 끝난다. 치료 마법을 무제한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도 전투를 단순하게 만드는데 일조하고 있다. SRPG의 ‘S’, 즉 전략 시뮬레이션의 요소가 너무 취약한 것이다. 전투가 워낙 단순하고 난이도가 낮다 보니 필자의 경우엔 시작부터 한 번도 전투에서 지지
않고 엔딩을 보았다. 캐슬 판타지아의 전투는 전략게임의 전투가 아니라 일본식 롤플레잉 게임의 전투 부분을
가져다 놓은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캐슬 판타지아에서 긴박감 넘치는 전투와 전술적인 묘미를 기대하는 게이머가 있다면 분명히 실망을 금치 못할 것이다. 캐슬 판타지아는 전투 위주의 게임이 아니다. 오히려 스토리의 진행이
전투보다 훨씬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게임 전체에서 전투는 그리
자주 일어나지도 않는다. 게임의 절반 이상을 스토리의 진행에 할애하고 있다. 극단적으로 얘기하자면 캐슬 판타지아의 전투 모드는 게이머의 주의를 환기하기 위한 단순한 양념일 뿐이다. 전투만 따로 놓고 본다면 정말 싱겁기 그지없다.
캐슬 판타지아는 모든 게이머에게 골고루 어필할 만한 게임은 아니다. SRPG라는 장르를 좋아하고 예쁜 미소녀 일러스트를 좋아한다면
나름대로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 지 모르나 정통 롤플레잉 게임의 방대하고 심각한 스토리와 게임 구성, 또는 전략 시뮬레이션에서 얻을
수 있는 전술 운용의 묘미를 기대하는 게이머라면 캐슬 판타지아는
얄팍하고 단순하고 지루하게 느껴질 것이다. 캐슬 판타지아는 머리
쓸 필요 없이 쉽게 부담 없이 즐겨야 할 게임이다. 치밀하게 구성된 참신하고 중독적인 게임플레이는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원래 캐슬 판타지아는 일본에서 성인용으로 출시되었던 게임이다. 이것은 휴이가 이끄는 제7성부대에 배속되는 인물들이 하나같이 빼어난
미소녀라는 점 그리고 타이틀 메뉴에 그림만 따로 볼 수 있는 갤러리
모드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을 보면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물론
국내에 출시되면서 일부분이 삭제됐다. 휴이의 행동 선택에 따라 다른 이벤트와 엔딩이 준비되어 있지만 아무래도 가위질이 있었던 만큼
다른 이벤트를 보기 위해 처음부터 다시 플레이할만한 메리트는 그리
크지 않을 것 같다.
또한 캐슬 판타지아는 전술적인 리얼리티를
고려한 무겁고 심각한 게임이 아니다. 바로
미소녀 게임인 것이다. 생각해 보라. 군대의
대장이 온통 미소녀들에게 그것도 전사다운
면모는 고사하고 엉뚱한 푼수짓을 일삼는
미소녀들에게 둘러싸일 경우 그것이 얼마나
전술적으로 유리할 것인지.
캐슬 판타지아의 매력은 게임 자체의 우수성보다는 미소녀 SRPG라는 부류에 대한 게이머의 취향에 달렸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이런 종류의 게임을 그리 선호하는 편은 아니기 때문에 다른 미소녀 SRPG에 비해 캐슬 판타지아가 얼마나 훌륭한지는
뭐라고 명쾌하게 말하기가 어렵지만 적어도 미소녀 일러스트만큼은
수준급이라고 할 수 있다.
훌륭한 일러스트, 무난한 스토리와 배경음악, 아무런 부담 없이 쉽게
즐길 수 있는 낮은 난이도의 SRPG를 원하는 게이머라면 캐슬 판타지아를 재미 있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심각하고 복잡한 게임을 좋아하는 게이머라면 십중팔구 실망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