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직장에서는 토요일 점심식사는 약속이라도 했다는 듯이 중국음식점으로 식사를 시킨다. 집에 가서 식사를 하자니 배가 고프기 때문에 간단하게 점심식사를 해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직장에서 청요리로 식사를 시킬 때 많은 사람들은 자장면이나 짬뽕을 시키는 경우가 많은데 나를 포함한 두 세 명만 우동을 시킨다. 사실 몇 년 전만 해도 우동을 시키는 사람은 나 혼자였고 그리하여 식사를 시킬 때 아예 나에게는 무엇을 먹을 지에 대해서 아예 물어보지도 않고 우동으로 시키는 경우를 많이 보며 웃음을 흘리곤 한다. 그렇게 해도 나는 아무 할 말이 없다. 왜냐하면 중국음식(진짜는 아니지만 우리들의 말로)을 시킬 때마다 나는 우동을 시켰기에 트레이드마크가 되어가고 있다. 직장에서 나는 자장면을 먹어본 경험이 손가락에 꼽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동료들은 건성으로 물어보거나 아예 물어보지도 않고 시키는 때가 많이 있는데 여기에는 나의 책임도 분명히 있다.
내가 자장면에 대한 첫 번째 기억은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께서 나를 장날 장에 데리고 가서 자장면을 사 주셨는데 그 때 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목록의 첫 번째에 자장면을 올려놓았다. 그래서 추억을 파먹으며 자장면은 내가 좋아하는 음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문제는 군 복무 중에 나타났다. 내가 일병이 되어서 외출을 허락 받을 때 울산에서 H엔진에 다니던 친구가 면회를 왔다. 친구는 나에게 무엇이 먹고싶은지를 물어보았다. 나는 말하는 대신 그를 데리고 말로만 중화요리집에 갔다. 나는 주인에게 자장면을 시켰고 친구의 얼굴에는 당황하는 빛이 역력히 나타나 있었다. 오랜만에 면회를 왔는데 자장면이라니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탕수욕을 하나 더 시켰다. 그러자 그제야 녀석의 얼굴에 웃음이 돌았다. 식사를 하고 나서 우리들은 다방에 갔고 녀석은 커피를 마실 때 내가 왜 자장면을 그렇게 좋아하는 가를 물어보았다. 녀석은 식사를 한 후 나의 주머니에 만원 짜리 몇 개를 쑤셔 넣고 울산으로 갔다
외출을 하고 돌아와서 동료들과 음료수를 나누며 점호를 받고 잠자리에 누웠는데 나는 그날 밤을 고통 속에서 보냈다. 화장실에서 토하고 설사를 하고 정신이 없었다. 동료에 의해서 의무실에 가서 2일을 누워있어야만 했다. 병명은 식중독이었고 그것으로 인하여 몸에 몇 개의 종기가 나서 나를 며칠동안 어렵게 만들었다. 의무관의 도움으로 며칠동안 누워 있다가 내무반으로 돌아오자 중대장은 대뜸 두 달 동안 외출외박을 하지 말 것을 이야기했으나 한 달도 안되어서 외박의 무리 속에 끼였으나 중국음식점에는 전역을 할 때까지 가지 않았다.
그 이후 나의 중국 집 메뉴는 두말할 것 없이 우동이 되었다. 그러나 결혼 후 아내가 처음으로 자장면을 만들어 주었다. 특식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 주는 것을 먹지 않을 수 없어서 밥에 넣어서 먹고 맛있다는 말을 연실 아내에게 했다. 사실 아내의 자장밥은 정말로 맛이 있었고 자장 밥을 통해서 자장면과 다시 친해졌지만 아직까지도 자장면을 먹으려면 몸에게 물어보곤 하는데 그래서 나의 토요일 점심식사도 우동 혹은 드물게 짬뽕을 먹게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자장면을 무척 좋아한다. 집에서 토요일이나 일요일이 되면 아이들은 자장면을 시켜달라고 요구를 하는데 아내는 주저할 것 없이 시켜주지만 그럴 때 마다 나의 얼굴은 아니라는 표정을 지으면서 밥솥에 밥이 있는지를 물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