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의 융융한 흐름을 기대하며
-제1회 조태일문학상 심사평
1964년에 등단하여 1999년에 타계하기까지 왕성하게 시작활동을 펼친 조태일 선생은 활달하게 트인 개성적인 목소리로 자신의 시대를 대변한 시인이었다. 활발하게 움직이는 시를 지향하는 강인한 목소리의 이면에는 섬세하고 따스한 시선이 숨어있어서 그의 시세계를 한층 풍요롭게 하였다. 그의 ‘국토에 대한 사랑’ 또한 ‘고향에 대한 애정’과 밀고당기면서 더욱 실감나는 세계를 펼쳐내었다.
이러한 조태일 시인이 작고한 지 어언 20주년이 되어 고인을 기리는 문학상이 제정된 것은 뜻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취지에 공감하면서 심사를 진행하는 기준을 설정하였으니 첫째, 조태일 정신을 이어받으면서 얼마나 독자적인 성취를 이루었나에 주안점을 두자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조태일 정신을 유연하고 폭넓게 보면서 시집의 예술적 성취에 주목하자는 것이었다. 둘째, 앞으로의 한국시의 융융한 흐름에 기여하는 문학상이 되기 위해서는 고인과의 세대차를 고려하자는 것이었다. 덧붙여 말하자면 좀더 젊은 세대의 목소리에 주목하자는 것이었다.
모두 열네 권의 시집이 예심을 통과하여 본심에 올라왔고 8월 16일 겨레말큰사전사업회 회의실에서 심사가 진행되었다. 심사숙고 끝에 세 심사위원 합의로 이대흠의 『당신은 북천에서 온 사람』이 수상 시집으로 결정되었다.
『당신은 북천에서 온 사람』은 전반적으로 시인의 귀향시편으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고 그 공간적 배경의 중심은 장흥이다. 그에게 장흥은 “장흥에서 자응으로 가는 데는 / 십년이 족히 걸리고 / 자응에서 또 자앙, 장으로 가는 데는 / 다시 몇십년이 걸린다”(「장흥」)는 곳이다.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온갖 일을 겪다가 돌아온 자가 다시 고향의 내와 강에 발을 담그고, 가족과 고향 사람들의 이야기와 지역에 전승되는 전설의 뿌리를 어루만지면서 차오르는 감회가 서정의 수맥을 형성하고 있다. 이대흠은 전라도에서도 남도의 지역말을 맛깔나게 쓰는 데 오랫동안 공들인 시인인데 이번 시집의 경우 그 방언의 구사가 더욱 활달하고도 적실하다. “옹구쟁이라 하면 설익은 잿물은 안 쓰는 벱이여 얼렁뚱땅 만든 잿물은 겉만 빤지르한 것잉께 잿물이라먼 그래도 한 삼년은 푹 삭아사써 그런 잿물로 그륵을 궈사 색에 뿌리가 생기제”(「칠량에서 만난 옹구쟁이」)는 맛깔스런 전라도 방언의 구사이면서 옹구쟁이의 말을 빌려 펼친 시인 자신의 당당한 시론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대흠의 『당신은 북천에서 온 사람』을 통해 장흥과 탐진강 주변이 한국 현대시의 영역에서 확고하게 자리를 잡은 느낌이 든다. 한국의 현대시는 이렇게 지평이 넓어지고 새로워진다는 생각도 든다. 상상이지만 한국시의 융융한 흐름을 염원하던 조태일 시인이 살아계셔서 이 시집을 읽더라도 반겼을 것 같다.
-심사위원 신경림, 염무웅, 최두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