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인물] 애굽왕 바로(파라오)-고대 이집트의 최고 통치자,'태양'
'투탕카멘 왕의 황금마스크'
바로(Pharaoh)= 파라오, 바로는 고대 이집트 왕의 칭호이다.
애굽과 애굽의 바로 왕은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는 등 이스라엘과 깊은
관계가 있다. 역사적으로 많은 파라오(바로)가 있으나 오늘날 황금마스크
등의 유물을 남긴 소년왕 투탕카멘왕이 유명하다.
* 투탕카멘왕의 황금마스크 / 이집트 카이로의 이집트박물관에서 가장 인기있는 유물이다.
어린나이로 숨진 소년왕으로 이집트 제18왕조 제12대 왕(재위 BC 1361∼BC 1352)
투탕카멘왕의 유물이다.
바로(Pharaoh)=파라오 「큰 집, 태양」
성서 시대에 애굽 왕에게 주어졌던 존칭이다. 단독적으로 쓰이는 경우도 있고, 왕의 개인명과 결합되어 쓰이는 경우도 있다. 즉, 열왕기하 23:29, 예레미야 44:30에서는 왕의 개인명과 결합해서 썼고, 출애굽기1:11, 5:1, 열왕기상 11:18- 20에서는 단독으로 쓰여져 있다. 비문에서는 제 4왕조까지 거슬러 올라가 이 말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히브리어 성경에 있는 `왕'과 뜻이같지 않다. 왕으로서의 용법은 신제국(新帝國)의 초기에 일어나 그것이 팔레스틴의 일용어로 된 것은 BC 1000년 이후의 일이다. 따라서 델 엘 아마르나 토판(BC 1400)에는나타나지 않는다. 명목상 바로는 신적(神的) 기원에 의한 절대적 군주였으나, 실제로는 세습적 군주들(`제도X諸道〉의 통치자들')에 의해 지도되었다. 그 주권의 상징으로써는 상부 애굽과 하부 애굽과의 이중의 왕관을 썼다. 성서에는 바로에 대한 기사가 많이 나온다. 그러나 아브라함이나 요셉 시대의 바로가 누구인지는 아직 확정되고 있지 않다.
29 요시야 당시에 애굽의 왕 바로 느고가 앗수르 왕을 치고자 하여 유브라데 강으로 올라가므로 요시야 왕이 맞서 나갔더니 애굽 왕이 요시야를 므깃도에서 만났을 때에 죽인지라 (열왕기하 23:29)
30 보라 내가 유다의 시드기야 왕을 그의 원수 곧 그의 생명을 찾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의 손에 넘긴 것 같이 애굽의 바로 호브라 왕을 그의 원수들 곧 그의 생명을 찾는 자들의 손에 넘겨주리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예레미야 44:30)
11 감독들을 그들 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여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여 그들에게 바로를 위하여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니라 (출애굽기 1:11)
1 그 후에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가서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러면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 하셨나이다 (출애굽기 5:1)
18 미디안을 떠나 바란에 이르고 거기서 사람을 데리고 애굽으로 가서 애굽 왕 바로에게 나아가매 바로가 그에게 집과 먹을 양식을 주며 또 토지를 주었더라
19 하닷이 바로의 눈앞에 크게 은총을 얻었으므로 바로가 자기의 처제 곧 왕비 다브네스의 아우를 그의 아내로 삼으매
20 다브네스의 아우가 그로 말미암아 아들 그누밧을 낳았더니 다브네스가 그 아이를 바로의 궁중에서 젖을 떼게 하매 그누밧이 바로의 궁에서 바로의 아들 가운데 있었더라(열왕기상 11:18- 20)
*출처:인터넷
--------------------------------------------------------------------------------
<네이버 백과사전>
파라오 [Pharaoh] = 바로
고대 이집트의 최고 통치자로 이집트의 정치적·종교적 지도자 역할을 했다.
파라오는 고대 이집트의 정치적·종교적 최고 통치자로서 '두 땅의 주인(Lord of the Two Lands)'이라는 칭호와 '모든 사원의 수장(High Priest of Every Temple)'이라는 칭호를 겸하고 있었다. 이 때 '두 땅의 주인'이란 파라오가 상이집트와 하이집트 전체의 통치자라는 의미로, 파라오는 두 지역의 모든 토지에 대한 소유권, 법률집행권, 조세의 권리와 함께 두 지역을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보호할 의무를 지니고 있었다. 한편 '모든 신전의 수장'은 파라오가 지상에서 신을 대신한다는 의미로, 파라오는 제사의식을 주관하고 신전을 건설했다.
파라오(Pharaoh)의 어원은 '페르-오'로 이는 본래 '성스러운 권좌'를 의미하는 것이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페르-오'자체가 통치자를 의미하는 말로 변화했다. 특히 이집트 중왕조(B.C.1550~1292) 시기의 아멘호텝 4세(아케나톤) 통치기 이후 왕을 직접적으로 가리키는 용어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페르-오'라는 발음이 고대 그리스와 로마로 전해지며 오늘날과 비슷한 '파라오'로 변했다.
고대 이집트인들에게 파라오는 하늘에서 땅을 지배하는 신들의 후손으로서, 태양신 라(Ra)에 의해 점지되며, 신과 같은 자격으로 지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인 이집트 지역을 보호하는 것이 그의 임무라고 여겼다. 또한 이집트 고대 신화에 따르면, 파라오는 신과 여인의 결합의 산물인 빛과 같은 존재였다.
따라서 파라오는 행정의 책임자인 동시에 성직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했으며, 고위 관리들은 파라오가 우주의 조화와 정의를 유지할 수 있도록 보좌하는 역할을 했는데, 이는 행정적 위계질서뿐만 아니라 종교적인 측면도 내포하고 있었다. 파라오의 주된 종교적 의무는 사원의 건축이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신들이 지상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거처를 필요로 한다고 믿었으므로 왕들은 신전을 지어 숭배와 제식을 치러야 했다. 이 때 신전은 종교적 기관일 뿐만 아니라 국가가 부를 창출하고 관리·배분하는 수단으로서의 경제적 장치이기도 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파라오의 권위가 흔들리거나 그 힘이 쇠약해지면, 이는 신들이 돌보아 주지 않아 이집트가 어둠의 시기를 맞아 경제적으로 쇠퇴한다고 여겨졌으며, 따라서 파라오의 강력한 중앙권력은 필수적인 것이었다.
파라오는 대관식을 통해 왕위에 올랐는데, 대관식에서는 하이집트를 상징하는 붉은 관과 상이집트를 상징하는 흰 관을 받았다. 이는 고대 이집트의 주신인 '호루스'와 '세트’가 파라오에게 왕관을 씌워 주면서 생명을 전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전쟁에 임할 때는 푸른색의 '아테프'라 불리는 관을 착용했다. 이 외에도 파라오는 다양한 형태와 색깔의 왕관을 착용했는데, 그 상징은 아직 연구중이다. 대관식이 이루어지기 전에 파라오는 통일 이집트의 가장 오래된 수도인 멤피스의 성벽을 순례하고 신전에 이름을 새기는 의식을 치르며, 그 동안 백성들은 큰 축제를 벌인다. 대관식이 모두 끝나면 네 마리의 커다란 기러기를 날림으로써 새로운 파라오의 즉위 사실을 백성들에게 알린다. 그리고 즉위 첫 해에 파라오는 왕국을 순례한다. 위의 절차를 모두 마친 파라오는 상이집트와 하이집트의 상징인 등심초와 파피루스가 얽혀있는 사각형의 옥좌에 올라 국가를 통치한다.
파라오는 5대 왕조부터 5개의 직위를 의미하는 '호루스', '황금의 호루스', '두 여신의 보호자', '상하 이집트의 왕', '라 신의 아들'과 같은 5개의 이름을 가지며, 이름들은 둥근 통 카르투슈에 간직된다.
고대 이집트인들에게 파라오의 죽음은 태양이 사라져 우주의 조화가 흔들리는 사건이었으므로 백성들은 혼란을 끝내줄 후계자를 기다리며 장례를 치르는데, 보통 무정부상태를 피하기 위해 파라오가 생전에 왕좌에 아들이나 후계자를 함께 앉히곤 했다. 죽은 파라오의 육체는 미이라로 만들어지고, 지상에서 머무는 동안 자신이 준비한 영원의 거처인 무덤에 안장된다.
파라오 왕조는 메네스(Menes) 왕이 상이집트와 하이집트를 최초로 통일하며 세운 왕조(B.C.3500~3150)에서 시작하여 초기 왕조(초대~2대 왕조), 고왕조, 상왕조, 중왕조, 하왕조, 프톨레미 왕조(B.C.332~30)로 B.C. 30년에 로마의 통치를 받게 되기까지 약 3500년에 걸쳐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