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 빌뉴스
․면적: 65,200㎢
․인구: 3,692,600명(빌뉴스의 인구: 576,400명) (2001년)
․시차: GMT+2(3월 25일부터 썸머타임실시로 1시간 일찍 시작)
․언어: 리투아니아어
리투아니아 지도
리투아니아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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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투아니아의 전반적인 소개
리투아니아는 온난한 기후, 아름다운 강, 호수, 숲으로 이루어진 발틱해에 위치한 국가이다. 리투아니아의 해안선은 99㎞이며, 발틱해와 이어져있다. 북쪽에는 라트비아, 동쪽은 벨라루시, 남서쪽은 폴란드와 맞닿아 있다. 리투아니아는 호수가 많으며, “올레타이, 아그나리나, 자라사이, 트라카이” 지역의 호수들은 아름답다. 리투아니아에서 가장 큰 호수는 “드룩시아이”이다. 또한 리투아니아는 평지로 대부분 이루어져있어서, 빌뉴스와 젬마이티야 지역은 단지 조금한 언덕이 있을 뿐이다.
우리나라는 2002년 1월 리투아니아와 사증면제협정으로 사증 없이 3개월 간 쳬류가능하다. 만약, 여행의 목적으로 와서 장기체류로 전환할 경우에는 내무부 비자국에 회사와의 계약서나, 학생일 경우 재학증명서를 제출함으로써, 장기체류신청이 가능하다.
․리투아니아의 역사
리투아니아와 라트비아는 발트민족 중 고대시대부터 살아왔던 민족들이었다. 리투아니아는 13세기 민다가스 대제시대에 국가를 통일을 했다. 민도가스황제의 후임에서부터는 황제칭호가 바뀌었으며 흑해가 있는 북쪽까지 영토를 넓혔다. 1386년 자겔라 9세는 폴란드여왕을 왕비로 맞고, 크리스트교를 들여왔으며,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와의 연합을 맺었다. 1569년 두 국가는 우호를 맺었다.
1795년 폴란드가 분할되자, 리투아니아는 러시아에 점령되었다. 19세기 국민운동이 일어난 후, 1918년 2월 18일 독립했다. 이것은 민주주의 국가로의 시작이었지만, 1926년 12월 일어난 쿠데타로 안타나스 스메토나가 국가원수가 되었다. 1944년-1952년까지 소비에트 정권에 반대하는 반공산 전쟁이 일어났고, 이 전쟁은 4만-6만의 희생자를 낳았다. 1980년대 말,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재건개혁 등장으로 리투아니아에 변화가 일어났다. 결국, 1991년 9월, 보리스 엘친의 개혁 후 구러시아연방
(CCCP)은 리투아니아의 독립을 선언했다.
․리투아니아의 화폐
1993년 6월 5일부터 시행되기 시작했으며, 리투아니아의 화폐 단위는 리타스이며, 1리타스는 0.29유로이다. 우리나라 원화로 계산하면, 약 436원정 도이다.
․리투아니아의 국경일: 1월 1일: 새해, 2월 16일: 리투아니아 국가부흥의 날
3월 11일: 리투아니아 독립회복의 날
일요일, 월요일: 부활절, 5월 1일: 노동절
5월 첫 번째 일요일: 여성의 날
7월 6일: 국경일(리투아니아 민다가스왕의 대관식)
8월 15일: 성모마리아 승천기념일
11월 1일: 모든 성령의 날, 12월 25일, 26일: 크리스마스
․리투아니아어의 간단한 회화
․안녕-“라바디나”(“laba diena”) ․안녕히 가세요.-“비자 제로”(“viso gero”)
․아침인사-“라바스 리타스”(“labas rytas”)
․저녁인사-“라바스 바카라스”(“labas vakaras”)
․취침인사-“라바낙트”(“labanakt”)
․어떻게 지내십니까?-“케이트 사가지?”(“kaip sakasi?”)
․고맙습니다.-“아키우”(“aciu”) ․실례합니다.-“아트시브라자”(“atsiprasau”)
․영어의 PLEASE의 뜻-“쁘라솜”(“prasom”)
․네-“페이프”(“taip”) ․아니오-“네”(“ne”) ․어떤?-“카?”(“ka?”)
․누구세요?-“카스?”(“kas?”)
․언제?-“카다?”(“kada”) ․어디?-“쿠르?”(“kur?”) ․왜?-“코델?”(“kodel?”)
◈빌뉴스
․평균기온: 2월: -9℃, 6월: 33.1℃.
․인구: 약 57만 명(리투아니아인: 81.8%, 러시아인: 8.1% 등)
․교통수단: 버스, 트롤레이부스, 트람바이, 미니버스, 빌뉴스 국제공항
․시차: GMT+2
․빌뉴스의 교통수단
대개 교통수단은 5:00-23:00, 23:45분에 운행한다.
버스티켓은 버스 운전사에게 구입하거나, “리에투보스 스파우다” 가판대(“키오스크”)에서 구입할 수 있다. 1회용 티켓은 0.8LT이며, 버스 내 구입시 1LT이다.
트롤레이부스는 가장 대중적인 운송수단이며, 1회용 티켓은 0.8LT이며, 트롤레이버스 내 구입시 1LT이다. 이외, 마이크로버스가 있는데, 특별한 정류장은 없으며, 자신의 위치에서 팔을 흔들거나 하는 승차표시를 하면 된다. 승차후, 운전사에게 목적지를 알려주면 된다. 티켓가격은 시간과 거리에 따라, 1-2LT정도된다.
(왼쪽부터)
(왼쪽부터)
1층: 입국장
1층: 입국장
2층: 출국장
2층: 출국장
3층: 출국장
빌뉴스
국제공항은 도시에서 남쪽으로 약 5㎞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1층은 입국장, 2․3층은 출국장이 위치한다.
․빌뉴스의 관광지
많은 세기동안 리투아니아는 동과 서를 잇는 교차점이었다. 그래서, 빌뉴스는 다양한 양식의 건축물이 남아있다. 빌뉴스는 게디미나스 대공작에 의해서 세워진 도시이다. 빌뉴스를 방문할 때에는 구도시를 꼭 둘러보는 것이 좋다. 이곳은 높은 지역 중 하나이며, 유럽에서 가장 아름답고 신비로운 옛 도시이다. 성 안나교회, 성 피터폴 교회, 빌뉴스대학교가 있으며, 이 곳들은 동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곳 중 하나이다.
☞빌뉴스 구도시
모든 중세도시처럼 빌뉴스는 시청근처에 세워졌다. “빌레스”거리라 불리는 최초의 거리에는 궁전들과 시청이 있다. 도시의 다른 거리, 구부러진 강은 궁전과 맞닿아있다. 카톨릭성당, 상점, 수공업공장들과 맞닿아있다. 방사형으로 펼쳐져있는 중세빌뉴스의 구도시에는 좁고 굽어진 강과 작은 문들이 위치한다. 유네스코에 등록된 빌뉴스의 구도시는 중요한 리투아니아의 역사유물이며, 도시 건설, 문화, 교육의 중심지이다.
☞게미디나스 성
성의 언덕을 올라간 후, 서쪽 요새 탑에서 조금 올라가면, 게디미나스 성이 있다. 13세기에 세워진 요새는 1419년에 비토타스대공에 의해서 다시 복구되었다. 1610년엔 귀족들의 감옥으로서 사용되었다. 1665-1661년까지 러시아 점령시기에 요새탑과 방어벽은 완전히 붕괴되었고, 1930년까지 성을 복구하려는 어떤 시도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다.
☞새벽의 문
새벽의 문은 16세기 르네상스시대때의 건축물이며, 초기에는 도시를 지키는 요새의 한 부분이었다. 1671년 수녀들은 성모마리아를 찬양하기 위해 작은 예배당을 지었다. 이 예배당의 인테리어는 1829년 신고전주의양식으로 재수리가 되었다. 이곳은 동카톨릭의 성지이다.
☞ 미사시간: (월-금) : 9:00, 19:00, (토-일) : 9:30
☞바실리카 사원
교회는 민도가스 벨리코예가 세웠다. 그는 최초의 리투아니아의 왕이며, 크리스트교를 개종한 사람이다. 성 카지미라 예배당에는 알렉산드르 자길론의 무덤이 있다. 종탑에는 1967년 다른
지역의 교회에서 빌뉴스까지 운반해온 오래된 종이 있다. 1985년 3월 27일 에어컨을 설치하기 위해 시설하는 도중, 인부들은 금을 발견했고, 소비에트 정부가 이것을 훔쳐 가는 것을 막기 위해 13년 동안 금을 숨겨놓았다고 한다. 고고학자들은 이 보물을 1655년 빌뉴스를 침입했던 러시아군대가 숨겨놓았던 것으로 믿고 있다. 사원지붕에는 스타니슬로바스, 헬렌, 카시미르의 동상이 있으며, 그들은 46년 동안 구도시를 지배했으며, 이 동상들은 리투아니아의 자유와 믿음의 상징이다.
․그 외의 관광지
☞빌뉴스 대학교
동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학교이며, 구도시 중심에 위치한다.
지난 400년 동안의 이곳의 건축물은 고딕, 르네상스, 고전 양식 등이 다양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십자가의 언덕
시올리아이에서 11㎞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첫 십자가는 1863년 일어난 폭동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 이곳에는 다양하고 많은 십자가들을 볼 수 있다. 로마교황 파울 2세가 리투아니아를 방문했을 때, 이곳에서 미사를 드렸다고 한다. 십자가
에 자신의 소망을 적어 꼽아두면 소망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찌스케비키우스 궁전과 호박박물관
호박박물관(“인타르니이” 박물관)은 찌스케비키우스 궁전안에 있다. 천연 호박들을 구경할 수 있으며, 오래된 몽골언덕의 호박 작업, 17-20세기까지 호박사업 전문가들의 작업을 볼 수 있다. 망원경을 통해서, 역사시대 이전의 다양한 호박들의 형태를 볼 수 있다.
☞리투아니아의 민속촌
4개의 시골도시(“오크스쩨이찌자”, “드자키자”, “사볼키자”, “점메이찌자”)에는 카우나스로부터 22㎞ 떨어진 곳에 민속촌이 있다. 전통축제에는 축제가 벌어지며, 아름다운 노래가 흘러나온다.
☞트라카이 국립역사공원
5개의 창고로 이루어진 요새로 1952년 복구되었고, 오늘날 트라카이 요새 박물관에서는 역사전시회가 열린다. 역사공원의 중심에 위치한 호수에서는 헤엄도 칠 수 있다.
․빌뉴스외 다른 도시의 간단한 소개
◈트라카이
리투아니아의 고대시대 수도였으며, 빌뉴스에서 27㎞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트라카이는 발틱해에서 흑해로 리투아니아의 국경이 옯겨올때의 시기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으며, 이곳은 “갈브스”, “토토리스케스”호수로 둘러싸여 있다. 토토리스케스호수에 있는 섬 중 하나에는 비티우티스 대공작에 의해 세워진 트라카이 요새가 있다.
◈클라이페다
클라이페다는 발틱해에서 위치한 곳중 3번째로 큰 도시이다.
클라이페다는 리투아니아의 바다로 통하는 문이다. “메멜버그 성”은 “쿠로니안 라군”에 의해 세워졌으며, 이 도시에서 가장 독특한 건축물들은 패치워크 스타일로 지어졌다. 도시 중앙에는 많은 후기 고딕양식, 후기 고전양식, 후기 르네상스 양식의 표본들인 시청건물, 우체국, 드라마극장, 생활거주지 등을 구경할 수 있다.
◈카우나스
카우나스는 빌뉴스에서 서쪽으로 100㎞ 떨어진 곳이며, 리투아니아에서 2번째로 큰 도시이다. 이곳의 아름다운 도시는 몇 세기에 걸쳐 건축되었다. 카나우스 성, 옛도시, 사원, 비타우타스 교회등을 만나볼 수 있는데, 카나우스 성은 13세기 네무나스와 네리스 강의 영향으로 생겼다. 옛 도시 중앙에는 시청건물이 있다. 시청에서는 시민들이 결혼식을 많이 올린다. 비타우타스 교회와 사원은 시청광장의 양쪽에 위치한다. 이곳을 따라 계속 걷다보면 민속음악도구 박물관이 있다
주)프라이드 여행사에서 제공해 주신 정보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