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 갑천아!
주부의 아침시간은 화살과 같이 빠르게 지나간다. 일찍 일어나 서둘렀는데도 약속장소인 노루벌까지 9:시30분에 도착하기엔 무리일 것 같지만 달려가야지. 지난밤 감기에 잠을 설쳐 온 몸이 찌푸디 하니 개운치가 못하다. 주저앉고 싶은 나른한 마음이 발목을 잡으려 하지만 ‘대전을 걸어서 기록하자 ’의 첫 날인지라 과감히 게으름과 작별하고 집을 나섰다. 평소의 지론인 처음과 끝은 반드시 참석해야 한다는 굳은(?)의지를 잡고서......
상큼하지 못한 마음을 위로라도 하려는 듯 가을은 청향의 바람으로 ‘ 잘나왔어. 참 잘했어!’를 외치며 나를 반기는 듯 했다. 드디어 눈부시게 쏟아지는 가을 햇살이 넘실거리고 있는 장평보에 도착했다. 도착시간보다 5분가량 늦었지만 먼저 도착하신 안선생님이 넉넉한 웃음으로 반겨주셨다. 이번 답사에 함께하기로 한 숲 해설사님의 화사하고 상냥한 목소리가 늦게 도착한 미안함을 털어 주며 인사를 건네셨다.
장평보에서 물안리로 가는 다리를 지나 노루벌 쪽으로 가다보니 11년째 제비가 날아와 집을 짓는다는 두꺼비상회가 개보수를 하는지 뚝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것을 보자마자 안여종선생님은 제비 걱정을 먼저 하신다. ‘내년 춘삼월이 되면 그 제비들은 어디에다 집을 지을까?’ 하시면서 말이다. 매년 음력 삼월삼일이면 어김없이 찾아 온다는 제비 걱정을 하시는 안선생님을 뒤로 우린 가을 냄새를 맡으며 두리번 거리기에 정신없었다. ‘어머나!’ 소리가 들려 바라보니 숲해설사님이 작은 꽃 앞에서 앉아계셨다.
둥근잎유홍초가 발그레한 얼굴로 햇살이 눈부신 듯 찡그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찌 유홍초 뿐이랴! 도꼬마리, 나팔꽃, 주름잎, 고마리등 온갖 야생화들의 이야기와 조잘거리며 흐르고 있는 갑천의 수런 대는 소리가 노루벌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볼 수 있음에 감사하고 느낄 수 있는 마음이 있어 참 감사하구나 하면서 걷고 있는데 코끝에 훅~하고 달려드는 냄새가 있었다. 길가에서 할머니 한분이 들깨를 털고 계셔서 들깨향이 우리의 코 속을 자극하고 있었던 것이다. 소출이 많은가를 여쭈어보니 별반 나오지 않는다고 하셨다. ‘몇 말 정도인데요?’ 하고 여쭈니 ‘그 정도면 들깨농사만 짓고 살게! ’하시면 어설픈 우리의 질문에 환하게 웃으셨다. 할머니께 건강하시라는 인사말을 남기고 계속 걸었다. 오랜만의 여유로움 탓일까? 안선생님께서는 너무 천천히 걷는다며 서둘러 걷자고 하셨다.
물가에 도착하자 우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물수제비를 뜨기 시작했다. 우리가 던지는 돌은 ‘텀벙’ 소리를 내며 자취를 감추고 마는데 안선생님의 돌은 수면을 마치 스케이트를 타 듯이 미끄러져나갔다. 계속 텀벙거리기만 하는 우리에게 선생님은 물수제비를 뜰 때는 각도를 수평으로 해서 돌을 던지는 순간 손목을 이용해 회전을 시켜주라고 설명해주셨다. 우~~와! 그대로 따라 해 보니 물수제비가 떠진다. 물수제비가 주는 흥분을 뒤로 한 채 노루벌제방을 향하니 그 곳에는 보랏빛 쑥부쟁이가 수줍은 듯 온몸을 하늘거리며 우릴 반긴다. 선생님의 이야기로는 봄에는 이 곳이 쑥부쟁이 대신 할미꽃이 지천으로 피어 제방 가득 꽃동네를 이룬다고 하셨다. 자연이 주는 이 아름다운 선물을 잘 간수해서 우리만 볼 것이 아니라 후손에게도 물려주어야 되는데 하는 생각을 하니 언젠가 보았던 ‘지구는 우리의 것이 아니고 후손에게 빌려 온 것입니다’라는 문구가 떠올랐다. 그래 우리의 것이 아니고 빌려온 것이니 온전히 주인에게 돌려주어야겠지. 새삼스레 잊고 있었던 자연 사랑이 무디어진 온 몸을 깨웠다. 지난여름 반딧불이가 나왔다는 그림 같은 노루벌을 지나 상보안을 거처 괴곡교 하류의 잠수교를 통해 갑천을 건넜다.
우리가 걷고 있는 사이 물가에선 물총새 한마리 먹이를 잡으려 물속을 노려보고 있다가 순식간에 먹이를 물고 비상을 한다. 먹이를 잡았으니 조용히 앉아서 식사할곳으로 찾아가는거라고 선생님이 설명을 하셨다.
상보안과 갑천을 사이에 두고 호남선 기찻길이 있었다는 안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걷다보니 논가에 커다란 바위가 눈에 들어온다. 안선생님과 나는 저것이 혹시(?) 하면서 논가로 건너갔다. 혹시 했던 것은 고인돌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선생님과 동시에 떠올랐던 것이다. 하지만 바위는 땅 속 깊숙이 묻혀 있어 확인이 불가능했고 위로 나온 곳엔 어떤 특징이 없어 보였다. 논가에서 일을 하시고 계시던 마을 어르신에게 예전의 호남선 철길을 여쭈어 보니 산쪽을 가르키시면 여기라 하시면서 그 전에는 갑천물이 범람해서 큰 비가 오면 곧 잘 논이 물로 가득찼다고 하셨다. 그런데 당신이 젊으셨을때( 20여년전) 군인들이 와서 제방을 높게 쌓아 놨고 그 때부터 범람하는 일이 없었다고 하셨다. 어르신과 함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준비해간 포도를 먹었다. 집에서는 별로 먹지 않던 포도였는데 어찌나 맛이 있던지 꿀 송이를 먹는 것 같았다.
제방위로 올라와 갑천의 모래톱을 보시던 선생님이 혹시 짐승들의 발자국이 있을지 모르니 가보자 하셨다. 제방을 내려가다 보니 늦게 핀 보랏빛 층층꽃이 근데 군데 피어 있고 그 위를 갈대와 억새가 손사래를 치고 있었다. 모래톱에 도착해 보니 선명한 고라니의 발자국이 찍혀 있었고 그 곳에는 맑은 물이 퐁퐁 솟고 있었다. 맑은 물을 보신 선생님은 물맛을 보시겠다며 한웅큼 물을 뜨시더니 마시고 계셨다. 우리가 놀래자 ‘물 맛이 참 좋은데요.’ 하시며 환하게 웃으셨다.
새뜸마을 느티나무! 언제나 묵묵히 맞아주고 넉넉하게 품어주는 나무다. 지난 세월의 흐름 만큼 갖가지 사연을 담은 채로 대전의 제일 오래된 ‘생명 문화재’ 로 자신을 찾아 온 우리를 담담한 모습으로 반겨주는 듯 했다. 청량한 바람과 말간 햇살을 받아서 일까 점심식사 때가 되었는데도 시장기가 없고 뱃속 까지 꽉 차 있는 포만감이 들었다. 그래도 시간에 매여사는 우리네 인간인지라 점심시간이 라는 이유로 준비해간 밥과 빵을 맛나게 먹었다. 우아하게 배로 후식까지 곁들여서 말이다.
점심식사 후 괴곡동 구억뜸의 돌장승을 만났다. 무성하게 자란 싸리나무에 가리어 제대로 보이질 안았지만 이 돌장승은 괴곡동 주민들이 정월과 칠월칠석 두 번이나 거리제를 지내는 대전에서 보기드문 장승이라고 설명해 주셨다. 길가에 있는 음식점 옆마당에 서 있는 왕버들나무의 수령이 150년이 됬느니 안됬느니 하면서 언쟁을 벌이고 있던 분들을 뒤로 하고 우린 윤씨 고택을 향했다.
고택의 안을 들어가자 여기 저기 널려 있는 농기구와 가을 걷이를 마친 곡식들이 널려있어 상상속의 사대부집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지고 사람 사는 냄새만 폴폴 풍기고 있었다. 고택을 둘러보고 나오는데 파평윤씨 댁으로 시집온 할머님 한 분이 고택에 관심을 갖는 우리에게 대단한 자부심으로 윤씨손부임을 이야기하시며 고맙다 하셨다. 할머님께 건강하시라는 인사를 드리며 마지막 답사지인 새뜸마을 성혈과 정림동을 향해 걸었다.
성혈은 다산과 풍요를 나타내는 컵마크로 알바위, 알구멍등 다양한 이름으 ㄹ갖고 있다고 선생님은 설명해주셨다. 고인돌 덮개돌의 구멍의 크기에 따라 수장자의 지위을 알 수 가 있으며 태양을 상징하여 불을 피웠다고 하셨다. 성혈의 조성시기는 선사시대에서부터 최근에까지 다양하게 만들어졌는데 비래동 고인돌 2호기의 성혈은 동네사람이 어렸을 때 만들었다고 이야기했다고도 하셨다.
정림동으로 가기위해 갑천을 걸으며 물 속을 들여다보자 갑천의 어종인 칼납자루, 피라미, 갈겨니, 돌고기, 모래무지, 등 수 없이 많은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놀고 있었다. 하루종일 그 곳에서 녀석들과 놀다보면 시간가는 줄을 모를 것 같았다. 오늘 하루는 눈과 코와 마음이 즐거운 하루가 되었다. 이렇게 해서 ‘걸어서 대전을 기록하자’의 첫 답사가 시월의 멋진날을 만들었고 내 마음속에서는 작은 이야기가 들리기 시작했다.
“갑천아! 사랑한다.” 라고 말이다.
첫댓글 걷기 첫날의 감동과 자연에 대한 배움을 다시 느끼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잘 쓰시는데 앞으로 매번 부탁드립니다.
ㅎㅎ 칭찬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고저 애나 어른이나 칭찬에는 우쭐해지거든요.ㅋㅋ 암튼 선생님 덕분에 갑천에 대한 새마음이 생겨감사드려요.
내가 걷고있는 듯한 느낌으로 잘읽었습니다. 오늘 '대전 둘레산잇기' 날이어서 참가하지는 않았지만 오랜만에 이곳에들러보니 좋은글을 대하게 되었네요. 내일 부터라도 나도 집앞의 갑천을지날때 "갑천아! 사랑한다." 하고 말할께요.
ㅎㅎ 연적이 자꾸 생기네요. 오쌤~~ 근데 이런 연적은 많이 생길수록 좋은거죠 ?
서로 사랑하려함에서는 연적이라 할수있네요. 갑천줄기의 구간을 나누어서 사랑해볼까요. 어때요. 그러면 우리 모두 동지가 될수 있지않을까. 당신의 그런 마음씨에 찬사를 보내며........
원본 게시글에 꼬리말 인사를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