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 17.(일요일)
어제는 하루 종일 바뿐 날이었다.
시골에서 친구들이 올라 와 온 종일 이들을 태우고 서울 인근의 관광을 한 후에 병석에 있는 이명구친구를 문병하고 밤차로 귀향 하였다.
온양에서는 고등학교 반창회의 전임 회장인 김기수와 신임 회장인 이규원의 이취임과 함께 전임회장의 이임 축하연이 있었다.
하늘은 온통 미개먼지로 뿌였게 안개가 낀 것 같은 시야로 기분이 언짢았다.
남태령에 사는 친구와 만나 동작동에 있는 김영삼 묘소를 찾아갔다.
지난해 11월 26일......
큰 이모가 돌아가신 이튼날 타계한 대한민국 제 14대 대통령으로 우리나라 일곱 번째 대통령을 역임한 지도자이었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종필 국무총리와 함께 3김 시대의 한 축이었던 지도자로 세인들에게 학실이 기억될 민주 투사이었다.
지난주 14일 49제가 지나갔기에 산소의 치장도 마무리 되었겠지 하고 들렀으나 아직 조경이 마무리 되지 않은 상태에서 참배객들의 조문을 받고 있었다.
현충원의 납골묘당인 충혼당 왼편에 있는 제3 장군 묘역 옆으로 언덕 위에 자리한 묘소는 풍수상으로 공작 날개에 해당하는 지형이라고 하였다.
이승만대통령을 위시하여 박정희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의 묘소는 안온한 위치에 있는 데에 반하여 김영삼 대통령의 묘소는 지형상으로 바람 막이가 없는 높은 지역으로 산소에 오르는 돌계단이 92계단을 기억자로 오르는 자리여서 노약한 사람들의 참배는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적으로 지형이 높으나 조망권은 당연히 좋아 한강과 함께 팔당의 조경이 한눈으로 들어오는 좋은 곳이었다.
이곳 동작동은 조선조 중종의 후궁이며 선조의 할머니인 창빈 안씨(1499~1547)의 묘역으로 조선조의 제왕들이 이 후궁의 후손들로 왕통이 이어진 명당이다.
창빈 안씨는 중종 2년(1507) 9살의 나이에 궁녀로 들어갔으며, 생김새가 단정하고 행동이 정숙하였다.
20세에 중종(1488~1544)의 총애를 입게 되어 중종과의 사이에서 영양군과 덕흥대원군, 그리고 정신옹주를 낳았다.
원래 창빈안씨의 묘는 양주 장흥 땅에 있었으나 다음해에 현재의 자리인 동작동 국립묘지 안으로 옮겨졌다.
묘 왼쪽으로는 숙종 9년(1683)에 세운 신도비가 세워져 있으며 비문은 신정(申晸 1628~1687)이 지었고 글씨는 이정영(李正英 1616~1686)이 썼다.
이런 명당의 자리에 1빈(嬪) 4통(統)의 영면지가 되어 후손 만대에 길이 보존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