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오나 눈이오나 사시 사철
우리들의 희망과 꿈을 배달하던
빨간 자전거를 탄 우체부 아저씨들은 다 어디로 갔는 가 ?
우리 어렸을 적, 그래봐야 수십년전인 것을
우체부 아저씨하면 친근하고 마음좋고
왠지, 뭔가 희망을 배달하고 좋은 소식을 가지고 전해주는
그래서 우리들의 꿈과 소망을 배달하던 사람이였었다.
멀리 미지의 세계에 살고 있는
낯선 이성친구 얼굴도 모르는 소년 소녀의
꿈을 배달해주던 그런 사람.
이른 봄날 기쁜소식을 전해준다는 제비 모양
마크를 새긴 빨간자전거를 타고 갈색 큰 가방을 걸고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다니던 우체부 아저씨.
그 시절 우체부 아저씨를 보면 그리도 반가웠었다.
혹시 내가 보낸 펜팔편지가 오나 안오나
우체부를 기다리던 소년 소녀들도 많았고
자식이 군에 간 부모들은 혹시라도 군대에 간 아들한테서
소식이 오려나 하고 편지를 기다리는 아주머니들 ~~~
또 멀리 타국 중동에 돈벌러 가신 남편이나
아빠의 편지를 기다리는 어린이들 ~
그리고 학교 시험을보고 합격통지서나 회사 입사 시험을 보고
고향에 내려와 잠시 쉬면서 합격 통지서를 기다리던 사람
모두가 설레이는 희망을 가슴에 안고 먼 발치에서
빨간색 자전거를 타고 " ㅇㅇ 씨 편지요" 하는
우체부 아저씨가 오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많았다.
도회지에서도 그랬을 것이고
산골 처녀들도 도회지로 돈별러 간 사모하던 총각에게서
오는 편지를 우체부가 가져 오지 않을 까 ?
며칠을 기다리기도 했었을 것이다.
이런 반가운 편지 말고도 우체부 아저씨는
누구네 누가 죽었다고
알려오는 슬픈 부고장도 배달하였다.
가끔씩 예쁜 선물도 배달하여
많은 사람들의 가슴 설레게도 하였던 것이다.
그 시절 소포가 별로 없던 시절이라 소포를 받는 사람이라면
무슨 대단한 선물이라도 받은 냥 가슴이 두근 거리며
소포를 받아들고 한참을
있다가 뜯어 보곤했던 시절 ~~~
연말이면 크리스 마스 카드가 주로 많았고
신년인사 편지 연하장이 많았었다.
가끔씩 어려운 한자를 써서 한자를 잘 모르는
우체부 아저씨들은 동네에서
한문을 잘 아시는 분들을 찾아가서
누구네 편지 인가를 물어서 배달도 하곤 하였으며
영어로 온 편지가 있으면 대학을 나왔거나
고등학생에게도 물어서 주인을 찾아주곤 하였다.
그래도 그게 하나도 이상할 것도 없었고
모두들 우체부를 고맙고 좋은 일 하는 사람으로 알고
식사 때가 되면 바쁘다고 해도 꼭 밥을 먹여서 보내고
밤늦게라도 배달하면 고생하신다고
저녁을 꼭 먹여서 보내려고 하였다.
어디 그뿐인가 농작물을 수확하다가도 우체부아저씨가
지나가면 한보따리씩 싸서주곤하였다.
여름에 열무김치며 참깨 과일 등 ~~~
농사철 들에서 일하다 새참을 먹다가도 우체부가 지나가면
꼭 붙잡아 앉히고선 음식이나 막걸리
한사발이라도 먹여서 보내곤 하였다.
그런 아름다운 모습을 지금은 볼 수가 없는 시절로 변하였다.
그 때 그시절 누군가에게 편지를 쓸 때면
연필로 많이 썼었다.
볼펜이 나와서 우리가 쓰게 된것이 60년대 말
모나미라는 회사에서 처음 볼펜을 만들어 공급하면서
우리 국민들이 연필처럼 깎거나 쓰다가 부러지지도 않고
그냥 아무때나 쓰고 지워지지도 않는
볼펜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시절엔 연필을 만드는 기술도 부족하여 편지를 쓸 때면
연필심이 진하게 나오지를 않아서 침을 묻혀가면서
꼭꼭 눌러쓰다보니 한글자 한글자 정성을 안들이고서는
글을 쓸수가 없었다.
그 처럼 한자한자 정성이 깃들인 편지 였던 것이다.
전기가 들어 오지 않았던 시골오두막집에서는
청춘남녀가 마음속에 사모하는 이성친구에게 모두들 잠든
밤에 몰래 일어나서 등잔불아래 밤늦게 까지 자신이 알고 있는
멎진 미사려구를 생각해 내어 쓰면서 밤도 지새웠으리라 ~~~
그렇게 힘들게 마음을 담아서 정성들여
한자 한자 쓴 편지는
그 편지를 받는 사람도 너무나 소중하고 귀하게 여겨
몇번씩을 되풀이 하여 읽었을 것이다.
그 시절 청춘 남녀들 사이엔
또 예쁜 꽃편지봉투와 꽃편지지를
사용하였으며 편지에 껌을 넣어 보내기도 하였다.
향기나는 편지지도 있었고 가을이면 고운 단풍잎을 주워다
예쁜 시를 적어서 보내기도 하였다.
이 처럼 마음을 담고 애정을 담아서 몇시간을 걸려서 쓴 편지이기에
우체부 아저씨들도 어떻게든 편지가 주인에게 배달하려고 애를 썼다.
옛날엔 요즘처럼 주소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서
서울에서도 달동네나 시골의 산골 오두막집에 편지를 배달하려면
십리는 걸어 가야 하는 곳도
있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빨간 자전거를 타고 매일같이
이동네 저동네 산길을 달리던 우체부 아저씨들 ~~~
그러던 것이 문명의 발달로 컴퓨터가 나오고
전화가 나오고 부터는 편지를 쓰는 사람도 사라지고
전화나 인터넷메일을 사용하여 안부를 묻고
소식을 전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렇다고 우체부가 사라진 것도 아니다.
이제는 카드회사 광고지나 대부분의 것들이 광고지이고
장사꾼들의 물건을 배달하는 일로 변질되었다.
그 옛날의 우체부 모습은 찾아 볼 수가 없고 빨간 자전거 대신
오토바이가 가죽가방대신 철재 사각상자를 싣고
누가 말을 걸 사이도 없이 쏜쌀같이 달아나 버리는 지금 ~~~
나는 가끔 골목을 바삐 누비는 오토바이 탄
우체부아저씨를 보면
그 옛날의 모습이 떠올려지곤 뭔가
좀 잃어버린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래서 요즘 젊은이 들의 사랑도 빨리 더워지고
또 그리도 빨리 식어버리는 것인 지 ~
너무나 급속하게 변해가는 지금 세상
모든 것이 빠른것이 좋은 것 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다시는 사랑을 듬뿍담아서 한자 한자 정성들여 쓴
편지를 볼 수가 없는 것일까 ?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서 다 쓰자마자 보내기 눌러 주면
편지는 바로 즉시 상대방에게 도달하여
바로 읽어 볼 수가 있는 세상.
뭔가 기계화되어 가는 세상 우리 마음도 정신 세계도
물질 문명따라서 차갑고 냉정해져 가는 세상
따스한 마음과 정이 그리운 세상 !
그 옛날 우리들 마음은 모두다 어디로 갔는 가 ?
내 순수한 마음도 많이 변해버린 것 같은 지금
난 회색빛 도시에 앉아서 마음은
그 옛날 추억속을 거닐며 산다.
봄이오는 2월에 ~ 엣추억을 떠올리며
- 시인과 나 -
[사진자료는 인터넷에서 퍼왔네요]
노래: Sealed With A Kiss(키스로 봉한 편지) /Brian Hyl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