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년전의 숭례문
정도전이 지은 이름… 태조실록 '속칭 남대문'이라 적은 글씨라고 말하고 있다. 어느 것이 사실인지 알 수 없으나 정난종의 글씨라면 3년 전 화재 때 녹아버린 낙산사의 종명(鐘銘)도 그의 글씨이니 우리 시대와는 악연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도 건재했던...
|
성벽의 총탄자국 6.25 일 때인가? |
|
숭례문을 지나치다보면 조선시대의 장졸들 처럼 문을 지키고있다. |
|
성문의 지리도석 박석의 설명문~ |
천정에 용문늬 그림~ |
예를 숭상한다는 뜻의 숭례문 양녕대군의 글로 알려져있다. |
국보 1호 숭례문 화재로 붕괴되는 모습 (설연휴 마지막날 저녁8시50분) |
|
잿더미로 변해버린 숭례문 2008년2월11일새벽 1시55모습 |
|
2008년 2월 10일 국보1호 숭례문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4가에 위치한 조선 초기 한양의 성문.
국보 제1호. 1396년(태조 5) 창건되어 1448년(세종 30) 개축했다. 조선왕조가 도읍을 한양으로 정한 뒤, 정궁인 경복궁의 방향에 의해 남문인 숭례문이 정문이 되었다. 풍수지리에 의해 편액도 다른 문들과는 달리 세로로 쓰여졌다. 이는 서울 남쪽에 있는 조산(祖山)인 관악산이 북쪽의 조산인 북한산보다 높고 산의 모양도 불꽃이 일렁이는 듯하여 관악산의 화기를 맞불로서 꺾기 위한 것이며, 오행에서 남쪽을 가리키는 예(禮)를 숭상한다는 의미를 담아 숭례문이라 이름했다. 1934년 일본이 '남대문'으로 문화재 지정을 했으나 1996년에 역사 바로세우기 사업의 하나로 일제가 지정한 문화재에 대한 재평가작업을 하면서 '숭례문'으로 명칭을 환원했다. 앞면 5칸, 옆면 2칸의 2층 건물인 이 문은 화강석의 무지개문을 중앙에 둔 거대한 석축 위에 세워져 있으며, 지붕은 우진각지붕으로 상하층 모두가 겹처마로 되어 있고 사래 끝에 토수(吐首)를 달았다. 추녀마루에는 잡상(雜像)과 용두(龍頭)를 두고, 양성한 용마루에는 취두(鷲頭)를 두었다. 2층인 이 문의 구조는 위층의 4모서리 기둥이 아래층까지 내려와 견고하게 결구되었으며, 위층 중앙에는 4개의 고주를 두었다. 다포계 형식의 공포를 얹은 이 문의 위층은 외삼출목, 아래층은 외이출목으로 구성되어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다포계 목조 건축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조선 초기 건축에서 나타나는 특징을 잘 보여준다. 또 1962년 해체복원공사 때 발견된 상량문(上樑文)은 당시의 건축생산체계와 장인조직을 밝히는 데 귀중한 자료이다. 현존하는 성문 중 규모가 가장 크며 조선 초기 다포계 양식을 대표하는 건물이다 |
2008년 2월 10일 숭례문 화제~ 10일 오후 8시 50분께 서울 중구 남대문로 4가 국보 숭례문에 불이 났다.
남대문시장 쪽 누각에서 시작된 불은 지금 이 시간에도 계속 불타고 있다.
YTN보도에 따르면 불이 나자 중부소방서 등 각 소방서에서 긴급출동한 30여대의 소방차가 진화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숭례문에는 조명용 전기시설이 복잡해서 전기 누전에 의한 화재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방화여부도 조사중이다.
소방 당국은 오후 9시55분에 화재 비상 2호, 10시32분에 비상 3호를 각각 발령해 진화에 총력을 기울였으나 지붕 안쪽에서 붙은 불은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
11일 0시25분께 2층 누각 전체가 불길에 휩싸인 숭례문은 화재 발생 4시간여 만인 0시58분께 지붕 뒷면이 붕괴하기 시작해 1시5분께 2층 지붕의 3분의 1 가량이 무너졌다. 이어 새벽 1시55분께는 누각을 받치고 있는 석반만 남긴 채 지붕을 포함한 석조물 전체가 완전히 붕괴됐다. 조선시대 서울도성을 둘러싸고 있던 성곽의 정문으로 원래 이름은 숭례문이며, 남쪽에 있다고 해서 남대문이라고도 불렀다.
현재 서울에 남아 있는 목조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태조 4년(1395)에 짓기 시작하여 태조 7년(1398)에 완성하였다.
지금 있는 건물은 세종 29년(1447)에 고쳐 지은 것인데1961∼1963년해체·수리 때 성종 10년(1479)에도 큰 공사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문은 돌을 높이 쌓아 만든 석축 가운데에 무지개 모양의 홍예문을 두고, 그 위에 앞면 5칸·옆면 2칸 크기로 지은 누각형 2층 건물이다.
지붕은 앞면에서 볼 때 사다리꼴 형태를 하고 있는데, 이러한 지붕을 우진각지붕이라 한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위부분에 장식하여 짠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그 형태가 곡이 심하지 않고 짜임도 건실해 조선 전기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지봉유설의 기록에는 ‘숭례문’이라고 쓴 현판을 양녕대군이 썼다고 한다. 지어진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있는 서울 성곽 중에서 제일 오래된 목조 건축물이다. |
| |
숭례문 화재로 전소‥붕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