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호에 투숙하고 있던 일본인 오카다는 문을 열었다. 사내 하 나가 웃는 얼굴로 서 있었다. "누구시오?" "잠간 방에 들어갔으면 하는데요" 사내가 주머니에서 신분증을 꺼내 보였다. "경찰입 니 다. ' "아니, 경찰이 왜." "잠간이면 됩니다. " 사내가 오카다를 밀치고 방으로 들어섰는데 두 사내가 뒤를 따 랐다. 오카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이것 보시오. 도대체 무슨 일로' "잠자코 앉아 있어. 십분이면 끝나.' 사내가 벽쪽의 의자를 손으로 가리켰으므로 오카다는 주춤대 며 그쪽으로 다가갔다. 사내들의 분위기가 험악했던 것이다. 사내들은 재빠르게 움직 였다. 하나가 곧 창문을 활짝 열어젖혔고 다른 하나는 핸드폰을 들어 누군가에게 연락을 했다. 오카다가 다시 입을 열려다가 문쪽에 서 있는 사내의 눈빛을 보고는 침만 삼켰다. 핸드폰으로 통화를 끝낸 사내가 열린 창으 로 다가갔을 때였다. 오카다의 두 눈이 휘등그래졌다. 창 밖 허공에서 사람의 두 다 리가 흔들거리며 내려왔던 것이다. 그리고 곧 사내의 온몸이 드 러났다. 허리를 밧줄로 묶은 사내였다. 사내들이 그의 몸을 잡고 방 안으로 끌어들인 순간 오카다는 저도 모르게 긴 숨을 뱉었다. 이곳은 십칠층인 것이다. 허리의 밧줄을 푼 사내가 힐끗 오카 다를 보았다. 그러자 사내 하나가 오카다의 어깨를 가볍게 쳤다. "오카다 씨, 가만 계시다가 누가 묻거든 보신 그대로 말씀해 주 셔도 됩니다. " 건성으로 머리를 끄덕인 오카다를 향해 그가 이를 드러내고 웃 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소란을 피우지는 말아 주시오. 그땐 당신의 생명이 위험합니다. " 사내들이 몰려 나가자 오카다는 오늘 밤에 체크아웃을 해야겠 다고 생각했다. 이 방을 떠나는 것이 상책인 것이다. 다음날 아침 일찍 방으로 찾아온 허드슨은 살피는 듯한 시선으 로 모간을 보았다. "모간, 정말 어젯밤에 아무 일도 없었소?" "글쎄, 아무 일도 없었다니까 그러네" 모간이 짜증을 냈다. "도대체 왜들 이러는 거야? 어젯밤부터.' "호크가 그러던데,당신이 이준석이한테 잡힌 것 같다고.' "그럼 내가 이렇게 멀정하게 앉아 있겠소? 이마에 구멍이 뚫려 죽었겠지, 뉴만처 럼." "그러면 왜 이준석의 어머니를 풀어준 거요?그것도 쫓기는 사 람처럼.' "한국 경찰이나 정보국이 눈치채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야.' 모간이 헝클어진 머리를 손가락으로 쓸어올렸다. "허드슨, 우리는 함정에 빠졌어. 차라리 이준석이를 미국에서 처리하는 것이 나을 뻔했어.' '빌어먹을, 이제야 실수를 인정하는군, 그래." 혀를 찬 허드슨이 모간을 노려보았다. '모간,군수산업체의 거물 다섯 명이 서울의 호텔방에 박혀 불 안에 떨고 있어. 어젯밤 당신의 이 방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는 모르지만 우린 오늘 귀국하겠어." 그러자 모간이 머리를 저었다. "허드슨,그것이 뜻대로 안될 거야_내가 말했지 않아?우린 함 정에 빠졌다고. CIA와 한국 정보국이 이준석과 한패란 말이야." 허드슨이 이준석의 전화를 받은 것은 모간의 방에서 돌아온 직 후였다. "허드슨,내 말을 잊은 것은 아니겠지? 한국 국방부에 육천만 달러를 돌려주는 것하고 네가 하마니 에게 무기를 팔아 얻은 이득 금 사천만 달러를 나한테 게워내는 일 말이다. " 이준석이 미처 이쪽에서 대꾸할 여유도 주지 않고 말을 이었 다. "어제 모 간하고는 합의했어.허드슨,너한테 강요하지는 않겠다. 만일 싫다면 네 자료를 CNN에 넘길 테니까.' '검겨라, 이 자식아." 얼굴을 붉힌 허드슨이 으르렁대듯 말했다. "그것을 누가 믿어줄 것 같으냐?" '그렇다면 할 수 없지. 전화 끊는다. " "잠간만." 허드슨이 이를 악물었다. "이봐, 모간이 합의했다고 그랬나?" "그렇다. 확인해도 좋아, 허드슨." '내 마음이 또 변했어.허드슨,넌 한국 국방부에 내는 건 별도 로 하고 나한테 일억 달러를 더 내야겠다. 네가내 신경을 건드렸 기 때문이야." "01 7uf~tl." '내일 아침까지 결정해라. 만일 그때까지 결정이 안된다면 너 와는 끝이다. " 전화가 끊겼으므로 허드슨은 전화기를 내동댕이쳤다. 오늘 중으로 한국을 떠나려는 계획은 취소해야 될 것이었다. 어쨌든 모간의 말이 맞아 떨어진 것이다. 소공동의 사무실을 나온 워렌은 주차장으로 향했다. 오후 여섯 시쯤이어서 이미 주위는 어두웠고 습기를 띤 바람이 불고 있었 다. 눈이 올 것 같은 날씨였다. "빌어먹을, 좨 출구만.' 혼잣소리로 투덜댄 그는 주차장 구석에 세워진 P년형 링컨 컨 티넨탈로 다가갔다. 육중한 검정색 차체에 건물의 불빛이 반사되 고 있었다. 그가 막 차의 문을 연 순간이었다. 주춤 몸을 굳힌 워렌은 반쯤 머리를 돌려 뒤쪽을 바라봤다. 다 음 순간 그는 털썩 땅바닥에 무릎을 器었고 이마로 차체를 들이 받았다가 뒤로 넘어졌다. 주차장에 누운 그의 시선은 밤하늘을 향하고 있었으나 초점이 잡혀 있지 않았다. 바우만이 워렌의 피살 소식을 들은 것은 그로부터 십분쯤 후였 는데 대사관을 막 나오던 중이었다. 핸드폰의 수화기에서 울리는 부하의 목소리는 흥분되어 있었 다 "시체는 지금 제가 H군 병원으로 후송중입니다. 뒤에서 심장을 두 발 쏘았습니다. ' "이봐, 진정해 ! 머레이 !" 차의 가속기를 밟으면서 바우만도 소리쳤다. '내가 지금 병원으로 가겠다!" 군수산업체의 해결사들의 짓이다. 바우만은 이를 악물었다. 그 놈들은 이제 한국에서 CIA에 선전포고를 했다. "호크, 이 자식 !" 해결사들의 보스 호크가 통제불능의 사내라는 것은 알고 있었 다 그러나 모간이 개입되었는지는 알아내 고야 말 것이다. 차가 신호에 걸렸으므로 바우만은 정신이 난 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퇴근 시간이어서 도로에는 차량이 가득 차 있었다. 핸드폰을 집 어든 그가 다이얼을 눌렀다. 곧 신호가 떨어졌고 사내가 응답했 다. 이준석이다. 그가 입을 열었다. '대위, 워렌이 피격당해 죽었소" 본부보다 이준석에게 먼저 알려줘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게 무슨 말이오?" 와락 긴장한 모간이 전화기를 움켜쥐었다. '내가 그런 지시를 할 것 같소? 날 어떻게 보고 하는 소리야?" "하지만 모간 씨,워렌을 저격한 것은 당신들의 해결사인 것이 림없습니다. " 단정하듯 말한 사내는 CIA국장 코넬이다. 그가 냉랭한 목소리 로 말을 이었다. '모간 씨,당신들이 무엇 때문에 서울에 갔는지는 알 수 없지만 문제가 심각해졌어요 우린 그놈을 잡아내고야 말 것이오." "그거야 당신 뜻대로 하시오." '내 말뜻을 아직 이해하지 못하신 것 같은데. 이제 CD는 당신 들을 보호할 수 없다는 겁니다. " "빌어먹을,우린 엄청난 세금을 내고 있는 미국 시민이야. 당신, 똑바로 행동하지 않으면 그 자리에 붙어있기 힘들 거야." 모간이 소리치듯 말했으나 이미 저쪽의 전화는 끊어져 있었다. 모간이 허드슨과 세 명의 일행을 부른 것은 잠시 후였다. CIA요원 워렌의 피살과 CIA국장과의 통화내용을 말해준 모간 이 충혈된 눈으로 그들을 둘러보았다. "호크가 한 짓 같소 이농까지 우리의 덜미를 잡고 있峯" "도대체 그놈이 왜?' 레이더 장비 제조회사인 크루즈 산업 회장 보스코가 묻자 허드 슨이 혀를 찼다. '그야 뻔하지 않소?그놈은 이준석에게 둘도 없는 친구인 커티 스를 잃었어.그래서 이준석과 친한 워렌을 먼저 없앤 거야." 보스코가 모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모간, 호크는 지금 어디 있소?" "어제부터 연락이 끊겼소." 입맛을 다신 모간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서 미국에 연락을 했소 호크를 대신해서 우리를 경호할 팀을 이끌고 곧 누가 올 것이오." "그게 누구요?" 보스코가 물었으나 모간이 화제를 돌렸다. '우리 순서대로 문제를 해결합시다. 난 이준석과 합의를 했소. 여기 있는 허드슨 씨도 한 것 같고.' 모간이 턱으로 옆에 앉은 허드슨을 가리키자 모두의 시선이 그 에게로 모였다. 쓴웃음을 지은 허드슨이 그들을 차례로 臺어보았 다. '그런데 나하고 모간만 합의한 것이 아닌 것 같은데.당신들한 테 그놈이 연락을 안했을 리가 없어. 안 그렇소?" 그러자 보스코가 먼저 시선을 돌렸고 나머지 두 사내는 대답하 지 않았다. 허드슨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군, 모두 합의했군." "놀랍구만." 찌푸린 표정의 모간이 자리에서 일어나 위스키 병을 들고 왔다. "당신들은 제각기 살 길을 찾아 발빠르게 뛰었군 그래, 그것도 모르고 나만 머리를 싸매고 있었어." "모간, 당신이 한 일은 아무것도 없어." 잠수함 장비 제조회사 사장인 코넬리가 차갑게 말했다. "우리를 한국으로 끌고 온 것이 당신의 결정적인 실수요" "빌어먹을,닥쳐! 코넬리,우리가 미국으로 그놈을 늘어 들였다 면 벌써 우리는 매장당했어! 한국이나 되니까 이런 식으로 합의 를 보고 끝낼 수 있었던 거야!" 모간이 으르렁대듯 말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으므로 그들은 모두 긴장했다. 전화기를 든 모간이 긴장했다. 호크의 목소리가 울려나온 것이 다. "모간 씨, 미국에서 슬레이터를 재빨리 부르셨더군요." 빈정거리는 말투였다. '1하고의 계약은 파기된 모양이지요?" "호크, 넌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거냐?" "무슨 짓이라니?" "CIA에서는 널 워렌의 살해 용의자로 수배했어.그건 네가 한 짓이냐?" "워렌이 죽었다니. 난 처음 듣는 말이오, 모간 씨." 호크의 목소리는 놀란 듯 조금 굵어졌다. '내가 벌집을 일부러 건드릴 성격 같소?" '너 때문에 우리 입장도 난처해 졌어." "그래서 슬레이터를 부르셨군." 차갑게 말을 뱉은 호크가 전화를 끊었으므로 모간이 투덜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