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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스님 화엄경 입법계품 제71강 枝末法會, 毘目瞿沙仙人 (大方廣佛華嚴經 解釋)>
(3) 仙人의 菩提心認定
時에 毘目瞿沙가 告群仙言하사대 善男子야 若有能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이면 必當成就一切智道니 此善男子가 已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하니 當淨一切佛功德地로다
3. 無勝幢解脫의 境界
時에 毘目瞿沙가 告善財童子言하사대 善男子야 我得菩薩無勝幢解脫호라 善財가 白言호대 聖者여 無勝幢解脫이 境界云何니잇고 時에 毘目仙人이 卽申右手하사 摩善財頂하고 執善財手하신대 卽時善財가 自見其身이 往十方十佛刹微塵數世界中하고 到十佛刹微塵數諸佛所하야 見彼佛刹과 及其衆會와 諸佛相好의 種種莊嚴하며 亦聞彼佛이 隨諸衆生心之所樂하고 而演說法하고 一文一句를 皆悉通達하야 各別受持하야 無有雜亂하며 亦知彼佛이 以種種解로 淨治諸願하며 亦知彼佛이 以淸淨願으로 成就諸力하며 亦見彼佛의 隨衆生心하야 所現色相하며 亦見彼佛의 大光明網인 種種諸色이 淸淨圓滿하며 亦知彼佛의 無碍智慧大光明力하며 又自見身이 於諸佛所에 經一日夜와 或七日夜와 半月一月과 一年十年과 百年千年하며 或經億年과 或阿庾多億年과 或那由他億年하며 或經半劫하며 或經一劫百劫千劫과 或百千億과 乃至不可說不可說佛刹微塵數劫하니라 爾時에 善財童子가 爲菩薩無勝幢解脫智光明照故로 得毘盧遮那藏三昧光明하며 爲無盡智解脫三昧光明照故로 得普攝諸方陀羅尼光明하며 爲金剛輪陀羅尼門光明照故로 得極淸淨智慧心三昧光明하며 爲普門莊嚴藏般若波羅蜜光明照故로 得佛虛空藏輪三昧光明하며 爲一切佛法輪三昧光明照故로 得三世無盡智三昧光明이러니 時彼仙人이 放善財手하신대 善財童子가 卽自見身이 還在本處어늘 時彼仙人이 告善財言하사대 善男子야 汝憶念耶아 善財가 言호대 唯라 此是聖者善知識力이니이다
4. 讚嘆勝德
仙人이 言하사대 善男子야 我唯知此菩薩無勝幢解脫이어니와 如諸菩薩摩訶薩은 成就一切殊勝三昧하야 於一切時에 而得自在하며 於一念頃에 出生諸佛無量智慧하며 以佛智燈으로 而爲莊嚴하야 普照世間하며 一念普入三世境界하며 分形遍往十方國土하며 智身普入一切法界하며 隨衆生心하야 普現其前하며 觀其根行하야 而爲利益하며 放淨光明하야 甚可愛樂이니 而我云何能知能說彼功德行과 彼殊勝願과 彼莊嚴刹과 彼智境界와 彼三昧所行과 彼神通變化와 彼解脫遊戱와 彼身相差別과 彼音聲淸淨과 彼智慧光明이리오
5. 勸誘他師
善男子야 於此南方에 有一聚落하니 名伊沙那요 有婆羅門하니 名曰勝熱이니 汝詣彼問호대 菩薩이 云何學菩薩行이며 修菩薩道리잇고하라 時에 善財童子가 歡喜踊躍하야 頂禮其足하며 遶無數帀하야 殷勤瞻仰하고 辭退南行하니라
오늘은 화엄경 69쪽 3번, 선인(仙人)의 보리심인정(菩提心認定)이라고 하는 과목부터 할 차례입니다.
비목구사선(毘目瞿沙仙)이라고 하는 선지식을 선재동자가 친견하는 중이지요. 이 선인은 신선인데 많은 제자들을 거느리고 있으며 그 제자들에게 이러이러한 것을 말하고, 또 그 제자들이 선재동자를 찬탄하는 그런 이야기가 지난 시간까지 이어졌었습니다.
선재동자의 훌륭함을 비목구사선인이 자기의 제자, 자기의 대중에게 이야기를 해 줬지요. 그러니까 그 대중들이 선재동자를 찬탄하고 또 그들이 이제 선재동자가 보리심을 발한데 대해서 인정을 해 주는, 그런 내용이 [선인의 보리심 인정]이라고 하는 제목 안에 들어 있지요.
시(時)에 비목구사(毘目瞿沙)가, 그때에 비목구사선인이, 휴사비목구사선이라고 화엄경 약찬게에 나오고 있는 그 비목구사선인이지요.
고군선언(告群仙言)하사대, 여러 신선들, 자기의 제자들이라고 할까요. 그들에게 일러 말하되
선남자(善男子)야 약유능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若有能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이면, 만약에 어떤 이가 능히 보리심을 발하면, 최상의 깨달음에 대한 마음을 내었다고 한다면, 그 마음 하나로서
필당성취일체지도(必當成就一切智道)니, 그 마음은 반드시 일체 지도를 성취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 일체지도(一切智道)라고 하는 말은 지혜(智慧)의 도(道)라고 하는 그런 뜻입니다. 불교에서는 일체지(一切智), 일체종지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지혜가 어디에 막힌 데가 있으면 불교적인 입장에서는 좋은 지혜라고 할 수가 없지요. 완전한 지혜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야기 할 때마다 일체지라고 해요. 일체의 것을 다 통달하여서 어떤 문제이던지 막힘없이 그 실상을 꿰뚫어 안다는 그런 뜻에서 일체지라는 말을 써요.
여기서 일체지도라고 하는 도(道)자는 지혜 그 자체를 말하지요. 지혜 그 자체가 이미 도이니까요. 그래서 포함해서 하는 말인데 우리가 지혜를 제대로 갖추려고 한다면 깨달음에 대한 마음, 보리심을 발해야만 깨달음을 제대로 갖출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보통 우리가 지혜라고 하는 말은 일종의 그저 꾀라고나 할지, 조그마한 지식이라고나 할지, 그런 것 밖에는 상상할 수가 없지요. 그러나 경전 상에서 하는 지도(智道), 일체지(一切智) 이런 말은 인생을 포함하여 정말 모든 존재에 대한 실상을 꿰뚫어 알겠다고 하는 그런 의미로 쓰입니다. 깨달음의 지혜를 여기서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야 완벽한 지혜가 나올 수 있는 것이지요.
차선남자(此善男子)가, 이 선남자가, 이 선남자라고 하는 것은 선재동자를 가리키는 것이지요. 이 선재동자는
이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已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하니, 최상의 깨달음에 대한 마음을 냈으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깨달음 중에서도 최상의 깨달음입니다. 뭐 시시한 깨달음이 아니고 정말 완전무결한 깨달음에 대한 마음을 냈다는 거지요.
그래서 선재동자는
당정일체불공덕지(當淨一切佛功德地)로다.
그러면 결국 또 어떤 표현이 가능한가 하면, 모든 부처님의 공덕의 경지 공덕의 땅을 마땅히 청정하게 하고 훌륭하게 꾸밀 수가 있다고 하는 그런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부처님의 공덕이 이 사람의 공덕이 되고, 또 부처님이나 얻을 수 있는 일체 지혜를 성취하게 되는, 그 두 가지 조건을 갖출 수 있는 것이 바로 보리심이라는 것입니다. 보리심을 발함으로써 그게 가능해 진다는 것입니다.
그 위에 다른 마음을 가지고는 저런 것은 우리가 감히 엄두를 못 낸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보리심을 발한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됩니다.
우리가 마음을 내는 일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요. 사람이 마음을 내는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닌데 그 중에서도 가장 훌륭한 마음을 뭐라고 해야 할까요?
누구를 좀 도와줘야겠다, 자기의 어떤 부족한 면을 보충하기 위해서 공부를 좀 해야겠다는 등 여러 가지 마음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하루에도 몇 가지 마음을 내지요.
하루 가운데 ‘내가 낸 마음 중에 가장 훌륭한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저녁에 이렇게 한 번 생각해 볼 수도 있어요. 오늘 내가 여러 수백 가지 수천 가지 마음을 내었는데 그 중에서 어떤 마음이 가장 예쁜 마음일까? 가장 훌륭한 마음이었을까? 하는 것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일생을 통해서도 우리가 또 수많은 마음을 내었는데 그럼 그 가운데는 또 어떤 마음이 제일 훌륭할까, 이렇게도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보리심을 발(發)한다고 하는 것은 최상의 깨달음에 대한 마음을 낸다고 하는 것인데, 이것은 인간으로써 마음을 낼 수 있는 여러 가지 마음 중에서 최상의 마음, 가장 훌륭한 마음이지요. 그 마음은 지혜니 부처의 경지니 하는 것은 두 말할 것도 없지만 일체중생을 위함에 있어서도 가장 가치 있게 위한다는 것이지요.
중생을 위하는 것에도 여러 가지가 있어요. ‘나는 중생을 위함에 크게 보태줄 것은 없고 해치지는 않겠다.’ 하는 그것도 중생을 위하는 마음일 수 있어요. 남에게 손해만 안 끼쳐도 그 사람은 사실 잘 사는 거지요.
그런 것을 위시해서 여러 가지 마음이 있을 수 있는데 뭐 물질적인 것을 돕는 것도 좋지만 일체중생의 지혜의 눈을 열게 해 주리라는 그런 마음을 한 번쯤 낸다고 하는 것은 마음 중에서도 가장 훌륭한 마음이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지금 공부하고 있는 이 화엄경 책 안에는 보리심을 발한다고 하는 게 수백 번, 수천 번이 아마 나오지요?
특히 선재동자의 화두가 발보리심(發菩提心)입니다. 보리심을 발하는 것입니다.
그다음 무승당해탈(無勝幢解脫)의 경계(境界)라 해 가지고 비목구사선인이 자기가 깨달은 경지를 ‘보살의 무승당해탈을 얻음’이라고 해요. 해탈을 얻었는데 해탈의 이름이 무승당해탈입니다. 누가 감히 이길 수 없는 깃발의 해탈, 해석하면 그런 거지요.
그것을 이제 자기가 보여줍니다. 이건 설명하는 게 아니고 신통력으로 보여줍니다. 선재동자의 이마를 만지고, 또 한 손으로는 선재동자의 손을 잡고 그렇게 함으로써 선재동자는 그야말로 어떤 요술에 걸린 것같이 이 분이 보여주는 어마어마한 광경을 보게 되는 그런 이야기가 여기에서는 나오게 됩니다.
시(時)에 비목구사(毘目瞿沙)가, 그때에 비목구사가
고선재동자언(告善財童子言)하사대 선남자(善男子)야, 선재동자에게 고해 말하기를 선남자야,
아득보살무승당해탈(我得菩薩無勝幢解脫)호라, 나는 보살의 무승당해탈을 얻었노라.
누가 감히 이길 수 없는 그런 깃발의 해탈, 이런 말입니다. 그것을 얻었다고 이제 말을 하는 거지요.
선재(善財)가 백언(白言)호대, 성자(聖者)여, 선재가 말하되 성자시여, 무승당해탈(無勝幢解脫)이 경계운하(境界云何)니잇고, 무승당해탈의 경계가 어떻습니까?
당신이 무승당해탈을 얻었다고 하는데 그 무승당해탈의 경지가 어떤 것인지 좀 보여주십시오, 라고 합니다.
시(時)에 비목선인(毘目仙人)이, 그 때에 비목구사선인이
즉신우수(卽申右手)하사, 오른쪽 손을 펴서
마선재정(摩善財頂)하고, 선재동자의 이마를 만지고
집선재수(執善財手)하신대, 선재동자의 손을 잡으니
즉시선재(卽時善財)가 자견기신(自見其身)이, 그 순간 선재동자가 스스로 보게 됩니다. 자기의 몸이 온 시방세계의 부처님이 계신 곳에 다 가게 되어있고, 거기에 가 있고, 또 부처님이 어떤 모습을 보여주며 어떤 설법을 하시는 지를 전부 보고 전부 듣고는 그 내용을 다 알고, 전부 기억하고 하는 그런 상황이 벌어집니다.
이런 식으로 누가 공부를 시켜주는 사람이 있으면 참 쉽고 좋겠는데 이런 선지식이 없는 건지, 그런 것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능력이 부족한 것인지 그렇지를 못하지요.
자견기신(自見其身)이라고 했어요. 스스로 봤다. 자기의 그 몸이
왕시방십불찰미진수세계중(往十方十佛刹微塵數世界中)하고, 시방의 십불찰미진수 세계에 가 있고
도십불찰미진수제불소(到十佛刹微塵數諸佛所)하야, 십불찰미진수 부처님 처소에 또 자기 몸이 가 있어요.
견피불찰(見彼佛刹)과, 저 부처님 세계와
급기회중(及其衆會)과, 그 부처님이 계시는 곳을 둘러싸고 있는 많은 대중과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모습을 중회(衆會)라고 해요. 무리중(衆) 모일 회(會)자 이지요.
부처님 앞에 모여 있는 그런 이들도 보고
제불상호(諸佛相好)의 종종장엄(種種莊嚴)하며, 거룩하신 모든 부처님들의 모습과 가지가지 장엄들을 다 보며
역문피불(亦聞彼佛)이 수제중생심지소락(隨諸衆生心之所樂)하고, 그 부처님이 중생의 마음에 즐겨하는 바를 따라
이연설법(而演說法)하고, 설법하는 것을 다 듣게 되며
일문일구(一文一句)를 개실통달(皆悉通達)하야, 일문일구를 전부 다 통달하여,
부처님이 하신 말씀과 그 말씀의 뜻을 전부 듣고 전부 통달해서
각별수지(各別受持)하야, 각각 하나하나 전부 받아 가지고서
무유잡란(無有雜亂)하며, 여기서 들었던가 여기서 들었던가 뒤섞이지 않으며,
여기 저기 쫓아다니며 법문 많이 들으면 어디서 들은 소리인지 아니면 T.V에서 본 소리인지, 어디 절에 가서 들은 소리인지, 교회 가서 들은 소리인지 도대체가 뒤섞여서 앞뒤 분별이 안 되지요.
그 분별을 정확하게 하는 것이 중요해요. 모두 정리가 안 되어서 애를 먹잖아요. 무유잡란(無有雜亂)이란 말이 그런 말입니다.
우리는 두루뭉실 이리저리 함부로 하면서도 무심하게 넘기지요.
머리는 자기가 관리하면 관리가 좀 됩니다. 정확하게 기억하려고 하고, 정확하게 표현하려고 하고, 어디서 들은 것인지 그 때의 그 정황을 정확하게 자기가 이해하고 정확하게 전달하려고 하는 그런 마음가짐을 가진 사람은 그게 가능해요. 금방 는다고요.
그런데 습관이 그렇지요. ‘누가 말했든지 간에 대충 말만 맞으면 되지’하고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 두루뭉실이 되어버리지요. 불교에서는 그런 거 좋아하지 않아요. 여기 보면 무유잡란(無有雜亂)이라, 뒤섞이면 안 된다고 했지요.
선재동자는 비목구사선인의 그런 신통력을 통해서 여러 부처님의 많은 법문을 듣습니다. 그렇게 순식간에 손으로 이마 한 번 만지는 그 순간에 여러 부처님의 모든 법문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뒤섞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잡란하지 않습니다.
역지피불(亦知彼佛)이 이종종해(以種種解)로, 또한 저 부처님의 가지가지 이해로써
정치제원(淨治諸願)하며, 모든 원을 잘 이루게 해 주는 것을 알고
역지피불(亦知彼佛)이 이청정원(以淸淨願)으로 성취제력(成就諸力)하며, 또 저 부처님께서 청정한 원으로써 모든 힘을 다 성취시켜 주는 것을 알고
역견피불(亦見彼佛)의 수중생심(隨衆生心)하야, 저 부처님이 중생들의 마음을 따라서 보시는 것을 알며
보십시오, 부처님은 항상 중생들의 마음을 따르는 거예요. 저 앞에서도 중생들의 마음에 좋아하는 바를 따라서 설법한다고 했어요. 그렇다고 중생들이 좋아하는 것을 덮어놓고 다 따라 주시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분위기에 맞춰서 따라준다는 그런 정도로 우리가 이해해야 되겠지요.
중생의 마음을 따라서
소현색상(所現色相)하며, 나타나는 색상을 다 보게 되며
역견피불(亦見彼佛)의 대광명망(大光明網)인, 시방의 부처님의 큰 광명의 망인,
광명이 말하자면 그물처럼 쫙 펼쳐졌다는 뜻에서 그물 망(網)자를 쓰지요.
종종제색(種種諸色)이 청정원만(淸淨圓滿)하며, 광명의 그물의 종종 제색이 청정해서 원만함을 보며
역지피불(亦知彼佛)의 무애지혜대광명력(無碍智慧大光明力)하며, 저 부처님의 걸림 없는 큰 광명의 힘을 또 알며.
여기까지가 한 단락이지요.
그것만 아는 것이 아니라 또 안다는 거지요. 이야기를 조금 바꾸어서 자기의 몸이 이렇게 되어 있는 것을 본다는 거지요. 앞에서는 공간적인 어떤 상황을 이야기 했다고 보면 돼요. 지금부터는 시간적인 상황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우자견신(又自見身)이 어제불소(於諸佛所)에, 몸이 부처님 처소에서
경일일야(經一日夜)와, 하루의 밤낮을 지내고
혹칠일야(或七日夜)와, 혹은 칠 일야를 지내고
반월일월(半月一月)과 일년십년(一年十年)과, 또 반 달과 한 달을 지내고, 일년 십년을 지내고
백년천년(百年千年)하며, 백년을 지내고 천 년을 지낸다는 거지요. 경(經)자는 그런 말입니다.
그럼 부처님 회상에서 지내면서 하루를 지내기도 하고, 칠 일을 지내기도 하고, 반 달, 한 달을 지내기도 하고 일년 십년 백년 천년, 그 뿐이 아니라
혹경억년(或經億年)과 혹아유다억년(或阿庾多億年)과 혹나유타억년(或那由他億年)하며 혹경반겁(或經半劫)하며 혹경일겁백겁천겁(或經一劫百劫千劫)과 혹백천억(或百千億)과 내지불가설부가설불찰미진수겁(乃至不可說不可說佛刹微塵數劫)을 지내니라.
법성게를 잘 외고 계시지요. 선재동자의 이마에 손을 얹은 그 순간이 얼마나 되겠어요? 찰나에요. 그럼 그게 뭐지요? 일념즉시무량겁(一念卽是無量劫) 무량원겁즉일념(無量遠劫卽一念)이지요.
또 선재동자의 손을 한 번 잡는 자그마한 사건, 자그마한 일 속에서 시방세계가 펼쳐지잖아요.
그것은 뭐라고요?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 일체진중역여시(一切塵中亦如是), 모든 많은 것과 작은 것, 모든 작은 것과 많은 것이 전부 알고 보면 원통무애(圓通無碍)하고 자재무애(自在無碍)하게 연관관계를 맺고 있지요. 이것을 법계연기의 도리라고 그래요.
쉽게 이야기하면 공간적으로는 우리가 부산이라고 하는 작은 도시에 이렇게 조그마한 곳에 있으면서 비록 동네에서조차 알아주지 아니 하는 흔하디 흔한 평범한 한 사람에 불과하다손 치더라도 이것은 알고 보면 우주적인 나에요.
전 우주와 함께 하는 나라는, 그런 관계 속에서 내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멍청해서 몰라서 그것이 이해가 안 되는데 부처님의 깨달은 눈으로 보면 모든 존재가 그렇게 되어 있어요.
꽃 한 송이도 우주적인 꽃이에요, 그냥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주의 모든 것과의 관계 속에서 꽃이 있는 거예요.
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한 시간 두 시간 있다고 치면 한 두 시간의 시간은 한량없는 시간과의 연관 관계 속에서 오늘의 한 시간이 있는 거예요. 그게 그냥 한 시간만 딱 떼놓고 ‘이게 한 시간이다’라고 하는 것은 이 세상에 있을 수가 없어요.
그리고 이 우주하고 상관없이 여기 ‘꽃이 한 송이 있다.’ 이것도 있을 수가 없어요. 이 우주의 공기와 물과 모든 그런 관계 속에서 꽃 한 송이가 존재하는 것이지, 꽃 그거 하나만 독립해서 존재할 수도 없고 또 영원한 시간을 빼 놓고 오늘 우리가 보내는 한 두 시간의 내 인생이라는 것이 따로 존재할 수가 없는 거예요. 전부 그런 관계 속에 있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화엄경 속에서 어떤 이치, 이 우주 삼라만상의 존재의 원리를 이야기하는 것 중에 가장 빈번하게 이야기되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 법계 연기에 대한 이야기이지요.
화엄경의 내용을 압축하고 압축한 것이 그래서 법성게 아닙니까?
이 많은 화엄경의 내용을 간단히 압축한 게 기껏해야 700자인가 600자(210자임) 밖에 안 되지요.
아주 압축이 잘 되었다고 역사적으로도 칭찬이 자자한 법성게는 우리나라의 의상대사가 화엄경 공부를 잘 해가지고 그렇게 압축해 가지고 법계도를 돌면서 그것을 외우게 했지요.
부처님의 가르침 중에서 최상의 가르침이 화엄경이지만 그 화엄경을 다 일러줄 수가 없어서 화엄경을 줄이고 줄여서 엑기스를 만들어, 말하자면 이 세상을 떠나는 재를 지낼 때 그것도 마지막 전송하는 그 순간에 비장(秘藏)하고 비장해왔던 선물로써 법성게를 하지요.
그 왜 초재부터 육재까지는 법성게를 안 외다가 마지막 칠재에만 외웁니까? 감추어뒀다가 뒀다가 하지요. 그것도 불공 할 때도 안 외우고 다 지내고 나서 마지막에 떠나보낼 때, 최상 최후의 선물로써 법성게를 들려서 안 보냅니까? 그것을 듣고도 깨닫지 못한다면 그 귀신은 이제 천도할 길이 업는 거예요. 다시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어요.
불교에서 최고로 숭상하는 이치, 최고로 숭상하는 가르침이 화엄경이고, 그 화엄경의 내용을 압축하고 압축하여 법성게를 만들었고, 그럼 돌아가신 분, 내게 가장 소중한 부모님이 떠나가시는 길에 제일 소중하고 값진 것을 선물로 드리는데 그게 뭐냐? 법성게라는 거예요. 이야기기 그리 되어 있어요. 제일 소중한 선물을 비장(秘藏)해 두었다가 주는 거지요.
의식을 제대로 하려면 처음에 관욕할 때 법성게를 한 번 외우지요. 그러고 나서 그 다음에 불공하고 시식한 뒤에 소두에 나가면서 이제 법성게를 여러 번 외지요. 도량을 돌면서 최소한 세 번 이상을 외지요. 그게 이제 최상의 선물입니다.
부처님께서 내리신 최상의 가르침으로써 마지막 비장의 선물로 생각하고 들려드리는 거예요. 그렇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그 내용이 참 심오하지요. 심오한 것이 여기서는 이렇게 우화 비슷하게, 웃기지도 않는 만화도 아닌 이런 이야기로 나오지요.
손을 가지고 이마에 한 번 얹었는데 선재동자는 그 순간에 모든 것을 본다, 이렇게 되어 있거든요.
그리고 모든 시간이 흘러갔다고 되어 있는데 요런 형식의 이야기를 빌어서 화엄경의 내용을 이야기합니다.
화엄경의 내용이란 다른 것이 아니고 우주 삼라만상의 존재원리, 존재의 법칙이지요. 그 존재의 원리를 제대로 알고 깨달을 것 같으면 우리는 말하자면 할 일을 다 한 거지요. 일대사 인연을 마치는 거지요. 인생에서 제일 큰일을 다한 거지요. 이 우주 삼라만상과 내 삶의 근본 실상을 꿰뚫어 아는 것이 되니까 더 이상 바랄 게 없는 그런 내용이지요.
그냥 액면만 보면 좀 이상합니다. 이마에 손 한 번 얹었는데 거기서 그런 현상이 벌어지고 그걸 다 보고, 또 그 수많은 세월이 흘러갔는가 싶지만 여기서는 이런 형식의 이야기를 빌어서 모든 존재와 모든 시간이 원융무애(圓融無碍)하게 연관관계를 맺고 그렇게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인드라망 그물이야기를 잘 하지요? 제석천의 궁전을 덮고 있는 그물은 모든 관계를 또 그렇게 이야기해요. 거기에 수많은 구슬이 달려있는데 그 구슬구슬이 전부 서로를 비추는 거예요. 이쪽에 있는 것은 저쪽을 비추고 저쪽에 있는 것은 이쪽을 비추고, 이쪽만 비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많은 구슬에게 비치고, 다른 많은 구슬은 또 다른 많은 구슬에게 서로서로 비치고 비쳐주고, 이런 이야기가 인드라망이고 제석의 그물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것도 역시 법계연기의 관계, 말하자면 오늘의 이 꽃 한 송이가 우주의 꽃이라는 거지요. 왜 우주의 꽃이냐? 우주의 모든 것과의 관계 속에서 꽃이 하나 존재하는 거지요. 우리들 자신도 마찬가지지요. 나의 한 순간이라고 하는 짧은 시간도 영원한 시간 속에서의 나의 한 순간이라고 하는 그런 관계를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이치를 알 때 마음이 툭 터지고 열리는 것을 우리가 기대할 수가 있는 거지요. 그래서 저 앞에서는 공간적인 것을 이야기 했고, 여기 까지는 시간적인 것을 이야기 했습니다.
내지불가설부가설불찰미진수겁(乃至不可說不可說佛刹微塵數劫)을 지나게 된다.
그렇다고 선재동자에게 실지로 그런 시간이 지나간 것이 아니에요. 머리에 손을 얹었을 때 그 순간 그런 어떤 현상을 맛보게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시(爾時)에 선재동자(善財童子)가 위보살무승당해탈지광명조고(爲菩薩無勝幢解脫智光明照故)로, 이때에 선재동자가 보살의 무승당해탈 지혜의 광명이 밝게 비치게 된 까닭에,
선재동자는 그러한 현상을 보고 또 그 힘을 통해 이런 것을 얻었다는 거예요. 뭘 얻었느냐 하면,
득비로자나장삼매광명(得毘盧遮那藏三昧光明)하며, 비로자나장삼매의 광명을 얻었고
위무진지해탈삼매광명조고(爲無盡智解脫三昧光明照故)로, 또 무진지해탈 삼매의 광명이 명조함이 된 까닭에
무진지(無盡智)라고 하는 것은 다함이 없는 지혜이지요.
득보섭제방다라니광명(得普攝諸方陀羅尼光明)하며, 또 보섭제방다라니광명을 얻었으며,
보섭제방(普攝諸方), 모든 공간 모든 방향 동서남북 내지 시방의 모든 방향을 전부 널리 포섭할 수 있는 그런 다라니 광명을 얻었으며
위금강륜다라니문광명조고(爲金剛輪陀羅尼門光明照故)로, 또 금강륜다라니문 광을 명조함이 된 까닭에,
금강륜은 말하자면 다이아몬드로 법륜을 상징하는 바퀴를 만들어서, 그러니까 불법이 온 세상에 펼쳐간다는 그런 뜻에서 금강륜이라고 해요. 륜(輪)자는 그런 뜻으로 씁니다.
다라니라고 하는 것은 앞에서도 나왔지만 그 속에 모든 것이 다 포함되어 있지요. 그래서 총지(摠持)라고 그러지요. 가지고 있다는 그런 뜻으로 씁니다. 그런 광명의 비춤을 입은 까닭에
득극청정지혜심삼매광명(得極淸淨智慧心三昧光明)하며, 극청정지혜심삼매광명을 얻었으며
지극히 청정한 지혜의 마음삼매의 광명을 얻게 되었으며,
위보문장엄반야바라밀광명조고(爲普門莊嚴藏般若波羅蜜光明照故)로, 보문장엄반야바라밀광명이 명조함을 입은 까닭에
득불허공장륜삼매광명(得佛虛空藏輪三昧光明)하며, 불허공장륜삼매광명을 얻었다.
위일체불법륜삼매광명조고(爲一切佛法輪三昧光明照故)로, 일체불법륜삼매광이 명조함이 입은 까닭에
득삼세무진지삼매광명(得三世無盡智三昧光明)이러니, 삼세무진지삼매광명을 얻었다.
이게 선재동자가 얻은 여러 가지 법인데, 그 법 속에는 주로 광명을 이야기하고, 그 광명은 우리 마음의 밝음을 이야기하고 그것은 결국 지혜를 말하는 것이지요. 표현이 조금 조금씩 달라서 그렇지 내용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시피선인(時彼仙人)이 방선재수(放善財手)하신대, 시에 저 선인이 그 때에 선재의 손을 놓으시니
선재동자(善財童子)가 즉자견신(卽自見身)이 환재본처(還在本處)어늘, 선재가 스스로 자기 몸이 본래 있는 곳, 자기가 앉아서 법문을 듣던 그 자리에 돌아오게 되었고,
시피선인(時彼仙人)이 고선재언(告善財言)하사대, 그때 저 선인이 선재동자에게 말하되
선남자(善男子)야 여억념야(汝憶念耶)아, 선남자야, 그대는 기억하느냐?
내가 신통력으로 머리에 손을 얹고 선재동자의 손을 잡음으로 해서 그 많은 법, 그 많은 도리를 보여준 것에 대해 너는 기억하느냐고 물었어요.
선재(善財)가 언(言)호대 유(唯)라, 선재가 말하되 “예, 기억합니다.”
차시성자선지식력(此是聖者善知識力)이니이다, 이것이야말로 성스러운 성인, 선지식의 힘입니다.
선지식의 힘이라고 말하지요.
53선지식이 이렇게 소개되면서 여러 가지 방법이 나왔지요. 어떤 이들은 말로써 하고 이런 이들은 그냥 이마에 손을 얹으면서 보여주기도 하고, 뭐 여러 가지 방법을 강구하지요.
그 다음에 찬탄승덕(讚嘆勝德)이라, 자기보다 훌륭한 선지식을 여기서 또 칭찬을 합니다.
선인(仙人)이 언(言)하사대 선남자(善男子)야, 선인이 말하되 선남자야,
아유지차보살무승당해탈(我唯知此菩薩無勝幢解脫)이어니와, 나는 오직 이 보살의 무승당해탈만 알거니와
그 밖에는 잘 모른다는 거지요.
여제보살마하살(如諸菩薩摩訶薩)은, 그 외 다른 보살마하살들은
성취일체수승삼매(成就一切殊勝三昧)하야, 일체수승삼매를 성취하여
어일체시(於一切時)에 이득자재(而得自在)하며, 모든 시간에 자재함을 얻어서
우리는 뭐 걸림이 많지요. 구속되는 게 많고요. 정말 자유가 없는 것이 우리 중생들의 삶이에요. 몸이 말을 안 듣기도 하고 여러 가지 조건이 그렇기도 하고, 얼키고 설키어 있는 인간관계 때문에 그렇기도 하고 어쨌든지 간에 부자유하게 사는 것이 우리 인간이에요.
자유를 얻어서
어일념경(於一念頃)에, 한 생각 사이에
출생제불무량지혜(出生諸佛無量智慧)하며, 모든 부처님이 가지고 있는 무량한 지혜를 출생하며,
그것도 한 순간에 출생한다고 했지요.
이불지등(以佛智燈)으로 이위장엄(而爲莊嚴)하야, 부처님의 지혜의 등불로써 장엄을 하여,
지혜만 제대로 갖추고 있으면 그 속에 다 들어있으니까요.
보조세계간(普照世間)하며, 세간을 널리 비추며
일념보입삼세경계(一念普入三世境界)하며, 한 순간에 삼세의 경계에 널리 들어가며,
분형변왕시방국토(分形遍往十方國土)하며, 형상을 나누어 시방국토에 두루두루 가며, 어디 안 가는 데가 없어요.
지신보입일체법계(智身普入一切法界)하며, 지혜의 몸이 일체 법계에 두루두루 들어가며,
수중생심(隨衆生心)하야 보현기전(普現其前)하며, 중생의 마음을 따라서 널리 그 앞에 나타나며
관기근행(觀其根行)하야 이위이익(而爲利益)하며, 그리고 그들의 근기와 행을 잘 관찰하여 그들에게 이익을 주며
방정광명(放淨光明)하야 심가애락(甚可愛樂)이니, 청정한 광명을 놓아 매우 가히 마음에 흡족하게 만듦이니
이아운하능지능설피공덕행(而我云何能知能說彼功德行)과 피수승원(彼殊勝願)과, 피장엄찰(彼莊嚴刹)과 피지경계(彼智境界)와, 피삼매소행(彼三昧所行)과 피신통변화(彼神通變化)와 피해탈유희(彼解脫遊戱)와 피신상차별(彼身相差別)과 피음성청정(彼音聲淸淨)과 피지혜광명(彼智慧光明)이리오.
내가 어떻게 저 보살들의 공덕과 저 수승한 원과 저들의 장엄찰과 저들의 지혜의 경계와 저들의 삼매의 소행과 저들의 신통변화와 저들의 해탈유희와 저들의 몸이 여러 가지로 다른 신상차별과 저들의 음성청정과 저들의 지혜광명을 내가 어찌 능히 알고 설명할 수가 있으리오.
능지능설(能知能說)이리요, 하는 말이 거기까지 설명됩니다.
그런 경지의 보살들의 법은 나는 모른다고 하며 자신은 겸손해 하고 덕을 다른 이에게 미루는 그런 내용이지요.
그리고 이제 권유타사(勸誘他師)라고 해서 다른 선지식을 찾아가라고 권유하는 그런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형식은 같지요.
선남자(善男子)야 어차남방(於此南方)에 유일취락(有一聚落)하니 명이사나(名伊沙那)요 유바라문(有婆羅門)하니 명왈승열(名曰勝熱)이니,
선남자야, 이 남방에는 이름이 이사나라고 하는 마을이 하나 있고 거기에 바라문이 한 사람 있으니 이름이 승열이라.
불교가 생긴 것은 부처님께서 깨달으시면서 생긴 거지만 그 전부터 인도에는 종교가 있었지요. 우리나라에 불교가 들어오기 전에도 토착신앙 우리 민속신앙이 있었듯이 인도에도 바라문교가 있었고 그 나름대로 수행자가 있고 그랬지요. 그런 이들을 대개 바라문이라고 부릅니다.
불교에서는 ‘불교 안에 들어온 사람이 아니다’라고 해서 ‘외도’라고 표현한 경전도 많이 있지요. 그러나 화엄경에서는 최소한도 그런 분별이 없습니다.
여예피문(汝詣彼問)호대 보살(菩薩)이 운하학보살행(云何學菩薩行)이며 수보살도(修菩薩道)리잇고 하라. 너는 거기에 가서 “보살이 어떻게 보살의 행을 배우며 보살의 도를 닦으리잇고” 하고 그렇게 물어라.
시(時)에 선재동자(善財童子)가 환희용약(歡喜踊躍)하야 정례기족(頂禮其足)하며 요무수잡(遶無數帀)하야 은근첨앙(殷勤瞻仰)하고 사퇴남행(辭退南行)하니라.
또 선지식을 소개해 주니까 선재동자는 기분이 좋아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그 발에 예배를 올리고 한량없이 그 분의 주위를 돌고는, 좋은 공부를 했으니 거기에 대한 미련을 가지고 은근히 우러러보면서 또 다음 선지식을 만나기 위해 물러나서 남쪽으로 남쪽으로 걸어가게 되었다는 이런 이야기입니다.
첫댓글 화엄경 입법계품 71강부터 80강까지의 녹취를 맡게 되었습니다. 화엄경을 공부할 좋은 기회로 알고 기쁜 마음으로 동참합니다. 반갑습니다. ()
감사히 읽습니다. ()()()
演菩提님, 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_()()()_
고맙습니다 ()()()
()()()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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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올라와 있군요..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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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의 깨달음에 대한 마음을 낸 그 마음 하나로서 반드시 一切智道를 성취하게 될 것이다...演菩提 님! 수고하셨습니다.._()()()_
삭제된 댓글 입니다.
다녀가셨네요 제가 고맙지요. 명성화님. ^^*
發菩提心, 一切智, 圓融無碍,,, 一念普入三世境界 !
事事無碍 圓通無碍 自在無碍 法界緣起 相卽相入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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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切智 이런 말은 인생을 포함하여 정말 모든 존재에 대한 실상을 꿰뚫어 알겠다고 하는 그런 의미로 쓰입니다 나무대방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오늘의 이 꽃 한 송이가 우주의 꽃이라는 거지요. 왜 우주의 꽃이냐? 우주의 모든 것과의 관계 속에서 꽃이 하나 존재하는 거지요. 우리들 자신도 마찬가지지요. 나의 한 순간이라고 하는 짧은 시간도 영원한 시간 속에서의 나의 한 순간이라고 하는 그런 관계를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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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비목 구사 선인이 선재 동자 손을 잡고 이마를 만지니 선재 동자가 공간적,시간적으로 무수한 불세계를 경험하게 되었다
비목 구사 선인이 선재 동자의 이마를 만지고 손을 잡으니 선재 동자가 무수한 부처님 세계를 보게 되고 무수한 시간 동안 부처님 처소에서 함께하는 자신을 보게 되었다
평범한 나 자신도 "우주적인 나"이다
꽃 한 송이도 "우주적인 꽃"이다
나무 입법계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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