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으나마나 ‘한국기업메세나협의회’
심재찬〈연출가·한국연극협회 부이사장〉
94년 봄 한국기업메세나협의회는 공연 예술인들의 관심 속에 화려하 게 탄생했다.
21세기에 대응하는 기업과 문화예술의 접목·가교 역할을 하며 기업 이윤의 사회적 차원을 넘어 무한 경쟁의 변화하는 세계 질서에 능동 적으로 대응, 우리 민족 생존 역량의 창출을 그 이념으로 하겠다는 방 침은 제법 쓸 만하다. 그러나 순수 공연 예술인들이 실망감을 느끼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느 스타(?) 예술가에게 수억 원짜리 악기를 사주느니 하며 요란법석만 떨 뿐 이 땅의 순수 예술에 대한 관심은 찾아볼 수조차 없었다.
“기업의 지원을 요청하는 문화예술 행사를 소개합니다. 지원 여부에 대한 선택은 각 회원사가 독자적으로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고작 이 문구뿐이었다.
한국기업메세나협의회에서 발행하는 격월간지 〈메세나〉의 한두 쪽 에 간단하게 지원 요청 단체 내용을 적고 그 위에 무책임하게 던진 문구, 거창한 슬로건과 간단한 문구는 문화예술에 대한 애정이 과연 있기나 한 것인지, 기업과 문화예술 단체에 대한 교두보 역할을 하겠 다는 것인지 의심스러울 뿐이다. 한 마디로 요즘 서민들이 정보를 교 환하는 ‘생활정보지’ 수준에도 못 미치는 무책임한 행동이다.
그런데 그나마 몇 줄 소개하던 그 한두 쪽마저 없어지고 말았다. 격월 간으로 발행하던 초라한 소식지마저 계간지로 바뀌고 만 것이다.
애당초 “문화예술에 대한 국민 의식을 제고하여 문화예술의 저변 확 대를 기하고 우리 나라 경제와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함”을 설립 목 적으로 출발한 한국기업메세나협의회가 어떤 일을 해 왔으며, 앞으로 어떻게 실행에 옮길 것이며, 어떠한 책임 의식을 갖고 있는지 자못 궁 금하다.
사실 한국기업메세나협의회가 순수 공연예술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오래 전부터 피부로 느껴왔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더욱 안타까운 점은 이러한 현실이 바로 이 땅의 문화예술 에 대한 인식의 수준을 말해 주고 있으며 기업의 문화예술에 대한 의 식의 수준을 말해 주고 있다는 것이다.
연극, 그 순수 예술은 그들의 슬로건대로 기업 이윤의 사회적 차원을 넘지 않으면 이루어질 수 없는 분야다. 지금까지 연극인들은 모든 예 술의 기본이 되는 연극 무대를 ‘농민이 모내기하듯’ 애틋한 사랑과 정성으로 터전을 일궈왔으며, 순수 예술이 살아야 한다는 장인 정신으 로 외로운 투쟁을 해 왔다.
영화가 상품이 되었듯이 우리 연극도 상품으로서 그 가치를 높여야 한다. 기업의 투자로 상품이 된 영화와 달리 연극은 기업의 시선을 확 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기업은 이윤을 위해 투쟁해 야 한다. 하지만 그 이윤은 사회의 이 땅의 모든 구성원들의 양보와 애정과 격려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사실 잘 살아보자는 구호 때문 에 우리 모두는 얼마나 많은 것을 양보했던가. 인간성마저 상실당한 시절도 있지 않았는가.
자, 이제 우리는 우리가 잃었던 정신적 문화를 보상받아야 한다. 되찾 아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 기업은 아직도 이 중요한 현실을 받아 들이지 못하고 있다. 예술인들도 누군가에게 책임 의식을 전가하지 말 고 직접 적극적으로 시대 상황에 대처하며 발 벗고 나서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