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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암을 극복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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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 스크랩 이집트여행1
까치대장 추천 0 조회 155 09.01.26 12:5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2007년 12월 28일(금)

두 달이라는 적지 않은 시간의 기다림 끝에 출발일 아침이 되었다. 내내 멀쩡하다가 출발 직전에 코감기는 또 왠일일까. 가는 곳마다 강행군이 이어질테고 후루가다에서는 스킨스쿠버까지 예정되어 있는데 이를 어쩌나 걱정된다. 어찌 되었든 코를 훌쩍거리며 냉장고를 제외한 모든 전기의 전원을 뽑고 가스를 잠그고 다시 한 번 집 안을 둘러 본 뒤 집을 나섰다. 인천공항에서 일행 다섯 명이 모여 항공권을 발권받은 뒤 점심을 먹자니 조금 애미한 시각이다. 뱅기가 항속고도에 오르면 밥을 또 줄테니 일단 간단하게 라면 한 그릇씩 먹었다. 한시간 정도 남겨 두고 탑승구로 갔다.(사진제공 : 뜀도령)

 

싱가폴항공과 에미레이트항공의 서비스와 시설에 눈높이가 맞춰진 내게 네덜란드항공은 꾸져 보이기가 짝이 없었다. 시설도 그렇고(사진제공 : 뜀도령)

 

기내식도 맛이 떨어지고(사진제공 : 뜀도령)

 

간식도 주넹?(사진제공 : 뜀도령)

 

맛이 별로인 파스타. 이게 아마도 이른 아침식사로 준 것 같다(사진제공 : 뜀도령)

 

스튜어디스들도 큰엄마(뜀도령의 표현)들이었다. 하긴 우리가 이집트 보러 가는거지 뱅기타러 가는 것은 아니질 않나. 뱅기표는 값이 쌀수록 좋은게 아니던가 말이다.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에서 내렸다. 유럽 항공교통의 요지이며 건축된지 30년이 넘은 공항이란다. 그래서 그런지 인천공항과 비교하자면 역시 졸라 꾸지다.(사진제공 : 뜀도령)

 

우리는 다시 이집트행 비행기로 갈아탔다. 체류시간이 두 시간에 불과해 기다리는 지루함은 별로 없었다. 마지막으로 먹은 기내식.(사진제공 : 뜀도령)

 

2007년 12월 29일(토)

다음 비행기로 갈아탄 우리는 새벽 두 시가 넘어 카이로국제공항에 착륙했다. 출발지인 인천공항으로부터 장장 18시간 40분만의 도착이었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8시에 호텔을 나서 첫 일정을 시작할 우리로선 최대한 빨리 수속을 마치고 나가야만 그나마 조금이라도 쉴 수가 있었다. 이집트의 비자를 받지 않은 상태로 도착한 우리는 25달러의 증지를 구입해 여권에 부착한 뒤 입국심사를 받아야 했다. 7미터정도 간격을 두고 설치된 두 개의 증지 판매 창구에 도착자들이 증지를 구입하기 위해 줄을 길게 늘어섰다. 약간의 조급함이 깔린 기다림 속에 내 차례가 가까와지자 내가 줄선 창구의 직원은 다른 창구를 가리키며 그리로 가서 구입을 하란다. 그 곳을 보니 이미 줄 선 사람이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할 수 없이 그리로 갔더니 그 곳의 직원은 이 곳에서는 안되니 내가 처음 줄섰던 곳으로 가란다. 은근히 부아가 나기 시작했다. 그 곳에서 오라고 해서 왔다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다시 처음 줄을 섰던 창구로 갔더니 또 다시 그리로 가란다. 아래의 사진이 바로 그 직원이다. 이 때는 나도 화가 났다. 나는 무슨 짓거리들이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이 직원은 그 창구로 쫓아가서 그 창구의 직원과 실갱이를 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자기 구역의 일이 아니면 쳐다도 안보는 이집트 사람들의 핑퐁치기에 우리가 끼어 있었다. 실로 어이가 없었다. 간신히 증지를 구입해 여권에 붙이자 이 번엔 입국 심사대에서 '조사할 것이 있으니 기다리라'고 한다. 어이가 없었지만 뜀도령과 나만 대기상태였다. 직원이 어디론가 여권을 들고 갔다. 뜀도령과 나는 같은 시기에 터키와 캄보디아를 방문했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그게 뭔가 확인해야할 사항이 있었던가보다. 동양인들이 회교국을 두 군데나 돌아 다닌다는 사실이 수상하게 보였거나 업무지침에 확인사항이라도 있는 모양이었다. 한참만에 입국 허가가 났다. 도착부터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네덜란드 항공을 통해서 들어온 입국자 중 우리가 마지막 입국승인자였던 모양인지 남은 사람이 었었다. 쉴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던 우리에겐 금쪽같은 시간을 빼앗긴 셈이었다.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욕지기가 나온다. 이 곳 이집트에서 열받을 일이 앞으로도 널려 있는데 이건 시작에 지나지 않았음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간신히 밖으로 나오자 호텔픽업서비스 대기자가 내 이름을 종이에 써서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사진제공 : 뜀도령)

 

장거리열차 티켓을 예매한 우리는 공항에서 열차표를 받기로 했으니 그를 만나 일을 본 뒤 가자고 마중 나온 사람에게 양해를 구했다. 조금 지나 열차표를 들고 Mr. Sultan이라는 여행사 직원을 만났다. 문제는 인터넷에서 예약을 마친 뒤 예약금을 물고 잔액이 285달러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는 310달러라는 것이다. 내역을 물어보니 직원이라는 사람이 그것도 모르고 있었다. 용역 직원인가? 아닌 것 같다. Mr. Sultan이라는 이름은 열차표 예매를 담당했던 Miss Ali로부터 이미 들은 이름이었다. 기억을 간신히 되살려 이것 저것 계산해 보니 내가 공항으로의 직원배달서비스료 25달러를 빼고 계산한 것이었다. 이걸 확인하는데 30분이나 소요되었다. 아까운 시간이다. 여행계획서에도 이것을 표시해 놓았었는데 두 달 전에 작성한 것이고 보니 아래쪽에 참고사항으로 적어놓은걸 못본 것이다. 출발전 여행계획서를 다시한 번 전체적으로 훑어보았어야 했는데 안한 것이 큰 실수였다. 어쨋든 310달러를 주고 나니 '늦은 시간까지 기다렸는데 이게 전부냐'고 묻는다. 공항배달 서비스료를 25달러나 받고 무슨 팁을 요구하나싶어 '배달서비스료 25달러를 주었지 않느냐'고 했더니 무척이나 서운한 기색이다. 이해가 안간다. 들고 있던 볼펜을 주었다(사진제공 : 뜀도령)

 

이들은 당연한 것을 하거나 원치않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나서 팁이나 박시시(팁과 동냥의 중간쯤되는 이집트인들만의 개념인 듯하다)를 요구하는 것이 일상화 되어 있음을 알고 있었지만 이들의 어이없는 박시시 요구에 여행 내내 학을 띠지 않을 수 없었다. 공항을 나와서(사진제공 : 뜀도령)

 

마중 나온 차를 보니 1대 뿐이었다. 2대(60파운드)를 주문했지만 1대만 오면 조금 불편해도 차라리 경비가 세이브 되니 나쁠 것 없다고 생각했다. 어쨋든 택시 한 대에 구겨탄 일행은 30분정도 걸려 호텔로 향했다.

 

예약했던 베를린호텔에 도착하니 유럽인들이 선호하는 곳이라는 말에 깨끗할 줄 알았던 호텔은 기대와 달리 완전히 ?은 건물이었다. 인도에서 내가 다닌 게스트하우스 중 이런 곳이 꽤 있어서 큰 실망같은 것은 안했으니 상관은 없었다. 사워실은 방 한켠에 방수커튼으로 가려서 만들어 놓았고 화장실은 공용이었다. 호텔 입구의 사진이다. 안에 들어서면 바로 로비가 있고 로비 한켠에 프론트가 있는 것이 우리네 상식이다. 하지만 이집트인들은 우리의 고정관념을 보기 좋게 깨고 말았다.

 

호텔프론트는 희안하게도 9층에 있어서 어지간히 헤맸다. 도착해서 이름을 밝히고 예약확인을 하자마자 호텔의 직원이 사장인 Mr. Youssif와 전화연결을 해주었다. 원로에 수고를 치하하는 친절한 인사와 함께 호텔비와 픽업서비스 경비에 대한 안내가 있었다. 픽업서비스에 이견이 생겼다. 예약된 픽업서비스 경비는 차량대수가 아닌 인원수에 따른 것이니 60파운드(10,500원) 모두를 내야 한다는거였다. 어이가 없었지만 쉴시간도 적고 싸우기도 싫었다. 알았다고 했더니 길에 나가면 패키지 여행업자들의 바가지가 심하니 주의하라는 내용과 아침이면 직원이 여행정보를 줄것이라는 둥 친절한(?)안내가 쉬지 않고 계속되었다. 나는 감기에 걸려 목이 시원치 않은데다 공항에서 직원과 싸우느라 무리했는지 목소리가 나오질 않아 겨우겨우 말하고 있었다. 더 이상 목이 아프고 말하고싶지 않은데다 더 이상의 정보는 원치 않고 단지 쉬고 싶으니 통화를 끝내자고 말해 종료했다. 통화후 달러로 지급하려 하자 직원은 달러가 안된다며 다시 사장과 전화를 연결해 준다. 사장은 환율이 5.5 대 1 이니 그에 맞추어 금액을 US 달러(2인실 19.5달러)로 말해 주었다. 그러고도 지나친 친절에 애를 먹었다. 무엇보다 고역은 말하기 힘들다는거였다. 말하기도 힘들고 쉬고싶으니 전화를 끊자고 했다. 아래 사진은 프론트 직원이 방으로 안내하는 모습. 그는 프론트 직원이면서 방 안내도 하고 아침이면 아침도 손수 준비해서 제공하는 만능인(?)이었다. 각자 방으로 안내된 뒤

 

이제 막 샤워 후 잠자리에 들려고 보니 새벽 5시였다. 객실 한켠을 개조해서 만들었다는 샤워실. 약간 어이가 없다(사진제공 : 뜀도령)

 

겨우 3시간 쉬고 나가기 위해 호텔에 들어온 셈이었다. 그래서 싼 호텔로 예약한거였지만 아무래도 좀 억울한 생각이 든다. 3파운드짜리 물을 두 병 주문했다.  뚜껑은 따져 있었고 물은 수도물 냄새가 났다. 그나마 정수는 한 물인지 의아했다. 담날 아침 가게에서 산 생수는 2파운드인데 어이가 없었다. 이집트의 호텔은 몇성급이냐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했다. 오래전에 등급을 받은 것이 아직까지도 조정이 되지 않아 등급은 높고 시설은 낙후한 경우도 많고 그 반대인 경우도 많다고 했다. 이 호텔은 시설이 무척 낡고 낙후되어 있었지만 고전적인 분위기가 감돌고 있어 처음 지었을 당시는 상당히 좋은 호텔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하지만 가격대비 만족도가 낮아 완죤 비추! 3시간 자고 일어나 받은 아침식사. 인도에서 먹은 아침식사 정도의 수준이다. 계란과 바게뜨(모양만 비스므리), 잼과 치즈 그리고 홍차였다.

 

체크아웃을 할 때도 사장과 유선통화를 하고 나왔다. 역시 친절했다. 아침에 나갈 때 체크아웃하고 내려가면서 찍은 사진이다. 우선 건물 안으로 들어서고 나면 외부와는 차단되는 것이 건물에 대한 우리의 상식이다. 하지만 이 건물은 아래 사진처럼 건물 안에 들어서고도 수직으로 하늘을 향해 뚫린 공간이 건물 양쪽으로 있고 그 공간들을 다리가 연결하고 있어 재미있고 낭만적인 구조로 되어 있었다. 태양빛과 빗물을 대비해 다리 위에는 차양도 설치되어 있다. 낡았지만 아름다운 건물이다. 체크아웃을 한 뒤 짐을 맏기고 가벼운 차림으로 호텔을 나섰다.

 

유럽영화 뒷골목 배경에 나옴직한 엘리베이터. 영화에서처럼 철제 격자문을 제끼고 나면 이런 엘리베이터 문짝이 나온다. 일단 올라탔다가 우리네와 다른 버튼 작동법에 익숙치 않아 그냥 걸어서 내려왔다. 젠장.

 

거리를 나서니 당연한 얘기지만 호텔위치만 대충 짐작할 뿐 방향도 감이 안잡혔다. 경찰을 하나 잡고 길을 물었다. 일단 일러 주는 방향으로 일단 갔다. 가다가 보니 광장이 나오는데 길이 여러 갈래로 갈라진다. 여기서 다시 다른 경찰을 잡고 길을 물었더니 영어를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러자 지나가던 사람이 친절하게도 어디를 가느냐고 쫓아와서 물었다. 고고학박물관을 가려고 한다니까 방향을 일러주며 '오늘 그 근처 호텔에서 아랍연맹연합회의가 열리는데 시위자들때문에 경찰이 깔려 있고(실제로 여기저기 경찰이 근무서고 있었다) 관람도 불가능하다는 말을 했다. 차라리 안가봤으면 기자의 피라미드를 보고 다음으로 미루는게 어떻겠냐고 묻더니 자기는 지금 일을 마치고 퇴근하는 길인데(아침에?) 자기 집이 기자시에 있으니 자기와 함께 가면 된다는였다. 친절이 고마워 딴생각은 하지도 않고 그러자고 했다. 뜀도령이 수상하다고 했다. 아닌게 아니라 이사람은 자기가 가던 길과는 반대방향으로 가는게 아닌가. 게다가 자칭 가이드들과 바가지 여행사를 조심해야 한다는 것 등을 알고 있는 터여서 부쩍 의심이 들었다. '되든 안되든 우린 일단 박물관으로 가보겠다'고 하자 '괜찮겠느냐. 후회할 수도 있다'고 하길래 '걱정할 필요 없다'고 하고 처음 일러준 방향으로 갔다. 헤어지고 나자 그는 자기가 처음 가던 방향으로 갔다. 역시나 그는 우리를 상대로 사기를 치려던 것이었다. 경찰은 항상 그렇게 근무하고 있었던 거다. 그와 헤어진 곳은 아래의 사진에 보이는 곳이었다.

 

10분정도 걸었나보다. 박물관은 의외로 찾기 쉬운 곳에 있었다. 길끝에 대로가 나오는데 건너편의 시뻘건 건물이었다. 사실 박물관에서는 많은 시간을 빼앗기기때문에 여행일정에 어지간해서는 잘 삽입하지 않는 나지만 주요 유적지의 주요 유물들이 몰려 있는 곳이어서 여길 안들르면 뭘보고 왔느냔 잔소리를 들을 수도 있는 중요한 포인트이기도 하여 들르지 않을 수 없었다. 길 건너편이 박물관인데 사람들은 무단횡단으로 길을 건너고 있었다. 몇 차선인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무단횡단하기에는 너무 폭이 넓고 위험했다. 건널목에 파란불도 별 소용이 없고 차들은 보행자를 위해 속도를 줄여주거나 결코 멈춰서지 않는다. 보행자가 배짱으로 길을 들어서서 제지하며 건너지 않는 한 길을 건널 수 없는 웃기는 곳이 바로 이집트였다. 인도에서도 그랬는데 여긴 더 심한 것 같다.

 

오픈 시간인 아홉시에 맞춰 갔건만 줄 선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시위대란 이 사람들을 두고 말하는건가?(ㅡㅡ)  매표소로 가는 도중 공항검색대 못지 않은 검색을 받고 들어가 표를 사려고 보니 달러화는 받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런 젠장. 내가 구입해 읽은 여행책자에는 '고급 호텔에서는 외화를 벌어들이기 위해 달러화나 유로화만을 받도록 되어 있다'고 표기되어 있고 많은 곳에서 달러를 받는다는 말에 달러화면 거의 통용될 것으로 오해했다. 결국 표를 못사고 환전하러 가야했다. 일행을 이 곳에 남겨두고 물어물어 환전은행을 찾았다. 화폐 표면이 거칠어 돈세기가 불편한 달러화를 내가 잘 못 세었는지 10달러가 남는다고 돌려주었다. 이 사람은 이집트에서 만난 정직한 극소수 중 한사람이었다. 당분간 쓸 돈을 환전해서 돌아오니 또다시 검색대로 가는입구에 줄을 서야 해다. 그래도 처음 보다는 사람이 그나마 적어 10분 내로 검색대를 통과할 수 있었다. 표값은 가이드 책자에 나와있는 값의 정확히 두배. 가는 곳마다 그랬다. 여행경비가 부족하지 않을까 은그히 걱정되기 시작했다. 비상시를 대비해 카드를 가져왔으니 일단 안심이 되기는 했지만 어느정도 신뢰했던 바로 그 책에 배신을 당한 기분이었다. 다니면서 보니 지도도 부정확한 경우가 많았다. 그래도 역시 대안은 없지 않은가.

 

서너시간을 박물관 안에서 구석구석을 돌면서 보냈다. 2층에 있는 유명한 투탕카문의 유물실에는 장사진을 이루었다. 낯익은 유물들은 거의 이 곳이나 그 코너 입구 주변에서 거의 다 모여 있었다. 아쉬운 것은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어서 하나도 촬영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뜀도령이 큰 모험을 걸고 전경사진을 하나 담아 왔다(사진제공 : 뜀도령)

 

10년 전쯤 예술의 전당에서 있었던 이집트 문명전에서 본 이후 투탕카문 황금마스크의 진품은 이 날로 두 번째 보는 셈이다. 투탕카문의 황금마스크를 제외하면 예술적 섬세함이 있는 유물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퍼온사진)

 

투탕카문에서 출토된 아누비스는 온전한 개의 형태로(보통은 개대가리에 인신으로 표현되는 죽은자의 수호신) 검은 칠에 부분적 황금칠을 한 형태였는데 사진에서 보던 것과 갈리 뒷마무리가 매우 거칠었다.(퍼온 사진)

 

황금의자의 등받이부조는 섬세하고 아름답지만 전체적인 모양은 세련된 모습은 아니었다. 이렇게 울퉁물퉁한 등받이 의자에 기대 앉기는 무척 불편했을 것 같다(퍼온 사진)

 

핫셉수트여왕의 두상(퍼온 사진)

 

라호테프와 네페르트(퍼온 사진)

 

투탕카문에서 출토된 황금침대도 엉성하게 나무로 만들어 도금한 것으로 역시 조잡했다. 목각인형전시관에 있는 인형들은 특히나 조잡하기 이를데 없었다. 의외였다. 꼴에 음모와 성기 표현은 거의 노골적이었다. 오늘날까지 전해오는 고대 예술은 신기하리만치 완벽한 보존상태를 자랑하고 있었지만 일부의 몇 몇 유물을 제외하고는 손 끝에서 묻어 나온 섬세한 마무리는 볼 수가 없었다. 그 몇 몇 유물 이라는 것 중에는 머리털 하나 없는 나이든 남자의 형상인 목각인형 이 있었는데 눈, 코, 입은 물론 축 쳐진 가슴과 불룩이 나온 배까지 살아있는 사람처럼 섬세했다. 그 목각인형이 있는 곳은 가이드와 관광객들로 북적였는데 많은 사람이 북적인 만큼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어쨋든 뒤늦게 엉뚱한 기대를 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나는 예술작품이라기 보다는 단지 유물이라는 면에서 접근하며 감상하기 시작했다. 무리도 아닌 것이 10여년 전 예술의전당에서 있었던 이집트유물전에서 내가 보았던 석조유물들의 곡선은 어느 방향에서 보더라도 완벽에 가까웠고 무척 아름다운 예술품들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던 터였다. 여기선 투탕카문의 마스크를 제외하면 그 때 보았던 유물은 거의 찾아 볼 수 없었다. 한국에 방문했던 유물들은 역사적으로는 그리 중요한 것들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박물관 안에서 몇 시간을 돌아다니며 유물을 보던 일행은 다리도 많이 아프고 배도 많이 고팠다. 박물관을 나온 우리는 아라베스크라는 이름의 고급식당을 찾았다. 간판이 눈에 띠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우리는 식당을 찾는 동안 그 곳을 두 번이나 지나치고도 몰랐다.

 

입구부터가 아라베스크풍이다.

 

이 곳에서 메뉴판을 보고 뭐가뭔지 모르는 우리는 주문하기가 난감해 웨이터에게 추천을 부탁했다. 그는 쌀과 클로렐라 비스므리한 것을 넣고 끓인 모노췌이아 스프와 씨씨케밥, 그릴치킨, 아라베스크 피시, 윌아라베스크 등을 추천했다. 우리는 우선 맥주부터 마셨다. 이집트 땅에 처음 도착해서 먹는 스텔라 맥주였다. 개성은 그리 강하지 않지만 맛은 아주 좋은 편이다.

 

음식은 모두가 맛이 좋았지만 갓구워 내온 아이쉬 빵은 정말 맛이 있었다. 두 가지 빵 중 특히 얇고 바삭바삭하게 구운 빵은 매우 담백하고 맛이 있어 인기기 있었다. 고급식당이라고느 하지만 운치는 있으되 뭔지 어설픈 내부 실내장식과 맛 대비 가격은 상당히 높아 그리 권하고 싶지는 않은 식당이다. 우리가 일본 사람들인줄로 알았는지 "도조"라며 먹기를 권했다.

 

1인당 2만원정도가 깨졌다. 한국 기준으로도 결코 싼 경비는 아니다. 여행가는 곳마다 최고급과 최하급 식사 등을 골고루 즐기기를 선호하는 나로서는 후회되는 지출은 아니었다.

 

이 곳을 나와 기자에서 피라미드를 보는 것이 오늘의 일정인데 2시는 넘은 상태여서 제대로 볼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따라서 마지막날의 일정과 뒤바꾸었다. 이슬람지구를 가 보는 것. 지도를 보니 걸어서도 충분히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도 뜀도령도 걷는것을 워낙에 좋아했고 다른 사람들도 동의하니 걸어서 가기로 했다. 그러나 막상 걸어서 다녀보니 걸어갈 거리가 아니었다. 가다가 향신료 가게가 예뻐서 한 컷 찍어 보았다.

 

가다 보니 한국의 용산전자상가처럼 전자제품가게만 빼곡히 들어선 거리를 지나면서 한국의 제품들은 그리 많지 않음에 의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온갖 일제와 유럽 제품 일색이었다. 어쩌다 LG가 나오니 반갑더라는... 사진에 휸다이(현대)도 보인다.

 

철물점

 

다리가 아파 생과일 주스 가게에서 망고주스를 한 잔 씩 마시며 잠깐 앉아 쉬고는 계속 이동했다. 맛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뭔지도 모르는 이 곳을 지나며 고전적이라며 사진을 찍으며 지나갔다.

 

멋진 곳이라며 알지도 못하고 사진을 찍었던 이 곳도 우리가 가고자 했던 유적의 하나인 술탄고리의 마드라사였다는 사실은 가이드 책자를 뒤지다가 알게 되었다.

 

 

 

기념품 가게가 밀집된 시장을 들어가 보니 한 사원이 눈에 띠어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 들어가 보았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은 아담한 사원이었다. 일행은 여기서 사진을 찍으며 걷느라고 지친 몸을 쉬었다.

 

 

약간의 휴식과 함께 사원 내부를 둘러 보고는 이 곳을 나와 기념품 가게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가는 곳마다 냉장고에 붙일 자석장식을 사가곤 하는 뜀도령이 값을 물어보고 흥정을 했다. 아래 두 장의 사진들은 그냥 예쁜 가게들이 보여서 찍은 사진이며 본 기사(?)와는 관련이 없음을 밝혀둔다. 키득!

 

나도 냉장고 자석 장식이 예쁘길래 몇 개 샀다. 자개장식의 함을 파는 가게.

 

조금만 더 가면 나오겠지 하던 가마후세인은 나오지 않았다. 나중에 알았지만 대로에서 조금만 더 가면 나온다는 것을 모르고 걷기에 지친 일행은 그 주변이나 둘러보고 룩소르행 침대칸 열차를 타러 가기로 했다.

길 건너편에도 사원이 있었다. 그 길을 따라 가보니

 

오래된 건물들이 보였다.

 

이집트 전통문양의 바구니들을 길거리에 깔고 파는데 예쁘길래 찍었더니 흔들리고 말았다.

 

운치 있는 금은방

 

세공품보다는 가게 자체가 예쁘다.

 

멋진 두 개의 탑을 가진 이 문은 뭔지는 모르지만 정말 멋지다는 생각을 했다.

 

문에 붙은 안내판을 사진에 담았다. 멍청이들은 이게 즈웨일라 문이라는 표기인데 어떻게 읽을 줄을 몰라 책에도 안나온 멋진 곳이라고 즐거워했다. 대략 어이없음.

 

우리는 다시 대로로 나와 택시를 타고 호텔로 돌아갔다. 저녁식사는 하지 않고 기차를 타기로 했다. 기차에서 저녁식사를 기내식처럼 제공하기 때문이었다.

 

인터넷상에서 예약한 열차는 열차는 람세스역에서 20:00에 타는 줄 알고 있었다. 그런데 표에는 기자역에서 20:45에 타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람세스 역으로 갔다가 혹시라도 황당한 일이 생길지 몰라 일단 기자역으로 가기로 했다. 호텔에서 짐을 찾아 호텔을 나선 우리는 박물관 근처에 있는 사다트역을 향해 걸었다. 가다가 초컬릿으로 뒤덮인 아이스크림바를 사먹었는데 제법 맛은 좋았다. 박물관 앞 광장에 도착한 우리는 교통경찰이 서있는 것을 보고 반가운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경찰도 허수아비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신호등이 청신호로 바뀐 뒤에 차를 세우는 모습을 보고 알게 되었다. 횡단보도 신호등에 파란 불이 켜지자 교통경찰은 보행자들을 위해 차들을 제지했다. 그러나 운전자들은 도로상의 교통경찰 알기를 장기판에서 죽어나온 "졸"만도 못한 존재로 보이는지 시큰둥하거나 망설이는 기생도 없이 그냥 지나쳐 버린다. 아래 사진은 차들을 세우느라 애를 먹고 있는 모습. 사진 오른쪽의 차 한대는 이미 지나가고 있는데 뭐 빨아라 하고 그냥 무시하고 지나친 차는 그 한 대뿐이 아니다. 왼쪽의 차들은 서 있는게 아니고 계속 진행중인 차들이다. 나같으면 쪽팔려서 경찰노릇 못해먹겠다. 내가 장담하는데 교통법규 위반자를 사형시키는 초강수를 쓰지 않는 한 이 나라는 죽었다 깨나도 교통질서란 것은 확립되지 않을 것으로 확신한다.

 

이집트에 머무는 동안 대형 교통사고를 목격한 것만도 2두 번이나 되고 경미한 접촉사고는 실갱이도 없이 그냥 가버린다. 차들이 워낙 똥차들이다 보니 귀찮은가보다. 우리도 남얘기나 할게 아니라 스스로 더욱 질서의식을 가져야 할 듯. 타산지석이라고나 할까. 사다트역에서(사진제공 : 뜀도령) 

 

지하철을 타고(사진제공 : 뚜임도령)

 

기자역에서 내려(사진제공 : 띰도령)

 

같은 역사를 사용하는 웨건리 열차의 폼으로 가서 환승하기 위해 이동했다. 투어리스트 인포메이션에 들어가 자료도 좀 얻고 나서 열차에 올라탔다(사진제공 : 튐도령)

 

도착한 열차는 먼지를 뒤집어 썼고 청소는 안했는지 바깥에서 보기엔 꾸질꾸질했다. 하긴 이집트의 공기중에 떠다니는 먼지를 감당하느니 청소 안하는게 나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실내는 무척 깔끔했다. 간이 세면대의 물나오는 수준은 개미 오줌 모냥 질질거리고 나오는데 양치질하기도 괴로운 정도다(사진제공 : 뜀도령)

 

출입문 왼쪽에는 난바을 조절하는 다이얼도 달려 있다.(사진제공 : 뜀도령)

 

통로

 

이거 머라고 불러야 되나 대략 난감. 기내식은 아니고 차내식? 열차식? 침대칸식? 좋을대로 부르자 열차식이다. 먹어보니 모든게 푸석푸석했다. 음료수는 뭘로 하시겠냔다. 아쭈그리 요것들이 비행기 흉내를 내넹? 과감하게 맥주를 시켰다. 알고 보니 유료였다.

 

우리칸 웨이터에게 이야기하면 사진과 같이 침대를 설치해 준다.

 

이 날 저녁 자면서 내가 세운 일정을 전면적으로 뒤집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카이로에서의 일정을 너무 만만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마지막날 카이로에서 피라미드 하나 보면 감지덕지 해야할 상황인 것 같다. 따라서 후루가다에서의 스킨스쿠버 일정을 전부 빼고 카이로, 룩소르, 아스완, 바하레이아 사막에 남는 일자를 골고루 나누어 여유있고 좀더 많은 것을 보기로 결심하고 의견을 수렴했다. 일단 잠이 들면 늘어지게 잘지도 모르니 아침식사 제공시간부터 웨이터에게 물어 보았다. 아스완 도착 1시간 전이라고 한다. 우리 기차표는 아스완행이었지만 룩소르에서 하차할 예정이며 하차 1시간 전에 식사를 달라고 했다. 미심쩍어 한 번 더 확인을 시켰다. 그러고는 잠자리에 들었다. 기차여행은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지저분한 공용화장실을 써야 한다는 불편함이 있게 마련이다. 게다가 겨울에도 창문을 조금 열고 자는 나로선 실내 공기가 답답해서 잠을 이루기가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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