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꽃 / 조지훈]
까닭 없이 마음 외로울 때는
노오란 민들레꽃 송이도
애처롭게 그리워지는데,
아 얼마나한 위로이랴.
소리쳐 부를 수도 없는 이 아득한 거리에
그대 조용히 나를 찾아오느니.
사랑한다는 말 이 한 마디는
내 이 세상 온전히 떠난 뒤에 남을 것,
잊어버린다. 못 잊어 차라리 병이 되어도
이 얼마나한 위로이랴.
그대 맑은 눈을 들어 나를 보느니.
- <신천지>(1950.5)
고전적이고 선미적禪味的인 시를 쓰던 조지훈이 전혀 다른 목소리로 개인적 심정을 고백한 시가 <민들레꽃>이다. 외로움과 그리움은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간직한 채 가슴 속에 묻어 두는 아픔이고 취약한 감정이다. 그래서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M. Heidegger는 이것을 '존재론적 고독'이라고 했는지도 모른다. 임의 현신現身인 '민들레꽃'을 통해 시적 자아는 임의 모습을 떠올리며 잊을 수 없는 임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토로하고 있다. 그러나 '민들레'를 '임'과 동일한 대상으로 인식함으로써 '임'의 부재로 인한 외로움을 위로받게 되는 것이다. 이 시는 단순히 사춘기 소년의 감정을 반영한 것이 아니라, '민들레꽃'을 통해 자기 고독의 상황을 극복한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시 <민들레꽃>은 해방 직후 이데올로기와 정치 의식의 혼탁한 공간에서 참된 정신의 맑은 물줄기를 찾는 행위라고 평론가 김윤식 교수는 말하고 있다. 즉 조지훈의 말대로 “시류의 격동 속에 흔들리지 않는, 변하면서도 변하지 않는 영원히 새로운 것"이 민족정신이고, 참된 시로서의 순수시만이 이와 같은 영원한 시 정신임을 보여 주기 위해 이 시를 썼다고 볼 수 있다.
「다시 읽는 한국의 명시」 김원호 지음
맹태영 옮겨 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