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인해 우리의 생활반경은 전례 없이 좁아졌다. 주로 집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이 늘어난 탓이다. 그 동안 우리에게는 재택근무, 온라인 수업 등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미래학자들의 미래전망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단골 메뉴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코로나로 인해 재택근무가 늘어나자 나름의 불편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불편을 호소하기는 하지만 왜 불편한지에 대한 생각은 그리 깊지 않다. 그런데 이런 문제가 집의 넓이 또는 구조가 원인일 수 있다는 주장을 하는 이가 있다. 건축가 유현준이다.
유현준의 『공간의 미래』는 그런 문제의식에서 우리가 거주하는 공간에 대한 나름의 상상의 나래를 펼친 책이다. 사실 이 책을 보게 된 것은 순전히 유현준의 건축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그를 알게 된 것은 한때 인기 텔레비전 프로그램인 <알뜰신잡>을 통해서였다.
그때 그는 건축에 대한 재미있는 상상을 하도록 했고, 도시 주택에 대해 남다른 시선을 보여주었다. 그는 미래 도시에 대해 참으로 생각이 많은 사람 같았다. 그러나 책은 건축물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광범위하다. 그가 어떻게 <알뜰신잡>에 출연했는지를 알 것 같았다.
적어도 두 가지는 확실해 보였다. 너무 잡다한 지식을 동원하다보니 이야기가 다소 산만해 보이기도 했다는 것이 그 하나고, 다른 하나는 상당히 많은 내용들이 현실의 주택 정책에 대한 비판과 함께 정책 제안서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정책 제안을 한다고 해서 나쁠 일은 없다. 오히려 그런 일들이 많을수록 좋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본래부터 책이 그러한 의도를 드러내었을 때의 이야기다. 그리고 그런 제안들이 현실에 대한 냉철한 분석을 토대로 했을 때 때 의미를 갖는다.
책은 저자의 자기주장으로 가득하다. 아마도 건축에 관한한 자부심이 대단하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감 가득한 그의 이야기는 주책에서 출발한다. 우리들의 집, 특히 아파트는 본래부터 4인 가족을 기준으로 설계된 것이다. 둘만 낳아 잘 기르자던 표어가 등장하던 시대의 집이다.
그런데 지금은 4인 가족의 수가 현저하게 줄어 일이인 가족이 대부분이다. 상대적으로 우리가 살던 집이 커진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의 주택 건설은 이러한 수요에 맞추어야 할 것이라는 주장은 매우 타당해 보인다.
이제는 집에 대한 인식을 달리해야할 시점이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과 마주해 재택근무가 늘어나자 과거에서는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같은 논리로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모이는 교회, 학교 등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코로나로 온 가족이 집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늘어나자 불편이 속출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저자의 제안은 고정적으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가구의 통폐합이나 좀 더 여유 있는 가정의 4도3촌을 제안하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상당한 비용이 소요될 것이다.
저자의 상상은 마침내 건물에서 도시로 옮겨간다. 도시는 수천 년 동안 발전하면서 전염병 발생 문제를 하수도 건설, 백신 개발 등을 통해 해결했고, 점점 더 밀집도를 높여갔다. 더 이상의 외연 확장이 불가능해지자 인터넷을 통한 가상공간으로 확장해갔다.
도시의 팽창은 불가피하게 갈등을 만들어내기 마련이다. 저자는 이를 해결하는 방법의 하나로 공간 구조 변경을 제시한다. 도시는 개인이나 공통의 공간이 없다. 저자는 아파트 단지 내의 공원을 개방하는 것을 포함하여 녹지 공간을 선형으로 만들 것을 제안한다.
그런가 하면, 물류 이동을 위해 지하에 물류 이동통로를 뚫을 것을 제안하고 있다. 물론 지하에서 물류를 이동시키는 것은 로봇이 담당한다. 그것이 실현된다면 지상에서의 물류 이동은 최소한에 그칠 것이고 그 만큼 교통량이 원만해질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린벨트 지역을 합리적으로 활용하자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접경지역을 길게 띠처럼 주거지를 개발하면 그린벨트는 보존되고 주거지는 그린벨트라는 멋진 경관을 갖는 셈이니 금상첨화라고 한다.
같은 논리로 남북을 경계로 가로지르는 비무장지대 역시 개발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비무장지대 내에 도시를 건설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이기는 할까. 지금도 북한에서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미사일을 쏘아대고 남한에 대해 입에 담기 어려운 험담을 하는 중이다.
저자의 말대로 그곳에 남북한 융합 도시를 만들고 서로의 국적을 모른 채 젊은이들이 자연스럽게 만나는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생각도 의아스럽다. 국적을 숨긴다고 정말 모를까. 말투가 다르고 정서가 다르고 생각의 뿌리가 다르다.
북한에서는 지금 금강산에 있는 현대 아산 재산의 호텔을 철거 중이라고 한다. 정말로 비무장지대 안에 도시를 건설하려고 하면 이러한 이념적 극한 대립을 누그러뜨린 다음일 것이다. 그 외에도 저자는 남북 간의 교류를 전제로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한편,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집값 이슈는 계속될 것이다. 부와 권력의 분배와 사회 문제는 어느 시대에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가들은 공무원 수를 늘이고 계약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 탐관오리를 징계하고 곳간을 헐어 가난한 국민들에게 나누어준 홍길동 노릇을 한다.
홍길동 흉내를 내는 정치인가 많다는 것은 경제가 성장하지 못하고 계층 간 이동 사다리가 없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러나 세종대왕의 접근법은 달랐다. 세종대왕은 한글 창제를 통해서 백성에게 물고기를 나누어 주는 대신 물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치고자 했다.
물고기를 잡는 법뿐만 아니라 물고기가 많은 곳으로 국민을 인도하는 것이 정부의 중요한 역할이다.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다. 포항제철을 만들어서 자동차 산업과 조선 산업의 기틀을 만들 일, 전국 아스팔트 망을 구축해서 자동차 산업을 만든 일이 사례다.
이제 더는 우리 정치에 홍길동은 없다. 선거라는 과정을 통해 국민들이 몰아냈다는 표현이 맞겠다. 그 대신 그 자리에 수많은 세종대왕들이 들어서도록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저자는 이러한 과정에서 2021년 현재의 부동산 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한다.
저자는 다양한 각도에서 현 정부의 주택정책을 비판하고 있다. 주택과 관련한 비판과 아이디어가 다양하게 들어있는 이 책을 정치가 중의 누가 보았을까가 궁금하다. 아마도 청와대가 보았다면 일단 대노할 것이고, 민주당 의원이 보았다면 청문회감이라고 얼굴을 붉힐 듯싶다.
반대로 국민의힘 의원이 보았다면 정책으로 참고할 부분이 많다고 긍정할 듯싶다. 분명한 것은 저자의 말처럼 집을 소유한 사람이 많은 사회가 그렇지 못한 사회보다 더 건전한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택정책은 분명하다. 공급을 늘리는 것이 그 출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