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미는 한국에서 두살때 미국으로 입양되어왔습니다.
미국인 양부모는 뭐라 나무랄데 없는 상냥하고 자상한 중산층 교양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에이미는 이 양부모의 끔찍한 사랑을 받으며 자라납니다. 하지만 5살이 될 때부터 거짓말과 도둑질이 시작됩니다. 아침이면 눈물자욱을 가리며 가짜웃음을 짓습니다. 사랑해주는 양부모의 사랑이 진짜인지 확인하는 방법이 거짓말과 도둑질로 끝까지 확인하고 싶어하는 모양이었습니다.
피아노, 발레레슨에 비싼 사립학교에 심리상담에 양부모는 온갖 노력으로 이 에이미를 바로 잡아보려 노력합니다.
한편 보다못한 이 양부모의 외동 친딸은 사춘기에 들어서자 자신의 팔목을 면도칼로 그으며 질투와 불평을 침묵으로 일관하기 시작했습니다.
양엄마는 직장마저 그만두고 전적으로 친딸과 양딸을 보살피려 하지만 이젠 친딸마저 빗나가고 에이미의 도벽과 거짓말은 고등학교 수업을 빠지며 마약으로 빠집니다.
한국아이를 입양한 이 양부모를 미국에서 바로 이웃에서 지켜보면서 정말 내가 친부모라도 감당할 자신이 없는 상황을 끝까지 두 딸을 지키는 모습을 보고 많은 생각을 하였습니다.
10살 정도되었을 때의 에이미는 자기와 얼굴이 닮은 동양인 그것도 한국여자인 내 아내를 처음보자 엄마를 만난 것 처럼 반가와 하였습니다. 한국음식을 요리해주니 매일 먹던 음식처럼 너무나 맛있게 먹었고 하루종일 내 아내를 떠나지 않으려 했습니다. 말없이 내 아내를 바라보며 그냥 눈물을 주루룩 흘릴 땐, 머리속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말하지 않아도 그 눈빛과 눈물로 그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친엄마는 날 버렸어, 난 버려졌어!" 절대로 이 말을 입밖에 꺼내지는 않았지만 에이미의 모든 행동은 그것을 나타내고 있었습니다. 내 아내의 지갑을 뒤져 돈을 훔치고 잡아떼다가 이를 알아챈 양엄마가 에이미의 방을 뒤져 그 돈을 찾아내 아내를 만나 자초지종을 이야기 하였습니다.
그 후 에이미는 부모의 신용카를 훔쳐 차를 타고 가출한뒤 2년간 소식이 없다가 홈리스 셀터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임신 8개월, 남자친구는 도망가고 미혼모가 되어 아이를 조산하게 되어 병원에서 이리저리 수소문하다 양부모에 연락이 왔습니다.
양부모는 딸을 찾았다고 기뻐하며 병원을 가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에이미는 아직도 도벽과 마약에다 미혼모로써 모든 힘든 조건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한국인 입양아, 에이미.... 축복받은 땅, 미국의 나무랄데 없는 양부모를 만났지만 에이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는 참으로 암담합니다.
이런 불행한 케이스는 신문에도 나지않고 쉬쉬하여 아무도 모를 수 있지만 이 미국인 양부모는 같은 문제를 가진 다른 양부모를 만나 자신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한국인 입양아들, 아들 딸들이 세계 각곳에서 주루룩 흘릴 눈물들을 한국에서 알아줄 때가 지났다고 생각됩니다.
한국정부의 관심과 조치를 바랄 뿐입니다.
> 정부와 여당은 친일 진상 규명을 비롯해 과거 청산에 집착하면서도 해외 입양 50년 역사를 청산하려는 기색은 전혀 없다. > > 해외 입양 청산은 친일 진상 규명이나 의문사 진상 규명처럼 보수와 진보 사이의 논란이 개재하고 있는 사안도 아니다. 해방 이후 우리가 저지른 가장 가슴 아픈 잘못 중의 하나지만 여전히 중단되지 않고 있으며 참여 정부도 해결하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고 있다. > > 지난 4일부터 서울에서 열린 2004년 세계한인입양인대회 개막식에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이 참석한 것은 주무 장관으로서의 책임감,미안함 등을 표시했다. 김 장관은 축사에서 “과연 그렇게 말할 자격이 있는지 망설였지만 그래도 말해야겠다”며 “여러분 사랑합니다”고 말했다. > > 그러나 정말 우리는 그들을 사랑했던 것일까 자문하고 싶다. 우리가 진정 사랑했다면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를 어떻게 낯선 이국 땅으로 보낼 수 있었겠는가라는 물음이다. 50∼70년대 배고픈 시절 먹을 것,입을 것 없고 공부도 시킬 수도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보낸 것이라면 ‘사랑’이란 말을 개입시킬 여지가 있을 것이다. > > 그러나 올림픽도 개최하고 월드컵도 유치할 만큼 발전한 지금도 아이 수출의 오명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뭐라고 변명할 것인가. 그들은 부모에게 버림받고 국가에도 버림받았다. 해외 입양아들이 백인 가정에서 자라면서 겪어야 하는 정체성의 고통과 혈육에 대한 그리움을 우리는 생각해 본적이 없다. 그래서 김 장관의 ‘사랑한다’는 말은 낯뜨겁다. > > 우리는 그들을 돌보지 않았으니 ‘사죄한다’고 말하고 지금 자랑스런 모습으로 돌아왔으니 ‘감사한다’고 말하는 것이 적합할 것이다. > > 세계입양인대회는 15년 전 국내 방송으로 알려진 ‘수전 브링크의 아리랑’을 떠오르게 한다. 더 이상의 수전 부링크가 없기를 바라지만 매년 수천명의 ‘새로운 수전 브링크’가 고국을 찾고 있다. > > 한국 전쟁으로 급증한 고아를 정부가 감당할 수 없었던 데서 비롯된 해외 입양아의 수가 20만명에 이르고 아직도 매년 2000여명이 해외 부모의 품으로 떠나고 있으니 해외 입양아의 대명사처럼 된 수전 부링크의 아리랑은 끊어지지 않고 있다. > > 정부 관계자는 국내 입양이 안 돼 보육원에 보내는 것보다는 해외 입양이 낫다고 변명한다. 그러나 통계에 따르면 입양아 중 현지에서 잘 적응하는 경우는 30%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한국인도 현지인도 아닌 상태로 살고 있다. > > 고국에 돌아와 ‘그래도 엄마 아빠 사랑한다’며 부모를 백방으로 수소문하는 입양아는 성공한 경우다. 그러나 그들이 해외 입양인의 현 주소는 결코 아니다. 자신을 버린 고국을 원망하고 적개심을 품고 있다는 경우도 적지 않다. > > 한 입양인은 그동안의 고뇌와 상처가 얼마나 깊었으면 해외 입양은 학살이나 다름없다는 극단적인 표현까지 동원한다. 그 학살을 여전히 자행하는 나라. 자신이 뿌린 자식도 걷어들이지 못하는 나라. 이쯤 되면 정부가 해외 입양을 방치하는 것은 도덕적 윤리적인 차원의 비난 거리가 아니라 범죄 행위와 다를 바 없다. > > 정부는 전통적인 가족혈통주의에 뿌리를 둔 우리 국민의 입양 편견의 탓으로만 돌릴 것이 아니라 이제라도 진지하게 대책을 고민해야 한다. > > 더욱이 낮은 출산율에 노인 인구 증가 등 선진국의 인구 문제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어렵게 얻은 아이들을 수출하는 것은 아이러니컬하다. 인구정책적으로도 해외 입양은 앞뒤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선진국보다도 출산율이 낮아 고민하는 정부가 출산 장려는 지원하면서 국내 입양 지원에 인색한 것은 이해가 안 된다. > > 해외 입양보다 우리를 부끄럽게 하는 것은 없다. 국가적인 위신의 문제이자 도덕적인 지탄이 되고 있다. 친일 문제나 의문사를 규명하는 것도 옳고 시급하다. 그러나 매년 새로운 정체성의 피해자가 수천명씩 생겨나고 있는 것을 고려한다면 해외입양제도는 이보다 시급하게 청산해야 할 최우선 과제라고 본다. > > 정병덕 사회부장 bdchung@kmib.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