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참, 어머니. 이게 뭐예요? 바빠 죽겠는데…”
엄마가 치마에 묻은 배추이파리를 털어 냅니다. 바짝 마른 배추이파리는 메뚜기처럼 옷에 찰싹 붙어 떨어질 생각을 안 합니다.
“여보. 이리 줘 봐요.”
옆에서 보다 못한 아버지가 바스라진 배추잎을 하나씩 떼어 냅니다. 엄마는 주방에 계시는 할머니를 향해 다시 한번 큰 소리로 말합니다..
“어머니! 제발 빨랫줄에 배추 시래기 좀 널지 마세요. 아이들 옷이고 어른 옷이고 시래기가 달라붙어서 입고 나갈 수가 없어요.”
오늘 엄마는 아침부터 바빴습니다. 유치원에 손님이 오시기 때문입니다. 어제 저녁 세탁소에서 가지고 온 치마의 기름냄새를 빼기 위해 베란다 빨랫줄에 넌 것이 잘못입니다. 그럴 줄 알았으면 엄마에게 미리 이야기할 걸 그랬습니다.
짱이는 할머니의 얼굴빛을 살피며 말없이 물통을 받습니다. 어제 낮에 사흘간 널어 말린 배추잎을 걷으며 할머니는 짱이에게 말했습니다.
“짱아. 운동회 연습한다고 피곤하제? 할머니가 시래기 넣어서 된장국 끓여주꾸마. 어여 학원 댕겨 와.”
할머니는 때꼬장물이 묻은 짱이의 얼굴을 옷소매로 닦아주며 환하게 웃습니다. 할머니는 짱이가 학교를 가고 없을 때 하는 일이 있습니다. 시장에서 물건을 사면서 받아 온 비닐을 모두 씻어 말리는 일입니다. 오이나 가지를 산 비닐은 냄새가 없지만 생선을 담은 비닐은 흔들어 씻어도 콤콤한 냄새가 납니다. 얼마 전 짱이 생일을 축하해주러 온 재석이와 반 친구들은 집에 들어서면서 코를 싸매었습니다.
“엥. 이게 무슨 냄새야. 완전 발 꼬랑내다. 아유 지독해.”
짱이는 얼른 베란다 쪽을 보았습니다. 빨랫줄에는 할머니가 널어놓은 비닐들이 만국기처럼 펄럭입니다. 짱이는 재빨리 친구들을 자리에 앉히고 할머니를 크게 부릅니다.
"할머니! 친구들 왔어요. 맛있는 것 많이 갖다 주세요".
그리고는 친구들을 쳐다보며 눈을 부라립니다.
"아이, 자식들. 누가 발을 안 씻고 온 거야. 생일 축하를 하러 오는 자세가 불량하네. 너희들 선물 이리 내놔 봐. 어디."
다행히 친구들은 선물이 뭔가 들여다보느라고 모두 정신이 없었습니다. 음식냄새에 묻혀 그 지독한 냄새는 더 이상 나지 않았지만 그날 흘린 땀을 생각하면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짱이는 친구들이 돌아가고 난 후 있는 대로 할머니에게 짜증을 내었습니다.
“할머니. 제발 비닐 좀 말리지 마. 말리려면 깨끗한 것만 하든지. 아휴! 친구들 앞에서 창피해 죽는 줄 알았단 말이야.”
짱이는 자기도 모르게 엄마가 평소 할머니에게 하던 말을 그대로 흉내냅니다. 엄마는 퇴근 후 집에 들어설 때마다 할머니에게 소리를 지릅니다.
“어머니. 요즘 세상에 흔하고 흔한 것이 비닐인데 왜 자꾸 비닐을 말리세요? 뒀다 어디 쓰려구요. 아휴! 집안에 퀘퀘한 냄새가 나서 견딜 수가 있어야지.“
그리고는 창문을 활짝 엽니다. 그 바람에 할머니가 널어놓은 비닐이랑 꼬들꼬들한 시래기가 있는 대로 흔들리며 베란다 바닥으로 떨어집니다
“아이쿠. 야야 문닫아라. 이제 조금만 더 말리면 상자에 담을 끼다. 우째 이리 쌌노? 어서 씻고 밥 먹어라, 마.“
“배추 말리는 것은 그래도 괜찮아요. 그런데 어머니, 제발 비닐은 이제 버리세요. 온 집안에 냄새가 배여 손님들 오면 창피해요.”
엄마는 통통거리며 방으로 들어가고 할머니는 다시 주방으로 와 말린 시래기를 듬뿍 넣은 꽁치 조림을 밥상에 차립니다. 구수한 밥과 찌개 냄새가 푸근히 퍼지면서 가족들은 불빛 아래 도란도란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아까 시장에 갔는데 어떤 할매가 쪼그리고 앉아 꽁치를 팔고 있길래 내 조금 샀다 아이가. 맛있나? 많이 먹으래이.”
할머니는 꽁치를 발라 짱이의 숟갈 위에 놓아줍니다. 짱이도 할머니의 밥그릇에 꽁치를 집어다 드립니다. 할머니는 다시 그것을 짱이의 그릇에다 놓고는 그릇 밑에 깔려있는 배추시래기를 집습니다.
“아이고 나는 이기 맛있데이. 이 맛에 비하면 고기 맛은 아무 것도 아닌 기라. 가을 시래기보다 맛있는 기 내 입에는 아직 없구마는.“
엄마는 할머니의 이 말을 그냥 삼키지 않습니다. 옆에 앉은 아버지를 쳐다보며 한 마디 합니다.
“어머니. 짱이 저렇게 키우면 나중에 커서 자기 마누라만 위하고 부모는 거들떠보지도 않을 거예요. 언젠가 어머니가 이야기 하셨잖아요? 맨날 생선 몸통은 아들 먹이고 엄마는 꼬리만 먹으며 일류대학에 보낸 어머니 이야기 말이예요. 여보, 당신도 기억나지요?“
어머니는 슬그머니 아버지의 지원을 요청합니다. 아버지는 물로 입을 헹군 뒤 어머니의 이야기를 거듭니다.
“그래요. 짱아 잘 들어 봐. 그 아들은 일류회사에 취직도 하고 서울 색시를 얻었어. 어느 날, 그 엄마가 아들집에 생선을 사 가지고 갔어. 엄마가 생선을 먹으려고 하자, 아들은 자기 아내에게 이렇게 말하더래. 여보 우리 엄마는 생선의 꼬리와 머리를 좋아하셔. 그러니 몸통은 우리가 먹읍시다.
짱아, 네 생각은 어때? 정말 그 엄마가 생선의 머리와 꼬리만 좋아하신다고 생각하니? 아니면 아들에게 맛있는 것을 먹이기 위해 일부러 그랬겠니?“
짱이는 두 가지가 다 맞다고 대답합니다.
“아버지. 저는 그 어머니가 진짜 생선의 머리와 꼬리를 좋아해서 그랬다는 생각도 들어요. 물론 이 이야기에서는 아들을 사랑한 어머니가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이지만요. 그런데 아들이 엄마의 마음도 모르고 그렇게 말했다면 많이 섭섭하였겠어요”
짱이는 이렇게 말하면서 할머니를 쳐다봅니다. 할머니의 마음도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자식과 며느리 그리고 손자 먹이려고 할머니는 시래기를 구해 와 데치고 씻어 말리는데 엄마는 할머니가 좋아하는 음식이라 그렇게 한다고 생각하고, 아버지와 짱이는 가족들 먹이려 그런다고 생각하니 말이지요. 두 생각이 다 할머니 마음에 들어있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저녁을 드신 할머니는 신문지를 깔고 무청을 다듬습니다. 노랗고 상한 무청시래기는 떼어내고 푸른 빛깔 무청만 소쿠리에 가지런히 담습니다. 저녁 설거지를 마친 엄마가 같이 다듬으려고 다가 와 앉습니다.
“어머, 어머니 어디서 이렇게 많은 무청을 구하셨어요?”
“아, 오늘 시장 가는 길에 말린 비닐을 무 장수에게 갖다 주었더니 무청을 공짜로 이렇게 많이 주지 뭐냐. 이렇게 많아도 데치면 조금 밖에 안 된다.”
“이제 넣을 곳도 없어요. 적당히 하세요. 팔다리 아프다고 하지 마시고요”
“내일은 무를 좀 사다가 무 목걸이를 만들어야겠다. 날씨가 이렇게 좋을 때 말려야 맛있지.”
할머니는 다 간추린 무청을 끓는 물에 넣고 살짝 데칩니다. 수증기가 거실에까지 밀려 와 유리창이 부옇게 흐려집니다. 형광등도 TV도 뻘뻘 땀을 흘립니다. 아버지가 안방에서 나와 데친 무청을 베란다에다 옮겨줍니다. 창문을 열자 밤하늘의 별들이 까맣게 밀려듭니다. 엄마와 짱이는 무청을 빨랫줄에 넙니다. 더운 김이 밤하늘에 머리풀고 훨훨 날아갑니다.
“할머니, 아까 무 목걸이라 그랬나? 그게 뭐꼬?”
짱이는 잠자리에 누운 할머니에게 다가가 다리를 주무르며 묻습니다. 할머니의 다리는 무보다 더 가늡니다. 무처럼 단단하지도 않습니다. 데친 배추잎 마냥 흐물흐물합니다. 이 약한 다리로 무슨 일을 그렇게 열심히 하시는지 잠자리에 들 때마다 에고, 에고 다리야 소리를 내지릅니다. 같이 잠을 자는 짱이는 아무리 잠이 와도 할머니가 그럴 때마다 꼭 다리를 주물러 드립니다. 그럴 때면 기분이 좋아져서 어릴 적 이야기를 잘해 주십니다.
“엉? 무 목걸이. 그건 무말랭이를 만들려고 무를 말리는 거다. 말릴 때 실에 꿰어 말리기 때문에 내가 붙인 이름아이가. 이름 좋제? 미장아, 근데 요즘도 네 이름 갖고 아이들이 놀려 먹냐?”
“놀리다마다. 그래서 아예 짱이라 부르기로 했다 아이가. 오히려 애칭인 짱이로 부르는 게 더 좋아. 요새는. 할머니, 근데 진짜 내 이름 촌스럽다. ‘장미장’이 뭐고? 거꾸로 해도 ‘장미장’. 바로 해도 ‘장미장’. 우리 반 애들이 남자 이름 치고 밥맛없는 이름이라 카더라.“
“아이구, 그런 소리 말아라. 네 이름이 얼마나 멋진 이름인데. 짱아. 네 이름이 미장이란 거 이 할미가 지었다 아이가. 네 친구들이 ‘미장원’이라 놀린다고 했제? 그 이름이 얼마나 좋은 이름인 줄 그 자석들이 모르고 하는 소리제. 암, 네 이름은 이름 값을 할끼다. 니애비가 큰 건물의 미장일을 하고 있을 때 네가 태어났거든. 아이고, 울음소리도 얼마나 우렁차던지. 이 할미는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아서 춤을 덩실덩실 추었다 아이가.“
“그래도 이름 좀 잘 짓지. 나는 이 다음에 아들 낳으면 아들 의견 물어보고 이름 지을 끼다.”
“짱아, 미장이란 이름은 말이다. 아름답게 꾸민다는 말이거든. 이 세상을 살기 좋게 가꾸고 남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란 뜻이니 얼마나 좋은 이름이고. 네 애비가 하는 일도 그렇다 아이가. 들쑥날쑥 튀어나온 철근 기둥을 흙으로 싸악 발라 메우고 울퉁불퉁 벽돌 틈새도 시멘트로 반듯하게 처리해서 근사한 건물이 되도록 하는 일인데 얼마나 멋진 직업이냐. 여자도 화장하면 더 멋지게 변하더라 아이가. 바로 그런 기라. 내 몸 하나 움직여 이 세상이 환하게 변한다 카면 그 보다 기쁜 일이 어디 있겠노. 그래서 네 이름을 미장이로 딱 지었다 아이가. 짱아. 이젠 그만 만지고 자거라. 내일 또 학교 가야제.”
짱이가 토요일 수업을 마치고 집안에 들어서자, 베란다에는 무 목걸이가 가득 걸려 있었습니다. 할머니가 말씀하신 목걸이입니다. 아직 몇 개가 더 남았는지 할머니는 짱이에게 바늘귀를 끼워 달라고 합니다. 이제 눈이 안 보여서 목걸이를 못 만들겠다 하면서도 빨랫줄에는 하얀 무 목걸이가 가득합니다.
며칠 전부터 목걸이를 준비하는 할머니의 손은 매우 바빴습니다. 무를 네모로 길쭉하게 썰어 소쿠리에 널어 말리는 일에서부터 꼬들꼬들 말린 무를 실에 꿰어 줄에 널기까지 할머니의 겨울 준비는 다른 집보다 일찍 시작됩니다. 가을 바람에 무 목걸이가 간들간들 흔들리는 것을 보며 할머니는 또 다른 것을 준비합니다. 빨간 고추를 깨끗이 닦아 볕에 널어 이리저리 뒤적이고 말린 무청은 신문지에 싸서 상자에 담아 창고에 넣어둡니다. 학교에서 돌아 온 짱이를 위해 말린 배추잎에 밀가루를 살살 묻혀 튀김을 만들어 놓기도 합니다. 짱이는 할머니가 만들어 놓은 튀김이나 쪄놓은 고구마를 손에 들고 학원으로 뛰어갑니다. 무를 말리던 바람도 짱이를 따라 같이 달립니다. 가을이 소리 없이 익어갑니다.
짱이는 월요일 아침, 선생님으로부터 기쁜 소식을 들었습니다. 짱이가 쓴 환경글짓기 작품이 최우수로 뽑혀 학교 대표로 나가게 되었다는 내용입니다. 할머니 말씀이 맞았습니다. 내 몸 하나 움직여 지구를 아름답게 한다면 그 보다 기쁜 일이 어디 있겠어요. 짱이는 자기 생각이 틀렸다는 걸 깨닫습니다. 생선의 꼬리를 먹는 엄마의 마음이 할머니의 마음이란 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세상을 아름답게 가꾸는 할머니의 손자인 것이 자랑스럽기만 합니다. 선생님은 반 친구들에게 짱이의 작품을 큰 소리로 읽어 주셨습니다.
<우리 할머니는 친구가 무척 많다. 할머니와 함께 시장을 가면 인기가수를 수행하는 보디가드가 된 것처럼 기분이 우쭐해진다. 멀리서 채소장수 아저씨, 생선 파는 아주머니가 우리 할머니를 부르기 때문이다.
“어이, 할머니 오늘도 나오셨네요. 비닐 가져 오셨으면 절 주세요.”
어떨 때는 그 친구 분들이 용돈을 주기도 한다. 그 돈에는 생선냄새가 심하게 난다. 호주머니에도 넣지 못한다. 할머니는 꼭 불쌍한 사람의 물건부터 사주신다. 그러면서 할머니는 나에게 말씀하신다.
“가게도 없는 사람들은 어서 팔고 집에 가서 아이들을 돌보아야 한다 아이가. 아줌마, 나한테 떨이하고 어서 들어 가이소.“
그러면서 아주머니의 채소를 다 사버린다. 그 일 때문에 어머니의 잔소리를 있는 대로 듣지만 할머니의 이런 행동은 좀처럼 고쳐지지 않는다. 그 아줌마는 그 뒤로 우리 할머니의 친구가 된다.
우리 할머니는 버리는 것이 하나도 없다. 얼마 전 엄마가 할머니께서 오랫동안 사용하던 그릇을 버린 적이 있다. 항상 조용조용하게 말씀하시던 할머니의 화나신 모습을 나는 그날 처음 보았다. 어머니는 쓰레기통을 뒤져 그 그릇을 다시 찾아 오셨다. 나는 우리 할머니에게 우리 동네를 지키는 환경 미장이상을 꼭 드리고 싶다.> 끝.
약력 : 2001 국제신문 신춘문예 동화부문 당선
해운대교육청 창작영재 강사
현 대청초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