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묵돌입니다.
최근들어 저는 '그럴 수 있지' 라는 말을 더 많이 쓰고, 또 자주 듣고 있습니다.
그럴 수도 있죠.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또 그만큼 수많은 삶의 방식들이 존재하는 게 사실이니까요.
나이를 먹어갈수록 세상은 너무나 넓고
월경지같은 우리의 세계는 거듭 작아집니다.
그렇게보면 이해할 수 없는 사건에, 이야기에, 또는 사람에 대해
'그럴 수 있지'라고 말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리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 자신에 대한 위로의 말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의문도 듭니다.
'우리는 정말 삶의 다양함, 무한한 가능성에 대해서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있는가?'
우리는 우리 바깥에 있는 무언가를 이해하기 위해서
부단한 관심과 집중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어쩌면 '그럴 수 있지'라는 말로 그런 수고로움을 대신하며
늘 지쳐있는 우리의 무관심을 감추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마치 '세상에는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지. 그러니까 나와 관계없는 곳에서
관계없는 사람이 무슨 일을 벌인다고 해서 내가 거기에 신경쓸 필요는 없어' 라고 말하는 것처럼요.
하지만 우리가 또 다른 삶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무기력하게 우리들 스스로의 흐릿한 단색에 빠져있을 뿐이라면,
세상은 색맹환자가 보는 풍경처럼 밋밋하고 생기없는 장소가 될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은 요즘 사회에 혐오가 만연하다는 식으로 말하지만,
실제로 우리는 무언가를 혐오하기 이전에 한없이 무관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짧은 기사 한 줄로, 눈길을 끄는 사진 한 장으로,
그리고 위키에 요약된 두세줄의 내용으로 모든 것들을 판단내린 다음
더 이상 생각하기를 그만둬버립니다.
우리는 너무 넓은 세상에 짓눌린 채
그것의 명암 정도만 가까스로 구분하고 있는 것 같죠.
이번 금요묵클럽 17기의 테마는 <THE COLORS OF LIFE>입니다.
삶은 빛의 스펙트럼만큼이나 다양한 색상을 띠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의 시야 너머, 미처 보이지 않는 곳에는 더욱이 알 수 없고
아득한 삶들이 총천연색으로 펼쳐져 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저는 우리가 이렇게 죽지 않기 위해, 즉 '색맹환자'로서 죽지 않기 위해
이해를 가장한 무관심, 즉 '그럴 수 있지'라는 표현과 싸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침내 그럴 수도 있다는 말을 할 때는 흥미없이 지루한 표정이 아니라
내가 아닌 세계에 대한 진심어린 포용심으로 말미암아야 합니다.
이해하려면 바라보아야 하고, 바라보려면 다가가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무언가를 '바라보기'에 가장 좋은 수단은
예나 지금이나 훌륭한 이야기만한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그 이야기들에 대해 한 달동안, 아주 진지하게 이야기할 예정입니다.
책과 영화 그리고 머저리같은 글을 쓰는 삼류 작가와 함께요.
저는 또 다시 말했습니다. 우리는 아주 진지하게 갈 것이라고.
환불? 그런 게 될리가 없잖아요.
시작합니다.
여러분이 원하는 첫 번째 모임에 대한 설명은 이 밑에 있습니다.
:: 금주의 묵픽 (Muk's pick) ::
「이방인」 (알베르 카뮈, 프랑스)
:: Comment ::
예.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입니다.
묵클럽에서 카뮈의 작품을 다룬 것은 <페스트>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인데요.
이 유명한 작품을 여태껏 패싱했던 이유는 단순합니다.
어떤 걸작들은 너무 유명하다는 이유로
대화주제로 삼기에는 다소 진부하게 느껴지거든요.
세상에 이놈의 <이방인>을 읽고 감명받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또 그놈의 첫 문장은 왜들 그렇게 자주 인용을 해대는지!
이젠 지칩니다. 그러니까 이참에 그냥 시원하게 해버리는 게,
여태 읽어보지 않았다면 이번 기회에 읽어버리는 게 좋겠습니다.
: TIP ::
- <이방인>은 누구나 인정하는 카뮈의 마스터피스이지만, 사람들은 그 이유를 댈 때 '민음사판 기준 본문이 148페이지밖에 안 되는 짧은 분량'만큼은 언급하지 않습니다. <이방인>은 분명 카뮈 본인의 <반항하는 인간>이나,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 비하면 매우 얇은 소설입니다. 하루 이틀 정도만 집중해서 읽는다면 큰 시간을 쏟지 않고도 완독할 수 있는 정도입니다. 중편보다 좀 더 긴 경장편 소설이라고 할까요. 하여튼 이 부담없는 두께 덕분에, '책이나 한 번 읽어볼까' 하는 사람들이 쉽게 집어들게 된다는 점은 <이방인>의 유명세에 꽤 큰 몫을 했습니다.
- 하지만 <이방인>의 내용은, 책의 분량만큼 친절하거나 접근성이 높다고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난해한 편입니다. 고전문학에 재미를 붙여보려다가 처음 집은 책이 <이방인>이어서, 스스로가 난독증처럼 여겨졌다는 분도 여럿 보았는데요. 그건 읽는 능력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원래 잘 읽기가 어려운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방인>을 읽는데 뭔가 이해가 안 된다, 무슨 의미인지 백퍼센트 해석을 못하겠다 싶은 부분이 있다면, 그건 잘 익은 돈가스 단면의 선홍색처럼 자연스러운 것이므로 안심하고 드셔도 됩니다.
- 그나마 서사가 뚜렷하게 드러나보이는 초반과 달리, 후반에 접어 들어서는 1인칭 에세이나 심리소설을 방불케할만큼 내적인 묘사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소설이 절정에 다다를수록, 결말에 가까워질수록 추상적으로 변한다는 점에서는 <데미안>과도 비슷한데요. 모든 걸 이해하려하기 보다는 '느낌을 갖고간다'는 기분으로, 지나친 부담감없이 읽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우리는 즐거운 독서를 하려는 것이지, 문해력 테스트를 하려는 것이 아니니까요.
- 사실 <이방인>은 탁월한 서사를 지닌 작품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애초에 카뮈가 기가 막힌 반전이나 기깔나는 소재선정으로 승부를 보는 작가는 아니라서요. 작가인 동시에 철학자로서, 사상가로서 더욱 이름을 떨쳤던 카뮈인만큼 '줄거리 자체'보다는 '줄거리까지 도달하는 사유의 흐름'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말해두건대, 유튜브나 나무위키에서 줄거리 요약이며 짧은 해석본을 읽고 오는 것은 '가장 적극적으로 <이방인>을 읽지 않는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분량이 짧고, 워낙에 유명한 작품이다보니, 그만큼 해석도 번역도 다양합니다. 특히 번역과 관련해서는 사짜번역 논란이 일기도 했었는데요. 가장 표준적인 것은 민음사판 김화영씨의 번역입니다. 표지가 지나치게 화려한 버전은 경계하시고, 다양한 해석은 묵클럽 의자에 앉아 즐겁게 주고 받는 것으로 하자고요.
- 위 책 이미지의 표지를 보면 알겠지만, 카뮈는 한 외모 한다는 프랑스 작가들중에서도 유독 잘생긴 편입니다. 땅딸막한 키에 눈동자가 벌어진 사르트르, 배 나온 옆집 아저씨같은 헤밍웨이, 말끔하지만 어딘지 찐따같은 분위기가 있는 피츠제럴드와는 달리 작가로서의 간지가 풀풀 나죠. 동시대 유명 할리우드 배우였던 험프리 보가트와도 좀 닮았습니다. 거기에 운동도 좋아하고(장래희망이 축구선수였음), 부유하지는 않아도 말끔하게 입고 다녀서 스타일도 좋았습니다. 이런 인간이 글까지 잘쓰다니. 삶이란 역시 부조리합니다.
:: 모임장소 ::
서울특별시 마포구 동교로23길 40 지하 카페 <공상온도>
- 홍대입구역 1,2 번 출구 6분 거리
:: 일시 ::
2023년 11월 10일 금요일. 오후 8시 ~ 오후 11시
* 3시간 진행, 도중에 참여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모임의 흐름을 따라가기 위해서 가급적 (특히 첫 모임에는) 시간에 맞춰 참석해주세요.
* 카페 <공상온도>의 방침상, 기존 고객 퇴장 및 대관 준비 시간으로 인해 오후 7시 20~30분부터 입장이 가능하오니 이용에 착오 없으시길 바랍니다.
:: 준비물 ::
- 「이방인」 (알베르 카뮈)
(구매 링크 - 예스 24)
:: 기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