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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 천로역경의 저자 ... 문지기(김창환목사) 드림
존 번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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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자들 중에는 존 번연이 조금만 일찍 태어났더라면 ‘청교도혁명’을 ‘번연혁명’이라 불렀을 것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이는 기독교 역사에 있어 존 번연이 위치를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번연은 이 한권의 책으로 기독교 역사에 중요한 이정표를 세운 신앙의 인물입니다.
● 존 번연은 1628년 잉글랜드의 베드포드에 있는 엘스토우라는 마을에서 가난한 놋쇠 세공사,
즉 떠돌이 땜장이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항아리와 주전자 등을 만들기도 하고
수선하기도 하는 사람으로 가난했으나 정직했다.
번연은 영국 중부의 오지 농촌에서 수많은 빈민 소작농의 아이들과 함께 자라났다.
시골 학교에서 읽는 법과 쓰는 법을 배웠지만, 가업을 전수받기 위해 10살의 어린 나이에
번연은 학교를 그만두고 16살까지 아버지 밑에서 땜장이 일을 배운다.
번연의 불굴의 정신력과 상상력은 제도적인 교육보다는 이렇게 어린시절에 받은 영향들로부터
형성되었다. 그는 학교에는 가지 않았지만 시간이 나는 대로 그 당시 유행하던 기사들의 모험담 등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는데, 그런 책들은 케임브리지 근처에서 열리는 큰 시장 같은 곳에서 구했다.
번연은 또한 당시 영국 청교도들에게 인기가 있던 여러 가지 책들을 읽었다.
예를 들면 쉬운 말을 사용한 설교집이나 순교자의 일대기, 일상의 도덕적인 글 등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번연은 영어 성경을 열심히 읽었다.
영국국교회 교인이었던 부모 밑에서 자라났지만 그는 편협한 신앙에 의해 구속받지 않았으며
그 지방의 방대한 민담과 전승들도 접하게 되었다.
1644년, 번연이 16살이 되었을 때, 계속되는 불행 가운데 이 시골 소년은 가족과 헤어져 세상으로
떠밀려 나가게 된다. 그해 6월에 어머니가 죽었고, 7월에 누이동생 마거릿이 죽었으며,
그 와중에 8월에는 아버지가 3번째 아내를 얻었다. 그리고 내란(청교도 혁명)이 터지자
번연은 11월에 크롬웰의 의회군으로 징집되어 뉴포트의 파그넬에 있는 수비대의 보충병으로 배치되었다.
번연은 뉴포트에서 1647년 7월까지 있었지만 본격적인 전투를 치러본 적은 없었으며,
한번은 어느 지역을 포위 공격하는 임무를 받고 선발되어나갔다가 바로 앞에 있던 동료가
총에 맞는 일이 생겼는데, 훗날 그는 이때의 일을 회상하며 하나님의 섭리로 살아남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번연은 제대 후 20세경에 결혼했다. 그는 자서전에서 자기와 자기의 첫째 아내가
'접시나 숟가락 같은 가재도구도 없을 만큼 매우 가난한 상태에서 서로 만났다'고 말한다.
하지만 아내는 경건한 가정 출신으로, 번연에게 결혼지참금 대신 ‘평범한 사람이 하늘에 이르는
좁은 길’이라는 책과 ‘경건 훈련’이라는 2권의 책을 주었고, 이 책들은 번연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결혼 당시 그는 기독교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결혼한 후에 독실한 아내의 영향을 받아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며, 가족과 함께 교회에 나갔습니다.
● 번연의 회심과 관련해서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어느 날 번연은 거리를 거닐던 중 햇볕을 쬐며 이야기하는 여인들의 대화를 우연히 엿듣게 된다.
대화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얼마나 사랑하셨고 또 자신들이 얼마나 비참한 상태에서 구원받게
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다. 이 대화를 들은 후 번연은 자신에게는 거듭남과 구원에 관한 경험이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여인들의 대화는 번연의 머리를 떠나지 않았고 번연의 마음에 의심의
불길을 질러놓고 말았다. 두려움과 공포 속으로 그를 세차게 몰아붙였다.
번연은 고뇌한다. "내가 만약 하나님의 은혜에서 떨어진 자라면?
내가 만약 선택받지 못한 자라면? 나처럼 비열하고 더러운 자가 어찌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을 수
있단 말인가?" 이러한 의심 속에서 번연은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해 성경 읽기에 몰두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골1:20)라는 말씀을 읽으면서 거듭남을 경험하게 된다.
● 이 가난한 부부는 메리라는 첫 딸을 낳았는데, 날 때부터 눈이 멀었다.
번연의 첫째 부인은 그 뒤 엘리자베스, 존, 토머스를 더 낳고서 1658년에 죽었다.
번연은 결혼한 지 10년이 지나 서른 살이 되었을 때, 그의 아내는 죽고 없었고,
열 살이 채 안된 아이들 넷이 남았다. 그중 한 아이는 앞을 못 보았다.
번연은 이같은 슬픔을 딛고 교회의 집사로 안수 받고 말씀을 전파하기 시작하였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의 말씀을 듣고 구원 얻는 역사가 일어났다.
1660년, 왕정이 복구되어 복음적인 설교를 금하는 법령이 발령되었지만 번연은 계속해서 설교하다가,
불법 집회를 인도했다는 죄목으로 체포되어 3개월간 감옥에 수감되는 판결을 받게된다.
그러나 풀려난 후 더 이상 설교하지 말라는 명령을 끝내 거절 12년간 감옥생활을 하게된다.
번연은 당시 재혼한 상태였는데, 감옥에 투옥되는 날, 가장 아프고 슬픈 것은 어린 아이들 때문이었다.
특별히 앞을 못 보는 아이 때문에 더욱 가슴 아파했습니다. 그가 당시를 회상하며 남긴 글에 보면,
“가족들, 특히 내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앞 못 보는 불쌍한 아이와 생이별을 하게 될 때,
그들이 맞닥뜨리게 될 수밖에 없는 많은 역경과 비참한 생활을 생각하니...
오, 내 눈먼 자식이 견뎌야 할 역경을 생각할 때면 내 마음은 산산조각이 나는구나!”
12년 뒤 번연은 감옥에서 풀려나 베드포드에 있는 교회의 목사로 청빙을 받아 거기에서 죽을 때까지
16년 동안 목사로 사역하게 된다. 그 뒤에도 또 한번 투옥이 있었지만, 고난의 연속이 가중되는
그런 와중에서도 하나님은 그의 생명을 지켜주셨습니다.
1688년 8월 런던으로 여행을 했습니다. 런던에서 돌아오는 길에서 그는 말 위에 올라탄 채로
억수같은 비를 맞았습니다. 그날 이후 그는 심각한 열병으로 앓아누웠으며, 1688년 8월 31일,
그의 나이 60세에 자신도 ‘천로역정’에 나오는 천국을 향한 순례자의 길을 떠났습니다.
● ‘천로역정’이 처음 나왔을 때, 이 비유적이고 우화같은 책은 지성적 엘리트들에게 조롱을 받기도 했지만,
수백 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그의 책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책은 고난에서 나온 위대한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스탈린의 러시아 강제노동수용소에서 유형생활을 한 후, 대문호 알렉산더 솔제니친은 이렇게 썼습니다.
“감옥아, 내 너를 축복하노라! 나는 거기서 충분히 섬김을 받은 셈이다. 나는 거기서 내 영혼을 먹였으며,
주저 없이 이렇게 고백할 수 있다. 감옥아, 내 너를 축복하노라. 내 인생에 네가 함께 있음이여!”
어떻게 해서 사람이 감옥 생활에 대해 축복을 운운할 수 있단 말인가?
번연의 삶과 고난은 이에 대해 한 가지 답을 던져줍니다. 땜질, 놋쇠질이라 불리던 생업을 아버지로부터
이어받았고, 그로 인해 그는 가난과 친구가 되어 평범한 서민들 수준으로 읽고 쓸 수 있는 교육은 받았으나,
보다 상위의 어떠한 정규 교육은 받지 못했습니다. 이런 형편을 감안할 때 그가 기독교에 끼친 영향력은
참으로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 장차 망하게 될 죄악된 성을 떠나 천성을 향하여 떠나는 한 순례자의 여행을 장엄한 서사시처럼
그려내고 있는 이 <천로역정>은 고뇌와 회심, 전도와 박해 그리고 마침내 최후의 승리로 이어지는
번연 자신의 고달픈 생에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1678년 출판된 이 책은 여러 세대에 걸쳐 그리스도인들에게 깊은 사랑을 받았으며 역사상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혀진 신앙서적이 되었다. ‘천로역정’은 칼빈의 ‘기독교강요’와 함께 기독교 최고의 고전으로 꼽히는
불후의 명작이다.
번연은 옥중에서 집필 활동을 계속하여 48편의 다른 저작들을 남기기도 하였다.
번연의 ‘천로역정’ 원고가 존 오웬에게 보내졌을 때 오웬은 “내가 배운 모든 학문과 ‘저 대장간의 힘’
과 버꾸고 싶다” 고 말하였다고 전하여 오고 있다. 번연의 설교와 저술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점은,
그가 그리스도인의 ‘성화의 과정’에 대해서 분명하게 교훈하였다는 것이다.
인간이 죄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룩하게 살아가는 ‘성결’이 그의 설교의 주제였다
● <천로역정>
나는 이 세상의 광야를 걸어 다니다가 어느 동굴에 이르게 되었고, 그 속에 들어가 잠을 자게 되었다.
나는 꿈을 꾸었다. 꿈에 한 사람이 허름한 옷을 입고 자기 집을 등지고 섰는데, 손에 한 권의 책을 들고
등에는 큰짐을 지고 있었다. 그는 책을 펴서 그것을 읽으면서 울었고 무서워하였다.
그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슬픈 소리로 이렇게 외쳤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사람은 크리스찬이었다. 그는 '멸망시'에 있는 자기 집에 돌아가, 아내와 자녀들에게 괴로움을
털어놓았지만 그의 말을 진지하게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는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을 것인가"하고
울며 들을 거닐다가 전도자를 만났다. 전도자는 그에게 "저기 있는 문이 보입니까?"했으나 보이지 않았다.
전도자는 다시 "저기 있는 빛은 보입니까?"하였다. 그가 보인다고 대답하자 전도자는 이렇게 말했다.
"저 빛을 향해 곧장가면 문이 있을 터이니, 그 문을 두드리도록 하십시오."
그 말을 들은 크리스찬을 멸망시를 떠나 그 빛을 향해 달려갔다.
아내와 자녀들이 뒤 따라와서 울부짖으며 되돌아가자고 졸랐으나,
그는 귀를 막고 "생명, 생명, 영원한 생명!"하고 외치며 광야 저편을 향해 달려갔다.
이웃에 사는 '고집쟁이'와 '연약자'도 잠시 따라오다가 곧 되돌아갔다.
크리스찬은 이윽고 언덕 위에 있는 '좁은 문'에 이르게 되었다. 그는 거기서 교훈을 받고 새 힘을 얻었다.
그때 그가 등에 지고 있던 죄의 무거운 짐은 저절로 땅 밑으로 굴러 떨어지고, 그는 축복과 한 권의 책을
받아 들고 다시금 길을 떠났다.
그러나, 그가 가는 앞길은 험난하기만 하였다.
'어려움의 산'을 지나,'겸손의 골짜기'에서 악마와 싸워 승리하였다.
'죽음의 그늘진 골짜기'에서 끝없는 늪의 고난의 길을 지나며 '독실한 신자'와 동행이 된다.
그러나' 허영의 저자'에서 그들은 시민에게 회개하라고 전도하다가 체포되어 재판에 회부된다.
거기서 '독실한 신자'는 순교의 죽음을 당한다.
크리스찬은 탈옥하여 거인이 살고 있는 '의심의 성'에 들어갔으나 다시 체포된다
. '절망자'는 크리스찬에게 자살을 권하지만, 그는 '구원의 열쇠'로 탈옥하여 기쁨의 산에서 쉬고 난 뒤,
많은 시련을 이기고 마침내 천국 문에 이르게 된다. 그 '도성'은 태양처럼 빛났고,
거리는 황금으로 깔렸으며, 시민들은 손에 종려나무 가지와 거문고를 들고 있었다.
● 제1부는 작자가 12년간의 감옥생활을 하고 나서 1675년에 다시 투옥되었을 때 집필하여,
1678년에 출판되었고, 제2부는 1684년에 출판되었다. 작자의 꿈이야기를 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제1부는 주인공 크리스챤이 처자를 버리고 등에 무거운 짐(죄)을 지고, 손에는 한 권의 책(성서)을
들고 고향인 ‘멸망의 도시’를 떠난다. 도중에 여러 인물들을 만나며, ‘낙담의 늪’ ‘죽음의 계곡’
‘허영의 거리’를 지나, 천신만고 끝에 ‘하늘의 도시’에 당도하는 여정을 그렸다.
제2부에서는 그의 처자가 그의 뒤를 쫓아가는 여정을 그렸다.
이 작품은 간결한 언어를 구사하여 진지한 신앙과 풍부한 인간관찰을 묘사하여 영국의 근대문학의 선구로서,
영국문학 발전에 기여한 바 크다.
한국에서는 조선 후기인 1895년 선교사 제임스 스카스 게일(James Scarth Gale)이 번역하고,
김준근(金俊根)이 판화를 그려 상하 2책으로 원산에서 목판으로 간행하였는데, 이는 근대의 첫 번역소설이다.
- 옮긴 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