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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시(泗川市) 와룡산(臥龍山. 799m)을 가다.
글 쓴 이 棹 一 高 枓 永
12월27일, 어둠을 헤치고 배낭을 꾸려 차에 오르니 정원에 알맞다.(46명)
절기는 동지(冬至)를 지나 엊그제가 크리스-마스 였건마는 궐석(闕席) 없이 산뜻하게 출발할 수 있어 다행이다.
영산(靈山) 휴게소에서 간단한 조반을 드시고는 줄곧 내달아 사천시로 접어드니... 새로 지은 시청사(市廳舍)와 그 앞으로 펼쳐지는 넓은 들판이며, 사천만(泗川灣)의 검푸른 물바다가 한눈에 들어 온다.
남양동사무소를 지나 죽림동의 출발 기점에 이르니, 넓은 주차장에 깨끗이 잘 정돈되어 있다. 각자 편한 자세로 서 서 최대장의 구호에 맞춰 간단한 준비운동으로 몸을 풀고 일렬로 오르니, 46명 전원(全員) 등산이다.
기축년(己丑年) 한해를 마무리 하는 등산이라 감회(感懷)가 깊은 것은 물론이요, 여러 가지 조짐들이 밝고 희망적이다.
남양저수지를 지나 세천(細川)의 임내교를 건너니 저만큼 다가오는 와룡산(臥龍山)의 모습이 우람하고도 선명(鮮明)하게 보이고, 산천(山川)의 모습들은 낙엽수(落葉樹)와 상록수(常綠樹)의 구분이 확연(確然)하다.
20여 분을 걸어 오르니 등산로는 잘 다듬어져서 걷기에 편안하고, 잎떨어진 나목(裸木)들 사이로 한겨울의 따뜻한 햇쌀이 비춰 주시니... 모두가 겉옷을 하나 둘씩 벗어 가방에 챙겨넣어신다.
중부권 이상에는 폭설(暴雪)이 오고 영하의 날씨로 나들이가 어렵다고 들 하는데... 이곳 사천(泗川)에는 포근하기 이를데 없으니, 이것도 남산님들의 크나 큰 복입니다 그려!
다시 20여 분을 더 걸어 올라 전망(展望)이 좋은 바위봉에서 잠시 조망(眺望)하니... 사천시가지가 한눈에 다 내려다 뵈고, 새로지은 시청사를 중심으로 띄엄 띄엄 자리한 아파트 들이며 근래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주택들이 아직은 엉성해 보인다.
그 너머로 내륙 깊숙이 파고든 사천만(泗川灣)의 도도한 물결위로 웅장한 사천대교(泗川大橋)가 서포면으로 이어져서 21세기 설치미술이라 하면 어떨까 싶다!
연(連)하여 남쪽으로는 각산(398m)과 호두산(227m) 너머로 옛 삼천포(현 사천시) 시가지가 오밀조밀하게 들어서 서 항구도시로서의 번화(繁華)함이 시청사 주위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수려(秀麗)하고도 정겨운 한려해상공원(閑麗海上公園)의 경치를 마음과 디카에 담아서 가파른 능선길을 오른다!
얼마를 올랐을까? 상사바위(천왕봉. 625m) 근처에서 여러 회원님들에게 기념촬영을 해 드리고 사방을 둘러보니... 시야는 더욱 넓어져서 망망대해(茫茫大海)에 점 점이 떠 있는 섬들은 한폭의 그림이요! 위대한 대자연의 천연기념물이로다!
모두들 탄성을 지르며... 사진 찍기에 분주하시다. 오늘도 디카맨 황부회장님, 김해진님, 김취산님 등이 사진촬영에 여여(如如)하시고, 이제는 필자까지 합세하니... 남산의 까페가 더욱 풍성 하겠슴니다 그려!
천왕봉(상사바위) 정상에 이르니, 까만 빗돌에 “경상대학교산악회”에서 세운 “고(故) 이수호 등반대장”의 기념비가 서 있다. 가신님의 뜻도 거룩하지만, “경상대학교산악회”와 “경남학생산악연맹회원”님들의 정성(精誠) 또한 숭고(崇高) 하시다.
잠시 묵념(黙念)의 예(禮)를 드리고 ‘도암재’로 내려가다 천왕봉 쪽을 다시 되돌아보니... 깎아지른 절벽에 위엄이 가득하고, 암벽훈련에는 더 없이 좋겠으나 다가 가기에는 쉽지않은 봉우리다!
한참을 걸어 나려 도암재에 이르니 선착한 회원님들이 평상(平床)에서 편히 쉬고 있으며, 그 곳에는 사천시에서 시설해 놓은 평상이 여러개 놓여있어 당국의 배려(配慮)가 따사롭게 느껴진다.
얼마를 쉬다 다시 “새섬바위봉”으로 오르니 이정표는 1.0Km라 적혀있다. 경사는 가파르고 등산로 주변에는 돌너덜이 많아 돌탑을 쌓아 놓은데가 여러곳에 보인다.
망(望)바위 부근에서 여러 회원님들에게 기념촬영을 해 드리고 30여 분을 올라 “새섬바위봉(797m)"에 이르니 사천시와 그 주변의 풍광들이 한눈에 다 들어온다.
그 옛날 “새섬바위”는 온 세상이 물에 잠겼을 때(천지창조 ?) 새(鳥) 모양으로 남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해 오는데... 아무리 보아도 새 모양은 아닌 듯 하며, 그 이름에 의미를 부여 하는 듯... 어디선가 커다란 새 한 마리가 “새섬바위” 주변을 빙~ 빙~ 맴돌다 날아간다.
이때다! 싶어, 얼른 디카를 들이대니... 내 마음속을 그새 알아챘는지... 멀~리 멀~리 날아가신다!
아쉬운 마음으로 몇걸음을 더 나아가 적당한 장소에서 모두들 준비해 온 도시락을 드신다. 한 겨울의 날씨가 포근하다고는 하나 고산(高山)의 기후(氣候)는 쌀쌀하고 차서 손이 다 시리다. 후식으로 서부장(서경철)님이 주신 쌍화차며, 과일까지 곁들이니... 더는 바랄것이 없구나!
와룡산(민재봉) 정상으로 가는길은 평탄하고도 정겨워서 산책하는 기분이 다 들고, 등산로 주변에는 진달래 나무가 끝없이 펼쳐져서 봄 산행에 더없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자세히 보니... 잎 떨어진 앙상한 가지에는 꽃눈이 뾰족 뾰족 앙붙어서 봄맞을 채비를 단단히 하고 있도다!
쉬엄 쉬엄 여유를 부리면서 정상에 이르니... 멀리서는 뾰족하게 보이던 봉우리가 이외로 널찍하고도 평평 하여서 많은 사람이 쉬어갈 수 있겠도다! 평범(平凡)한 것이 비범(非凡)하다드니... 여기를 두고 한 말이던가!
여러 회원님들에게 정상표석(頂上標石)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해 드리고 잠시 사방을 둘러 봅니다.
와룡산(민재봉 旻岾峰. 799m)은 낙남정맥상의 고성군 대곡산(543m) 부근에서 남서쪽으로 선당산(352m)과 수태산(575m), 향로봉(579m)을 거쳐 이곳 와룡산에 이르고, 다시 남쪽으로 각산(398m)을 지나 노산(26m)에서 그 맥을 남해바다에 떨구고 있으니... 이름하여 와룡지맥(臥龍支脈)이라 한다.
이름 난 명산(名山)에는 그 품 또한 넓어서... 동으로 지척에 보이는 향로봉 기슭에는 신라 문무왕 16년(676)에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운흥사(雲興寺)가 있어, 임진란(1592년) 때에는 승병(僧兵)의 본거지로서 사명대사(四溟大師) 지휘아래 6000여 명이 머물렀다고 한다.
임란 후에 운흥사는 불가(佛家)의 화원(畵員) 양성소로 이름을 날렸으며, 마침내 영조 때 불화를 잘 그리기로 이름난 의겸(義謙)을 배출 하였다.
의겸은 현존하는 조선시대 불교 회화 중 가장 많은 걸작품을 남긴 화사(畵師)이며, 괘불(掛佛)만 해도 운흥사 괘불을 비롯해서 진주 청곡사, 무주 안국사, 부안 개암사에 작품을 남겼고, 그 밖에도 영산회상도, 삼장탱, 관음탱, 감로탱 등을 그려 채색과 필선, 구도가 뛰어나다는 평을 듣고 있는데... 일정상 답사할 수 없슴이 아쉬울 뿐입니다.
게다가, 사천의 봉명산 아래 다솔사(多率寺)는 신라 지증왕 4년(503)에 연기조사가 창건한 이래로 경남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절집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만해 한용운(1879~1944)이 머물며 수도 한 곳이기도 하며, 특히 승려이면서 독립운동과 정치, 교육 활동에 활발했던 김법린(1899~1964)과 최범술(1904~1979), 또 불교철학을 연구하는데 힘쓴 김범부(1897~1966), 소설가 김동리(1913~1955)선생 등 이 은거하면서 독립운동을 한곳으로도 유명하다.
아울러 김동리는 1936년부터 1940년까지 다솔사에서 ‘광명학원’이란 야학(夜學)을 세워 농촌계몽운동을 펼쳤으며, 다솔사는 또한 1963년 단편소설 [等身佛 등신불]의 배경이 되기도 한다.
또 한편, 사천시 곤양면 흥사리 가화천 부근에는 고려 우왕 13년(1387)에 세운 매향비(埋香碑.보물 제614호)가 있어 답사객의 발길을 불러 들이기도 하는 곳이다.
향(香) 중에는 바닷물에 깊이 가라앉혔다가 사용하는 침향(沈香)이 가장 좋다고 하며, 침향은 태워도 그을음이 없고 강철같이 단단해서 두드리면 쇳소리가 날 정도라 한다.
이처럼 향을 땅에 묻고 “국태민안과 미륵보살의 하생을 기원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매향비가 사천시 외에도 강원도 고성 삼일포 매향비, 전남 신안군 암태도 매향비, 충남 서산 해미 매향비 등 이 있으니...
훗날의 답사를 희망(希望) 하면서, 다시 고개를 들어 안내판을 보노라면... 민재봉에서 남해바다를 바라보는 전경이 사진에 담겨있다.
사량도, 기차바위, 욕지도, 두미도, 수우도, 신수도, 금산(681m), 남해(호구산 618m), 각산, 상사바위(천왕봉), 남해(망운산 786m), 새섬바위 등을 사진과 대조(對照)를 하면서 짐작 해 본다.
와룡산의 정상 민재봉에서 기축년을 되돌아 보니...
지나 온 삼백육십일이 남은 닷새보다 짧구나!
손에 잡히는것도 없는데 무엇을 구하려 달려 왔던가!
이순(耳順)의 세월이 엊그제 같은데...
남은 시간들이야 더 말해 무삼 하리요!
시간도 세월도 본래 없는 것을 더는 논(論)하지 말자!
하산길은 비교적 순탄하고 날씨도 포근하여 언땅이 녹아 질척 질척한 곳이 상당하다. 본래는 기차바위 능선을 지나 와룡동으로 하산(下山) 하기로 계획 했으나, 산불예방 관계로 출입이 통제되어 백천사 방향으로 내려간다.
백천재를 지나 한시간 여를 걸어 나리니... 근래에 지은 백천사(百泉寺)가 저만큼 언덕위에 웅장하다.
경내(境內)로 들어서니 거대한 자연석(自然石)에 세계법왕(世界法王) 일붕 서경보(一鵬 徐京保)스님의 글씨가 중생을 반갑게 맞아 주신다.
관 음 송(觀 音 頌)
병상록양삼제하(甁上綠楊三除夏) (화병 위 푸른 버들은 삼복더위를 식혀주고)
암전취죽시방춘(岩前翠竹十方春) (바위 앞 대나무가 푸르니 온세상 봄이구나!)
그 옆에는 또 창건주(創建主) 김범걸(金凡傑)님이 세운 돌에 일붕 서경보 스님의 글씨를 새겨 놓았슴니다 그려!
대 방 광 불 화 엄 경 ( 大 方 廣 佛 華 嚴 經 )
평 화 통 일 기 원 대 비(平 和 統 一 祈 願 大 碑)
머리 위로는 연등(蓮燈)이 하늘을 덮어 있고, 그 아래 석상(石像)의 달마(達磨)는 선기(禪氣)로 다져진 단전(丹田)이 불룩하여서 오 가는 중생들이 모두들 만져 보신다
여러 계단을 올라 약사와불전(藥師臥佛殿)에 이르니 거대한 목와불(木臥佛)이 법당에 모셔져 있다. 자료에 의하면 백천사 와불(百泉寺 臥佛)은 길이 13m, 높이 3m로 중국에서 들여 온 2300년된 소나무를 조각해 도금했으며, 그 안쪽에는 나무를 깎아내 몸속법당을 만들어 부처님을 모셔 놓았다. 그래서 각 각 “목와불” 또는 “와불몸속법당” 이라고 불린다. 와불몸속법당에는 8명 정도가 들어가 기도를 드릴 수 있다고 한다.
불법(佛法)의 장엄함과 신비함을 목와불(木臥佛)로서 나타 내려는 정성과 노력이 역력(歷歷)해 보입니다 그려!
간단한 예배(禮拜)를 드리고 나와, 목탁(木鐸)소리를 낸다는 우공(牛公)의 처소(處所)로 가니... 우바니(優婆尼) 우바새(優婆塞)님들이 많이도 운집 해 계신다.
우리안에는 에미 우공이 3마리, 애기 우공이 한 마리... 관리 처사님이 우공에게 뭐라고 하시니, 목을 길게 빼면서 혀를 힘겹게 굴리드니... 똑~ 똑~ 소리가 목탁소리와 흡사(恰似)하다.
새끼 송아지도 그러냐고 여쭈니... 전문가의 말씀이 “유전은 되지 않는다.”고 하드라 신다. 전국적으로 이런 소가 10여 마리 정도 있다고 하면서... 사료를 퍼 내신다.
움~~메~~ 음~~ 매~~ 하고 내는 소리가 목탁소리로 들리는 것인가...?
도량내(道場內) 전각(殿閣)들은 근세에 지어진 건물들이라 고색(古色)어린 멋은 없으며... 그저 장엄하고 화려할 뿐이다.
와룡산(臥龍山)을 주산(主山)으로 하여 청룡과 백호가 뚜렷하고, 적당한 거리에서 안산(案山)까지 마주하시니, 도량(道場)이 들어설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산문(山門)을 나섬니다.
불법(佛法)의 진수(眞髓)는 형상(形相)이나 문자(文字)로도 나타낼 수 없는 것인데...
장엄(莊嚴)하고도 신비한 목와불과 우공(牛公)의 형상을 빌어 보여 주시려는 것인가...?
보일 듯~ 말 듯~ , 알 듯~ 모를 듯~ 이 미련한 중생의 경계가 참으로 안타깝구려!
단기 4342년(서기2009년) 12월 27일
경남 사천시 와룡산(臥龍山.799m)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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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와룡산 산행이 절로 신바람이 납니다...역사가 살아 숨 쉬는 곳인 줄 이제야 깨닫고 ....수고 많았습니다. 사진이 첨부되니 맛있는 과일 같이 향기롭네요
수고랄께 있슴니꺼...! 황부회장님의 수고가 참으로 크지예~~ 늘 고맙슴니다.
함께 하지못해 섭섭한 마음 회장님의 산행후기로 달래 봅니다....와룡산 잘 댕겨 갑니데이~~~~^^*
까페가 아니면 뵐 수 없으니... 금년에는 개근상 받도록 등산하이~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