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살아 숨쉬는 시장으로
살다 보면 마음대로 되는 것 하나 없는 현실에 기운이 빠질 때가 있다. 그럴 때에는 시장
이 특효약이다. 장담하건대 딱 하루만, 이르면 새벽 3시부터 시작하는 시장상인들의
일과를 엿보는 것만으로도 맥 빠진 오징어마냥 흐느적거리던 사지가 ‘무쇠팔 무쇠다리’
로 자동 변신할 것이다. 심장도 뜨끈해진다. 모두가 잠든 시간, 누구보다 빨리 하루를
시작하는 그들을 그저 바라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수산시장이라면 살아 숨쉬는 ‘날것’들
의 생명력도 힘을 보탠다. 우리에게는 그저 ‘맛있는 것들’이지만 앞날을 아는지 모르는지
새빨간 고무 대야에서 끊임없이 탈출을 시도하며 아직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활어들의 몸
짓은 힘차서 사랑스럽고 조금은 안쓰럽다. 시장이 품은 생명력을 설명하는 사설이 길었다.
사람이 모여드는 곳에는 어디든 시장이 생겨난다. 사람들이 모이면 그들을 따라 다양한
물품들이 모여들고 사람들이 떠나면 시장도 조용히 사라진다. 사람과 시장, 이 둘은 떼려
야 뗄 수 없으니 시장구경이 곧 사람구경인 셈. 같은 이유로 전국 각지에는 다양한 장이
선다. 대부분의 대형시장은 기본적으로 매일장(상설시장)이면서 5일장과 7일장을 겸하
기도 한다. 각 시도의 내로라하는 전통시장 중, 겨울 끝자락 포항의
죽도시장갈대숲에 세워진 동해안 최대 전통시장
죽도시장이 자리한 죽도(竹島)동은 이름 그대로 섬이었다. 칠성천과 양학천 등 주변의
하천을 복개하면서 육지로 흡수되었다. 지금의 지도를 보면 대체 어디가 섬이었을까 싶지
만 형산강 하구에는 죽도뿐 아니라 대도·해도·송도 등의 섬이 있었다. 늪지대였던 죽도는
갈대가 우거졌다고 ‘갈대섬’이라고 부르다 줄여서 ‘대섬’이 되었다. 이를 한자로 바꾸면서
‘죽도’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들 섬들을 ‘섬안’이라 했다. 포스코대교 옆을 지키는 섬안큰다리
가 지금은 사라진 섬들이 존재했음을 증명한다. 포항시청 홍보실 관계자는 "오는 10월 동빈
내항 공사를 마치고 동빈내항과 형산강을 잇는 물길이 살아나면 그때의 정취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죽도시장의 하루는 새벽 5시면 시작된다. 흔히들 죽도시장
에는 활어와 수산물, 건어물 정도만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데 천만의 말씀이다. 죽도시장을
두고 포항 과메기를 맛볼 수 있는 아담한 포구에 딸린 시장을 상상했다면 역시 마찬가지다.
이곳은 단순한 수산시장이 아니다. 농산물·식품·청과는 물론 떡집과 방앗간·의류·신발은
물론 한복과 이불 등 혼수용품까지도 포함한 대형 전통시장이다. 이 다양한 품목들이 14만
8000㎡(약 4만5000평)의 부지에 2500여 개의 점포 구석구석에 들어서 있다. 동해안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전통시장이다. 처음부터 이렇게 거대했던 것은 아니다. 해방 후 지금
의 칠성천 복개주차장을 따라 먹고 살기 위해 하나둘 모여들었던 좌판이 시작이었다. 배고프
던 시절이었다. 입에 풀칠하기 위해 나선 어머니들은 ‘자식에게만큼은 이 고생 물리지 않겠다
’고 이를 악물었고, 1970년대 초 포스코가 들어서면서 죽도시장은 전국구 시장으로 도약한다
. 포항 경제를 이끄는 쌍두마차로 불리던 죽도시장과 포스코는 형산강을
사이에 두고 사이좋게 마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