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의 사자성어(61)>
토사구팽(兎死狗烹)
토끼 토 (兎), 죽을 사(死), ‘토사’ 라함은 ‘토끼가 죽다’라는 뜻이고, 개 구(狗), 삶을 팽(烹), ‘구팽’ 이라함은 ‘개를 삶는다’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토사구팽’이라 함은 “ 토끼가 죽으니, 개를 삶는다”는 말이다. 즉 토끼사냥이 끝나니, 토끼를 잡던 사냥개를 삶게 된다는 뜻이다.
토사구팽이라는 말은 공적을 세웠음에도 나중에는 버림을 받는 경우에 흔히 쓰인다. 선거에 있어서 당선자를 만드는데 큰 공헌을 했음에도 나중에는 배신당해서 쫓겨나는 경우에 흔히 토사구팽이라는 사자성어를 사용한다. 대통령을 만드는 데 공헌을 했음에도 당대표의 권한이 정지되었다면 당사자는 토사구팽이라는 말을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말에 “물을 건너면 지팡이를 던져버린다”라는 말이 있다. 냇가를 지날 때 요긴하게 쓴 지팡이도 정작 개울을 건넌 후엔 용도가 끝났다고 아무데나 던져버리는 것이다. 필요할 때만 찾고, 지나고 나면 고마운 줄을 모른다는
야박한 세태를 표시하는 말이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는 말도 일맥상통하는 말이다.
감사한 마음으로 은혜에 보답해야 할 것을 도리어 해를 끼치는 것을 말한다.
흔히 “팽(烹) 당했다”고 하는 말도 잘 쓰인다. 팽(烹) 당했다는 것은 솥에 넣고 삶음을 당했다는 뜻이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여 공적을 세웠는데도 결국은 배척당하고 마는 경우를 쓰인다.
기업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좋은 실적을 올렸다고 승진도 시켜주고 상여금도 두둑히 챙겨주다가도, 어느 날 부터 실적이 지지부진(遲遲不進)하고 나빠지면 가차없이 내치는 것이 통상적이다. 이러한 매몰찬 토사구팽에 새러리맨의 서러움이 있다. 스포츠 세계에서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이러한 토사구팽이라는 말은 춘추전국시대 월(越)나라의 범려(范蠡)가 사용했던 말이다. 그러나 토사구팽이라는 사자성어는 사기(史記)에 등장함으로써 쓰임새가 많아지게 되었다.
사기의 회음후(淮陰侯)열전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한(漢)나라의 시조인 유방(劉邦)은 그를 도와 천하를 통일하게 한
한신(韓信)대장군이 모반을 할 가봐 항상 두려워했다.
한신이 어떠한 사람인가?
한신은 불우했던 시절 건달패들의 가랑이 밑을 기어나가는 수모를 참았던 인물이었다. 참고로 가랑이 사이를 기어나가는 수모를 과하지욕(袴下之辱)이라고 한다.
어느날 한 고조 유방은 한신과 여러 장수들의 능력에 대하여 얘기를 했다. 그러다가 고조는 이렇게 말했다.“나는 도대체 어느 정도의 군사를 거느릴 수 있겠는가?”
“글세요 .폐하께서는 10만 이상을 거느릴 수 없습니다. ”
“그래 그러면 한신 그대는 어떠한 가?”
“신은 다다익선(多多益善)으로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그러자 고조는 큰 소리로 웃고나서 말했다.
“다다익선이라면 어째서 나의 신하가 되었는가?”
“ 폐하께서는 군사는 거느릴 수 없지만, 장수들은 잘 거느리십니다. 이것이 신이 폐하의 신하가 된 까닭입니다. 그리고 폐하의 힘은 하늘이 주신 것으로 인력이 미칠 수는 없습니다”
한고조 유방과의 대화에서 한신의 야망과 능란한 솜씨를 엿볼 수 있다.
한고조는 한신이 두려워 초왕(楚王)으로 봉하여 멀리 지방으로 보내두었지만 그래도 안심이 되질 않았다. 결국은 한신에게 구실을 붙여 체포한 뒤 강등하여 제거하고 만다. 이때 체포되어 압송되는 수레에서 한신이 탄식하며 말한다.
“과연 옛사람들의 말과 같구나.
날랜 토끼가 죽으면 좋은 개가 삶기고,
( 果若人言 狡兎死 良狗烹: 과약인언 교토사 양구팽)
높은 새가 없어지면 좋은 활이 들어가고,
적국이 멸망하면 모신(謀臣)이 죽는다고 했다.
( 高鳥盡 良弓藏 敵國破 謀臣亡: 고조진 양궁장 적국파 모신망)
현명한 이는 ‘팽’당하는 것을 미리 예측하고, 일이 끝난 후에는 초야에 묻혀 버리기도 한다.
일본의 형사판례 중 팽(烹)당한 여인의 복수이야기가 생각난다.
이른바 ‘독 만두(毒 饅頭)’사건이 그것이다.
사법고시를 하는 가난한 청년을 젊은 간호사가 정성을 다하여 뒷바라지를 했다. 도서관에서 밤늦게 공부할 때 도시락과 따뜻한 물을 챙겨 청년이 먹는 것을 물끄럼히 바라보는 것이 간호사의 행복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로 청년이 합격하여 법조계로 나가면 혼인하기로 약조했다. 고생 끝에 시험에 합격하여 임관(任官)했으나, 남자는 약속을 어기고 부잣집 딸과 혼약을 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몇 년간 봉급을 털어 청년을 뒷바라지 해 온 간호사를 팽개쳐 버린 것이다. 토사구팽한 것이다.
간호사는 배신감에 치가 떨렸다. 유명한 만두가게로 가서 만두를 샀다. 만두에 독극물(毒極物)을 주입한 후 남자의 집으로 배송시킨 사건이었다. 한 여인의 원한을 사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一婦含怨 五月飛霜:일부함원 오월비상)라는 말이 현실로 표출된 것이다. 토사구팽은 나쁜 것이므로 뒤끝이 좋지 않은 법이다.
내년에 총선이 있다. 너도나도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전국이 떠들썩 할 것이다. 선거가 끝난 후 ‘토사구팽’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무릇 공로을 세운 사람을 나중에 팽겨처 버리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은혜를 입었으면 상응한 보답을 하는 것이 올바른 인간도리이다. (2023.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