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에서의 독서[편집]
《난중일기》 속에는 이순신이 전쟁 가운데, 혹은 전쟁 전에 읽었던 책에 대한 언급도 있다. 《정유일기》 말미에 이순신은 중국의 역사책 《송사》(宋史)를 읽고 느낀 소감을 적어두었고, 역사 속의 인물의 행적을 되새기며 구국에 대한 충정을 다시금 상기한다. 이순신의 오랜 지우인 류성룡이 보내준 《증손전수방략》(增損戦守方略)에 대해 "수전과 육전, 화공법에 대한 전술을 일일이 설명한 참으로 만고에 뛰어난 이론"[21] 이라며 칭찬하고, 한국의 옛 역사를 읽고 개탄스럽게 느낀 자신의 생각을 일기에 적기도 했다.[22]
또한 《갑오일기》말미에서는 '난도(難逃)', '밖으로는 나라를 바로잡을 주춧돌 같은 인재가 없고 안으로는 계책을 세울 인재가 없으니 배를 더욱 늘리고 무기를 만들어 적들을 불리하게 하고 나는 그 편안함을 취하리라(外無匡扶之柱石 內無決策之棟樑 增蓋舟船 繕治器械 令彼不得安 我取其逸)'와 같은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속에 등장하는 구절들이 확인되어, 이순신이 일찍 《삼국지연의》를 접하고 읽었던 것이 아닌가 추정하기도 한다.
한편 《정유일기》에는 백의종군 도중 한산도의 원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을 지원하기 위해 마침 남쪽으로 내려온 박천군수(博川郡守) 류해(柳海)로부터, 과천의 좌수(座首) 안홍제(安弘濟)라는 인물이 죄도 없이 억울하게 관에 잡혀가 여러 차례 형장을 맞아 거의 죽을 지경이 다 되었는데 말과 스무 살 된 계집종을 뇌물로 바치고 풀려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라 안팎에서 뇌물의 많고 적음을 갖고 죄의 경중을 정한다고 기가 막혀 하며 "이런 게 백 전의 돈이 죽은 혼도 살린다"(一陌金錢便返魂)는 것인가 하고 한탄하였는데,[23] 이 구절은 명(明)의 구우가 지은 《전등신화》(剪燈新話)에 실린 '영호생명몽록' 중 내용의 부분이다. 류해는 이순신을 만난 다음날 전라우수사 이억기와 경상우수사 배설 및 가리포첨사에게 보내는 이순신의 문안 편지를 갖고 승평(순천)을 거쳐 한산으로 갔고, 두 달 뒤인 7월 16일 새벽, 삼도수군통제사 원균이 지휘하는 조선 수군은 거제 앞바다의 칠천량에서 일본 수군의 기습을 받아 궤멸적인 피해를 입었다.
==해전: 판옥선에 대포를 달다...vs 포르투칼과 중동의 싸움..영상, 바다의 제국 1.2편 확인해 볼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