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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룩 송아지는 칡소
출처 http://kr.blog.yahoo.com/waterview33/421.html
어제 충북 청주에 다녀왔다.
충북 종축 시험장에서 육성하는 칡소를 보기 위해서 였다.
전번에 제주도의 흑한우에 대한 글을 포스팅 했을 때 많은 분들이
방문해 주셨고 이 중에는 칡소를 보고 싶어 하시는 독자 분들의
요청도 있어서 이었다.
더해서 나의 개인적인 이유도 있었다.
칡소 이야기가 나오면서 나의 내면에 내 어린 시절 내가 살던
동네에서 몇 년간을 보며 자랐던 칡소에 대한 향수가 갑자기
아지랑이처럼 일어난 것이 이유의 하나이다.
또 요새 여러 매스컴에서 말해지고 있는 동요 ‘얼룩 송아지’의
정체에 대해서도 말씀 드리고 싶기도 했던 것도 다른 이유가
되었다.
나의 어린 시절 내가 살던 시골에 칡소가 한 마리 있었다.
이 녀석은 엄마가 누렁이인데 자신은 칡소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엄마소하고 한 일 년 살더니 엄마소는 어디로 가고
이놈이 그 집의 일소가 되었다.
송아지 때는 잘 몰랐는데 커가면서 온몸에
줄무늬가 나타나기 시작해서 다 크니까 호랑이 같은 털색을
완벽하게 갖추었다.
생기기는 험상궂게 생겼지만 아주 순동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초등학교 시절의 어린 시절을 이 칡소가 살던 집과 이웃해
살았기 때문에 생김생김이 아주 잘 기억이 난다.
지금 같으면 이름도 있었을텐데 이름은 없었다.
내가 그 시골을 떠날 무렵 그 녀석은 새끼를 한 마리 낳았다.
할머니 소처럼 누렁이였다.
나는 형제 중에도 살갗이 흰 사람이 있고 검은 사람도 있듯
칡소 새끼에 누렁이가 나온 것이 별로 이상하게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런 추억으로 청주룰 찾아 갔는데 청주의 칡소 육성을 담당한
부서인 충북 종축 시험장이라는 부서에서 방역 문제로 칡소는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먼 길을 갔다가 매우 실망스러웠으나 충북 위생 연구소
종축 시험장 직원들로부터 여러 칡소에 관한 정보만은
풍부하게 들을 수가 있었고 사진도 구할 수가 있었다.
특히 칡소 육성을 담당했었던 정경섭 연구사가 많은 자료를 주었다.
칡소는 특히 한반도에서도 강원도 지방과 충청도 지방에서 많이
발견 되던 토종 한우였는데 1920년대 일제의 모색통일 운동과
1960년대 한우개량 사업을 거치면서 큰 타격을 받고
그 수가 급속히 감소했다.
이런 칡소를 길러봐야 잡종소라는 평가를 받아 제값을 못 받게 되는
축산 농가들이 기르기를 기피했던 것이었다.
꼭 진돗개의 원종일지도 모르는 흑구가 그간 서럽게 당하던 모진
박대의 운명과 비슷하다.
칡소의 무늬의 생김생김과 이름마저 호구(虎狗) 진돗개의
다른 이름인 호반과 같다.
진돗개 호구도 흑구와 같이 잡견 취급을 받아 호된 고통을 겪었다.
그래서 호반우(虎班牛)라 부르기도 한다.
칡소는 고구려의 고분 벽화에 나타나는 한국의
재래종 소라고 한다.
서기 357년에 만들어진 고분 벽화인 안악3호분에는 검정소,
누렁소, 얼룩소가 마구간에서 먹이를 먹는 모습이 나온다.
나는 여기서 제주도에만 남아 있다고 생각했던 흑소가
한반도에도 만만치 않게 그 씨앗을 남긴 사실을 알고 놀랐다.
이 종축장에도 칡소와 함께 육지 흑소가 육성되고 있음을 발견했다.
육지 흑소 - 제주 흑한우와 다르다.
등은 무늬가 아니라 땅의 톱밥이 묻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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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섭 연구사는 육지 흑소는 제주 흑소(현지 흑한우)와
모색(毛色) 만 같을 뿐 생김생김과 크기, 그리고 유전인자까지
완전히 다른 종자라고 했다.
우리 한반도에 다양한 모색의 소가 살았었다는 사실의 한 샘플적
증거인 듯하다.
나는 어린 시절, 동물원이 창경궁에 있을 때 그 곳에서 백령도에서
출생했다는 나이 들고 전신이 흰 백소를 본 일이 있었다.
지금까지 알비노 현상으로 생긴 백색소로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니
우리나라 소에도 신선도등에서 나오는 백색소도 존재하지
않았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지금까지 거의 멸종단계까지 갔었던 칡소가 살아 남아
있었던 것도 제주도의 흑한우와 비슷하다.
정부의 무분별한 한우 개량화 사업에서 칡소가 도태되는 와중에도
불구하고 일부 칡소 애호가들이 칡소를 사 모아 종을 보존한 것도
칡소의 생존에 큰 역할을 했다.
지금도 충북도내 8개 농가에서 칡소를 생육하고 있는데
이들 축산인 중에는 어디서 좋은 칡소가 나왔다면
돈을 싸들고 찾아가서 구입하는 분도있다고 하니
일반 축산인의 애호가 칡소 생존에 얼마만한 역할을 했는지 알만하다.
현재 칡소 사육 농가는 전국에 여러 곳이 있고 청도 소싸움에도
칡소가 출전하는 상태까지 왔지만 칡소 사육 농가가 많지는 않다.
충북도내 칡소 사육 농가는 네 곳 정도 밖에 되지 않아 보인다.
충북 종축 시험장의 흑소 증식은 이 종축장에 1998년
윤자라는 칡소 한 마리가 들어와 시작되었다.
지금은 칡소와 흑소 두 종류 300 마리 정도가 육우 되고 있다.
칡소도 현재 시장에 출하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연초(年初) 시험 도축한 결과 일등급 정육이 70% 정도가 나왔고,
시험 도축육은 롯데 마트를 통해 출하했었다.
20 % 정도 비싼 값에도 새 다 팔리고 소비자 반응도
아주 좋았다는 것이다.
충북 종축 시험장에서 기르는 칡소는 지방 함량이 적고
맛으로 승부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계속 체내 수정 방식으로 증식에 노력해서 3,4년 뒤에는
농가에도 분양이 가능 할 것이라는 소식도 알려주었다.
얼룩소라는 명칭의 에피소드에 대한 이야기를
테마로 옮기고자 한다.
먼저 충북 지역의 정지용 시인의
'향수'라는 시에 나오는 내용이다.
‘-얼룩빼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정지용 시인은 내가 칡소를 만나러
찾아갔던 충북 청주에서 멀지 않은 같은
충북의 옥천이 고향이다.
그가 6.25때 월북했다고 알려졌고 그래서 그의 모든 문학 작품이
모두 금단의 벽에 가두어져 있다가 세상이 열리면서 해금되었다.
월북자로 믿어졌던 그에게 몇년 전 놀랄 일이 있었다.
그의 아들이 북한에 살고 있는데 몇 년 전 남한 쪽에 아버지의
행방을 문의 해 와서 관계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는 월북을 한 것이 아니고 난리속의 남한에서 행방불명 된 듯하다.
그의 향수라는 시는 노래로 만들어지고 테너 가수 박인수 씨와
가수 이동원씨가 불러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그의 시에 나오는 ‘얼룩빼기 황소’는 의심 할 것 없는 칡소다
뒤에 나온 황소라는 단어가 그것을 입증해주고도 남음이 있다.
황소라는 말은 한우라는 말이니까 얼룩배기는 칡소 밖에 없다.
그러나 누구나 친숙한 '얼룩 송아지' 노래는 약간 설명이
있어야 할듯하다.
이 동요는 누구나 잘 알고 있으면서 작사자나 작곡자를
모르는 사람이 매우 많다.
이를 전래 동요로 잘못 알고 계시는 분도 있다.
이 동요는 유명했던 박목월 시인이 작사했고 서울대학교 음악대학교
학생이었던 손대업 씨가 작곡했다.
박목월 씨는 1935년 대구 계성고보를 졸업했는데 그는 이 송아지 시를 그가 이 계성 고보에 재학 중에
썼다고 회고했다.
그때 고보는 5년제였으므로 1930년대에 이 동시를 썼다고 보아야겠다.
박목월 시인은 여기 나오는 얼룩 송아지가 자신을
나타 낸 것이고 시의 내면적 세계는 가족의 유대를
표현한 것이라는 간단한 술회를 했었다.
그러나 박목월 시인은 얼룩소가 무슨 종류인지는 말하지는 않았다.
단 조금 연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학교
졸업 후 박목월 시인이 경주 금융조합에서
일할 때 그를 시단에 추천해주어 시단에
등단케 해준 사람이 바로 위 '향수'를 쓴
정지용 시인이다.
작곡자 - 손대업선생
위의 송아지 노래는 사실 너무 유명하다.
거의 한국인의 두뇌 밑바닥에 무늬처럼 새겨진 노래다.
왜냐하면 한국 어린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체계적으로
문자와 지식을 배우던 백지 같은 지적(知的) 구축 초기에
노래와 함께 홀스타인 얼룩소의 그림이 그 평생 지적 형성 토대에
깊숙이 각인되어왔기 때문이다.
홀스타인 젖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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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얼룩 송아지는 홀스타인 종류의 얼룩소가 불변의 진리가
되어 버린듯 했었다.
그러나 요즈음 이 노래의 얼룩 송아지도 칡소라는 소리들이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이 설을 주장하시는 분은 지금 흔해진 홀스타인 젖소는
60년대에 들어왔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건 아닌듯하다.
선배 말을 들어보면 50년대에도 서울 근교의 목장들에
홀스타인 젖소들이 있었다고 한다.
도서관에 가서 송아지 노래가 실렸던 50년대의 교과서를 보니까
송아지 노래 옆에 홀스타인 종의 그림이 있었다.
그러나 박목월 시인이 살던 1930년대,
그 머나먼 시절에 박목월 시인이 동시를 쓸 만큼 지방에 송아지 노래에 나오는
홀스타인 젖소가 흔했을 것 같지가 않다
박목월 시인 계성고보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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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노래 가사를 한번 다시 살펴보았다.
그리고 새삼 느껴지는 감정이 있었다.
만약 박 목월 시인이 홀스타인 종의 얼룩소를 보고 이 동시를 썼다면
조금 부자연스럽거나 싱겁겠다는 느낌을 떠오르는 것이었다.
홀스타인 소가 엄마 소도 얼룩소고 새끼소도
당연히 얼룩 송아지인데 그것이 무슨 동시의 소재가 되겠는가?
그런 당연한 것이 시의 모티브가 될 수있을까?
그러나 칡소라면 문제는 다르다.
지금 청주의 종축 시험장 칡소처럼 종이 고정되는 과정을
되풀이해서 육종되지 않았다면 칡소 어미에게서 칡소 송아지가
나오기는 참 힘든 확률이라는 생각이 든다.
칡소 어미가 또 자기를 닮은 칡 송아지를 낳는 것은
신기한 일로서 주변의 눈길을 끌만하니
능히 동시의 소재가 될 만하다.
이 사실, 엄마 얼룩 칡소가 드물게 얼룩 칡 송아지를 낳은 것은
또한 박목월 시인이 말한대로 가족의 강한 유대를 보여주는
좋은 모티브로 작용 했을 듯하기도 하다.
그러니까 박목월 시인이 쓴 동시의 송아지는 칡소일 가능성이
거의 분명하다는 것이다.
단 청주 종축 시험장에서 다시 한 번 확인한 나의 기억이 있었다.
칡소는 그 특징이 송아지 때 잘 나타나지 않는다.
즉 줄무늬가 어린 송아지에서는 안 나타난다는 말이다.
청주 종축 실험장의 정경섭 연구사는 개체마다 다르나
태어나서 한 오륙개월 지나야 칡소의 특징이 나타난다고 한다.
그러나 칡소가 될 징표는 송아지 때도 나타난다.
콧등 언저리가 보통 황우와 다르게 색이 진하고 꼬리도
색이 진하게 나타난다.
박목월 시인이 실물을 보고 동시를 썼다면 내가 어렸을 때 봤던
칡소처럼 시인의 집 근처에 엄마 칡소와 아기 칡소가 같이 한참을
살아서 시인이 지켜 보았다는 말도 되겠다. 그래서 더욱 강한
인상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그러면 과연 줄무늬 칡소를 보고 얼룩소라고 할 수 있겠는가?
지금은 물론 줄무늬를 보고 얼룩 무늬라는 묘사는 잘 쓰지 않는다.
그러나 옛날에는 이런 줄무늬를 보고도 얼룩이라는 형용사를
썼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
가장 확실한 증거는 20세키 초 한국에 소개 되면서 그 명칭이
고정되었을 아프리카 줄말(제브라)의 한국 명칭이 얼룩말이라는
사실은 주목하자.
그리고 제주도에 칡 무늬 소를 가리키는 어럭소(얼룩소)라는
지방어가 지금도 남아있다.
그러니까 지금의 언어 정서로는 조금 부자연스럽게 들리지만
옛날에는 줄 무늬 칡소를 얼룩소라 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할 것이다.
청주의 종축 시험장에서만 칡소를 육성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울릉도에서도 칡소를 육성하고 있다.
육지와 도서의 좋은 칡소 기르기의 선의의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이 좋은 칡소 만들기의 경쟁으로 더 좋은 육질을 가진
소가 나오기를 기대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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