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으로는 "산유화", "한송이 흰 백합화" 등이 있고, 가곡과 교향적 기상곡, 현악을 위한 조곡 등이 있다. ![](https://t1.daumcdn.net/cfile/blog/18217A1B4CFCA4B127)
김순남 (1917~1986)
서울 태생인 김순남 선생은 경성사범, 일본
구니다치 음악학교, 동경제국음악학교를
졸업했다.
평론가 박용구는 김순남의 가곡 산유화를
국제적 수준의 작품으로 평가하였고 또 줄리어드 음악학교 출신으로 미 군정청 문교부 문화담당
참사관이었던 헤이모위츠는 그를 ‘조선에서 가장 위대한 작곡가’이자
진정한 ‘창조적 천재’로 평가했으며, 그의 작품을 작곡가 월터피스톤,
지휘자 크세비츠키 등은 미국음악계에 소개하기도 하였다.
김순남 선생은“민족적 양심에 바탕을 둔 자기반성과 진실한 비판
과학적인 판단을 통하여 창작과 연주활동을 전개하여야 참다운
민족음악을 수행할 수 있다”고 말하였다.
그렇지만 그의 음악인생은 친일 정치인이나 음악가들이 득실거리던
해방공간에서 순탄할 수 없었다.
일제하 그리고 해방된 조국에서 민족현실을 외면한 채 음악지상주의를
내세우며 뒤로는 정치적 활동을 전개하던 당시의 친일 음악인들을
비판했기 때문이다.
친일 음악인들은 김순남을 음악인에서 제명하거나 여러 가지 일들을
방해하면서 결국은 친일 정치인들이 민족주의 자들 혹은 독립운동가
들을 빨갱이로 몰았던 것처럼 김순남을 빨갱이로 몰아갔다.
결국 좌익으로 몰린 김순남은 1947년 여름 이후 수도경찰청장의
체포령과 함께 활동이 전면 중지되고 지하생활이 시작되었다.
결국은 1년 동안 도피생활을 하다가 그는 1948년에 월북을 하고야
말았다.
그의 음악은 그가 월북작가여서 오랫동안 금지곡이었다가, 1988년
10월 정부의<월북음악가 작품규제 해제조치>로 해금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