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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치(御節)요리는 현대 일본에서 정월(正月) 1월1일에 먹는 음식을 의미한다. 우리 나라의 차례(茶禮)음식처럼 12월30, 31일에 만들어 1월1일 새해가 된 것을 축하하며 가족들과 함께, 또는 찾아온 손님들에게 내 드리는 특별한 음식이다. 그러나 실제 이런 풍습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약200년 정도로 에도시대(江戶時代, 1603-1867)말기부터 서민에게까지 퍼져 각 지역 특색을 지니며 정착하였다. 원래 "오세치"란 궁전에서 사용하는 "오세치쿠(御節供)"라는 말의 줄임말로, 1년 중의 오절구(五節句, 음력1월1일, 3월3일, 5월5일, 7월7일, 9월9일로 중국에서 전래된 풍습)의 시기에 神(일본인들은 神이란 단어를 어떤 존경하는 대상에게 붙이기를 잘 하는데, 우리의 조상 공양과 별반 다르지 않다)에게 공양하기 위해 만드는 음식을 말한다. 서민들의 정월 음식을 나타내는 용어로는 "호오라이(蓬萊), 쿠이츠미(食積)"라는 말이 있는데, 어느 때쯤에선가 이런 음식을 백화점에서 주문 판매를 하기 시작하면서 고급 이미지를 나타내기 위해 궁중 용어인 "오세치"라는 말을 사용하여 널리 일반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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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2월이 되면서 백화점이나 유명한 음식점에서는 오세치 요리의 예약을 받느라고 시끌벅적한데, 우연히 서점에 들렀다가 오세치 요리를 만드는 요리책을 보게 되어 나도 한 번 만들어 보기로 했다. 오세치 요리라는 것이 사실 보통의 반찬보다 조금 특별하게 만드는 것인데, 요즈음 주문 판매하는 요리들은 어딘가 비싼 재료들을 사용해서 10,000 - 50,000만엔 정도의 가격이니 좀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그러던 차에 이 책을 보니 보통 반찬 재료를 사서 비교적 간단하게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 것인데...
왼쪽이 NHK(일본방송협회)에서 발매하는 "오늘의 요리"책이다. (TV 프로그램도 있음) 찬합에 예쁘게 담은 요리가 먹음직스럽다. 가운데와 오른쪽은 초보자들을 위한 요리이기 때문에 다섯 가지 조미 재료(간장, 식초, 미림, 술, 가다랭이 국물)를 가지고 적당한 배합 비율로 음식의 맛 내는 법을 간단하게 정리하였다. 10가지의 재료를 사서 15가지의 음식을 만드는 일... 12월31일을 하루 종일 매달려서 만들고 나니 새해 벽두부터 지쳤다. 우리 나라의 음식은 대충 맛 내는 방법을 어느 정도 머리 속에 기억하고 있어서 시간이 걸려도 편하게 할 수 있는데, 이런 식의 일본 요리는 처음하는 것이니 요리책을 몇 번이나 보아가면서 일일이 분량을 재고 시간을 재고... 여러모로 신경을 많이 쓸 수밖에 없었다.
1월1일 아침, 떡국이 끓고 있는 동안, 접시에 조금씩만 음식들을 담아 보았다. 만들기는 4인분 정도씩 했지만, 요리책에서 각 요리를 소개하는 사진을 보니 작은 그릇에 조금씩만 담아 냈기에 그대로 했더니 어딘가 좀 빈약해 보인다. 우리 나라 요리들을 푸짐하게 담아 먹던 습관이 있어서... 원래 음식들을 아래의 왼쪽에 보이는 2, 3단의 쥬우바코(重箱, 찬합)에 담고, 새해를 맞이한 것을 축하하며 마시는 술(오토소 라고 함. 御屠蘇, 屠蘇散이라는 한약 가루를 5시간 정도 물에 담가 맛을 우러낸 후 술과 섞어 마시는데, 나쁜 액을 떨어버리고 長壽를 기원함. 이 토소산은 약국에서 연말이면 한 봉지 100엔에 팔고 있다)은 가운데 보이는 술병에 담아 3단의 붉은 술잔으로 마시는데, 자주 사용할 물건들이 아니어서 준비하지 않았다. 사진에 보이는 젓가락은 야나기바시(柳著)라고도 하고 이와이바시(祝い著)라고도 한다. 젓가락을 넣은 봉투에는 "壽"라는 한자가 쓰여있고, 미즈히키로 장식되어 있다. |
양 끝이 가늘어서 어느 쪽으로도 음식을 집을 수 있는데, 언젠가 TV의 정월 특집 방송에서 보니, 어느 한 쪽으로 자신이 음식을 집으면 다른 쪽으로 조상님들이 드시는 것이라고... 우리와 같은 차례를 지내지는 않지만 조상에 대한 생각은 어디나 같은가 보다.
여기서 소개하는 음식들은 다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모양이나 만드는 법을 그대로 붙여서 부른다. 그러나 이름이 전국적으로 통일 된 것이 있는가 하면 만드는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부르는 것도 있다. 또한 지역 특색에 맞게 다양한 음식들이 있다.
오른쪽 사진의 왼쪽 아래에 있는 요리는 이와이 나마스(祝い なます)라는 것으로 무와 당근을 얇게 썰어 초절임(미림1, 식초3, 물3)을 한 것이다. 일본에서는 흰 색과 붉은 색을 같이 사용하면 "축하(祝賀)"의 의미를 지닌다. 무사히 새해를 맞이하는 기쁨... 무는 청정한 것을 의미하며, 땅속에서 단단하게 자라는 것을 보고 집(家)의 토대(土臺)가 허술하지 않고 튼튼하기를 기원하는 의미로 사용된다. 그 위에는 조금 장식으로 유자의 껍질을 얇게 썰어 향을 내었다.
오른쪽 위의 요리는 후쿠쥬다이콩(福壽大根)으로 무, 다시마, 카즈노코(數の子)를 길게 썰어 옅은 맛의 간장(간장1, 미림1, 술8)에 담근 것이다. 이런 재료가 들어간 음식을 먹으면 복도 많이 받고, 장수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이름을 붙인 것이다.
위에 있는 것은 무스비콘부(結び昆布)라고 하는데 한 번 매듭을 지은 다시마의 간장(간장1, 미림1, 가다랭이 국물8) 조림이다. 이런 다시마 요리가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이유는 다시마를 "콘부"라는 발음 이외에 "코부"라고도 하는데, "기쁨"을 나타내는 단어의 발음이 "요로코부(よろこぶ, 喜ぶ)"이어서 "코부"라는 뒤의 두 글자가 다시마의 "코부"와 발음상 같아, 다시마를 먹으면 기쁜 일이 생긴다고 믿는 것이다. 노오란 것은 청어 알인 카즈노코(數の子)이다. 8시간 정도 물에 담가 소금기를 뺀 후 옅은 간장(간장1, 미림1, 술8)에 담가 살짝 맛을 낸 것으로 무수히 많은 알을 먹음으로 해서 자손번영(子孫繁榮)을 기원한다. |
왼쪽에 있는 것은 하나렌콘(花蓮根)으로 연근을 꽃 모양으로 다듬어서 초절임(미림1, 식초3, 물3) 한 것이다. 연근은 그 꽃이 불교에서 청정(淸淨)한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뿌리 역시 청정하다고 생각된다. 청정한 마음으로 새해를 시작... 또한 구멍 뚫린 것이 멀리까지 다 보이기 때문에 하고자 하는 일이 막힘없이 잘 되는 것을 의미한다. 오른쪽에 있는 것은 우메닌진(梅人蔘)으로 당근을 매화꽃 모양으로 썰어 옅은 간장(간장1, 미림1, 가다랭이 국물8) 조림을 하였다. 현재 일본은 양력으로 1월1일 행사를 가지지만 예전에는 우리와 같이 음력을 사용하였다. 그래서 대개 음력 정월이면 양력의 2월 정도가 되어서 매화꽃이 서서히 피기 시작하고 조금 후에는 새싹이 돋는 봄의 기운을 느끼게 된다. 이렇게 서서히 다가오는 봄, 新春을 나타내는 음식이 빨간 당근으로 꽃 모양을 만든 것이다. |
아래에 있는 것은 설탕 조림을 한 밤(栗)이다. 원래는 쿠리킨톤(栗きんとん)이라고 해서, 고구마를 삶아 부셔서 설탕을 넣고 걸죽하게 만든 것의 속에 밤을 넣어 그릇에 담아내는 것인데 그냥 밤만 얹어놓았다. 치자(梔子) 열매로 노랗게 물을 들여 황금처럼 보이게 하여 새해에는 재물운(財物運)이 좋기를 바라는 음식이다.
왼쪽에 있는 것은 타타키고보오(たたきごぼう)로 우엉 뿌리를 간장과 식초(간장1, 식초1, 미림1, 깨)로 버무렸다. 풍년풍작을 기원하기도 하고, 길게 잘 뻗는 뿌리처럼 집안 대대로 번성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만든다. 오른쪽에 있는 것은 에비노츠야니(海老のつや煮)로 새우를 간장(간장1, 미림1, 술8)에 졸인 것이다. 말 그대로 반질반질 윤기가 나야 하는데 좀 덜하다. 새우는 허리가 휘어지고 수염이 길게 났기 때문에 장수(長壽)를 기원하는 음식이다. 주문 판매하는 오세치 요리에는 비싸고 더 큰 새우가 모습 그대로 보기 좋게 들어가 있다. |
위에 있는 것은 토리츠쿠네(鷄つくね)로 갈은 닭고기를 둥글게 만들어 간장(간장1, 미림1, 술8)에 졸인 것이다. 식은 후 작은 대나무 꼬치에 꽂았다. 아래에 있는 것은 히노데타마고(日の出卵)로 삶은 계란 주위에 갈아서 양념한 닭고기를 말아 간장(간장1, 미림1, 가대랭이 국물8)에 졸인 것이다. 새해의 첫 해돋이를 나타낸다. |
왼쪽에 있는 것은 니시메(煮しめ)로 당근, 연근, 우엉 뿌리, 닭고기를 살짝 볶아 간장(간장1, 미림1, 가다랭이 국물8) 졸임을 하였다. 오른쪽은 타즈쿠리(田作り)라고 해서 멸치를 간장(간장1, 미림1, 술1)에 볶은 것이다. 예전에는 정어리를 논밭의 비료로 써서 풍년풍작(豊年豊作)을 기원했다고 하는데 그런 의미를 이 음식에 부여해서 만들었다. 멸치는 볶고 난 후 식어도 파삭파삭하게 씹을 수 있을 정도로 해야 좋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약한 불에서 기름을 넣지 않고 먼저 어느 정도 볶은 후 따로 만든 간장에 넣어 얼른 버무린다. |
왼쪽은 에비마츠카제(海老松風)라는 것으로 일종의 달걀찜이라고 할 수 있다. 달걀을 풀어서 간장1, 미림1, 가다랭이 국물1과 섞고, 우엉 뿌리와 당근을 가늘게 썰어 넣어 오븐에서 구운 것이다. 위에는 겨자씨(芥子, けしの實)를 뿌렸다. 오른쪽에 있는 것은 토리노유우안야키(鷄の幽庵燒き)라는 것으로 에도시대 이런 요리를 만든 사람의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닭고기를 간장(간장1, 미림1, 술8)에 8시간 정도 담가두는데 유자를 썰어서 놓기 때문에 간장 맛도 있지만 유자 맛이 상큼하다. 약한 불에서 구워 놓았다. |
이런 음식을 만들면서 설탕을 전혀 넣지 않고 다섯 가지 조미 재료로 맛을 내었기 때문에, 파, 마늘, 고춧가루에 길들여진 우리 나라 사람들의 입맛에는 어딘가 싱거운 듯하다. 그러나 약하게 맛을 더한 것이기 때문에 식품 재료가 가진 자연 그대로의 맛을 혀끝에서 편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음식들은 다른 어떤 술보다도 일본주(日本酒)라고 하는 쌀로 빚은 술에 잘 어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