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거나 말거나, 불독사의 구지사, 즉 히드라와 묘랑족, 즉 캣시 간의 얽힌 비화
옛날 옛적, 마을과 좀 떨어진 낡은 집이 있었다. 세월에 풍상에 바랜 벽과 다 스러진 초가를 인 집은 몇 년간 사람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았다. 하나 동물의 발길만은 끊이지 않아, 현재 그 집에는 불독사 모자가 살고 있었다. 한데, 그 뱀은 평범한 불독사가 아니었다. 어미의 머리가 무려 아홉, 즉 구지사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 어미가 나은 어린 뱀의 머리는 평범했다. 이제 막 태어난지라 그랬다.
“아가야, 많이 먹고, 많이 자고, 건강히 자라다오. 어여 자라, 허물을 벗고 머리도 늘리고, 그렇게 건강히만 자라다오. 니 아비처럼 인간 손에 죽지 말고, 이 어미와 함께, 그렇게 살자꾸나.”
어미 구지사는 똬리를 튼 채, 아홉의 머리로 어린 자식을 지켰다. 하나, 아직 철없는 자식은 낼름, 혀를 내밀며 마당을 기어다녔다.
“와아, 아버지 어머니, 이젠 여기가 우리 집인가요?”
“그래, 좀 낡았지만, 수리하면 괜찮을 게다.”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부터 수리하고 그래요.”
세월이 흘러, 어렸던 구지사가 머리 셋이 되던 때, 한 가족이 그 집에 정착해 살게 되었다.
“어이, 자네 힘이 아주 장사네? 벌써 이만한 벼를 다 거뒀나?”
“어이구, 어르신 과한 칭찬입니다. 그저 열심히 했을 뿐입죠.”
숨박한 아비는 남의 집에 농사를 거들며, 품싻을 받았다.
“아유, 어째 이리 손끛이 야물댜? 흐마 곱기도 하구먼.”
“뭘요, 그저 남들 하는 만큼인데요.”
한편, 어미는 호롱불 아래 삭바느질을 해, 가사를 거들었다.
“어머니, 서당 다녀오겠습니다. 아, 이따 와서 아버지 밭일도 돕고, 나무도 한 짐 해 올게요.”
그 집의 유일한 자식인 사내애는 서책을 들고 서당을 오가고, 집안 일도 하며 그리 지냈다. 아직, 세 식구 누구도 그 집에 구지사 모자가 함께 살고 있음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 일상속에서도 심심찮게 소소한 일이 벌어지곤 했다.
“어머, 분명 병아리가 일곱이었는데, 두 마리가 어디갔지?”
“이런, 또 들짐승이 채갔나 보구먼. 내 이놈의 짐승들을 그냥!”
“이상하네, 제가 밤새 지켰는데, 여우나 족재비 같은 건 없었어요.”
“에이, 그럼 고양이인가?”
“아, 여보, 그러고 보니, 요새 고양이 한 마리가 저희 집 주변을 맴돌던데.”
“아니에요, 어머니. 제가 지켰는데, 짐승 그림자도 못 봤다니까요. 저 한잠도 안 잤는데.”
“쯧쯧, 아무튼 혹시 모르니까 그놈이 다시 여기 서성이면 쫓아버리려무나.”
아비의 말에 사내애는 입을 삐죽였다. 바람 빵빵한 볼에는 불만이 한가득이었다. 이내 팽 톨아진 아이는 밖으로 나갔다.
“쉿, 나비야, 많이 배고팠지? 있잖아, 당분간 여기 오지마. 아버지가 병아리 날치기 한 게 너라고 생각해서, 걸리면 몰매 맞을 수도 있어. 밥은 내가 챙겨줄테니까 조심해, 알았지?”
심성 착한 소년의 말에 흑묘가 먀옹! 울었다. 마치, 알았어요, 하고 말하는 양으로 고개도 끄덕였다. 그에 배실 웃은 사내애가 검은 고양이의 귀를 살살 만져주었다. 그렇게 소년은 아비 몰래, 어미도 모르게, 집 근처를 배회하던 흑묘와 우정을 나눴다. 한편, 세 식구 몰래, 그 집에 같이 살고 있는 어린 구지사는 심기가 편치 않았다.
“어머니, 왜 우리가 숨어살아야 돼요? 원래 이 집에서 먼저 산 건 우리였다고요, 저 인간들이 멋대로 들어온 건데, 왜 우리가 피해야 돼요?”
“아가, 인간들은 무서운 존재란다. 니 아비도 그들에게 죽임을 당했어. 저들이 여기 정착했을 때 다른 곳으로 옮겨야 했을 것을. 마땅한 곳이 없어, 이렇게 되었으니. 아니, 아니지. 편해서, 그에 안주해, 차일피일 미뤘더니. 쯧쯧, 이리 되고 말았어. 정이 뭣하면, 어미가 다른 터전을 알아보마. 그러니 얌전히 있거라.”
“왜 우리가 나가요? 확 저 인간들을 쫓아내자고요! 저런 이들은 그저 머리만 까딱 몇 번 움직이고, 독니만 살짝 보여줘도 주랭낭을 놓을 게 분명해요!”
“그만! 조만간 어미가 다른 터전을 알아보마, 그러니 조금만 참거라.”
그러던 때, 일은 갑자기 벌어졌다.
“어, 어머나, 이게 뭐야? 여보, 얘야! 독사가 집에 있어요!”
달그락, 부엌에서 일을 하던 어미의 비명에 아들과 아비가 달려왔다. 그리고 그들 눈에 보인 것은, 머리 셋 달린 불독사였다. 구지사 어미가 잠시 외출한 새, 어린 혈기를 참지 못하고 일을 친 것이다.
“어헉! 이런 요물이 있나? 머리가 셋이나 달렸어! 여보, 뒤로 물러나!”
아비가 지개작대기로 구지사를 위헙했다. 그러나 이 구지사, 그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세 개의 머리로 입을 쩍 벌렸다. 그에 사아아앆! 날카로운 독니가 번뜩였다. 그 기세에, 아비가 주춤하고, 어미 또한 낯빛이 히뜩했다.
“에잇, 이 요괴 같으니! 니가 우리 집 병아리 채간 거 맞지? 야잇, 이거나 받아랏!”
순간, 휙! 휙! 휘익! 소년의 손에서 작은 돌 세 개가 연달아 날았다. 그리고 그 돌들은 솜씨 좋게도 구지사의 머리에 적중했다. 뒤이어, 탁! 탁! 타악! 지개작대기가 춤을 추었다. 어느새, 아비가 들고 있던 것을 소년이 낚아 챈 참, 그렇게 어린 구지사는 허망하게 죽고 말았다.
“어휴, 그 흉물스러운 거랑 그동안 같이 살았으니, 끔찍해요. 넌 위험하게 무슨 짓이니?”
“그래도 우리 아들이 대범은 하구먼. 아니 근데, 그 돌팔매질은 어떻게 한 거냐? 거 참, 신통하구나.”
“헤헤! 동네에서 제가 비석치길 제일 잘해요. 그 실력이 나온 거죠 뭐.”
화목하게 웃는 세 식구는 몰랐다. 자식의 처참한 주검을 본 어미가 피눈물 흘림을. 어느 구지사 어미의 통곡이 숨죽여 흘렀다.
“으, 으, 으으윽! 남편도 모자랐더냐? 이제 성이 차느냐? 흐흐흑! 내 새끼마저, 이렇게, 흐흑! 이리 처참히 앗아가다니!”
길가 풀숲 새, 싸늘히 식은 채 버려진 자식의 주검을 본 어미의 입에서 뚝뚝, 한 서린 오열이 흘렀다. 아홉의 머리, 아홉 쌍의 눈에서 줄기줄기, 시푸른 한기가 샜다. 일순, 벌떡, 아홉의 머리가 세 식구가 있는 집을 향했다.
“내, 이 원한은 기필코 갚고말리. 은혜는 은혜로, 원수는 원수로, 목숨은 같은 목숨으로. 예전 내 남편을 죽인 이에게 했듯, 똑같이 해주마. 내 자식을 앗았으니 ……. 그래, 너희 자식의 숨을 거둬가야 공평하겠지.”
그 뒤, 얼마 후, 세 식구의 머리 위로 뭉클, 암운이 드리웠다. 바로, 그들의 하나뿐인 아들이 시름시름 앓아누운 것이다.
“어떻습니까, 의원님? 우리 아들, 살 수 있겠죠?”
“아이구, 답답하게 고개만 갸웃대지 마시고 말 좀 해주소!”
“에잉, 글쎄올시다. 이 아이의 병은 난생 처음보는 것이오. 그 어떤 의서에서도 본 적 없고, 심지어 들은 바 없으니 ……. 아무래도 힘들 것 같소.”
“야, 이 돌파리 의원 놈아! 그게 무슨 말이야! 당신, 의원이라고, 의원이니까, 그러니까 ……, 크흑! 제발, 제발, 나리 우리 아들 좀 살려주시오.”
“어이구, 금쪽 같은 내 새끼~! 흐흐흑~!”
사경을 헤매는 자식 앞에, 어미는 피울음을 토했다. 끙끙! 자식의 신음에 아비의 속은 새까맣게 탔다. 그러나 석가래 틈에 몸을 숨긴 채, 그 모습을 지켜보는 어미 구지사는 만족한 듯, 혀를 날름거렸다.
“오냐, 아이야 독기에 힘들더냐? 하나, 아직 멀었다. 내 새끼가 겪었던 고통보다 곱절로 괴로워하거라.”
열에 들떠 신음하는 아이에게 주었던 눈길이 스윽, 옮겨갔다. 이제 그 시선은 자식의 곁에 망연자실한 부모를 향해 있었다. 사납기가 이루 말할 수없는 불독사의 구지사답게 그 눈빛은 독한 한기로 번뜩였다.
“어떠냐, 자식이 고통에 몸부림 치는 것을 지켜보는 심정이? 하지만 너희 부부 또한 멀었다. 자식을 먼저 보낸 내 심정을, 어디 똑같이 맛보려무나.”
어미 구지사의 눈은 독기로 철철 넘쳐흘렀다. 하지만, 구지사는 알지 못했다. 아니, 방 안에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집의 지붕에서 까만 털의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눈을 빛내고 있음을. 귀 쫑긋 세우고, 캬릉! 발톱을 갈고 있다는 것을. 시름 깊은 밤이 지나, 그 다음 날이었다.
“계시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온통 검은 흑의를 입은 소년 하나가 집으로 들어섰다. 비록, 입성 활여하진 않으나, 그 소년은 어쩐지 귀한 댁 자제처럼 보였다.
“뉘 댁 자제분이신지는 모르나 …, 흑흑!”
“이보오, 손님 앞에서 그게 무슨 ……, 후우, 송구합니다만, 저희가 지금 객을 맞을 형편이 안 되어 …….”
“집에 사내애 하나가 아프지 않으십니까?”
대뜸 던진 소년의 말에, 부부가 반색했다. 그에 반짝, 삿갓 아래 소년의 눈이 황녹빛으로 번뜩였다.
“잠시, 실례하겟습니다.”
소년이 성큼, 마루로 올랐다. 그러더니, 용케 지붕에 숨은 구지사를 찾아냈다.
“내 이놈, 당장 그만 두지 못해!”
소년의 대찬 일갈에도 어미 구지사는 한기 서린 아홉 쌍의 눈을 빛냈다.
“허억! 저, 저건, 보통의 불독사가 아니야! 요괴 뱀이다! 머리가 아홉이나 돼!”
“세, 세상에, 저 요물 때문에 우리 아들이 …….”
당황한 부모를 앞에 둔 채, 소년과 구지사는 박빙의 승부를 버렸다. 멀리 선 인간들은 몰랐지만, 소년의 손에서는 날카로운 발톱이 솟았고, 구지사와 대화가 통하는 양, 낮게 속삭이고 있었다.
“너는 묘랑족이로구나. 그런데 어이해 내 복수를 막느냐? 저 집 식구에게 내 아이가 죽었다. 그리해 나도 똑같이 갚아주려는 것 뿐이거늘. 정당한 보복을 어찌해 방해하느냐?”
“미안하지만, 나도 빚이 있서 말이야. 불독사의 구지사, 니가 저 집에 원한이 있듯, 난 은혜를 입었거든. 그를 갚아야 도리지 않겠어? 보아하니, 아직 능력이 안 되어, 넌 나처럼 인간으로 변하지 못하는 것 같군. 넌 날 못이겨!”
“크윽 ……! 억울하다, 저들에게 내가 겪은 것에 만분지 일도 갚지 못했거늘. 방해 마라! 아직 어린 흑묘의 일족 주제에 어딜 한부러 나서느냐? 새파란 아이가 나설 곳이 아니다.”
구지사는 억울해하며, 소년에게 맞섰다. 하나, 뱀의 몸인지라, 인간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더군다나 소년은 보통의 인간도 아니니. 결국, 카악!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구지사 어미는 죽고 말았다.
“큭, 누, 눈이 …….”
하지만, 소년 또한 성치 않아, 한 쪽 눈을 잃고 말았다. 상처를 입어서일까? 아니면 힘을 너무 많이 써서일까? 별안간, 소년의 몸이 스륵, 작아지더니, 검은 고양이로 변했다.
“어헉!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냐? 사람이 고양이로 변하다니.”
“여, 여보, 저 고양이 저희 집을 서성이던 고양이에요.”
순간, 당황하는 부부에게 냐옹! 하는 울음 대신 사람의 말이 들렸다.
“놀라게 해, 죄송합니다.”
흑묘는 부부에게 일의 전말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정신을 차린, 소년도 그 곁에서 함께 들었다.
“어찌 본다면, 정당한 보복이겠으나, 그냥 둘 수는 없었습니다. 어찌됐건, 제게는 친구가 더 소중하니까요.”
“헤에, 정말 니가 그 나비야?”
“응. 니 덕에 배 곯치 않을 수 있어서 고마웠어. 그런데 이 외모인데, 더구나 남자인데, 나비라고 하는 건 좀 …….”
그 뒤, 집 뒤편, 양지 바른 곳에, 크고 작은 무덤 둘이 생겼다. 바로, 죽은 구지사 모자의 묘였다. 한편, 소년에게 입은 은해를 갚고자 나선 흑묘, 묘랑족은 소년의 몸이 건강해지자, 호련 자취를 감추었다. 그리하여 그 뒤로, 불독사의 구지사와 묘랑족, 즉 불독사의 히드라와 캣시의 사이는 틀어지게 되었다. 더불어 불독사의 구지사들은 검은 고양이 또한 싫어하게 되었다.
* 어릴 적 귓동냥한 것으로, 글의 모티브를 위해, 변형 및 개작했음을 밝힙니다. 무서운 얘기어서 자연 개작도 좀 으스스하게 된 듯. 하지만 본래 스토리와 생판 달라요. 뱀 나오는 건 맞지만, 고양이나 그런 건 안 나오거든요.
또 이 이야기는 현재 연재 중인 약칭 LF 소설의 비하인드 스토리 개념입니다. 본편을 몰라도 상관은 없지만, 본편을 아는 독자님들의 재미와 흥미를 돋우기 위해 필자가 서비스한 창작물임을 적습니다.
어디서 들은 이야기 같다, 뭐냐 이 이야기 좀 이상하다 등등 비평은 일절 접수받지 않는다는 점도 명시해야겠네요.